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삶의 일상/202241

장미의 계절 경기도 양주시에서 발원하여 의정부를 거쳐 서울의 동쪽을 남북으로 흘러내려 살곶이 부근을 지나 두모포(豆毛浦)에서 서울을 동서로 관통하는 한강과 합류하는 중랑천의 동쪽 편 둔치에 마련된 서울 장미공원은 조선 시대에 먹을 만드는 장인들이 살아서 붙여진 이름인 묵동(墨洞)에 있다. 중랑천은 도봉동 부근에서는 서원천이라 부르고, 상계동 부근에서는 샛강이라 했으며, 漢川, 혹은 한내라고도 부른다. 또한 속계(涑溪)라고 부르기도 한다. 조선 시대의 정식 명칭은 中梁川이었는데, 내청룡인 낙산과 외청룡인 용마산 사이를 남북으로 흐르면서 한양의 대들보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었다. 1911년 일본인들이 중량교(中梁橋)를 중랑교(中浪橋)로 잘못 표기해 놓은 이후에 그것이 굳어져서 지금의 이름으로 되었다. 중랑천의 물은 상.. 2022. 5. 20.
연산군 유적지와 손돌목 기행 연산군 유배지, 그리고 손돌(孫乭)목 전설 강화군에 속하는 강화도, 교동도, 석모도 등은 한강, 임진강, 예성강 등의 강들이 바다와 만나는 지점에 있는 섬으로 고려의 수도였던 개성과 조선의 수도였던 한양에서 멀지 않은 곳이다. 그래서 그런지 역사적으로 많은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고려 때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왕과 왕족의 유배지가 되었으며, 몽골이 침입해서 왕이 강화도로 피난 갈 때는 억울하게 죽은 뱃사공의 한이 서린 전설과 유적이 남아 전한다. 고려의 희종, 조선의 연산군, 임해군, 영창대군, 광해군 등이 모두 이곳에 유배되었다. 또한 정치가이며, 문학가였던 조선의 송강 정철도 이곳에 유배되었다가 평민의 신분으로 생을 마감했다. 몽골이 침략해오자 고려 왕실은 해전에 약한 몽골군에게 저항하기 위해 왕이 .. 2022. 5. 17.
비봉산과 청풍호반 충청북도 제천의 청풍면 연곡리에 있는 飛鳳山은 봉새가 날아가는 형국으로 된 해발 531미터의 산이다. 그 아래에는 알봉이 있는데, 봉새가 품는 알이다. 이곳은 주변의 월악산, 옥순봉 등의 명소로 인해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지만 최근에 새로운 볼거리가 풍부한 장소로 떠오르고 있다. 왜냐하면 꼭대기에 올라가면 사면이 청풍호로 둘러싸여 있는 진풍경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는 많은 아픔을 간직한 남한강 유역이지만 그 아름다움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한 것 같다. 대한민국 새 정부가 출범하는 날 청풍호반의 비봉산을 다녀왔다. 2022. 5. 11.
꽃대궐 울긋불긋 꽃대궐 차린 동네 사방이 꽃으로 출렁인다. 사람이 심어서 피는 꽃 자연이 피워내는 꽃 큰 꽃도 있고 작은 꽃도 있다. 생명을 틔워 꽃을 피우고, 잎이 나게 하는 자연의 섭리에는 어김이 없다. 그런 점에서 자연은 위대하다. 그것에 순응하며 사는 것을 아는 것도 나쁘지 않을텐데 사람은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 안의 꽃이 너무 고와 몇 장 찍어 보았다. 2022. 5. 6.
崇義殿 임진강변의 崇義殿 숭의전은 고려를 이어 건국한 조선에서 세운 것으로, 고려의 왕과 충신들에게 제사를 올리는 사당이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명으로 1385년에 고려를 제 하는 묘(廟-사당)를 세우고, 고려 태조 왕건과 헤종, 성종, 현종, 문종, 경종, 현종, 충렬왕, 공민왕의 여덟 왕을 제사 지내도록 했다. 또한 고려를 위해 목숨을 바친 충신 정몽주 외 15인도 함께 제사 지내도록 했다. 세종 때에는 8왕을 모시는 것은 너무 과하다고 생각하여, 태조, 원종, 문종, 현종의 4왕만을 제사 지내도록 했다. 숭의전을 관리하는 사람으로는 왕씨가 세습하도록 했다. 고려를 멸망시킨 조선에서 왜 이런 사당을 세워 제사를 지냈을까 의아스러운 점이 있을 수 있지만, 바로 앞 시대의 정권이나 왕조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것.. 2022. 4. 22.
