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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일상494

경주의 승가람 터 초가을의 경주와 가람터 이번에는 2박 3일 일정으로 문학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경주의 사찰 터를 돌았다. 前佛時代의 일곱 개 사찰 터인 七處伽藍 중 天鏡林에 세웠던 신라 최초의 사찰인 興輪寺는 그 터조차 흔적이 묘연한데다 근래에 들어선 이상한 비구니 사찰이 있어서 더욱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사찰 터에는 아무것도 없고, 국립경주박물관 뒤 뜰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水曹 만이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에는 이차돈의 순교를 기리기 위한 石碑가 전시되어 있는데, 흰 피가 하늘로 솟구치는 모양을 그린 것이 이채롭다. 감포에 있는 감은사터는 거대한 삼층석탑과 용이 들어와 쉴 수 있도록 설계한 금당 아래의 공간이 매우 특이하다. 과거에는 금당 바닥 아래까지 물이 들어오도록 해서 동해 용이 된 문무왕의 혼백이 쉬도록 만.. 2022. 10. 1.
대학원 후배들 이제는 완연한 가을이다. 들판의 색깔이 바뀌기 시작하고, 바람은 선선하고, 구름은 높이 난다. 가을의 정 중간이라고 할 수 있는 추분이 곧이니 밤낮의 길이가 같아지면서 머지 않아 추위가 다가올 것이므로 추수를 서둘러야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오늘은 오래전에 대학원에서 함께 공부하며 희로애락을 함께 했던 후배들 몇 명을 만나서 옛이야기를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각자가 살아가는 방식과 분야가 다르기는 하지만 함께 공부했던 시절에 만들었던 공통 관심사와 다양한 에프소도가 많았기 때문인지 점심 겸해서 만나 저녁이 될 떄까지 일어설 줄을 모를 정도로 談笑和樂에 푹 빠졌었다. 사진 몇 장으로 그 시간의 흔적을 잘라내어 현실적 삶의 공간 속에 남겨 본다. 2022. 9. 20.
광릉수목원 (광릉) 국립 수목원 조선 제7대 군주였던 世祖와 貞熹王后의 릉을 광릉이라고 한다. 보는 관점에 따라 다양한 평가를 내릴 수 있겠지만 건국 초기부터 매우 어려웠던 혼란 상황을 정리함으로써 조선 사회를 획기적으로 안정시키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군주가 바로 세조였다는 것은 인정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조선은 태종과 세종의 치세가 좋았다고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여러 가지 불안한 요소를 가지고 있었는데, 방법에 바람직하지 못한 점이 있었다고 왕권의 확실한 강화를 통해 나라를 안정시키면서 성종의 치세를 이룰 수 있는 발판을 놓은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직동리에 있는 국립 광릉수목원은 조선 시대에는 세조의 사냥터였다. 매우 넓은 공간을 확보하여 조선 말기까지 철저하게 보호하.. 2022. 8. 26.
더위의 끝을 잡고 더위의 끝(末暑, 處暑)을 아쉬워함. 오늘은 더위의 끝, 혹은 마지막 더위라는 뜻을 가진 처서다. 처서는 말서라고도 하는데, 더위의 정도를 나타내는 세 가지 중 마지막 것이다. 더위를 나타내는 것으로는 小暑, 大暑, 處暑의 세 가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는 정식으로 가을에 들어섰다고 본면 된다. 시절을 아는 자연은 너무나 정확하여 이틀 전부터는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참으로 절묘하다. 낮에는 덥지만, 밤에는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면서 선선한 바람이 분다. 더위는 우리를 많이 괴롭혔지만 그래도 헤어지는 것은 언제나 서운함이 앞선다. 입이 삐뚤어진 모기와 헤어지는 것도 시원섭섭하고, 짜증을 내면서 원망하던 더위가 물러가는 것도 약간은 서운하고, 푸르기만 하던 잎들이 서서히 시들어간다는 것도 마음.. 2022. 8. 23.
