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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단상/고향이야기

생전 처음 밝히는 비밀-3

by 竹溪(죽계) 2005.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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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밝히는 비밀3


  자전거로 통학을 하다가 여학생 앞에서 넘어진 사건이 있은 후로 자전거를 타는 일에도 흥미가 없어졌고, 또 다시 그 여학생을 만날 엄두가 나지 않았던 나는 상당히 오랜 시간을 전전긍긍하다가 버스 통학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자전거로 다니니까 힘도 들고 시간을 많이 빼앗겨서 공부하는 데 지장이 있다는 이유를 들어서 버스 통학을 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던 것이다. 버스는 浮石에서 출발하여 玉帶, 順興, 豊基, 榮州, 安東을 거쳐 大邱까지 가는 직통인데, 속도가 매우 빨랐다. 아침 6시 40분에 순흥 정류장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상당히 이른 아침을 먹고 3킬로나 되는 들길을 뛰어가서 타야만 했다.

 

  이 버스가 첫차였는데 학교에 등교하는 시간에 맞도록 도착하려면 영주에 있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모두 이 차를 타야만 했다. 그렇기 때문에 버스는 송곳 하나 세울 곳이 없을 정도로 학생들로 만원을 이루었고, 안내양의 ‘오라이’ 소리와 함께 비포장도로를 미친 듯이 달려 내려가곤 했다.

 

  비포장도로인데다가 군데군데 파인 곳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차는 20킬로 가까이 되는 길을 25분 정도면 도착하는 총알택시 수준의 버스였다. 매일 매일을 그 만원버스를 타고 다니다 보니 늘 보는 얼굴들이 생기게 마련이었고, 얼마동안의 시간이 지난 후로는 안내양까지 알아볼 정도가 되었다.


   그 총알 버스 속에는 순흥과 부석의 중간 지점에 있는 옥대에서 탄 학생들과 순흥과 영주의 중간 지점에 있는 풍기에서 탄 학생들이 중심을 이루었다. 예나 지금이나 수줍음이 많고 낯을 잘 가렸던 나는 언제나 한쪽에 혼자 서서 손잡이를 잡은 채로 창 밖을 내다보곤 했는데, 늘 만나는 학생들 중에 영광여고에 다니는 것으로 보이는 여학생들이 서너 명이 있었다.

 

   그런데, 이 학생들은 상당히 놀기를 좋아하는 왈패 학생들이었다. 눈도 아프지 않은데 일부러 눈에 안대를 하고 다니기도 하고 남학생들이 있는 곳으로 와서 장난을 걸기도 했었던 것이다. 나는 그런 학생들이 무서워서 늘 손잡이를 잡은 채로 창 밖만을 응시하면서 학교를 다녔다.

 

   그런데, 그 여학생들의 눈에 내가 잡히게 되었던 모양이었다. 그 때부터 이 학생들은 내 옆으로 와서는 내가 들으면 알 정도로 우리 학교 이야기도 하고 놀리기도 하는 것이었다. 나는 모른 채 하고 가만히 있기는 했지만 얼굴이 빨개질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면 그 여학생들은 뭐가 그리 우스운지 자기네들끼리 깔깔거리고 웃다가 앉아있는 어른들에게 시끄럽다고 혼나기가 일쑤였다. 하루는 이런 일도 있었다. 내 옆에 와서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내가 무표정인 듯이 보이자 내 교복의 뒤쪽 타진 곳을 가리키면서 무얼 하다가 저렇게 터졌을까? 그 속에 개구리를 넣으면 좋겠다는 등의 말을 하다가 심지어는 터진 교복 안에 손가락을 넣어서 흔들어보는 것이 아닌가?

 

   그럴 때면 나는 긴장이 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로 있다가 학교 앞에 오면 얼른 내리곤 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여학생은 나와 같은 학교에 다니는 동창의 동생이었는데, 아마도 오빠를 통해서 내가 누구인지를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상당히 오랜 동안을 시달리던 나는 그것에 익숙해져서 나중에는 여학생들의 얼굴도 쳐다볼 수 있게 되었다. 그랬더니 나를 놀리는 데 앞장을 섰던 동창의 여동생은 무척 아름답고 서글서글하게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때부터 나는 그 여학생이 좋아지게 되었다. 그러나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넘어졌던 사건에 등장했던 여학생에게서와 마찬가지로 말을 걸어볼 엄두는 아예 내지도 못하고 있었지만 그 여학생을 만나는 데에 열중하게 되었다.

