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1229

관란선생유고 김문기 기록(창절사사적) 觀瀾先生遺稿事蹟卷之三 實紀 二 彰節祠事蹟 正宗辛亥正月十七日。京畿儒生黃默等。上言和義君追配。判付曰。和義君之追配於是地是祠。神理人情。可謂俱當。而可合追配者。豈獨和義一人乎。日前駕過鷺梁。路出六臣祠與墓之傍。移時駐蹕。眺望咨嗟者久之。行殿宿次。不禁起感。六十.. 2006. 9. 13.
단계선생유고 김문기 기록 丹溪先生遺稿附錄 事實 天順皇帝沒北虜。時河緯地常感慨曰。天子蒙塵。天下所共憤。我輩雖海外陪臣。豈可恬然不預其憂乎。每處外廊。不入寢室。斯人之志行如是。其忠義殉國可知。 出戊寅記聞佔畢齋金宗直善山十絶迎鳳里詩曰。鄕人終古重膠庠。翹楚年年貢舜廊。一片城西迎鳳里。靑.. 2006. 9. 13.
일성록 김문기 기록(시호를 내림) 정조 2년 무술(1778, 건륭 43) 3월 3일(계해) 정사(政事)가 있었다. 이조 참의 이의익(李義翊), 병조 판서 이휘지(李徽之), 참지 이의필(李義弼)이 나왔다. ○ 하교하기를, “연석에서 하교하였다마는, 정사(正使)는 정1품 중신(重臣) 중에서 비의하고 부사과 심염조는 품계를 올려 서장관에 비의하라.” 하였.. 2006. 9. 13.
연려실기술 김문기 기록(성삼문의 공초) 연려실기술 제4권 단종조 고사본말(端宗朝故事本末) 육신(六臣)의 상왕 복위 모의(上王復位謀議) 곤장을 때리면서 그 일당들을 국문하니, 성삼문이 대답하기를, “김문기(金文起)ㆍ권자신(權自愼)ㆍ송석동(宋石同)ㆍ윤영손(尹鈴孫)ㆍ이 휘(李徽) 및 우리 부자라.” 하였다. 사람을 시켜 묻기를, “상왕.. 2006. 9. 13.
역대요람 성승 기록(육신의 의거에 대한 기록) 역대요람(歷代要覽) 경태(景泰) 명 대종(代宗), 세종(世宗) 32년(1450년) 7년 병자년에 칠신(七臣)박팽년(朴彭年)과 박인수(朴仁叟)는 세종조(世宗朝)에 등제(登第)하여 성삼문(成三問) 등과 항상 집현전(集賢殿)에서 왕에게 중히 여김을 받았다. 을해년에 광묘(光廟 세조(世祖))가 임금의 자리를 물.. 2006. 9. 13.
연려실기술 성승 기록(정난에 죽은 여러 신하) 연려실기술 제4권 단종조 고사본말(端宗朝故事本末) 정난(靖難)에 죽은 여러 신하 성승(成勝) 성승은, 본관은 창녕(昌寧)이며, 무과에 합격하여 벼슬이 도총관(都摠管)에 이르렀다. 병자에 아들 성삼문과 같이 죽었다. 시호는 충숙공(忠肅公)이다. ○ 을해년에 단종이 세조에게 양위할 때에 공이 도총부.. 2006. 9. 13.
연려실기술 성승 기록(육신의 상왕복위) 연려실기술 제4권 단종조 고사본말(端宗朝故事本末) 육신(六臣)의 상왕 복위 모의(上王復位謀議) ○ 세조가 선위를 받을 때에, 자기는 덕이 없다고 사양하니, 좌우에 따르는 신하들은 모두 실색하여 감히 한 마디도 내지 못하였다. 성삼문이 그때에 예방 승지(禮房承旨)로서 옥새를 안고 목놓아 통곡하.. 2006. 9. 13.
