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이 처녀귀신과의 인연
우리 동네에서 초등학교까지의 거리가 약3킬로 정도였는데, 그 길을 매일 걸어 다닌다는 것이 꼬마들에게는 여간 힘들고 지루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들은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그 먼 길을 심심하지 않게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리하여 봄에서 여름까지는 뱀을 잡아서 길가는 행인을 놀라게 한다든지, 길가에 나와서 놀고 있는 개를 골려준다든지 하기도 하고 느티나무에 올라가서 누가 더 가는 가지를 타고 한바퀴를 도는가 경쟁을 한다든지 아니면 느티나무 위에 숨어서 길가는 행인을 향하여 오줌누기를 하곤 했었다.
겨울이 되면 주로 들판에 불을 놓으며 집으로 돌아가기가 일쑤였는데 불장난을 하고 돌아온 날은 콧구멍은 새카맣게 그을러 있고 옷은 엉망이 되어 있어서 어머니에게 꾸지람을 많이 듣기도 했다.
늘 심심해하며 신나는 일을 찾아 헤매던 나에게 3학년 때의 1학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 무더운 초여름 날 어떤 처녀 귀신과 인연을 맺는 사건이 일어나고 말았다. 학교에서 집으로 오는 길이 죽계천 옆으로 나 있기 때문에 날씨가 더운 날이면 우리들은 책보를 등에 묶어 메어서 활동이 자유롭도록 한 다음 신발을 벗고 물 속으로 걸어서 오곤 했었다.
그런데, 마을을 1킬로 정도 남겨놓고 막 개울에서 나와 신을 신으려는 순간 수 백 미터 아래의 냇가에서 개들이 싸우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한 낮에 개들이 저렇게 싸우는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인지라 우리들은 개울가로 가 보기로 했다.
시골의 개는 덩치가 매우 큰 관계로 우리들은 개를 아주 무서워했기 때문에 직접 다가가지는 못하고 둑 너머에 숨어서 개들이 무엇을 하면서 싸우는지를 훔쳐보았다. 그랬더니 거기에는 놀라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개울가의 모래 벌에는 무덤만한 모래 봉우리가 하나가 있었는데, 그 봉우리의 맨 꼭대기에 사람의 팔이 반쯤 드러난 채로 꼽혀져 있었고, 여러 마리의 개들이 그것을 서로 뜯어먹으려고 싸우고 있는 중이었던 것이다. 그 중에는 우리 동네의 개도 한 마리 있었는데, 그것을 보는 순간 우리들은 너무도 두려워서 한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모두 숨을 죽이고 그것을 바라보고는 있었지만 어느 한 사람도 말을 하거나 움직일 생각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얼어붙은 듯이 한 참을 있던 우리들 중 선배 하나가 용기를 내어서 동네 어른들께 말하자고 했다.
그 말 한마디에 우리 모두는 일제히 일어서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 줄로 서서 빠른 걸음으로 들판의 밭 한가운데를 걸어가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귀신이다” 하고 외치는 바람에 열 명도 더되는 아이들은 동시에 들판을 내리 달리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나는 옆 눈으로 번갈아 가면서 양쪽의 아이들을 보았는데, 뒤쳐지면 귀신에게 잡혀가기라도 할 것처럼 모두 있는 힘을 다해서 달려서 그런지 한사람도 뒤쳐지는 사람이 없고 마치 군대에서 사열하는 것처럼 모두 일직선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수 백 미터를 달려서 겨우 마을 입구에 닿았을 때는 숨이 턱에 차있었고, 마침 들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아저씨 한 분을 만나서 그런 사실을 말씀드리게 되었다. 그랬더니 그 아저씨는 우리들을 데리고 시체가 있는 죽계천으로 가셔서 지게 작대기를 휘둘러 개를 모두 쫓은 다음 개들이 더 이상 먹지 못하도록 팔을 모래 속에 집어넣어 잘 덮은 후 파출소에 신고하러 올라가시는 것이었다.
마을로 돌아온 우리들은 정신이 하나도 없는 상태가 되어 모두 멍하니 앉아 있기만 했었다. 점심때를 넘어서서 해가 서쪽 산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하는 것을 본 나는 그 때부터 엄청난 공포와 걱정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집으로 가려면 영감 부부가 재채기를 하면서 귀신으로 가끔 나온다는 작은 골짜기를 지나서 가야하는데 그곳을 혼자서 지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걱정을 태산처럼 하고 있는데 마침 작은 형이 어디선가 나타났다.
그 때의 반가움이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형 덕택에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지만 날이 어두워진 다음부터는 혼자서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려 하지 않고 어머니가 방으로 가면 방으로 따라가고, 부엌으로 가면 부엌으로 따라다니면서 잠시도 어머니 곁을 떠나지 않게 되었다.