청산도로 내려가는 벗을 보내며 전라남도 완도에서 배를 타야만 들어갈 수 있는 청산도로 내려가 생활하고 있는 반세기의 친구(松音)가 서울에 왔다가 다시 내려간다기에 급하게 몇 명이 만나 가볍게 술 한잔하면서 전송했다. 그때 느낀 것이 있어(有感)서 몇 자 적어보았다. 아래 글에서 三疊은 王維가 양관에서 친구를 보내며 지은 陽關三疊을 말한다. 이별 시로 가장 유명하며, 벗과 헤어질 때 세 번씩 연창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을 얻었다. 청산도로 내려가는 벗에게 청산도는 날아가는 봉황 모양의 섬인데 그대 집은 봉 새의 날개 자리에 있네 오늘 술 한 잔과 三疊으로 헤어지지만 내일은 봉황새의 품에서 다시 만나리라 푸른 바다에 물고기 뛰고 갈매기 날거던 청운의 꿈을 키우던 그때를 기억하시게나 우정은 반세기를 지나 세기를 넘어서리니 청사에 남지 않더라.. 2022. 7. 7.
비오시는 날의 선물 오랜 가뭄 끝에 내리는 거센 비가 반가운 2022년 6월 23일 오후다. 이처럼 반가운 비가 오시는 날 매우 놀라운 선물이 내개로 왔다. 부산에 있는 재학생이 보낸 부채인데, 온갖 정성을 다해 손수 만든 것이라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배라고 할 수 있다. 고향의 선산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山竹을 꺾어다가 한 올 한 올 다듬고 붙여서 말린 다음 글씨까지 써서 제대로 만들었으니 그것을 어디에다 가을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라도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2022. 6. 23.
범일국사의 흔적을 찾아 사굴산파의 시조 범일국사의 흔적을 찾아 해가 떠 있는 바가지의 물을 마시고 범일국사를 잉태했다는 전설을 가진 강릉시 학산의 石泉 아이를 산에 버렸지만 학이 날개로 덮어주고, 범이 젖을 먹여 살려냈다는 전설을 가진 鶴바위 범일국사가 세웠던 굴산사의 幢竿支柱. 우리나라 최대의 石幢竿이다. 의상이 관음보살을 친견하고 세웠다는 洛山寺는 신라 말기에 범일이 중창했다. 원통보전이 법당이다. 원통보전의 담벼락, 참으로 아름답다. 공중에서 사리가 떨어져서 그것을 모시기 위해 지은 낙산사의 공중사리탑 낙산사 해수관음상 보타전에 모셔진 七觀音 강릉의 안목해변 등을 돌아보았다. 2022. 6. 17.
再訪 靑山島 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면 전체를 이루고 있는 靑山島는 봉황새가 해뜨는 동쪽을 향해 날아가는 형국을 가지고 있는 섬이다. 섬의 한 가운데에는 大鳳山이 있고, 동쪽 끝에는 項島(새목아지섬)이 있으며, 서쪽 끝에는 새 꼬리에 해당하는 새땅끝이 있다. 이런 내용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이나 조사 등은 보이지 않지만, 몇 개의 지명과 섬의 모양을 보면 옛 사람들이 이 섬을 봉황새의 모양으로 인식했던 것으로 보인다. 봉황새는 상서로움을 상징하는 상상의 새인데, 기린, 거북, 용과 함께 사령(四靈) 또는 사서(四瑞)로 불린다. 수컷은 ‘鳳’, 암컷은 ‘凰’이라고 하며, 오색의 깃털이 있고, 울음소리는 아름답다. 전설에 등장하는 상상의 새이다. 아주 오랜 옛날에는 仙山, 仙源 등으로 불렸던 점으로 보아 청산도는 道家와 무관.. 2022. 6. 12.
