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삶의단상/고향이야기

독수리가 먹게 해준 닭고기

by 竹溪(죽계) 2005. 12. 18.
728x90
SMALL
 

                                               독수리가 먹게 해 준 닭고기



     지금은 보기가 어려운 동물 중의 하나가 되어버린 독수리지만 내가 어릴 적에 보았던 독수리는 하늘의 왕자라는 별칭에 걸맞게 정말 멋진 행동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독수리라는 존재는 절대로 곡선비행을 하지 않는다. 먹이를 쫓을 때도 그렇고 하늘에 높이 떠 있을 때도 그러하다.

 

   언제나 유유히, 그러나 날쌔게 직선비행을 고집한다. 곡선비행을 하면 마치 자신이 독수리가 아닌 양 철저하게 직선으로 비행하는 것을 바라보는 것은 진정 즐거운 일이었다. 그뿐 아니라 죽은 고기 또한 먹지 않는다.

 

   자신이 사냥한 것을 산채로 낚아챈 후 호기롭게 공중으로 솟아오르는 모습은 볼 때마다 난 찬탄과 경이로움에 가슴 벅찬 감동을 받곤 했었다. 이러한 독수리에 대한 소문은 자연과 하나 되어 살아가는 농촌마을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어느 마을에서는 들일을 하는 어머니가 갓난애기를 풀 섶에 눕혀 놓았더니 독수리가 자신의 먹이인줄 알고 물고 가다가 떨어뜨렸다고 하는 소문이 있는가 하면, 또 어느 마을에서는 닭장 속의 닭을 노리고 내려왔다가 주인에게 산채로 잡혔다는 소문도 있었고, 개를 물고 가려고 내려왔다가 개에게 다리를 물렸다는 소문도 있었다.


    이런 갖가지 소문을 몰고 다니는 독수리는 동네사람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었지만 내게는 그야말로 매력으로 똘똘 뭉쳐있는 멋진 친구였다. 하늘에서 뱅뱅 도는 독수리의 모습은 나를 현혹시키기에 충분하였던 까닭이다.

 

   파란 하늘에 높이 떠있는 독수리를 풀밭 위에 누워서 보고 있노라면 내가 하늘 위로 올라가서 독수리와 마주보고 춤을 추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곤 했다.  혼자 놀기를 무척이나 좋아했던 나는 독수리가 우리 집 부근에 나타나기만 하면 잽싸게 들판으로 나가서 풀이 무성하게 자란 곳을 골라 얼른 자리를 잡고 눕는다.

 

    그 때부터 독수리와 나는 하늘을 날면서 뱅뱅 도는 둘 만의 군무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군무는 그다지 오래가지 못한다. 왜냐하면 독수리가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버리기 때문이다.

 

    내 눈앞에서 뱅뱅 돌면서 나의 눈을 어지럽히던 독수리는 어느 순간 갑자기 내 눈앞에서 사라지게 되는데, 그 순간을 놓치게 되면 그 동안 독수리와 함께 놀면서 기다렸던 나의 목표가 수포로 돌아가게 된다.

 

   기실 내가 어지러움을 감수해가면서까지 독수리의 춤에 맞추어서 눈을 돌렸던 것은 바로 이 순간을 보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내 눈앞에서 갑자기 사라진 독수리는 거의 수직으로 땅을 향해 내리 꽂히는데 그 모양은 돈을 주고도 보지 못할 장관이었다.

 

   왜냐하면 까마득한 공중에서 날개를 접고 거의 수직으로 하강하는 모습은 흔히 볼 수도 없는데다가 그 짜릿한 속도감이라고 하는 것은 보는 사람이 오금이 저릴 정도였다.

 

  땅으로 내려가는 독수리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하강하기 때문에 내가 잠시라도 한 눈을 팔고 있다면 이미 독수리는 땅 위에 내려가 있을 것이기 때문에 눈앞에서 사라졌다고 생각되는 순간 내 눈도 바로 독수리를 따라가지 않으면 안되었다.

 

  내 눈이 독수리를 보았을 때는 이미 독수리가 삼분의 일 정도를 내려온 뒤인데, 그 때부터 땅에 닿을 때까지의 속도가 가장 빠르다.


     가히 예술적이라고 밖에는 달리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선을 그으면서 내려온 독수리는 순식간에 땅에 까지 도달한다. 잠시 후 독수리는 작은 물체 하나를 낚아채서 하늘로 올라가는데, 그것은 들쥐나 꿩, 토끼 등이 중심을 이루고 가끔씩은 닭을 낚아채서 올라가는 경우도 있다.

 

   이 짐승들은 아무 생각 없이 먹이를 찾고 있다가 죽음을 맞이하는데, 워낙 창졸간에 당한 일이라 공중으로 매달려 올라가면서 버둥거리는 모습이 역력하게 보인다. 그 높은 곳에서 땅위에 있는 쥐를 보고 내려와 눈 깜짝할 사이에 그것을 잡아간다는 것은 가히 신출귀몰한 재주가 아닐 수 없었다.