미수기언 성승 기록(사육신의총비문) 기언(記言) 제17권 원집(原集) 중편 구묘문(丘墓文) 육신 의총비(六臣疑塚碑) 세종 명신(名臣)에, 박팽년(朴彭年)ㆍ하위지(河緯地)ㆍ성삼문(成三問)ㆍ유응부(兪應孚)ㆍ이개(李塏)ㆍ유성원(柳誠源)이 있어 육신(六臣)이라 부르는데, 그 사적은 육신본전(六臣本傳)에 실려 있다. 이른바 육신총(六臣塚)이 .. 2006. 9. 13.
국조보감 성승 기록(시호를 내림) 국조보감 제73권 정조조 5 15년(신해, 1791) ○ 2월. 경기 유생이 상언하여 화의군(和義君) 이영(李瓔)을 창절사(彰節祠)에 추향(追享)하기를 청하니, 상이 이르기를, "금성군(錦城君)ㆍ화의군과 같은 절의(節義)가 종실에서 나온 것이 어찌 더욱 기특하고 장하지 않겠는가. 그 밖에도 사육신에 뒤지지 않는 .. 2006. 9. 13.
국조보감 성승 기록(성승의 관직 회복) 국조보감 제49권 숙종조 9 18년(임신, 1692) ○ 3월. 고 부총관 성승(成勝)의 관직을 회복시켰다. 성승은 성삼문의 아버지인데 육신이 죽임을 당하였을 때 그도 끼여 있었다. 상이 육신의 관작을 회복시키자 홍주(洪州)의 유생들이 상소하기를, "성승의 묘가 본 고을 노은동(魯隱洞)에 있는데, 그가 살던 집.. 2006. 9. 13.
해동잡록 성간전 안평대군 기록 해동잡록 4 본조(本朝) 성간(成侃) ○ 비해당(匪懈堂 안평대군)이 학문을 좋아하여 당시의 이름난 학자들 중에 교제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성진일(成眞逸)이 유명하다는 말을 듣고 사람을 시켜 초청하였다. 성진일이 가서 뵙고, 정자에 걸린 여러 사람들의 시에 따라 시를 지으니 시어가 고상하고 뛰.. 2006. 9. 13.
해동잡록 이개전 안평대군 기록 해동잡록 3 본조(本朝) 이개(李塏) ○〈팔가시선서(八家詩選序)〉에, “시(詩)는 아송(雅頌) 이후로 정성(正聲)이 차차 쇠미하여 제(齊) 나라 양(梁) 나라의 사이는 여럿이 지은 것이 새 지저귀듯 하였더니, 당 나라에 이르러 《시경》의 남은 운치가 있게 되었고 송대(宋代)의 대가(大家)라는 몇몇 사람.. 2006. 9. 13.
해동잡록 이개전 해동잡록 3 본조(本朝) 이개(李塏) ○ 본관은 한산(韓山)으로 자는 백고(伯高) 또는 청보(淸甫)이다. 목은(牧隱)의 증손이요 종선(種善)의 손자다. 나면서 문장을 잘하여 조부의 풍이 있었다. 세종조에 등제하여 집현전직제학(集賢殿直提學)이 되었다. 세조가 임금 자리를 물려받자 박팽년(朴彭年)ㆍ성삼.. 2006. 9. 13.
용재총화 안평대군 기록 용재총화 제2권 ○ 비해당(匪懈堂 안평대군(安平大君))은 왕자로서 학문을 좋아하고 시문을 잘하였으며, 서법이 기절(奇絶)하여 천하 제일이었다. 또 그림 그리기와 거문고 타는 재주도 훌륭하였다. 성격이 부탄(浮誕)하여 옛것을 좋아하고 경승(景勝)을 즐겨 북문(北門) 밖에다 무이정사(武夷情舍)를 .. 2006. 9. 13.
국조보감 안평대군 기록(안평대군의 잔당제거) 국조보감 제9권 단종조(端宗朝) 2년(갑술, 1454) ○ 양사가 안평대군 이용의 잔당을 제거하기를 청하니, 상이 이르기를, "지금은 간당(奸黨)이 근절되었다. 그전 일에 대해 다시 말하는 자가 있을 경우 나는 그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하고, 중외에 효유하여, 나이가 16세 미만자이거나 시집가지 않은 누.. 2006. 9. 13.