저녁 먹고 동네 한바퀴 저녁 먹고 동네 한 바퀴 내가 사는 옥정동은 최근에 만들어진 계획 신도시이다. 그래서 그런지 걷는 길이 아주 잘 만들어져 있다. 오늘은 오랜만에 옥정신도시의 중심가를 관통하는 동네 한 바퀴 9킬로를 걸었다. 도중에 만난 장미 터널에는 막 피어나기 시작한 붉은 꽃들이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아름다운 모습과 정열적인 색깔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꽃이다. 수백만 년 전으로 추정되는 시기의 지층에서 장미 화석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아주 오래된 식물임을 알 수 있다. 우리 역사에서 장미에 대한 기록으로는 삼국사기의 것이 가장 빠른데, 신라 시대 설총(薛聰)이 지은 계화왕(戒花王), 혹은 화왕계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홀연히 한 아름다운 사람(佳人)이 붉은 얼굴과 옥 같은 이에 곱게 화장하고, 멋.. 2022. 5. 29.
棧道에 대하여 棧道에 대하여 잔도는 매우 험한 낭떠러지 같은 곳에 나무 선반처럼 만들어서 낸 길이다. 만드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낭떠러지 절벽 바위에 일정한 간격으로 구멍을 뚫고 큰 통나무를 그곳에 박는다. 통나무와 통나무 사이는 널빤지를 깔아 평평하게 만든 다음, 흙과 돌을 깔면 잔도가 완성된다. 이것은 중국에서 개발된 발명품으로 戰國 시대 秦 나라가 처음으로 만들었다. 함양에서 蜀의 한중으로 들어가는 길을 이런 방법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잔도는 가축과 사람이 함께 사용하는데, 군사적 목적이 크다. 진나라 시대에 만들어졌던 잔도는 장량의 계책에 의해 유방이 한중으로 쫓겨갈 때 모두 불태워 버리고 하나만 몰래 남겨두었다. 중원에 대한 욕심이 없다는 뜻을 나타낸 것이기도 하고, 항우의 군대가 한중을 노.. 2022. 5. 28.
아차산의 고구려 보루 아차산의 고구려 堡壘 서울과 경기도 구리시에 걸쳐 있는 아차산은 용마산, 망우산과 더불어 경복궁의 외청룡을 형성하는 산들이다. 한강 유역은 한반도의 중심에 있는 데다 서해로의 출입구 역할을 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고구려, 백제, 신라가 치열한 쟁탈전을 벌였던 군사적 요충지였다. 이 지역을 차지했던 나라가 아차산과 중랑천 부근에 스무개에 가까운 보루를 쌓았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 중 절반 이상이 고구려 유적이다. 이 부근에는 10개 정도의 고구려 보루와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는데, 5세기 후반인 475년에 한성백제를 함락한 후에 이 지역을 방어하기 위해 쌓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 보루는 고구려가 한강 유역을 점령한 후 551년(양원왕 7년)에 이 지역을 잃어버리기 전까지의 역사를 짐작해볼 수 있는 중요한 유적.. 2022. 5. 25.
장미의 계절 경기도 양주시에서 발원하여 의정부를 거쳐 서울의 동쪽을 남북으로 흘러내려 살곶이 부근을 지나 두모포(豆毛浦)에서 서울을 동서로 관통하는 한강과 합류하는 중랑천의 동쪽 편 둔치에 마련된 서울 장미공원은 조선 시대에 먹을 만드는 장인들이 살아서 붙여진 이름인 묵동(墨洞)에 있다. 중랑천은 도봉동 부근에서는 서원천이라 부르고, 상계동 부근에서는 샛강이라 했으며, 漢川, 혹은 한내라고도 부른다. 또한 속계(涑溪)라고 부르기도 한다. 조선 시대의 정식 명칭은 中梁川이었는데, 내청룡인 낙산과 외청룡인 용마산 사이를 남북으로 흐르면서 한양의 대들보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었다. 1911년 일본인들이 중량교(中梁橋)를 중랑교(中浪橋)로 잘못 표기해 놓은 이후에 그것이 굳어져서 지금의 이름으로 되었다. 중랑천의 물은 상.. 2022. 5. 20.