 

   내려오는 속도와 모양도 일품이지만 내가 보기에 정말로 神技에 가까운 재주는 먹이를 채는 순간과 날개를 펼쳐서 멈추는 모양이다. 수직낙하로 내려온 독수리는 땅에 거의 도달할 무렵이 되면 날개를 펼치면서 몸을 멈추게 되고 그와 동시에 먹이를 낚게 된다.

 

  만일 그 시간이 길게 된다면 먹이가 달아나는 불상사가 일어나게 되므로 날개를 펼쳐서 몸을 멈추는 순간과 먹이를 낚아채는 순간의 오차는 거의 없거나 아주 짧은 찰나인 것으로 나에게 인식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독수리는 나의 좋은 친구였지만 마을에서 산 하나를 두고 떨어져 있는 독가촌인 우리 집의 닭을 가끔씩 훔쳐가기 때문에 미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독수리는 곡선비행을 하지 않으므로 나무 밑과 같이 엄폐물이 있는 곳의 짐승은 잡을 수가 없는데 그러한 사실을 잘 알지 못하고 들판이나 논 한가운데 나가서 먹이를 찾는 닭들이 독수리의 가장 쉬운 사냥감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닭들이 들판에 나가서 먹이를 찾는 모습을 잘 관찰해보면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하게 되는데, 장닭과 암탉의 역할이 뚜렷이 구분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암탉은 무심히 먹이를 찾아 고개를 숙이고 있지만 장닭은 몇 초 간격으로 고개를 들어 자신들을 노리는 적이 있는지를 감시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위험 징후가 보이면 장닭은 아주 굵고 낮은 소리로, 그리고 매우 짧게 꼬꼬댁 꼭꼭 하는 소리를 낸다. 그 소리가 신호가 되어 나머지 닭들이 모두 안전한 곳으로 도망을 하게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장닭은 파수꾼의 구실을 하는 셈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감시를 잘 해도 갑자기 하늘에 나타난 독수리를 본다는 것은 매우 어려우며, 설혹 독수리를 봤다고 하더라도 나무 같은 엄폐물이 없는 들판이나 논에서는 도망가는 도중에 독수리에게 잡히기 일쑤였다.

 

   이런 일을 여러 번 겪게 되면 닭들도 요령이 생겨서 한 낮이나 사람이 주위에 없을 때는 엄폐물이 없는 들판 같은 곳에는 나가지 않고 나무 밑으로 돌아다니면서 굼벵이나 벌레 같은 것을 잡아먹게 되는 것이다.


    독수리가 많이 나타나는 시기는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기간이 중심을 이루는데, 그 때는 들판에 먹이가 많아서 닭들이 주로 들판이나 논에서 먹이를 찾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봄날이었다.

 

   그때 나는 초등학교 5학년이었는데 독수리 덕분에 닭고기를 먹게되는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날은 내가 학교에서 일찍 온 관계로 어머니와 함께 과수원 한쪽에 있는 밭의 풀을 뽑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닭들이 괴성을 지르면서 어디론가 숨는 것이었다.

 

    독수리가 나타난 것을 직감한 어머니와 나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허겁지겁 달려가 보았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어버린 뒤였고, 독수리는 우리 집에서 가장 큰 장닭을 낚아채서 하늘로 올라가고 있는 중이었다.

 

   허망하게 하늘을 바라보던 어머니와 나는 그 순간 독수리의 행동에서 약간의 이상함을 느끼게 되었다. 독수리가 곧바로 하늘로 날아오르지 못하고 고도를 잔뜩 낮게 하여 반짝이 귀신이 나오는 산기슭으로 가고 있는 것이었다.

 

   독수리가 하늘 높이 날아올랐으면 어머니와 나는 닭을 포기했겠지만 낮은 고도로 날아가는 독수리가 이상하게 생각되었기 때문에 소리를 지르면서 그 뒤를 쫓기 시작했다. 잠시 후 100미터 정도를 날아가던 그 독수리가 물고 가던 장닭을 떨어트리고는 번개같이 하늘로 달아나 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어머니와 내가 그곳에 당도했을 때 그 장닭은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그때서야 어머니께서는 저 독수리가 시력이 나빠서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큰 닭을 낚았다가 잘 날수 없게 되자 떨어트리고 간 것이라고 하셨다.


     어머니와 나는 죽은 닭의 시체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오는 도중 내내 장닭에 대한 불쌍한 마음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날 오후가 되어 아버지가 돌아오시자 어머니께서는 곧바로 장닭을 끓는 물에 넣어 튀를 한 다음 털을 벗긴 뒤 맛있는 닭고기국을 끓이셨다.

 

 오랫만에 부족한 지방과 단백질을 보충하며 풍성한 식사를 하게 되었지만 일년을 넘게 키우면서 정이 들었던 까닭에 그 후에도 오랜동안 장닭을 죽게 만든 독수리를 원망하며 보냈다.

 

  이처럼 내게 있어 독수리는 친구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원망의 대상이기도 하였지만 나이가 들고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은 독수리의 아름답고 멋진 하강모습만이 시야를 가득 채울 뿐이다.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