국조보감 안평대군 기록(정난공신의 책훈) 국조보감 제9권 단종조(端宗朝) 1년(계유, 1453) ○ 10월. 정난공신(靖難功臣)을 책훈하였다. 당시에 권람(權擥)과 한명회(韓明澮) 등이, 영의정 황보인, 좌의정 김종서 등이 안평대군(安平大君) 이용(李瑢)과 한편이 되어 종묘 사직을 위태롭게 할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노골적으로 말하면서, 수양대군(首.. 2006. 9. 13.
왕조실록 금성대군 기록(금성대군에 대한 예우) 세조 2년 병자(1456, 경태 7) 6월 27일(을축) 의금부에 금성 대군 등의 예우에 대해 명하다 의금부(義禁府)에 전지하기를, “이유(李瑜)·이영(李瓔)·이어(李)·이전(李瑔)·정종(鄭悰)의 처첩(妻妾)과 자녀(子女)들은 자원에 따라 모여 살게 하고, 부리는 여종[婢子]은 이유(李瑜)는 4명으로, 그 나머.. 2006. 9. 13.
왕조실록 금성대군 기록(순흥에 안치) 세조 2년 병자(1456, 경태 7) 6월 27일(을축) 의금부에서 금성 대군 등을 분산 안치하고 지키게 할 것을 청하니 따르다 의금부(義禁府)에서 아뢰기를, “지금 전지(傳旨)를 반들어 이유(李瑜)를 경상도 순흥(順興)에, 이어(李)를 함양(咸陽)에, 이영(李瓔)을 전라도 금산(錦山)에, 이전(李瑔)을 임실(任.. 2006. 9. 13.
왕조실록 금성대군 기록4(고신을 거둔 것에 대한 항의) 단종 3년 을해(1455, 경태 6) 3월 1일(병오) 장령 이승소가 환관 엄자치 등의 고신을 거둔 것과 금성 대군 이유의 죄명을 밝힐 것을 아뢰다 장령(掌令) 이승소(李承召)가 본부(本府)의 의논을 가지고 아뢰기를, “환관(宦官)들이 조정(朝廷)을 경멸(輕蔑)하고 국정(國政)에 간여하였는데도 다만 본향(本鄕)에.. 2006. 9. 13.
왕조실록 금성대군 기록3(금성대군의 고신을 거둠) 단종 3년 을해(1455, 경태 6) 2월 27일(계묘) 금성 대군 이유 등의 고신을 거두고 엄자치 등 환관을 외방에 유배시키다 의금부(義禁府)에 전지(傳旨)하기를, “금성 대군(錦城大君) 이유(李瑜)·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 홍약(洪約)·당성위(唐城尉) 홍해(洪海)는 고신(告身)을 거두고, 화의군(和義君) 이영(.. 2006. 9. 13.
왕조실록 금성대군 기록2(화의군의 파출) 단종 3년 을해(1455, 경태 6) 2월 27일(계묘) 화의군 이영 등을 유배하고 환관 엄자치 등을 파출시키다 처음에 영의정(領議政)과 우의정(右議政) 한확(韓確)·우찬성(右贊成) 이계린(李季疄)·좌참찬(左參贊) 강맹경(姜孟卿)·병조 판서(兵曹判書) 이계전(李季甸)·형조 판서(刑曹判書) 이변(李邊)·.. 2006. 9. 13.
왕조실록 금성대군 기록1(세조가 금성대군을 의심) 단종 2년 갑술(1454, 경태 5) 8월 28일(정미) 계양군 이증 등이 세조에게 금성 대군 등의 의심할 만한 바를 아뢰다 계양군(桂陽君) 이증(李璔)과 영천위(鈴川尉) 윤사로(尹師路)가 세조(世祖)에게 사뢰기를, “수춘군(壽春君)과 익현군(翼峴君)이 말하기를, ‘금성 대군(錦城大君)이 화의군(和義君)에.. 2006. 9. 13.