연산군 유적지와 손돌목 기행 연산군 유배지, 그리고 손돌(孫乭)목 전설 강화군에 속하는 강화도, 교동도, 석모도 등은 한강, 임진강, 예성강 등의 강들이 바다와 만나는 지점에 있는 섬으로 고려의 수도였던 개성과 조선의 수도였던 한양에서 멀지 않은 곳이다. 그래서 그런지 역사적으로 많은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고려 때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왕과 왕족의 유배지가 되었으며, 몽골이 침입해서 왕이 강화도로 피난 갈 때는 억울하게 죽은 뱃사공의 한이 서린 전설과 유적이 남아 전한다. 고려의 희종, 조선의 연산군, 임해군, 영창대군, 광해군 등이 모두 이곳에 유배되었다. 또한 정치가이며, 문학가였던 조선의 송강 정철도 이곳에 유배되었다가 평민의 신분으로 생을 마감했다. 몽골이 침략해오자 고려 왕실은 해전에 약한 몽골군에게 저항하기 위해 왕이 .. 2022. 5. 17.
비봉산과 청풍호반 충청북도 제천의 청풍면 연곡리에 있는 飛鳳山은 봉새가 날아가는 형국으로 된 해발 531미터의 산이다. 그 아래에는 알봉이 있는데, 봉새가 품는 알이다. 이곳은 주변의 월악산, 옥순봉 등의 명소로 인해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지만 최근에 새로운 볼거리가 풍부한 장소로 떠오르고 있다. 왜냐하면 꼭대기에 올라가면 사면이 청풍호로 둘러싸여 있는 진풍경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는 많은 아픔을 간직한 남한강 유역이지만 그 아름다움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한 것 같다. 대한민국 새 정부가 출범하는 날 청풍호반의 비봉산을 다녀왔다. 2022. 5. 11.
꽃대궐 울긋불긋 꽃대궐 차린 동네 사방이 꽃으로 출렁인다. 사람이 심어서 피는 꽃 자연이 피워내는 꽃 큰 꽃도 있고 작은 꽃도 있다. 생명을 틔워 꽃을 피우고, 잎이 나게 하는 자연의 섭리에는 어김이 없다. 그런 점에서 자연은 위대하다. 그것에 순응하며 사는 것을 아는 것도 나쁘지 않을텐데 사람은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 안의 꽃이 너무 고와 몇 장 찍어 보았다. 2022. 5. 6.
崇義殿 임진강변의 崇義殿 숭의전은 고려를 이어 건국한 조선에서 세운 것으로, 고려의 왕과 충신들에게 제사를 올리는 사당이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명으로 1385년에 고려를 제 하는 묘(廟-사당)를 세우고, 고려 태조 왕건과 헤종, 성종, 현종, 문종, 경종, 현종, 충렬왕, 공민왕의 여덟 왕을 제사 지내도록 했다. 또한 고려를 위해 목숨을 바친 충신 정몽주 외 15인도 함께 제사 지내도록 했다. 세종 때에는 8왕을 모시는 것은 너무 과하다고 생각하여, 태조, 원종, 문종, 현종의 4왕만을 제사 지내도록 했다. 숭의전을 관리하는 사람으로는 왕씨가 세습하도록 했다. 고려를 멸망시킨 조선에서 왜 이런 사당을 세워 제사를 지냈을까 의아스러운 점이 있을 수 있지만, 바로 앞 시대의 정권이나 왕조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것.. 2022. 4. 22.
석포숲공원 용인 석포숲공원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묵리에 있는 석포숲공원은 추사 김정희가 그린 것이면서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 歲寒圖의 원래 주인이었던 손창근 선생이 국가에 기증한 땅으로 조성한 것이다. 손창근 선생의 부친인 손세기 선생은 일본인에게서 세한도를 양도받았는데, 그로부터 석 달 뒤인 845년 3월에 동경이 대공습을 받아 일본인의 서재가 모두 불타버렸다고 한다. 손창근 선생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이 그림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하여 국보로 지정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서화실에는 손세기,손창근 명품전이 열리기도 한다. 그는 살아생전 평생에 걸쳐 가꾸었던 용인시 묵리 일대의 임야 200만평 정도를 2012년에 국가에 기증했고 지자체에서는 시설을 갖추어서 근래에 개장했다. 화려하지는 않으나 조용하게.. 2022. 4. 7.
