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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비사육신관련41

해동잡록 성승 기록 海東雜錄[四] 權鼈 本朝[四] 成勝 昌寧人。以武藝進。魯山末年。仕爲都摠管。及光廟受禪。與其子三問及朴彭年兪應孚等。謀復前王。事覺誅。 2006. 9. 14.
숙모전비명 김문기 기록(관란선생유고) 觀瀾先生遺稿事蹟卷之三 實紀 二 肅慕殿碑銘 甲辰○安東金福漢 維公州東五十里鷄龍山中東鶴之寺。有廟三間。奉神牌以祀我端宗恭懿敦孝大王定順王后宋氏。每歲孟冬季春。遠近士民。趨進祠下。薦籩豆。嗚呼惟王。世宗之嫡孫。文宗之長子。早冊儲貳。沖年嗣位。睿質聰明。聖學將就。.. 2006. 9. 14.
왕조실록 김문기 기록(어정배식록명단) 정조 15년 신해(1791, 건륭 56) 2월 21일(병인) 장릉 배식단에 배향할 사람의 명단 정단(正壇)에 배식한 사람은 32인 【안평 대군(安平大君) 장소공 이용(章昭公李瑢), 금성 대군(錦城大君) 정민공 이유(貞愍公李瑜), 화의군(和義君) 충경공 이영(忠景公李瓔), 한남군(漢南君) 정도공 이어(貞悼公李), 영풍군(.. 2006. 9. 13.
왕조실록 김문기 기록(장릉배식단 상소) 정조 15년 신해(1791, 건륭 56) 2월 21일(병인) 장릉에 배식단을 세우고 추향할 사람을 정하다 고 교리 성희(成熺)는 곧 성삼문(成三問)의 종숙부(從叔父)이자, 정숙공 성담수(成聃壽)의 아버지입니다. 선정신 권상하(權尙夏)가 지은 묘표에 ‘희가 삼문과 함께 왕실을 보필하여 죽고 사는 일로 그 마음을 바.. 2006. 9. 13.
왕조실록 김문기 기록(공초에 불복) 세조 2년 병자(1456, 경태 7) 6월 2일(경자) 성균 사예 김질과 우찬성 정창손이 성삼문의 불궤를 고하다 1. 번역문 성균 사예(成均司藝) 김질(金礩)이 그 장인인 의정부 우찬성(議政府右贊成) 정창손(鄭昌孫)과 더불어 청하기를, “비밀히 아뢸 것이 있습니다.” 하므로, 임금이 사정전(思政殿)에 나.. 2006. 9. 13.
왕조실록 김문기 기록(공조판서 불가 상소) 세조 1년 을해(1455, 경태 6) 8월 9일(임자) 사헌부 지평 안중후가 집안을 잘못 다스린 김문기의 공조 판서 제수의 불가함과 이유의 중벌을 청하다 지평(持平) 안중후(安重厚)가 본부(本府)의 의논을 가지고 아뢰기를, “이유(李瑜)는 죄(罪)는 무겁고 벌(罰)은 가벼우니, 고금(古今) 천하(天下)를 통하여 어.. 2006. 9. 13.
왕조실록 김문기 기록(공조판서 제수) 세조 1년 을해(1455, 경태 6) 7월 22일(을미) 김문기·이변·성승·김말행·이예장·한종손·양정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김문기(金文起)를 공조 판서(工曹判書)로, 이변(李邊)을 중추원사(中樞院使)로, 성승(成勝)을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로, 김말행(金末行)을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로, 이.. 2006. 9. 13.
왕조실록 김문기 기록(천추사 기용문제) 단종 1년 계유(1453, 경태 4) 10월 24일(정미) 이언·김계우 등이 김문기를 천추사로 차정하는 일의 불가함을 아뢰다 장령(掌令) 이언(李堰)·우헌납(右獻納) 김계우(金季友) 등이 아뢰기를, “김문기(金文起)는 그 딸이 실행(失行)하였기 때문에 헌사(憲司)에서 형조 참판(刑曹參判)을 파면하기를 청하였는.. 2006. 9. 13.
