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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단상/고향이야기

아이들 간을 먹는 참꽃문둥이

by 竹溪(죽계) 2005. 1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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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간을 먹는다는 참꽃문둥이

 

   나는 어릴 때부터 산과 들에 지천으로 피어 붉게 타오르는 참꽃을 아주 좋아했는데, 참꽃은 꽃 모양도 아름답지만 여러 용도로 쓰이기 때문에 우리들에게는 매우 친근한 식물이었다.

 

    참꽃은 첫째, 꽃잎을 사용하여 화전을 만들고, 둘째, 아이들의 간식으로 제격이고, 셋째, 꽃술은 놀이도구로 사용되며, 넷째, 뿌리를 캐서 화장실에 넣으면 구더기가 없어지고, 다섯째, 기묘하게 생긴 뿌리는 槐木으로 다듬어서 장식용으로 사용하기도 하며, 여섯째, 겨울에는 땔감으로도 사용된다.

 

   특히 화전에 얹혀져 있는 참꽃 잎은 요염하기까지 한데, 어머니들이 화전놀이를 할 때 우리들은 옆에서 구경하는 척 하다가 잽싸게 만들어 놓은 화전을 들고 멀리 달아나서 먹곤 했었다. 뿐만 아니라 농촌 마을에는 참꽃의 뿌리를 깎아서 만든 槐木 한 두 개 정도는 어느 집에나 있었으니 생활의 여유를 주는데도 참꽃은 한 몫을 하는 셈이었다.

 

  또한 참꽃은 우리 같은 개구쟁이들에게는 둘도 없이 맛있는 간식거리이기도 했다. 약간 쌉싸름한 맛을 내는 참꽃의 꽃잎은 산에서 직접 따서 먹곤 하는데, 어느 정도 먹으면 혓바닥이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보라색을 띠었다. 그러면 우리들은 서로의 혓바닥을 내보이면서 누가 더 짙은 색깔을 띠었는지 견주어보며 서로를 놀려대곤 했었다.

 

  이처럼 여러 용도로 쓰이던 참꽃은 생명력 또한 강인하여 나무를 잘라버리더라도 다음 해에는 영락없이 새순이 다시 돋아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어 우리들에게 놀라움과 기쁨을 주었었다.


    참꽃은 진달래라고도 하는데, 나는 학교에 가서야 이 이름을 듣게 되었다. 진달래보다 참꽃이 더 예쁜 것 같은데 왜 진달래라는 이름을 교과서에서 쓰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참꽃은 우리가 어려서부터 가장 많이 보는 꽃 중의 하나이며, 가장 토속적인 성격을 지닌 것으로 참꽃이란 이름도 이런 의미에서 붙여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 꽃을 참꽃이라고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꽃보다 꽃술에 있다고 판단되었다. 참꽃의 꽃술은 약간 검은 색을 띠면서 가늘고 긴 모습을 지닌 것이 여럿 늘어져 있는데, 그 색깔이 꽃잎과 절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어 아주 요염한 느낌을 준다.

 

  가운데 있는 꽃술이 가장 길고 우아한데, 우리들은 꽃잎은 따서 먹고 중앙에 있는 긴 것은 잘라서 여러 개를 모은 다음 하나씩 맞대어서 힘 겨루기를 하여 누구 것이 더 강한가를 시합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러한 참꽃이 한편으로는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했었다. 왜냐하면 참꽃 문둥이가 참꽃 뒤에 숨어 있다가 아이들을 잡아먹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산에 가서 참꽃을 따지 말라는 어른들의 잔소리를 귀가 따갑도록 들어야만했지만 어른들이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들도 어른들의 말씀이 모두 거짓이 아니란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고, 실제로 참꽃 문둥이를 만나는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봄이 되어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해가 점점 길어짐에 따라 우리들이 장난 칠 시간 역시 점점 길어지게 되는데 이 때가 바로 참꽃 문둥이를 만나는 시기였던 것이다.


