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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일상/202241

정조의 효행길 반세기의 벗 靑山四友는 정조의 효행길을 2022년 송년회로 택했다. 창덕궁에서 출발한 정조의 행차는 노량진의 배다리를 건너 龍驤鳳翥亭에서 점심과 휴식을 취한 후 시흥의 행궁에서 하룻밤을 지냈다. 작년에 용양봉저정까지 답사했으므로 이번에는 始興行宮址에서 시작했다. 시흥행궁의 흔적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고, 830년이나 되었다는 당시의 은행나무 세 그루만 확인할 수 있었고, 시흥 5동 사무소 안에 있는 시흥 행궁 전시관을 들렀다. 행궁 복원 계획만 있을 뿐 언제 어떤 방식으로 할지는 전혀 생각해본 적도 없다고 했다. 해설사의 설명을 들었는데, 애초에 잡았던 동작나루, 남태령, 과천, 온은사 코스가 왜 시흥, 안양으로 바뀌었는지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말이 없었다. 과천길로 갈 경우 사도세자의 죽음에 깊숙이 .. 2022. 12. 31.
눈덮 인 파로호 화천읍에서 10킬로 정도 상류에 있는 화천댐이 1943년에 만들어지면서 생긴 破虜湖의 원래 명칭은 大鵬湖였다. 여기에도 아픈 역사가 숨어 있는데, 일본인들이 댐을 만들 당시에 주민들의 요구로 대붕호라는 이름으로 하기로 했으나 비슷한 글자이지만 뜻은 다른 명)을 넣어 大䳟堤라는 표지석을 세웠다. 1951년에는 육군, 해병대, 미군의 연합군이䳟(초명새 합작하여 중공군 3개 군 수만 명을 수장시킨 전승을 기념하기 위해 이승만 대통령이 파로호로 이름을 붙이라 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의 슬픔과 전쟁의 아픈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지금은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어 있다. 파로호는 강원도 양구읍 부근에서 시작하여 화천까지 이어져 있다. 눈이 내린 호수가 절경일 것 같아서 12월 28일에는 양구의 파로호를 다녀왔다. 낮이라서.. 2022. 12. 30.
인왕산의 유적들(5)-윤동주 하숙집 인왕산의 유적들(5)-윤동주 하숙집 필운대를 보고 난 후 눈 덮힌 인왕산 길을 걸으면서 기묘한 바위도 보고 민족시인이었던 윤동주가 하숙하던 집터를 들렀다. 옛 모습은 없고, 표지판만 있을 뿐이었다. 일제강점기 때 가옥을 보존하면서 미술가의 기념관으로 쓰고 있는 박노수 가옥을 보고 나니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간단하게 저녁을 먹은 후 광화문 광장에 들러 빛초롱축제를 잠시 감상한 후 마무리를 했다. #인왕산 #광화문 #윤동주 #尹東柱 #윤동주하숙집 #박노수가옥 #광화문빛초롱축제 #광화문광장 #인왕산이빨바위 #통인시장 2022. 12. 26.
인왕산의 유적들(4)-弼雲臺 인왕산의 유적들(4)-弼雲臺 서울시 종로구 필운동 12번지에 있는 필운대는 유적으로 보존되거나 복원되었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왜냐하면 배화여자전문대학 땅에 있는데, 그중에서도 다시 배화여고 안에 자리하고 있어서 들어가기도 까다로운 데다가 찾아가기도 무척 어렵기 때문이다. 일단 여자고등학교의 정문을 지나야 하는데, 경비하는 분이 들여보내 주기를 거부하거나 상당한 정성(?)을 들여야 겨우 들어갈 수 있다. 다른 하나의 방법은 중학교 방향으로 나 있는 옆문을 이용하면 아무런 제지없이 들어갈 수는 있다. 필운은 白沙 李恒福의 字號이기도 한데, 인왕산의 다른 이름인 弼雲山과 오른쪽에서 군주를 보좌한다는 뜻을 가진 右弼雲龍에서 따온 것이다. 운룡은 주역에 보이는,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범을 따른다(雲從.. 2022. 12. 26.