왕조실록 김문기 기록(이징옥과 관련된 문제) 단종 1년 계유(1453, 경태 4) 10월 19일(임인) 허추가 이징옥을 강원도에 안치하는 일의 불가함을 아뢰다 좌헌납(左獻納) 허추(許錘)를 불러 전교하기를, “너희들이 아뢴 일은 이미 전지를 내렸으니, 추문할 수 없다.” 하니, 허추가 아뢰기를, “가만히 병기를 실어 나른 죄는 실로 현저한 일입니다. 배 두.. 2006. 9. 13.
왕조실록 김문기 기록(사헌부의 상소) 단종 1년 계유(1453, 경태 4) 10월 12일(을미) 사헌부에서 김문기는 그 딸의 죄로 참판이 될 수 없음을 아뢰다 1, 번역문 사헌부(司憲府)에서 아뢰기를, “어제 죄를 당한 사람들은, 청컨대 아울러 가산(家産)을 적몰하고 고신(告身)을 추탈하소서. 김문기(金文起)의 딸의 일은 나라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으.. 2006. 9. 13.
왕조실록 김문기 기록(딸의 음란과 관련된 것) 단종 1년 계유(1453, 경태 4) 9월 27일(경진) 의정부에서 임중경의 일을 의금부에 내려 삼성 잡치하기를 청하다 1. 번역문 의정부에서 아뢰기를, “임중경(林仲卿)의 일은 의금부에 내려서 삼성 잡신(三省雜訊)함이 마땅합니다.” 하니, 그대로 따랐다. 이번(李蕃)의 아비 이효경(李孝敬)은 풍질(風疾)이 있.. 2006. 9. 13.
왕조실록 김문기 기록(친지관련) 문종 2년 임신(1452, 경태 3) 3월 28일(신유) 이양·안숭선·허후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1. 번역문 이양(李穰)을 의정부 우찬성(議政府右贊成)으로 삼아 판병조사(判兵曹事)를 겸하게 하고, 안숭선(安崇善)과 허후(許詡)에게는 정헌 대부(正憲大夫)를 가(加)하고, 김조(金銚)를 인순부 윤(仁.. 2006. 9. 13.
왕조실록 김문기 기록(사위에 대한 일) 문종 즉위년 경오(1450, 경태 1) 8월 2일(계유) 사간원에서 세자 좌참군으로 이번을 제수한 것을 개정하도록 요청하다 사간원(司諫院)에서 아뢰기를, “육조(六曹)의 낭관(郞官)을 임기(任期)가 차면 서용(敍用)하는 것이 전례(前例)인데, 지금 형조 정랑(刑曹正郞) 남윤(南倫)은 임기가 차지 않았는데도, .. 2006. 9. 13.
왕조실록 김문기 기록(관직제수) 세종 32년 경오(1450, 경태 1) 윤 1월 17일(임술) 김문기·홍심·신처강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김문기(金文起)로 병조 참의를, 홍심(洪深)으로 겸지병조사(兼知兵曹事)를, 신처강(辛處康)으로 충청도 병마 도절제사를 삼았다. 문기(文起)의 사위는 이효경(李孝敬)의 아들인데, 효경(孝敬)이 본래 미친 병.. 2006. 9. 13.
왕조실록 김문기 기록(재산상속 문제) 세종 30년 무진(1448, 정통 13) 4월 9일(갑자) 수양 아비의 재산 상속을 둘러싼 분쟁에 대한 부지돈녕부사 권총의 상서 부지돈녕부사(副知敦寧府事) 권총(權聰)이 글을 올리기를, “신이 본래 침고(沈痼)된 병이 많은데다가 완만(緩漫)한 풍증이 있어, 무릇 동작을 하려면 오로지 남의 부축을 의뢰하여야 하.. 2006. 9. 13.