그 날 밤에 나는 귀신이 나오는 악몽을 꿀까봐 두려워서 잠도 자지 못하고 꼬박 지새우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무서워도 궁금한 것은 못 참는 성미인지라 다음날은 공부를 하는 둥 마는 둥 학교가 끝나자 말자 어제의 그 장소로 친구들과 다시 가 보기로 했다. 왜냐하면 그날 오후에 사람들이 그곳에 와서 시체를 처리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은 그런 것을 보면 안 된다고 어른들이 꾸중을 하고 멀리 내쫓아 버리자 잠시 피해 있다가 다시 그곳으로 가서 둑 너머에 숨어서 몰래 훔쳐보기 시작했다. 경찰복을 입은 사람과 신문사기자가 온 모양인지 사진도 찍고 시체를 꺼내서 살펴보기도 하고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른들이 둘러싸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들은 그 시신을 자세히 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어른들의 말을 들어보니 대강 이런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나이가 20가량 되는 처녀인데, 누군가가 토막살인을 해서 죽계천변에 묻고 팔이 보이도록 해놓았다는 것이었다.
경찰과 여러 사람들이 모래 더미를 파헤치면서 여러 토막으로 잘려진 시신을 꺼내어 놓았는데, 우리들에게 그것은 매우 신기하게 보였다. 물에 불어서 그런지 다리 하나가 어른 몸뚱이 굵기만 하고 피부의 색은 푸르딩딩한 것이 사람 같지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무서워서 한쪽 눈은 가리고 나머지 한쪽 눈은 가늘고 뜨고 바라보곤 했는데, 시체를 검사한 사람이 큰 소리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갑사댕기를 한 처녀이고 하늘색 반짝이 치마에다 옥색 저고리를 입었다는 것이었다.
열심히 구경하고 있는데, 갑자기 어떤 어른이 막대기를 들고 때리려고 오는 바람에 이미 볼 것을 다 본 우리들은 뒷일은 어른들에게 맡겨두고 마을로 돌아와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각각 집으로 헤어지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이 토막살인 사건은 다른 사람에게는 일단락되었던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그 다음날 기절초풍할 일이 내게 일어나고 말았다. 그날도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학교에 갔었는데, 전날 기분 좋지 않은 일을 보았던지라 우리 모두는 일찍 헤어져서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집에 들어서자 말자 어머니가 내게 하시는 말씀이 “이제 너는 큰일 났다”는 것이었다. 왜 그러냐고 어머니께 여쭤보자 정말 큰일 날 말씀을 내게 하시는 것이었다. 토막살인이 난 개울은 우리 집에서 1킬로 정도 떨어진 곳이었는데, 임자도 없는 시신을 묻을 곳이 마땅하지 않게 된 경찰들이 거적에 그 시신을 싸서 우리 과수원 바로 옆의 북쪽 산기슭에 묻고 갔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그 북쪽은 내가 매일 물을 길러 와야 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그야말로 이만 저만한 큰일이 아닐 수 없었다. 바가지로 물을 퍼서 양동이에 담고 그것을 지게로 져 오는 일을 내가 맡고 있었기 때문에 100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은 우물길이 몇 킬로도 넘는 것처럼 느껴졌고, 엎드려서 물을 풀 때는 물 속에 반짝이 옷을 입은 처녀 귀신이 나올 것 같기도 하였다.
더구나 엎드려서 물을 풀 때 처녀 귀신이 나와서 내 등을 밀어 버릴까봐 물을 푸다가 뒤를 돌아본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무서운 것은 비가 부슬부슬 내릴 때에 물을 길러 가는 것이었다. 비가 올 때는 날씨도 어두컴컴한데다가 그런 날 귀신이 자주 나온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어머니를 졸라서 함께 갔지만 나중에는 결국 혼자 가게 되자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게 된 나는 우물의 위치를 반대쪽으로 바꾸어 달라고 계속해서 조르기 시작했다. 이에 견디다 못한 아버지께서는 어느 날 형님과 함께 남쪽의 논 가운데에 있는 우물을 깊이 판 다음 그것을 깨끗하게 수리해서 그 쪽 물을 먹기로 결정을 내리셨다.
반대쪽으로 물을 길러 가게 되어서 덜 무서워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귀신의 공포를 쉽게 떨쳐버리지 못했던 나는 어두워지기만 하면 밖으로 나가려는 엄두조차 내지 못하였는데, 그 처녀귀신을 반짝이 귀신이라고 이름을 붙여서 불렀다.
시골 마을 어디에나 마찬가지였겠지만 우리 동네나 우리 집 주변에는 여러 귀신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그 중에서 내가 직접 겪은 유일한 귀신이었기 때문에 반짝이 처녀귀신이 내게는 가장 무서운 존재였다. 그 뒤로 반짝이 처녀귀신은 늘 나를 따라다니면서 상당히 오랫동안 괴롭혔다.
세월이 아주 많이 흐른 지금, 나를 괴롭히던 반짝이 처녀귀신이 어느새 그리움이란 빛깔로 채색되어 나타나고 있음을 본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어쩌면 과거의 기억들에게 고운 옷 한 벌씩을 선사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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