인왕산의 유적들(3)-社稷壇 인왕산의 유적들(3)-社稷壇 지하철 3호선 경복궁 역1번 출구에서 서쪽으로 300여 미터를 가면 사직단이 있다. 이곳은 토지를 관장하는 신(社神)과 곡식을 주관하는 신(稷神)을 제사하는 곳이다. 사직단은 조선시대 당시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는 상태다. 일제강점기에는 공원으로 되면서 규모가 크게 축소되었고 그 뒤로 본 모습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지금은 두 개의 壇이 있다. 社(모일 사, 제사 지낼 사)는 제사상에 제수를 올려놓은 모양을 본떠서 만든 것으로 신을 의미하는 示(보일 시)와 땅에서 싹이 올라오는 모습을 나타내는 土(흙 토)가 결합한 모양으로 토지, 국토 등의 의미와 토지신에게 제사를 지낸다는 뜻을 가진다. 그러므로 社는 영토, 국토 등으로 되고, 社壇은 토지신에게 제를 지내는 곳이라고 보면 된다.. 2022. 12. 24.
인왕산의 유적들(2) 無無臺 인왕산의 유적들(2) 無無臺 수성동 계곡에서 북악스카이웨이로 이어지는 인왕산로 쪽으로 올라가서 자하문 방향으로 가다보면 오른쪽에 無無臺라는 팻말이 보인다. 누군가가 바위에 새겨놓은 말에 의하면, 아무것도 없다로 해석되어 있다. 아무것도 없는 곳이란 무슨 뜻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그 아래에 오직 아름다움만이 있을 뿐이라는 말을 붙여 놓았다. 그런데도 이런 설명은 무무대라는 말에 대한 적절한 해석이나 이해를 돕는 것으로 보기 어려운 점이 있다. 이것은 無無가 무엇을 뜻하는지를 알아야 이해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無無는 직역하면, ‘없는 것이 없다.’ 정도로 되지만 실제로는 훨씬 깊은 뜻이 있다. 이 표현은 ‘없는 것 자체가 없다’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 2022. 12. 23.
인왕산의 유적들(1)-壽城洞(水聲洞) 계곡 인왕산의 유적들(1)-壽城洞(水聲洞) 계곡 서울 종로구 옥인동 185-4 부근에서 시작되는 계곡을 수성동 계곡이라고 한다. 2022년 12월 21일 폭설이 내린 날 이곳을 찾았다. 인왕산의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조선 초 安平大君의 개인 宮이 있었던 지역이다. 특히 이곳은 조선 후기에 해당하는 18세기의 화가인 鄭敾이 그린 壯洞八景帖에는 현재 수성동계곡에 있는 기린교가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 물소리가 끊어지지 않는다고 하여 水聲洞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고 하는데, 조선 초기에는 壽城洞으로 불렸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여기서부터 弼雲臺가 있는 지역 전체가 안평대군의 궁인 壽城宮이 있었고, 그것의 이름을 따서 壽城洞이라 불렸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안평대군은 이 수성동에 궁을 짓고 생활했는데, 서화와 서책.. 2022. 12. 22.
눈 오시는 날 눈 오시는 날(雪日) 아침부터 해는 구름 뒤로 숨고 穹蒼이 변하더니 점심을 지나자 하늘로부터 함박눈이 내리는도다 산수유 붉은 열매 찬바람 속에 더욱 붉어지는데 흰 눈 사이로는 초가 한두 채 아득하게 보이누나 겨울눈은 朔風을 타고 북으로부터 온다고 하지만 눈 속에 보이는 그대 소식은 남에서 오는 듯하네 陽의 기운이 다시 살아나는 冬至를 지나고 나면 즐겁게 다시 만나 봄맞이할 술 한잔 기울여보세나 #눈오시는날 #雪日 #冬至 #동지 ##산수유 #폭설 #삭풍 #朔風 #陽 #穹蒼 #궁창 #함박눈 2022. 12. 15.
낙산 주변의 유적들 駱山 주변의 유적들 1 서울의 동쪽에 있는 것이면서 혜화문에서 남쪽의 동대문 방향으로 한양도성이 지나가는 산을 낙산이라고 하는데, 낙타의 등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駞駱山이라고 불렀다. 지금은 그것을 줄여서 낙산이라고 한다. 풍수상으로 보면 궁궐을 지키는 좌청룡 중 내청룡에 해당하는 산으로 내백호인 인왕산과 상대된다. 옹주들이 거처하는 곳으로 궁궐의 동쪽 끝에 있는 含春苑의 바로 앞에 있으며, 그 사이에 興德洞川이 흐르고 있는 데다 바위로 이루어져 있어서 조선 시대의 유적들이 아주 많다. 이번 기행은 端宗의 왕비인 定順王后 관련 유적을 중심으로 반세기의 벗들과 함께했다. 출발지는 청계천 7가와 8가의 중간 지점에 있는 다리인 永渡橋이다. 이 다리는 남쪽에 있는 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데, 왕심평.. 2022. 12. 15.