학봉속집 금성대군 기록(복작을 청하는 상소) 학봉속집(鶴峯續集) 제2권 소(疏) 노릉(魯陵)을 복위(復位)시키고, 사육신(死六臣)을 복작(復爵)시키며, 종친(宗親)을 서용(敍用)하기를 청한 상소(上疏) 신미년(1571, 선조 4) 예문관봉교(藝文館奉敎) 춘추관기사관(春秋館記事官) 신(臣) 김성일(金誠一)은 참으로 황공하게도 머리를 조아려서 두 번 절하고.. 2006. 9. 13.
학봉일고 금성대군 기록 학봉일고(鶴峯逸稿) 부록 제3권 학봉김문충공사료초존(鶴峯金文忠公史料鈔存) 하 《금대유고(錦帶遺稿)》 [금대 이가환(李家煥)] 학봉 김 선생이 올린 신미년(1571, 선조 4) 상소의 발문(跋文) 일에는 천만 사람이 말하려고 하는 것을 한 사람이 말하는 경우가 있으니, 이를 일러 ‘공언(公言)’이.. 2006. 9. 13.
해동잡록 금성대군기록 해동잡록 3 본조(本朝) 이보흠(李甫欽) ○ 본관은 영천(永川)으로, 자는 경부(敬夫)이고 호는 대전거사(大田居士)이다. 세종조에 등제하였다. 문장을 잘하고 사무에 능하였다. 세조조에 순흥부(順興府)의 태수가 되었다가 금성대군(錦城大君)의 위협을 받고도 미처 달려 임금에게 아뢰지 못하고 일이 발.. 2006. 9. 13.
연려실기술 금성대군기록(국조전고 연표) 연려실기술 별집 제1권 국조전고(國朝典故) 연표(年表) 태조 강헌지인계운성문신무정의광덕 대왕(太祖康獻至仁啓運聖文神武正義光德大王) 왕위에 있은 지 7년이었다. 임신년에 즉위하였다. 명(明) 나라 태조(太祖)성은 주(朱)이며 휘는 원장(元璋)이다 의 홍무(洪武) 25년 홍무 원년은 무신년에서 시작.. 2006. 9. 13.
연려실기술 금성대군기록(정난에죽은 여러 신하) 연려실기술 제4권 단종조 고사본말(端宗朝故事本末) 정난(靖難)에 죽은 여러 신하 금성대군(錦城大君) 유(瑜) 금성대군 유는 세종의 여섯째 아들인데, 을해에 삭녕(朔寧)으로 귀양갔다가 병자에 순흥(順興)에 안치되었고, 정축에 화를 입었다. 뒤에 신원하였고, 시호는 정민공(貞愍公)이다. ○ 을해년(14.. 2006. 9. 13.
연려실기술 금성대군기록(금성의옥사와단종의별세) 연려실기술 제4권 단종조 고사본말(端宗朝故事本末) 금성(金城)의 옥사와 단종의 별세 정축년(1457) 가을에 금성대군 유(瑜)가 순흥 부사(順興府使)이보흠(李甫欽)과 더불어 거사하기를 꾀하다가 얼마 안 되어 발각되었다. 종친과 재집(宰執)과 대간이 법으로 처치하기를 청하였으나, 따르지 않았다. 여.. 2006. 9. 13.
연려실기술 금성대군 기록(사육신의상왕복위) 연려실기술 제4권 단종조 고사본말(端宗朝故事本末) 육신(六臣)의 상왕 복위 모의(上王復位謀議) 3년 을해년(1455) 봄 2월에 정부ㆍ육조(六曹)ㆍ정원(政院)이 빈청(賓廳)에 모여서 화의군(和義君) 영(瓔) 세종의 아들 이 최승손(崔承孫)ㆍ김옥겸(金玉謙)과 더불어 금성대군(錦城大君) 유(瑜)의 집에서 잔치.. 2006. 9. 13.
성호사실 금성대군 기록(제6권만물문 압각) 성호사설 제6권 만물문(萬物門) 압각(鴨脚) 옛날 단종(端宗)이 손위(遜位)할 때에 안평대군 용(安平大君 瑢)은 즉시 죽음을 당했고, 금성대군 유(錦城大君 瑜)는 순흥(順興)으로 귀양 가서 격문(檄文)을 돌리고 군사를 일으키려다가, 미처 일으키기 전에 고발한 자가 있어 역시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이.. 2006. 9.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