    우리가 참꽃 문둥이를 처음 만났던 것도 학교에서 돌아오던 때였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3킬로 정도를 들판으로 내려오게 되는데, 중간쯤 오면 낙동강 상류면서 죽계천의 지류인 왕당골이란 작은 시내를 만나게 된다. 이 시내에 이르게 되면 우리들은 길을 벗어나 냇가를 따라 내려가게 되는데 이는 버들피리를 꺾어 불기 위함이었다.


    좋은 소리를 내는 버들피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나무를 잘 골라야 하기 때문에 물가로 뻗어나간 버드나무를 잡느라고 물에 빠지기가 일쑤였다. 우리가 고르는 버들피리용 버드나무는 우선 매끈하게 자라서 흠집이 없으며, 적당한 굵기에다가 약간 투명한 색을 띤 것들이어야 했다.

 

   그래야만 맑고 고운 소리를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버드나무는 아무 곳에나 있지 않고 꼭 우리들이 꺾기 어려운 물가에 있곤 하였으므로 우리들은 아예 신발을 벗고 물 속에 들어가서 버드나무를 꺾는 것이 예사였다.

 

   손가락 정도 굵기의 늘씬하게 생긴 버드나무를 꺾은 다음에는 이것에 적당한 힘을 가하여 나무와 껍질을 분리시켜야만 했다. 이 때야말로 상당한 기술이 필요한데 너무 강하게 비틀면 껍질이 갈라져서 피리를 만들지 못하게 되고, 너무 약하게 비틀면 나무와 껍질이 완전하게 분리되지 않아서 껍질을 통째로 빼낼 수 없게 되므로 무척 조심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선택한 버드나무를 손으로 잡고 한쪽으로 힘을 주어서 비틀면 전체가 약간 움직이면서 돌아가는 느낌이 드는데, 이때를 잘 포착하여 힘주는 것을 멈추면 나무와 껍질이 훌륭하게 분리되어 진다.

 

   그 다음에는 적당한 길이를 가늠해서 칼로 껍질을 자르고 나무의 끝 역시 칼로 잘라낸 후 소리의 음질을 좌우하게 되는 구멍을 뚫는 아주 중요한 일이 남게 된다. 구멍을 뚫을 때는 버드나무 껍질을 나무에서 빼내면 안되고, 나무에 붙어 있는 상태에서 칼로 v홈을 파서 구멍을 내야 했다.

 

   몇 개의 구멍을 뚫을 것인지는 버들피리의 크기를 보아 결정하게 된다. 그런 다음에는 나무로부터 껍질을 통째로 분리시키는데 가는 쪽으로 껍질을 빼내야 한다.

 

   이렇게 되면 버들피리가 거의 완성된 셈인데, 아직까지 소리는 나지 않은 상태이므로 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입에 대는 부분의 겉껍질을 얇게 깎아내야 한다. 굵은 쪽의 끝을 눌러서 편편하게 한 다음 위와 아래쪽의 겉껍질을 칼로 깎아낸다.

 

    이 때 너무 깊게 깎아내면 소리가 나지 않으므로 흰색을 지닌 속껍질이 잘 드러날 정도로만 깎아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비로소 버들피리가 완성되는데, 한 가지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여러 종류의 것을 만들기 때문에 무척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따라서 굵고 탁한 소리를 내는 대금피리에서부터 아주 방정맞은 소리를 내는 초랭이피리에 이르기까지 열 개 이상을 만들다 보면 어느 덧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것이 예사였던 것이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열심히 버들피리를 만들고 있던 우리들의 귓가에 철벅 철벅 하는 이상한 소리가 아래쪽에서부터 들려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철벅거리는 소리는 정상인이 물 속을 걷는 소리와는 달리 약간 불규칙적으로 들려왔기 때문에 우리는 순간적으로 위험하다는 것을 직감하게 되었다. 소리 없는 손짓 신호에 의해 살며시 물 밖으로 나간 우리들은 버드나무 뒤에 숨어서 누가 올라오는지 살펴보기로 했다.