석포숲공원 용인 석포숲공원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묵리에 있는 석포숲공원은 추사 김정희가 그린 것이면서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 歲寒圖의 원래 주인이었던 손창근 선생이 국가에 기증한 땅으로 조성한 것이다. 손창근 선생의 부친인 손세기 선생은 일본인에게서 세한도를 양도받았는데, 그로부터 석 달 뒤인 845년 3월에 동경이 대공습을 받아 일본인의 서재가 모두 불타버렸다고 한다. 손창근 선생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이 그림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하여 국보로 지정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서화실에는 손세기,손창근 명품전이 열리기도 한다. 그는 살아생전 평생에 걸쳐 가꾸었던 용인시 묵리 일대의 임야 200만평 정도를 2012년에 국가에 기증했고 지자체에서는 시설을 갖추어서 근래에 개장했다. 화려하지는 않으나 조용하게.. 2022. 4. 7.
동구릉 조선 왕릉의 이해 조선 시대의 왕릉은 경기도 구리시의 동구릉에 있는 태조 이성계의 능묘인 健元陵로 부터 시작되었다. 건원릉의 묘제가 조선 오백 년 동안의 왕릉의 모범이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답사는 동구릉을 중심으로 망우공원 등을 살펴보았다. 여기서는 간단하게 설명한다. 조선 시대 왕릉은 크게 네 구역으로 나눈다. 첫째, 진입의 공간, 둘째, 제향의 공간, 셋째, 轉移의 공간, 넷째, 陵寢의 공간이 그것이다. 진입의 공간은 왕릉의 입구인데, 여기에는 禁川橋, 홍살문(紅箭門), 拜位 등으로 구성된다. 금천교는 입구에 있는 작은 시내를 건너는 다리로 인간의 공간과 신의 공간을 나눈다는 의미를 가진 다리다. 禁은 신이 산다고 믿었던 숲(林)을 향해 제(示-祭壇의 모양)를 지내는 것으로 신과 인간의 영역을.. 2022. 3. 18.
서오릉 西五陵은 서울의 서쪽에 있는 다섯 기의 왕릉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경기도 고양시 창릉동에 있는 일곱 기의 왕실 陵園 이다. 일곱 기가 있지만 왕, 왕비에 해당하는 무덤은 다섯 기가 있기 때문에 이렇게 부른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희빈 장씨의 묘소까지 합치면 여덟 기가 되는 셈이지만 장희빈은 서인이 되어 죽임을 당했으므로 능원의 수에 들어가지 못한다. 사실 장희빈의 묘소는 조선 시대에는 경기도 오포면 문형리에 있다가 1970년에 서오릉으로 옮겨왔으므로 매우 애매하다. 과연 여기에 있어야 하는지도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서오릉이 陵址로 선택된 것은 1457년(세조 3)으로 세조의 세자였던 元子 璋(덕종으로 추존됨)이 사망하자 이곳에 능을 써서 敬陵으로 하면서 시작되었다. 1470년에는 덕종의 아우인 .. 2022. 2. 20.
고구려와 신라의 격전지를 가다 2022. 2. 6.
인제군 원대리 자작나무숲 원대리 자작나무 숲 강원도 인제군 원대리에 있는 자작나무숲은 지자체에서 야심적으로 조성하여 만든 것으로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매력이 있다. 자작나무 숲을 가기 위해서는 약3.2킬로 정도의 가파른 언덕을 등산하듯이 올라가야만 하는데, 내가 보기에 이것이 아주 특수한 장치로 작용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올라갈 때는 매우 가파른 길을 걸어서 올라가야 하므로 힘들다고 생각하지만, 숲까지 올라가면 자른 세계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런데, 이렇게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가파른 언덕길이라고 보이기 때문이다. 즉, 아래의 주차장까지는 인간세계였다면, 올라오는 가파른 길은 다른 차원으로 가는 통로이고, 자작나무숲은 신선세계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은 조선 시대 사대부들이 창안.. 2022. 1. 8.
독바위와 청담천 새해의 독바위(瓮巖)와 淸潭川 양주시 회천동 일대는 동서남북이 漢北正脈의 준령들로 둘러싸여 있다. 북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보면, 逍遙山, 七峯山 , 天寶山, 金烏山, 水落山, 佛巖山, 道峯山, 佛谷山, 道樂山, 紺岳山 등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아주 아늑한 분지다. 이 지역은 고려의 승려인 나옹화상과 조선 태조의 스승인 무학대사 등이 머물렀던 檜巖寺가 엄청난 교세를 떨쳤던 곳이기도 하다. 옥정신도시가 있는 곳을 옥정동이라고 하는데, 이 이름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우습게 생겨났다. 원래 玉井이란 이름을 가진 곳은 지형상 특징을 가지고 있다. 玉은 여성의 상징이고, 井은 물을 나타내기 때문에 陰氣가 매우 강한 곳에 있는 우물을 나타내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서울에서는 玉水洞이라는 곳이 있는데, 이.. 2022. 1.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