花信風 花信風 이번 겨울은 이상하리만치 따뜻하다. 매서운 추위가 아직 오지 않아서인지 모르지만, 기온이 높은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겨울의 절정으로 해가 가장 짧은 시기인 冬至가 아직 오지도 않았는데 二十四番花信風의 두 번째인 大寒이 되어야 핀다는 난초가 벌써 수줍은 꽃을 열어젖혔다. 이십사번화신풍은 줄여서 花信風이라고도 하는데, 꽃 소식을 알려주는 바람을 이렇게 표현한다. 小寒부터 穀雨에 이르는 기간은 여덟 개의 절후가 들어 있는 기간으로 120일인데, 이것을 5일씩 나누어 그것을 一候로 할 때 24候가 된다. 각 절기 마다 세 개 정도의 꽃이 핀다고 하는데, 난초는 大寒 절기에 피는 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니까 2023년 1월 25일을 넘겨서 피는 것이 정상이라고 할 수 있다. 동지를 지나면 그때부터 태양.. 2022. 12. 9.
초겨울의 襄陽 강원도 襄陽은 흔히 일컬어지기를, 해 오름의 고장이라고 홍보한다. 그러나 이 해석에 대해서는 좀 살펴볼 것이 있다. 양양의 원래 이름은, 고구려 때는 翼峴이었고, 신라 경덕왕 때에는 翼嶺으로 고쳤다. 그러다가 고려 때에 이르러 襄州로 되었는데, 별칭으로 襄山을 쓰기도 했다. 그러다가 조선 시대 태종 때에 襄陽으로 고쳤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翼과 襄이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翼은 일반적으로 날개, 오르다, 돕다 등의 뜻으로 쓰이고, 襄은 오르다, 돕다 등의 뜻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翼은 ‘엄숙하고 근신하여 공경함’의 의미를 지진 관계로, 공경하다, 높이다 등의 뜻을 기본으로 한다. 여기에서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襄도 이와 비슷한 뜻으로 많이 쓰인다는 점이다. 襄은 일을 함.. 2022. 12. 2.
우이령길 걷기 우이령길 걷기 한자로는 牛耳峴이라고 해야 맞을 것으로 보이는 우이령은 서울시 우이동에서 양주시 교현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牛耳洞이라는 지명이 조선 초기부터 나타내는 것으로 보아 쇠귀바우(牛耳巖)이라는 이름은 매우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쌍문동 보문사 사찰 뒤에 소의 귀를 닮은 암봉이 있어서 붙여진 지명이라고 하는데, 정확한 유래는 알기 어렵다. 이번 걷기는 양주시 교현 탐방센터에서 시작하여 오봉 전망대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길을 택했다. 중간에 오봉 쪽 언덕배기에 있는 석굴암까지 갔다 왔더니 10킬로 정도의 거리를 걸은 것으로 나타났다. 아주 오래전에 함께 공부했던 후배들 몇 명과 함께 했다. 2022. 11. 25.
努肸夫得과 怛怛朴朴 努肸夫得과 怛怛朴朴의 흔적을 찾아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은 신라 성덕왕 시대의 염불승이다. 두 사람은 백월산의 남쪽과 북쪽 기슭에 암자를 짓고 불도를 닦았는데, 관세음보살의 도움으로 살아 있는(生佛) 阿彌陀佛이 되어 사람들에게 설법을 한 후 구름을 타고 서쪽으로 날아갔다고 한다. 두 생불이 불도를 닦던 암자는 각각 남암, 북암, 혹은 남사, 북사라고 불렀다. 지금 사찰은 사라졌고, 그 흔적만 곳곳에 남이 있다. 특히 白月山은 보름이면 중국의 왕궁에 만들어놓은 연못에 비쳤는데, 실물을 찾아 헤매던 사신이 이산을 발견하고 신 한 짝을 걸어놓은 후 돌아가 왕에게 고하니 그 달 보름에 그대로 비쳤다고 하여 이름을 백월산이라고 지었다는 설화가 전한다.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백월로에 있는 남사 자리는 매우 컸던 것으로.. 2022. 11. 22.