관란선생유고 김문기 기록(창절사사적) 觀瀾先生遺稿事蹟卷之三 實紀 二 彰節祠事蹟 正宗辛亥正月十七日。京畿儒生黃默等。上言和義君追配。判付曰。和義君之追配於是地是祠。神理人情。可謂俱當。而可合追配者。豈獨和義一人乎。日前駕過鷺梁。路出六臣祠與墓之傍。移時駐蹕。眺望咨嗟者久之。行殿宿次。不禁起感。六十.. 2006. 9. 13.
일성록 김문기 기록(시호를 내림) 정조 2년 무술(1778, 건륭 43) 3월 3일(계해) 정사(政事)가 있었다. 이조 참의 이의익(李義翊), 병조 판서 이휘지(李徽之), 참지 이의필(李義弼)이 나왔다. ○ 하교하기를, “연석에서 하교하였다마는, 정사(正使)는 정1품 중신(重臣) 중에서 비의하고 부사과 심염조는 품계를 올려 서장관에 비의하라.” 하였.. 2006. 9. 13.
역대요람 성승 기록(육신의 의거에 대한 기록) 역대요람(歷代要覽) 경태(景泰) 명 대종(代宗), 세종(世宗) 32년(1450년) 7년 병자년에 칠신(七臣)박팽년(朴彭年)과 박인수(朴仁叟)는 세종조(世宗朝)에 등제(登第)하여 성삼문(成三問) 등과 항상 집현전(集賢殿)에서 왕에게 중히 여김을 받았다. 을해년에 광묘(光廟 세조(世祖))가 임금의 자리를 물.. 2006. 9. 13.
연려실기술 성승 기록(정난에 죽은 여러 신하) 연려실기술 제4권 단종조 고사본말(端宗朝故事本末) 정난(靖難)에 죽은 여러 신하 성승(成勝) 성승은, 본관은 창녕(昌寧)이며, 무과에 합격하여 벼슬이 도총관(都摠管)에 이르렀다. 병자에 아들 성삼문과 같이 죽었다. 시호는 충숙공(忠肅公)이다. ○ 을해년에 단종이 세조에게 양위할 때에 공이 도총부.. 2006. 9. 13.
연려실기술 성승 기록(육신의 상왕복위) 연려실기술 제4권 단종조 고사본말(端宗朝故事本末) 육신(六臣)의 상왕 복위 모의(上王復位謀議) ○ 세조가 선위를 받을 때에, 자기는 덕이 없다고 사양하니, 좌우에 따르는 신하들은 모두 실색하여 감히 한 마디도 내지 못하였다. 성삼문이 그때에 예방 승지(禮房承旨)로서 옥새를 안고 목놓아 통곡하.. 2006. 9. 13.
미수기언 성승 기록(사육신의총비문) 기언(記言) 제17권 원집(原集) 중편 구묘문(丘墓文) 육신 의총비(六臣疑塚碑) 세종 명신(名臣)에, 박팽년(朴彭年)ㆍ하위지(河緯地)ㆍ성삼문(成三問)ㆍ유응부(兪應孚)ㆍ이개(李塏)ㆍ유성원(柳誠源)이 있어 육신(六臣)이라 부르는데, 그 사적은 육신본전(六臣本傳)에 실려 있다. 이른바 육신총(六臣塚)이 .. 2006. 9. 13.
국조보감 성승 기록(시호를 내림) 국조보감 제73권 정조조 5 15년(신해, 1791) ○ 2월. 경기 유생이 상언하여 화의군(和義君) 이영(李瓔)을 창절사(彰節祠)에 추향(追享)하기를 청하니, 상이 이르기를, "금성군(錦城君)ㆍ화의군과 같은 절의(節義)가 종실에서 나온 것이 어찌 더욱 기특하고 장하지 않겠는가. 그 밖에도 사육신에 뒤지지 않는 .. 2006. 9. 13.
해동잡록 성간전 안평대군 기록 해동잡록 4 본조(本朝) 성간(成侃) ○ 비해당(匪懈堂 안평대군)이 학문을 좋아하여 당시의 이름난 학자들 중에 교제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성진일(成眞逸)이 유명하다는 말을 듣고 사람을 시켜 초청하였다. 성진일이 가서 뵙고, 정자에 걸린 여러 사람들의 시에 따라 시를 지으니 시어가 고상하고 뛰.. 2006. 9. 13.
