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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비사육신관련/안평대군

용재총화 안평대군 기록

by 竹溪(죽계) 2006. 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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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재총화 제2권



○ 비해당(匪懈堂 안평대군(安平大君))은 왕자로서 학문을 좋아하고 시문을 잘하였으며, 서법이 기절(奇絶)하여 천하 제일이었다. 또 그림 그리기와 거문고 타는 재주도 훌륭하였다. 성격이 부탄(浮誕)하여 옛것을 좋아하고 경승(景勝)을 즐겨 북문(北門) 밖에다 무이정사(武夷情舍)를 지었으며, 또 남호(南湖)에 임하여 담담정(淡淡亭)을 지어 만 권의 책을 모아두었다. 문사(文士)를 불러모아 12경시(景詩)를 지었으며, 또 48영(詠)을 지어 혹은 등불 밑에서 이야기 하고 혹은 달밤에 배를 띄웠으며, 혹은 연구(聯句)를 짓고 혹은 바둑 장기를 두고 풍류가 끊이지 않았으며, 항상 술마시고 놀았다. 당시의 이름있는 선비로서 교분을 맺지 않은 이가 없었고, 무뢰하고 잡업(雜業)을 하는 이도 많이 모여들었다. 바둑판과 바둑알은 모두 옥(玉)으로 만들었고, 또 금니(金泥)를 글자에 입히고 사람에게 명주와 생초를 짜게 하여, 곧 붓 가는 대로 글씨를 쓰다가 진초(眞草)와 난행(亂行)을 구하는 사람이 있으면 모두 내주는 일이 많았다. 나의 중씨(仲氏)인 성간(成侃)이 유명하다는 소문을 듣고 사람을 시켜 부르므로, 중씨가 가서 뵙고는 정자 가운데 있는 여러 시에 화답하니 시구가 뛰어나고 절묘하여 안평대군(安平大君)은 드디어 공경히 대접해 보내면서 뒷날 다시 만나기를 기약하였다. 그런데 대부인께서 중씨에게 일러 말하기를, “왕자의 도(道)는 문을 닫아 손을 멀리하고 근신하는 길밖에 없는 것인데, 어찌 사람을 모아 벗을 삼느냐. 패할 것이 뻔하니 너는 같이 사귀지 말아라.” 하시므로, 그 뒤에 재삼 불렀으나 끝내 가지 않았더니, 얼마 안 가서 패사(敗死)하였다. 온 집안은 모두 대부인의 문장과 감식(鑑識)에 탄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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