무악산을 오르다 안산(鞍山)을 오르다. 서울시 서대문구에 있는 안산은 말안장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말로는 말이나 소의 등에 짐을 실을 때 쓰는 길마처럼 생겼다고 하여 길마재라고도 한다. 경복궁에서 보면 서쪽에 있는 돌산이 인왕산이고, 그 너머에 있는 산이 바로 안산이다. 안산은 연세대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를 품고 있는 산이기도 하다. 경복궁의 왼쪽과 오른쪽을 지키는 산을 좌청룡, 우백호라고 하는데, 낙산이 내청룡, 인왕산이 내백호이며 용마산이 외청룡, 행주산성이 있는 덕양산이 외백호가 된다. 안산은 내백호와 외백호 사이에 있는 작은 산이다. 코로나로 오랫동안 만나기 어려웠던 방송대 선생님들과 함께 산을 올랐다. 그 후 가볍게 저녁을 함께 했다. 2022. 11. 19.
송강 정철의 유적을 찾아 송강 정철의 유적을 찾아 반세기의 벗들과 함께 이번에는 조선 최고의 문인이라고 할 수 있는 송강 정철의 유적 일부를 돌았다. 전라남도 담양을 정철의 고향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가 태어난 곳은 서울이다. 서울 청와대 서쪽에 있는 청운초등학교 자리가 바로 정철이 태어난 곳이다. 특별한 유적은 없고 학교 정문 앞에 작은 돌비석이 하나 서 있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신원동 송강마을은 강화도에서 굶어 죽은 정철이 묻혔던 곳이다. 마을 중앙에서 길을 따라 산으로 올라가면 송강 고개가 나오는데, 여기에서 동쪽으로 산길을 좀 가면 정철의 부모와 형의 묘소가 나온다. 부모의 묘소 바로 아래에 송강 정철 초장지라는 팻말이 있다. 다시 마을로 돌아와 작은 사찰이 있는 곳에서 산자락을 보면 작은 묘소가 하나 보.. 2022. 11. 9.
가을을 보내다 가을을 보내다(送秋) 코로나 덕분인지 올해 가을은 매우 가을다웠다. 날씨도 온화한데다 공기도 좋아서 가을다운 날씨가 지속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말에서 가을의 어원을 정확히 알 수 없는데, 한자의 秋는 유래를 잘 알 수 있어서 흥미롭다. 秋(가을 추)의 초기 글자는 𪛁(가을 추)였다. 禾는 모든 곡물(곡식)을 나타내고, 火는 불을 질러 태운다는 뜻이다. 그리고, 龜는 곤충의 알이 딱딱한 껍질을 뒤집어써서 마치 거북의 등 같다는 뜻이다. 이러한 세 가지 요소를 가지고 있는 𪛁는 매우 현실적이며, 기능적인 차원에서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가을은 모든 곡식이 열매를 맺어 풍성하면서도 수확의 기쁨을 누리는 시간이다. 그러나 한 편에서는 메뚜기나 기타 여러 종류의 해충들은 겨울을 나기 위해 두꺼운 껍질로 몸을 .. 2022. 11. 9.
인천지역 출석수업 오늘은 코로나 사태 이후 다시 시작된 방송대 출석수업을 다녀왔다. 인천 지역 1학년 강의였는데, 모두 열성적으로 공부하려는 자세를 보이고, 잘 따라와 줘서 아주 재미있게 강의를 했다. 강의가 끝난 후 여러 선후배들과 저녁을 함께 하고 여러 이야기를 나눈 후 헤어졌다. 학생들이 열심히 하면 가르치는 나도 신이 나서 더 많은 것들을 알려주려는 마음으로 하기 때문에 한층 알찬 강의가 되었던 것 같다. 아무쪼록 인천 지역 학생들이 앞으로 더욱 열심히 하기를 기대해 본다. 2022. 11. 7.