해동잡록 이개전 안평대군 기록 해동잡록 3 본조(本朝) 이개(李塏) ○〈팔가시선서(八家詩選序)〉에, “시(詩)는 아송(雅頌) 이후로 정성(正聲)이 차차 쇠미하여 제(齊) 나라 양(梁) 나라의 사이는 여럿이 지은 것이 새 지저귀듯 하였더니, 당 나라에 이르러 《시경》의 남은 운치가 있게 되었고 송대(宋代)의 대가(大家)라는 몇몇 사람.. 2006. 9. 13.
용재총화 안평대군 기록 용재총화 제2권 ○ 비해당(匪懈堂 안평대군(安平大君))은 왕자로서 학문을 좋아하고 시문을 잘하였으며, 서법이 기절(奇絶)하여 천하 제일이었다. 또 그림 그리기와 거문고 타는 재주도 훌륭하였다. 성격이 부탄(浮誕)하여 옛것을 좋아하고 경승(景勝)을 즐겨 북문(北門) 밖에다 무이정사(武夷情舍)를 .. 2006. 9. 13.
국조보감 안평대군 기록(안평대군의 잔당제거) 국조보감 제9권 단종조(端宗朝) 2년(갑술, 1454) ○ 양사가 안평대군 이용의 잔당을 제거하기를 청하니, 상이 이르기를, "지금은 간당(奸黨)이 근절되었다. 그전 일에 대해 다시 말하는 자가 있을 경우 나는 그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하고, 중외에 효유하여, 나이가 16세 미만자이거나 시집가지 않은 누.. 2006. 9. 13.
국조보감 안평대군 기록(정난공신의 책훈) 국조보감 제9권 단종조(端宗朝) 1년(계유, 1453) ○ 10월. 정난공신(靖難功臣)을 책훈하였다. 당시에 권람(權擥)과 한명회(韓明澮) 등이, 영의정 황보인, 좌의정 김종서 등이 안평대군(安平大君) 이용(李瑢)과 한편이 되어 종묘 사직을 위태롭게 할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노골적으로 말하면서, 수양대군(首.. 2006. 9. 13.
왕조실록 금성대군 기록(금성대군에 대한 예우) 세조 2년 병자(1456, 경태 7) 6월 27일(을축) 의금부에 금성 대군 등의 예우에 대해 명하다 의금부(義禁府)에 전지하기를, “이유(李瑜)·이영(李瓔)·이어(李)·이전(李瑔)·정종(鄭悰)의 처첩(妻妾)과 자녀(子女)들은 자원에 따라 모여 살게 하고, 부리는 여종[婢子]은 이유(李瑜)는 4명으로, 그 나머.. 2006. 9. 13.
왕조실록 금성대군 기록(순흥에 안치) 세조 2년 병자(1456, 경태 7) 6월 27일(을축) 의금부에서 금성 대군 등을 분산 안치하고 지키게 할 것을 청하니 따르다 의금부(義禁府)에서 아뢰기를, “지금 전지(傳旨)를 반들어 이유(李瑜)를 경상도 순흥(順興)에, 이어(李)를 함양(咸陽)에, 이영(李瓔)을 전라도 금산(錦山)에, 이전(李瑔)을 임실(任.. 2006. 9. 13.
왕조실록 금성대군 기록4(고신을 거둔 것에 대한 항의) 단종 3년 을해(1455, 경태 6) 3월 1일(병오) 장령 이승소가 환관 엄자치 등의 고신을 거둔 것과 금성 대군 이유의 죄명을 밝힐 것을 아뢰다 장령(掌令) 이승소(李承召)가 본부(本府)의 의논을 가지고 아뢰기를, “환관(宦官)들이 조정(朝廷)을 경멸(輕蔑)하고 국정(國政)에 간여하였는데도 다만 본향(本鄕)에.. 2006. 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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