동구릉 조선 왕릉의 이해 조선 시대의 왕릉은 경기도 구리시의 동구릉에 있는 태조 이성계의 능묘인 健元陵로 부터 시작되었다. 건원릉의 묘제가 조선 오백 년 동안의 왕릉의 모범이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답사는 동구릉을 중심으로 망우공원 등을 살펴보았다. 여기서는 간단하게 설명한다. 조선 시대 왕릉은 크게 네 구역으로 나눈다. 첫째, 진입의 공간, 둘째, 제향의 공간, 셋째, 轉移의 공간, 넷째, 陵寢의 공간이 그것이다. 진입의 공간은 왕릉의 입구인데, 여기에는 禁川橋, 홍살문(紅箭門), 拜位 등으로 구성된다. 금천교는 입구에 있는 작은 시내를 건너는 다리로 인간의 공간과 신의 공간을 나눈다는 의미를 가진 다리다. 禁은 신이 산다고 믿었던 숲(林)을 향해 제(示-祭壇의 모양)를 지내는 것으로 신과 인간의 영역을.. 2022. 3. 18.
서오릉 西五陵은 서울의 서쪽에 있는 다섯 기의 왕릉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경기도 고양시 창릉동에 있는 일곱 기의 왕실 陵園 이다. 일곱 기가 있지만 왕, 왕비에 해당하는 무덤은 다섯 기가 있기 때문에 이렇게 부른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희빈 장씨의 묘소까지 합치면 여덟 기가 되는 셈이지만 장희빈은 서인이 되어 죽임을 당했으므로 능원의 수에 들어가지 못한다. 사실 장희빈의 묘소는 조선 시대에는 경기도 오포면 문형리에 있다가 1970년에 서오릉으로 옮겨왔으므로 매우 애매하다. 과연 여기에 있어야 하는지도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서오릉이 陵址로 선택된 것은 1457년(세조 3)으로 세조의 세자였던 元子 璋(덕종으로 추존됨)이 사망하자 이곳에 능을 써서 敬陵으로 하면서 시작되었다. 1470년에는 덕종의 아우인 .. 2022. 2. 20.
고구려와 신라의 격전지를 가다 2022. 2. 6.
인제군 원대리 자작나무숲 원대리 자작나무 숲 강원도 인제군 원대리에 있는 자작나무숲은 지자체에서 야심적으로 조성하여 만든 것으로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매력이 있다. 자작나무 숲을 가기 위해서는 약3.2킬로 정도의 가파른 언덕을 등산하듯이 올라가야만 하는데, 내가 보기에 이것이 아주 특수한 장치로 작용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올라갈 때는 매우 가파른 길을 걸어서 올라가야 하므로 힘들다고 생각하지만, 숲까지 올라가면 자른 세계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런데, 이렇게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가파른 언덕길이라고 보이기 때문이다. 즉, 아래의 주차장까지는 인간세계였다면, 올라오는 가파른 길은 다른 차원으로 가는 통로이고, 자작나무숲은 신선세계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은 조선 시대 사대부들이 창안.. 2022. 1. 8.
독바위와 청담천 새해의 독바위(瓮巖)와 淸潭川 양주시 회천동 일대는 동서남북이 漢北正脈의 준령들로 둘러싸여 있다. 북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보면, 逍遙山, 七峯山 , 天寶山, 金烏山, 水落山, 佛巖山, 道峯山, 佛谷山, 道樂山, 紺岳山 등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아주 아늑한 분지다. 이 지역은 고려의 승려인 나옹화상과 조선 태조의 스승인 무학대사 등이 머물렀던 檜巖寺가 엄청난 교세를 떨쳤던 곳이기도 하다. 옥정신도시가 있는 곳을 옥정동이라고 하는데, 이 이름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우습게 생겨났다. 원래 玉井이란 이름을 가진 곳은 지형상 특징을 가지고 있다. 玉은 여성의 상징이고, 井은 물을 나타내기 때문에 陰氣가 매우 강한 곳에 있는 우물을 나타내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서울에서는 玉水洞이라는 곳이 있는데, 이.. 2022. 1. 8.
