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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일상/2022

연산군 유적지와 손돌목 기행

by 竹溪(죽계) 2022. 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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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 유배지, 그리고 손돌(孫乭)목 전설
강화군에 속하는 강화도, 교동도, 석모도 등은 한강, 임진강, 예성강 등의 강들이 바다와 만나는 지점에 있는 섬으로 고려의 수도였던 개성과 조선의 수도였던 한양에서 멀지 않은 곳이다. 그래서 그런지 역사적으로 많은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고려 때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왕과 왕족의 유배지가 되었으며, 몽골이 침입해서 왕이 강화도로 피난 갈 때는 억울하게 죽은 뱃사공의 한이 서린 전설과 유적이 남아 전한다. 고려의 희종, 조선의 연산군, 임해군, 영창대군, 광해군 등이 모두 이곳에 유배되었다. 또한 정치가이며, 문학가였던 조선의 송강 정철도 이곳에 유배되었다가 평민의 신분으로 생을 마감했다.
 
몽골이 침략해오자 고려 왕실은 해전에 약한 몽골군에게 저항하기 위해 왕이 강화로 피난을 갔는데, 이때 만들어진 것이 손돌목과 손돌전설이다. 이번 기행에서는 이 두 곳만을 대상으로 했다.
 

고려 때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여러 왕과 왕족의 유배지였던 곳이 바로 교동도의 화개산 아래인데, 현재는 연산군의 유배지라는 표식만 남아 있다. 유배와 관련되는 전체적인 자료를 모아 하나의 테마 공원으로 꾸며도 좋을 것인데, 그렇게 하지는 않는 것 같아 안타깝다. 거기에다 한술 더 떠서 화개산 정상에 전망대를 설치하고 연산군 유배지에서 전망대로 올라가는 모노레일을 설치하고 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참으로 묘한 상황이다.
 
강화도의 동쪽은 김포 대명포구, 월곶 등과 마주하고 있는데, 이 사이의 바닷물이 매우 빠르게 흐른다. 고려 시대에 왕이 강화로 피난 갈 때 손돌이란 뱃사공이 모셨는데, 이 해협을 지나갈 때 너무나 놀란 왕이 자신을 죽이려는 첩자로 오인하여 그를 죽였다고 한다.
 
그때가 음력 10월 20일인데, 손돌은 죽기 전에 말하기를, “제가 죽은 후에 바람이 불고 풍랑이 일더라도 표주박을 띄운 다음, 그것을 따라가면 무사히 피난처에 도착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왕이 그의 말대로 했더니 안전하게 도착하였는지라 나중에 그의 시신을 거두어 김포 덕포진 바닷가에 무덤을 만들어주고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그런데, 그가 죽은 이듬해부터 10월 20일만 되면 바람이 심하게 불고 날씨가 매우 추워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손돌의 원혼이 이러한 추위를 만드는 것이라 믿게 되었고, 이날은 손돌이 얼어 죽은 날로 기억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전국으로 퍼져나갔는데, 충청도 지방에서는 손사공, 혹은 뱃사공 얼어 죽은 날로 되었고, 경상도 지역에서는 손돌맹이 얼어 죽은 날로 되었다. 그리고 그가 오해를 받았던 여울목을 손돌목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의 손돌목돈대가 있는 앞바다가 바로 손돌목이다. 강화 광성보 동남쪽 언덕 너머에 있다.
 
마지막으로는 실향민의 애환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대룡시장을 들렀다. 추억 한보따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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