 

   아침이 좀 늦은 날이면 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3킬로나 되는 거리를 10분 만에 달려갈 정도였다. 남자들은 군대에 가면 8킬로 정도의 거리를 달리는 구보라는 것을 많이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낙오를 하기 일쑤였지만 나는 낙오하지 않고 끝까지 달릴 수 있었는데, 이 때의 달리기 연습 덕분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매일 매일 그렇게 만나면서 서로가 관심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나는 말을 걸 엄두를 내지 못했고, 그 여학생 역시 직접 말을 걸어오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다니다가 나는 졸업을 하고 대학을 가기 위해 서울로 올라옴으로써 이별이라는 것을 하게 되고 말았다.


  늘 그랬던 것처럼 아무런 사건도 없이 나만의 헤어짐을 경험하고 난 후에 나는 공부 외에는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이 학교를 다니다가 입대를 하였고, 전방에서 3년을 보낸 후 제대를 하게 되었다. 복학까지는 5개월 정도의 시간이 남아있었는데, 학생이 아닌 관계로 그 사이에 예비군 훈련 통지를 받게 되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예비군 훈련을 받으러 간 장소가 바로 버스통학 때 내가 좋아했던 그 짓궂은 여학생의 집이 있는 곳이었다. 불현듯 그 여학생 생각이 난 나는 훈련이 끝난 후 이제는 숙녀가 되어버렸을 6년 전의 그 여학생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그래서 그 때 나는 당신을 좋아했었고 지금도 좋아하고 있다는 말을 해서 사건을 만들어보기로 했던 것이다. 그런 굳은 결심에도 불구하고 맨 정신으로는 찾아갈 엄두가 도저히 나지 않았다.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면서 예비군 훈련을 마친 뒤 같은 마을의 동창을 꼬드겨서 막걸리를 얼근하게 취하도록 마신 후 친구는 먼저 보내고 옥대 장터에서 옷가게를 하고 있는 그 여학생의 집 앞으로 찾아가 보았다.

 

   그날은 장이 서지 않는 평일인데다가 조그만 시골 동네였기 때문에 거리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고, 그 가게에 들어섰을 때도 인적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다시 용기가 없어진 나는 그냥 나와 버릴까 하고 생각을 하다가 술기운에 용기를 얻어서 큰 소리로 계십니까를 연거푸 외쳐댔다.

 

   한참을 지난 후에야 한 사람이 나오는데, 술 취한 정신에도 처음에는 내 눈을 의심할 정도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앞치마에 손을 닦으면서 나오는 사람은 바로 버스를 같이 타고 통학을 했던 그 여학생이 틀림없는데, 얼굴은 영 다른 모습이었던 것이다.

 

    고등학교 때의 얼굴만을 생각하고서 찾아간 내게는 그야말로 하늘이 노래지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 아차 잘못 왔구나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냥 돌아서 나가는 것은 더 우스울 것 같아서 오빠가 있느냐고 전혀 엉뚱한 질문을 하고 난 다음 자기 혼자 있다는 말을 들은 후에 나는 마루에 걸터앉아서 할말이 있다고 했다.


   그 때부터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지만 상당히 긴사설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고등학교 시절에 내가 당신을 무척이나 좋아했다는 말을 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술이 취해서 그런지 횡설수설하면서 꽤 장황하게 설명을 했던 것 같다.

 

   한참을 듣고 있던 그 사람은 세상일에 이미 달관한 도인처럼 빙그레 웃으면서 내게 말하기를 참 소심한 분이라고 하면서 지금 와서 그런 이야기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술에 취했다고 생각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냉수 먹고 속차리라는 뜻으로 그랬는지 모르지만 부엌으로 들어가더니 시원한 물 한 그릇을 가져다주는 것이었다.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말 한마디와 냉수 한 그릇에 그 동안 그 사람이 살았던 모든 것과 나에 대한 마음이 송두리째 담겨있다는 것을 술 취한 정신에도 금방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웃으면서 인사를 하고 그곳을 나와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소백산 국망봉 아래의 암자에 입산 한 것으로 그 사람과의 인연은 끝이었지만, 아프지도 않은 눈에 안대를 하고 멋을 부리면서 거리를 휘젓고 다녔던 약간 왈패 같은 여고시절의 아름답던 여학생의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선연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아쉬운 것은 학창시절에 간직했던 아름답던 모습을 나 스스로 깨버렸다는 점이었다. 그 일이 있은 후로 나는 어린 시절 마음에 담아두었던 사람을 찾는 일 따위는 두 번 다시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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