잘가라 申丑年 소의 해였던 辛丑年은 참으로 힘들었다. 코로나로 힘들었고,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겪느라 힘들었고, 질서가 무너져 가는 사회를 보느라 힘들었고, 잘못해도 반성하지 않는 뻔뻔함을 보며 힘들었다. 朝三暮四에 늘 넘어가는 우리를 보며 힘들었고, 장래는 더욱 어두울지 모른다는 공포감에 힘들었으며, 부동산값 폭등에 따른 징벌적 세금에 더욱 힘들었다. 내년은 좀 나아질까 하는 희망 고문도 힘들고, 희망 자체도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또 힘들며, 둘로 갈라진 사회를 견뎌내는 것도 힘들었다. 호랑이해인 壬寅年은 내일이면 올 것인데, 그래도 지금보다는 좀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지만 알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물가의 폭등은 거의 확실시 되고, 각종 공공요금 역시 대폭 오를 것이 뻔하며, 앞으로 더.. 2021. 12. 31.
정동진에 대하여 정동진(正東津)의 유래에 대하여 추운 날씨였지만 1박 일정으로 정동진과 경포해변을 다녀왔다. 바람이 강하게 불어서 매우 추웠지만 하얀 물보라를 날리면서 짓쳐 들어오는 파도를 마주하는 것은 아주 기분 좋은 일이었다. 내친김에 정동진에 대한 그릇된 정보에 대해서도 살펴보도록 한다. 강릉의 남쪽 바닷가에 있는 정동진과 정동진역, 그리고 해변은 모래시계라는 드라마에서 나온 후 새해 해맞이의 명소가 되었고, 지금은 소도시 수준의 시설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으며, 유명한 관광지로 탈바꿈해 있다.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기로는 조선의 왕궁이었던 경복궁의 정동쪽에 있는 곳이라 하여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지만 이것은 정확한 정보가 아니다. 이 지역을 정동이란 이름으로 불렀다는 기록이 이미 고려 시대부터 등장하고 있기 때.. 2021. 12. 5.
가는 가을을 아쉬워함 가는 가을을 아쉬워 함(可惜送秋日) 가을이 저만치 가고 있다. 이제 곧 본격적으로 겨울이 시작될 것임을 알려주는 징후들이 곳곳에 나타난다. 곱게 물들었던 단풍은 찬바람에 시들어 떨어지고, 들에 내리는 찬비는 을씨년스런 풍광으로 우리를 우울하게 만든다. 가을은 곡식이 익으면서 결실을 거두는 계절이다. 지금은 인공적으로 곡식이나 채소 등을 가꾸어 계절을 가리지 않고 거두지만 과거에는 대부분의 먹거리는 일 년에 한 번 익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므로 가을(秋)은 봄과 합쳐져서(春秋) 연대, 시대 등을 나타내기도 한다. 또한, 일반적으로 가을을 상징하는 존재로는 귀뚜라미(蟋蟀)을 말하지만 글자가 만들어질 당시 사회에서는 농경이 중요했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것이 상징적인 존재로 부각되었다. 농경사회에서 가장 큰.. 2021. 11. 22.
어느 가을날 청명한 가을의 어느 날 코로나가 시작된 지 2년째 되는 2021년의 가을이다. 감염병 때문에 사람들이 이동을 많이 하지 않아서 그런지 유난히 하늘이 맑고 높다. 수십 년 전, 혹은 어릴 때 보았던 날씨요, 하늘이다. 올해만큼 가을을 만끽할 수 있는 때가 언제였는지 가물가물할 정도다. 잘 계획해서 만들어진 양주의 옥정신도시는 길이 잘 뚫려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사람이 걷기에 불편함이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논지가 많고, 잘 연결되어 있다. 동서남북 어디를 보아도 푸른 산이 보이고, 구름과 푸르름으로 빛나는 하늘은 시시때때로 기묘한 형상을 만들어낸다. 공기가 맑지 않으면 도저히 볼 수 없는 풍광이다. 저녁 먹은 후 운동을 나가면서 쳐다본 하늘에 나타난 구름의 모습과 길목 옆에 피어난 황화코스모스를.. 2021. 9. 30.
