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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신11

사육신한양오백년가 내용 한양오백년가 ····文宗大王1) 登極하니 그 王妃는 누시던고, 安東權氏2) 夫人이라。 府院君3)은 누구던고, 安東 사람 權專4)이라。 文宗大王 擧動5) 보소。端宗6)을 늦게 두고 國事는 滄茫7)한데, 骨肉相爭8) 쉬우리라。 可憐하다9) 權王妃는 端宗을 낳으시고, 襁褓10)의 아들 두고 二十四에 昇遐하니.. 2006. 9. 11.
사육신 유성원전 1. 번역문 유성원전 유성원의 자는 태초이고 세종조에 과거에 급제했다. 정통 갑자에 식년과에 급제하고, 정유년에는 중시에 급제했다. 계유정난이 있었을 때 모든 신료들이 세조의 공을 주공에 비하여 기리자고 하여 집현전의 학사들에게 초안을 잡으라고 명하였다. 모든 학사들이 전부 도망하여 어.. 2006. 9. 8.
남효온의 육신전 秋江先生文集卷之八 六臣傳 朴彭年字仁叟。世宗朝登第。 宣德壬子。生員。甲寅親試。正統丁卯重試。與成三問等嘗任集賢殿。見重於上。乙亥。光廟受禪。彭年知王事終不濟。臨慶會樓池欲自隕。三問固止之曰。方今神器雖移。而尙有上王。我輩不死。猶且後圖。圖而不成。死亦未晩。今.. 2006. 9. 8.
사육신왕조실록기록(영조34년10월7일)사육신에충자시호내림 영조 34년 10월 7일 (경신) 재실에서 《장릉지》를 읽게 하고 사육신과 3상에게 ‘충’자로 시호를 내리도록 하다 임금이 재실(齋室)에 나아가니, 예조 판서·병조 판서가 입시(入侍)하였다. 임금이 예조 판서 홍상한(洪象漢)에게 이르기를, “홍세태(洪世泰)는 노예(奴隷)라는 이름이 있었으나, 문장(文.. 2006. 9. 8.
사육신왕조실록기록(숙종27년12월6일)사육신의복작 숙종 17년 12월 6일 (병술) 성삼문 등 사육신을 복작하고, 관원을 보내 치제하게 하다 해조(該曹)에 특별히 명하여 성삼문(成三問) 등 여섯 사람을 복작(復爵)하고, 관원을 보내어 치제(致祭)하게 하였다. 사당의 편액(扁額)을 민절(愍節)이라 내리고, 비망기(備忘記)를 내리기를, “나라에서 먼저 힘쓸 것.. 2006. 9. 8.
사육신왕조실록기록(숙종17년9월2일)사육신묘에제사함 숙종 17년 9월 2일 (계축) 사육신의 무덤과 노산 대군의 묘에 제사하게 하다 임금이 노량진(露梁津)을 건너 성삼문(成三問) 등 육신(六臣)의 무덤이 길 옆에 있는 것을 보고 그 절의(節義)에 감동하여 특별히 명하여 관원을 보내어 사제(賜祭)하게 하고, 이어서 명하여 근시(近侍)를 노산 대군(魯山大君)의.. 2006. 9. 8.
사육신왕조실록기록(숙종6년12월22일)사육신의억울함호소 숙종 6년 12월 22일 (정미) 군포의 폐단, 사육신과 황보인·김종서·김원량의 억울함에 관한 강화 유수 이선의 상소 강화 유수(江華留守) 이선(李選)이 상소하여, 헛된 형식을 일삼지 말고 실제의 덕을 힘써 닦아서 모든 행동과 언어가 반드시 마음에 비추어 부끄러움이 없게 하여 민심(民心)에 부합되기.. 2006. 9. 8.
사육신왕조실록기록(효종3년11월13일)사육신의정려 효종 3년 11월 13일 (신사) 전 판서 조경이 분부에 응해 올린 궁장의 폐해, 사육신의 정려 등에 대한 상소 전 판서 조경이 포천(抱川)에서 분부에 응하여 상소하기를, “나이 일흔에 죽을 때가 다된 늙은 신하가 궁벽한 산중에서 병들어 있으므로 국가의 소식을 듣지 못한 지 오래 되었습니다. 지난달 본.. 2006. 9. 8.
사육신왕조실록기록(세조2년6월9일)이사철의전문 세조 2년 6월 9일 (정미) 우의정 이사철이 역신을 주륙한 것을 하례하여 전문을 올리다 의정부 우의정(右議政) 이사철(李思哲)이 백관을 거느리고 전문(箋文)을 올려 역신(逆臣)을 주륙(誅戮)한 것을 하례하였다. 그 전문은 이러하였다. “천도(天道)가 거짓이 없어서 죄인들이 이미 그 죄에 복주(伏誅)되.. 2006. 9. 8.
사육신왕조실록기록(세조2년6월7일)-사육신처벌규정 세조 2년 6월 7일(을사) 이미 죽은 박팽년·유성원·허조와 연좌된 자들의 처벌규정을 정하다 박팽년(朴彭年)이 이미 공초(供招)에 자복하여 옥중에서 죽으니, 의금부(義禁府)에서 아뢰기를, “박팽년·유성원(柳誠源)·허조(許慥) 등이 지난해 겨울부터 성삼문(成三問)·이개(李塏)·하위지(河.. 2006. 9. 8.
사육신왕조실록기록(세조2년6월2일)-김질의고변 세조 2년 6월 2일 (경자) 성균 사예 김질과 우찬성 정창손이 성삼문의 불궤를 고하다 성균 사예(成均司藝) 김질(金礩)이 그 장인인 의정부 우찬성(議政府右贊成) 정창손(鄭昌孫)과 더불어 청하기를, “비밀히 아뢸 것이 있습니다.” 하므로, 임금이 사정전(思政殿)에 나아가서 인견(引見)하였다. .. 2006.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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