숨은 코드로 부석사 보기 이상적 사랑의 현실태인 浮石寺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봉황산 중턱에 있는 부석사는 신라의 승려 의상(義湘)과 중국의 여인 선묘(善妙)의 사연을 간직한 사찰로 華嚴宗刹이기도 하다. 원효와 의상은 당나라로 유학 가다 비를 피해 무덤에 들어갔었는데, 해골에 고인 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는 원효는 신라로 돌아오고, 의상 혼자 바다를 건넌다. 동방에서 온 의상을 사랑한 선묘는 그가 머무는 동안 모든 바라지를 다했는데, 정작 의상이 신라로 돌아갈 때는 만나지를 못했다. 世世生生에 의상을 따르겠다는 서원을 하고 황해에 몸을 던진 선묘는 용이 되어 의상을 보호했다. 의상이 봉황산 중턱에 절을 지으려 할 때 수백 명의 이교도가 격렬하게 반대했다. 선묘용이 큰 바위를 공주에 띄워 그들을 내쫓고 절을 세워 이름을 부석사라고.. 2022. 10. 20.
희방사의 역사적 의미 희방사(喜方寺)의 역사적 의미 경상북도와 충청북도의 경계를 이루는 백두대간이 지나는 길목인 소백산 연화봉 아래에 자리한 희방사는 영주시 풍기읍 수철리에 있다. 신라 643년인 선덕여왕 12에 두운(杜雲)이 창건하였으며, 호랑이에 얽힌 창건 설화가 전하고 있다. 태백산 심원암에서 지금의 희방사 자리에 있는 동굴로 옮겨 암자를 짓고 수도하였다. 암자 아래에 호랑이 한 마리가 새끼를 낳아 두고 항상 왕래했는데, 하루는 호랑이가 스님 앞에 쭈그리고 앉아 마치 답답함을 하소연하는 시늉을 하였다. 스님이 살펴보니 호랑이의 목에 비녀가 걸려 있었다. 스님이 손을 넣어 빼주니, 호랑이가 고개를 숙이고 꼬리를 흔들어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는 시늉을 하였다. 어느 날 저녁에 호랑이가 큰 돼지를 지고 왔으므로 스님이 그 뜻을.. 2022. 10. 14.
경주의 승가람 터 초가을의 경주와 가람터 이번에는 2박 3일 일정으로 문학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경주의 사찰 터를 돌았다. 前佛時代의 일곱 개 사찰 터인 七處伽藍 중 天鏡林에 세웠던 신라 최초의 사찰인 興輪寺는 그 터조차 흔적이 묘연한데다 근래에 들어선 이상한 비구니 사찰이 있어서 더욱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사찰 터에는 아무것도 없고, 국립경주박물관 뒤 뜰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水曹 만이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에는 이차돈의 순교를 기리기 위한 石碑가 전시되어 있는데, 흰 피가 하늘로 솟구치는 모양을 그린 것이 이채롭다. 감포에 있는 감은사터는 거대한 삼층석탑과 용이 들어와 쉴 수 있도록 설계한 금당 아래의 공간이 매우 특이하다. 과거에는 금당 바닥 아래까지 물이 들어오도록 해서 동해 용이 된 문무왕의 혼백이 쉬도록 만.. 2022. 10. 1.
대학원 후배들 이제는 완연한 가을이다. 들판의 색깔이 바뀌기 시작하고, 바람은 선선하고, 구름은 높이 난다. 가을의 정 중간이라고 할 수 있는 추분이 곧이니 밤낮의 길이가 같아지면서 머지 않아 추위가 다가올 것이므로 추수를 서둘러야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오늘은 오래전에 대학원에서 함께 공부하며 희로애락을 함께 했던 후배들 몇 명을 만나서 옛이야기를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각자가 살아가는 방식과 분야가 다르기는 하지만 함께 공부했던 시절에 만들었던 공통 관심사와 다양한 에프소도가 많았기 때문인지 점심 겸해서 만나 저녁이 될 떄까지 일어설 줄을 모를 정도로 談笑和樂에 푹 빠졌었다. 사진 몇 장으로 그 시간의 흔적을 잘라내어 현실적 삶의 공간 속에 남겨 본다. 2022. 9. 20.