노을부르스 경기도 양주에는 회암사(檜巖寺)라는 사찰의 터가 남아 있다. 고려말까지 전국 사찰의 총본산이면서 승려의 수가 3,000명에 이를 정도로 엄청난 크기의 절이었으나 퇴락하여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다. 고려 때 승려인 나옹(懶翁)과 조선의 승려였던 무학(無學)의 부도와 탑비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가 스승인 무학을 머물게 하면서 자신도 자주 왕래하였는데, 주변 산세를 보기 위해 칠봉산(御登山)에 올랐다가 남쪽으로 내려오다가 20여리 떨어진 고개로 내려왔다고 하여 이곳 이름을 어하(御下)고개라 하였고, 그 아래 동네를 어하마을이라 하였다고 전해진다. 이곳에서 서쪽을 보면 고구려 시대에 군사적 요충지였던 독바우(瓮巖)와 도락산(道樂山), 불곡산(佛谷山) 등이 보이는데, 해가 질 때 .. 2021. 9. 18.
서산 부석사 서산 부석사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취평리에 있는 도비산(島飛山)의 혈(穴) 자리에는 신라 때 의상이 세웠다고 전해지는 부석사(浮石寺)가 있다. 도비산은 동쪽의 천수만에서 바라보면 마치 바다 위에 떠 있는 섬처럼 보인다. 이름도 그래서 붙여진 것으로 생각된다.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지만 의상과 선묘의 사랑 이야기를 창건설화로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부석사라 하면,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봉황산 자락에 있는 사찰을 의미하지만, 공간적 위치로 보면 서산의 부석사 이야기가 더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서산 부석사 창건설화에는 두 가지가 전한다. 하나는, 677년(문무왕 17)에 의상(義湘)이 선묘의 혼령을 위로하기 위해 창건할 때에 도둑의 무리가 몇 번이나 달려들어 허물어버렸다고 한다. 선묘(善妙)가 죽어서 변.. 2021. 9. 15.
한탄강과 비둘기낭폭포 추가령지구대는 원산에서 추가령을 거쳐, 임진강으로 이어지는 긴 협곡을 지칭하는 용어다. 강원도 평강군 고삽면과 함경남도 안변군 신고산면의 경계에 있는 추가령(楸哥嶺)은 해발 752미터의 고개다. 이 추가령은 백두대간을 남과 북으로 양분하는 중간 지점에 있다. 일명 죽가령이라고도 하는 이 고개를 중심으로 우리나라의 지질ㆍ지형을 구분하는 추가령지구대가 북북동에서 남남서 방향으로 뻗어 있다. 추가령열곡, 추가령구조곡이라고도 한다. 조선 후기 이규경이 지은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제47권 「지리산변증설」은 한반도의 산줄기를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기록한 글이다. 그중에 “분수령이 되고, 철령이 되고, 흘러서 대관령이 된다”라고 하면서 추가령 부근을 분수령으로 표시하였다. 추가령지구대.. 2021. 9. 9.
불곡산의 여름 佛谷山의 여름 양주(楊州)는 한강과 지금의 서울을 품고 있었던 지역으로 한반도의 중심을 이루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고구려의 땅이었다가 나제동맹으로 고구려를 물리치면서 잠시 백제에 속했다가 다시 신라의 땅이 되었다. 고려 때에는 남평양으로 불리면서 번성했고,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는 한강 유역에 도읍지가 정해지면서 축소되었으며, 현대에 들어서는 남양주, 동두천, 의정부 등을 모두 독립시키면서 더욱 쪼그라들었다. 불곡산(佛谷山)은 해발 400여미터로 나지막한 뫼이지만 신령한 기운을 머금고 있어서 양주의 진산(鎭山)으로 여겨졌고, 그 주변에는 영험함을 받으려는 점집과 굿당이 즐비하게 자리하고 있다. 고려, 조선시대부터 불곡산 자락은 관청이 자리했고, 지금도 그 자락에 양주시청이 있으니 그야말로 양주의 중심을 이.. 2021.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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