 

  우리가 물 밖으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래쪽에서 올라오는 사람은 다름 아닌 문둥이였다. 얼굴은 이상한 것이 덕지덕지 난 모양이고 한쪽 손은 갈고리 같은 것을 달고 한쪽 다리는 절뚝거리면서 우리들이 있는 곳을 향해 열심히 달려오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바로 뒤에 또 한 사람의 문둥이가 달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우리들은 그만 혼비백산하여 논둑 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수 백 미터를 정신없이 달려간 우리들은 산기슭에 이르러서야 겨우 숨을 돌리고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한참을 따라오던 문둥이들은 마침내 포기를 했는지 그냥 망연자실한 모양으로 서 있기만 했다.

 

   안심을 한 우리들은 그 때부터 문둥이들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기세좋게 장난질을 시작하지만, 멀거니 쳐다보기만 하던 문둥이들은 천천히 시내 속으로 다시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그리하여 두려움은 사라지고 아쉬움만 남는 상황이 되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우리들이 두 번째로 문둥이를 만난 것은 아주 화창한 봄날 학교에서 돌아 와 뒷산으로 참꽃을 따 먹으로 간 날이었다.

 

   그 날 따라 동네에서 약간 떨어진 곳까지 가게 되었다. 표대등 아래에 있는 긴골의 중턱까지 간 우리들은 열심히 참꽃을 따먹으며 산 쪽으로 가고 있었는데, 불과 오십미터 정도 앞에서 꿩이 놀라는 소리를 지르면서 날아오르는 것이 보였다.

 

   산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았던 우리들은 꿩이나 토끼 같은 것들이 갑자기 놀라서 달아날 때는 그곳에 무엇인가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기 때문에 유심히 앞을 살피는 것이 거의 습관처럼 되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조금을 더 올라가다 보니 참꽃 뒤에 사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역시 혼자가 아닌 둘이었는데, 정상인의 몸짓이 아닌 것을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었다.

 

   참꽃문둥이는 아이들을 잡으면 항문으로 손을 넣어 간을 빼 먹은 다음 산에 버린다고 어른들에게 누누이 들었던 터라 그 공포는 대단한 것이었다. 그 순간 우리들은 머리카락이 빳빳하게 일어서는 느낌과 동시에 들판을 향해 죽어라 내리닫기 시작했다.

 

   문둥이들도 필사적으로 우리들을 따라오는 모양인지 이상한 소리가 뒤에서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었지만 너무 겁이 났던 우리들은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산을 벗어나느라 정신이 없었다.

 

  소나무 숲을 지나 들판으로 내려오면 그곳에는 밭일을 하는 어른들이 있기 때문에 일단 안심을 하였던 우리들은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어른들에게 그 사실을 이야기했다.

 

  그 말을 들은 어른들이 지게작대기와 낫을 들고 산 쪽으로 가 보았을 때에는 이미 문둥이들이 산 속으로 숨어버리고 난 뒤였다. 두려움으로 뼈가 오그라드는 것 같았던 사건이었다. 


     이처럼 참꽃문둥이들은 아이들에게 상당히 위험한 존재인 것은 사실이었지만 우리들은 은근히 그것을 즐기기도 했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놀이 대상으로 보였던 우리들에게 문둥이 역시 무섭기는 했지만 또 다른 즐거움을 주는 대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우리들을 긴장과 공포로 몰고 갔던 참꽃문둥이들은 눈에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러자 두려웠던 기억은 말끔히 사라지고 오히려 참꽃문둥이의 존재가 그리워지게 되었으며 그들이 잘 나타나곤 하였던 참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장소에 모여 앉아 한참동안 문둥이들을 기다리기도 하였다.

 

   나중에서야 군사혁명이 성공한 후 문둥이들을 전부 한 곳에 수용하여 전국의 문둥이와 각설이패가 없어지게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두려움과 짜릿한 즐거움을 동시에 주었던 참꽃문둥이에 대한 추억은 내 어린 시절과 함께 세월 속에 빛바래지 않는  영원성을 획득하며 당당히 존재하고 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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