광릉수목원 (광릉) 국립 수목원 조선 제7대 군주였던 世祖와 貞熹王后의 릉을 광릉이라고 한다. 보는 관점에 따라 다양한 평가를 내릴 수 있겠지만 건국 초기부터 매우 어려웠던 혼란 상황을 정리함으로써 조선 사회를 획기적으로 안정시키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군주가 바로 세조였다는 것은 인정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조선은 태종과 세종의 치세가 좋았다고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여러 가지 불안한 요소를 가지고 있었는데, 방법에 바람직하지 못한 점이 있었다고 왕권의 확실한 강화를 통해 나라를 안정시키면서 성종의 치세를 이룰 수 있는 발판을 놓은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직동리에 있는 국립 광릉수목원은 조선 시대에는 세조의 사냥터였다. 매우 넓은 공간을 확보하여 조선 말기까지 철저하게 보호하.. 2022. 8. 26.
더위의 끝을 잡고 더위의 끝(末暑, 處暑)을 아쉬워함. 오늘은 더위의 끝, 혹은 마지막 더위라는 뜻을 가진 처서다. 처서는 말서라고도 하는데, 더위의 정도를 나타내는 세 가지 중 마지막 것이다. 더위를 나타내는 것으로는 小暑, 大暑, 處暑의 세 가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는 정식으로 가을에 들어섰다고 본면 된다. 시절을 아는 자연은 너무나 정확하여 이틀 전부터는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참으로 절묘하다. 낮에는 덥지만, 밤에는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면서 선선한 바람이 분다. 더위는 우리를 많이 괴롭혔지만 그래도 헤어지는 것은 언제나 서운함이 앞선다. 입이 삐뚤어진 모기와 헤어지는 것도 시원섭섭하고, 짜증을 내면서 원망하던 더위가 물러가는 것도 약간은 서운하고, 푸르기만 하던 잎들이 서서히 시들어간다는 것도 마음.. 2022. 8. 23.
청산도로 내려가는 벗을 보내며 전라남도 완도에서 배를 타야만 들어갈 수 있는 청산도로 내려가 생활하고 있는 반세기의 친구(松音)가 서울에 왔다가 다시 내려간다기에 급하게 몇 명이 만나 가볍게 술 한잔하면서 전송했다. 그때 느낀 것이 있어(有感)서 몇 자 적어보았다. 아래 글에서 三疊은 王維가 양관에서 친구를 보내며 지은 陽關三疊을 말한다. 이별 시로 가장 유명하며, 벗과 헤어질 때 세 번씩 연창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을 얻었다. 청산도로 내려가는 벗에게 청산도는 날아가는 봉황 모양의 섬인데 그대 집은 봉 새의 날개 자리에 있네 오늘 술 한 잔과 三疊으로 헤어지지만 내일은 봉황새의 품에서 다시 만나리라 푸른 바다에 물고기 뛰고 갈매기 날거던 청운의 꿈을 키우던 그때를 기억하시게나 우정은 반세기를 지나 세기를 넘어서리니 청사에 남지 않더라.. 2022. 7. 7.
비오시는 날의 선물 오랜 가뭄 끝에 내리는 거센 비가 반가운 2022년 6월 23일 오후다. 이처럼 반가운 비가 오시는 날 매우 놀라운 선물이 내개로 왔다. 부산에 있는 재학생이 보낸 부채인데, 온갖 정성을 다해 손수 만든 것이라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배라고 할 수 있다. 고향의 선산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山竹을 꺾어다가 한 올 한 올 다듬고 붙여서 말린 다음 글씨까지 써서 제대로 만들었으니 그것을 어디에다 가을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라도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2022. 6. 23.
범일국사의 흔적을 찾아 사굴산파의 시조 범일국사의 흔적을 찾아 해가 떠 있는 바가지의 물을 마시고 범일국사를 잉태했다는 전설을 가진 강릉시 학산의 石泉 아이를 산에 버렸지만 학이 날개로 덮어주고, 범이 젖을 먹여 살려냈다는 전설을 가진 鶴바위 범일국사가 세웠던 굴산사의 幢竿支柱. 우리나라 최대의 石幢竿이다. 의상이 관음보살을 친견하고 세웠다는 洛山寺는 신라 말기에 범일이 중창했다. 원통보전이 법당이다. 원통보전의 담벼락, 참으로 아름답다. 공중에서 사리가 떨어져서 그것을 모시기 위해 지은 낙산사의 공중사리탑 낙산사 해수관음상 보타전에 모셔진 七觀音 강릉의 안목해변 등을 돌아보았다. 2022. 6. 17.
再訪 靑山島 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면 전체를 이루고 있는 靑山島는 봉황새가 해뜨는 동쪽을 향해 날아가는 형국을 가지고 있는 섬이다. 섬의 한 가운데에는 大鳳山이 있고, 동쪽 끝에는 項島(새목아지섬)이 있으며, 서쪽 끝에는 새 꼬리에 해당하는 새땅끝이 있다. 이런 내용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이나 조사 등은 보이지 않지만, 몇 개의 지명과 섬의 모양을 보면 옛 사람들이 이 섬을 봉황새의 모양으로 인식했던 것으로 보인다. 봉황새는 상서로움을 상징하는 상상의 새인데, 기린, 거북, 용과 함께 사령(四靈) 또는 사서(四瑞)로 불린다. 수컷은 ‘鳳’, 암컷은 ‘凰’이라고 하며, 오색의 깃털이 있고, 울음소리는 아름답다. 전설에 등장하는 상상의 새이다. 아주 오랜 옛날에는 仙山, 仙源 등으로 불렸던 점으로 보아 청산도는 道家와 무관.. 2022. 6. 12.
저녁 먹고 동네 한바퀴 저녁 먹고 동네 한 바퀴 내가 사는 옥정동은 최근에 만들어진 계획 신도시이다. 그래서 그런지 걷는 길이 아주 잘 만들어져 있다. 오늘은 오랜만에 옥정신도시의 중심가를 관통하는 동네 한 바퀴 9킬로를 걸었다. 도중에 만난 장미 터널에는 막 피어나기 시작한 붉은 꽃들이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아름다운 모습과 정열적인 색깔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꽃이다. 수백만 년 전으로 추정되는 시기의 지층에서 장미 화석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아주 오래된 식물임을 알 수 있다. 우리 역사에서 장미에 대한 기록으로는 삼국사기의 것이 가장 빠른데, 신라 시대 설총(薛聰)이 지은 계화왕(戒花王), 혹은 화왕계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홀연히 한 아름다운 사람(佳人)이 붉은 얼굴과 옥 같은 이에 곱게 화장하고, 멋.. 2022. 5. 29.
棧道에 대하여 棧道에 대하여 잔도는 매우 험한 낭떠러지 같은 곳에 나무 선반처럼 만들어서 낸 길이다. 만드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낭떠러지 절벽 바위에 일정한 간격으로 구멍을 뚫고 큰 통나무를 그곳에 박는다. 통나무와 통나무 사이는 널빤지를 깔아 평평하게 만든 다음, 흙과 돌을 깔면 잔도가 완성된다. 이것은 중국에서 개발된 발명품으로 戰國 시대 秦 나라가 처음으로 만들었다. 함양에서 蜀의 한중으로 들어가는 길을 이런 방법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잔도는 가축과 사람이 함께 사용하는데, 군사적 목적이 크다. 진나라 시대에 만들어졌던 잔도는 장량의 계책에 의해 유방이 한중으로 쫓겨갈 때 모두 불태워 버리고 하나만 몰래 남겨두었다. 중원에 대한 욕심이 없다는 뜻을 나타낸 것이기도 하고, 항우의 군대가 한중을 노.. 2022. 5. 28.
아차산의 고구려 보루 아차산의 고구려 堡壘 서울과 경기도 구리시에 걸쳐 있는 아차산은 용마산, 망우산과 더불어 경복궁의 외청룡을 형성하는 산들이다. 한강 유역은 한반도의 중심에 있는 데다 서해로의 출입구 역할을 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고구려, 백제, 신라가 치열한 쟁탈전을 벌였던 군사적 요충지였다. 이 지역을 차지했던 나라가 아차산과 중랑천 부근에 스무개에 가까운 보루를 쌓았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 중 절반 이상이 고구려 유적이다. 이 부근에는 10개 정도의 고구려 보루와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는데, 5세기 후반인 475년에 한성백제를 함락한 후에 이 지역을 방어하기 위해 쌓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 보루는 고구려가 한강 유역을 점령한 후 551년(양원왕 7년)에 이 지역을 잃어버리기 전까지의 역사를 짐작해볼 수 있는 중요한 유적.. 2022.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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