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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단상/고향이야기

처녀귀신과 몽달귀신의 결혼

by 竹溪(죽계) 2005.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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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녀귀신과 몽달귀신의 결혼


     시집 혹은 장가를 제대로 가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을 짝지어 주는 영혼결혼식은 지금은 보기 어려운 광경중의 하나가 되었지만 내가 살았던 어린시절의 농촌사회에서는 심심찮게 볼 수 있었던 일이었다.

 

  영혼결혼식을 치루어 줌으로써 죽은 사람의 혼령은 한을 품지 않고 곱게 저승으로 가게되고 따라서 이승에 남아있는 사람을 괴롭히지 않게 된다고 믿었기 때문에 죽은 사람들의 부모나 친지들이 서로 합의하여 생전에 서로 좋아했지만 맺어지지 못하고 죽은 두 사람의 허수아비를 만들어 생전의 결혼식과 꼭 같은 절차에 의해 혼례를 치루었다.

 

  사모관대를 쓰고 의젓한 모양으로 만들어진 신랑 모양의 허수아비와 붉은 연지를 볼에 붙이고 다소곳하게 서 있는 모양을 한 신부 허수아비가 들러리의 도움을 받아 절을 하고 술을 마시면서 혼인의 절차를 다 마치게 되면 그것을 그대로 들고 가서 동구 밖에서 불을 놓아 태운다. 그렇게 하면 두 사람은 저승에서 부부가 되어 행복하게 살 것으로 사람들은 믿었던 것이다.


   내가 고등학교 때 보았던 영혼결혼식의 주인공들이 가진 사연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 두 사람은 나보다 4년 선배였는데, 평소에 서로 좋아하는 사이였다.

 

  그 때만 해도 농촌 마을의 학력은 남자가 고등학교를, 여자는 중학교 정도를 졸업하는 정도면 매우 높은 편이었으며 대체로 여자는 국민학교를 졸업하는 것이 고작이고, 남자는 중학교 정도를 졸업하면 도시로 돈을 벌기 위해 떠나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 두 사람은 학교에 다니면서부터 서로가 좋아했지만 유달리 유교문화가 강했던 곳이라 마음놓고 교제를 하며 사랑을 키울 수 없었다. 서로가 애만 태우다 처녀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집에서 살림을 하게 되고 남자는 고등학교까지 졸업을 한 후 돈을 벌기 위해 도회지로 떠나고 말았다.

 

  몇 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점점 혼기가 차오기 시작한 딸을 빨리 시집보내기 위해서 처녀의 집에서는 여기 저기 혼사자리를 알아보았지만 그럴 때마다 처녀는 모두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면서 한사코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러다가 자꾸 세월이 가면 애꿎은 노처녀만 하나 생기게 되고 그렇게 되면 조상을 뵐 면목이 없다고 생각한 처녀의 부모는 적당하다고 생각한 집을 골라 시집을 보내기로 작정하고 계속해서 처녀에게 결혼 할 것을 강요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달리던 처녀가 어느 날 부모들이 모두 들일을 하러 나간 사이에 집 뒤뜰에서 농약을 마시는 사건이 일어나고 말았는데 미처 병원으로 옮길 시간적 여유도 없이 숨지고 말았다.


    처녀가 농약을 먹고 자살하던 때는 내가 중학교를 다니던 시기였다. 유달리 얼굴이 둥글고 하얀 그 처녀를 우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매우 좋아했었다. 우리 동네에서 가장 예쁘고 착한 마음을 지니고 있었던 터라 나는 그 누나를 멀리서 보기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우물에서 물을 긷고 있는 모습이 보이면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우물가를 빙빙 돌기만 했다. 그런 나를 발견한 누나는 예쁜 웃음을 지으며 두레박으로 차고 맑은 우물물을 길어 주었다.

 

  누나가 퍼 올린 우물물의 맛은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달콤하고 시원하였는데, 물만 얼른 받아 마시고는 공연히 부끄러워 고맙다는 말도 하지 못하고 줄행랑을 치곤 했었던 것이다. 뒤통수가 화끈거리고 가슴이 방망이질을 하는 통에 한번도 쉬지 못하고 집까지 내달았던 기억이 난다.

 

   그 처녀의 집에는 4대 독자인 남동생이 하나 있었는데, 나보다 일년 아래였다. 이 독자 아들은 너무 귀하게 자라서 그런지 매우 약골인데다가 걸핏하면 경끼를 해서 병원으로 실려 가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였다.

 

  바로 위의 누나였던 그 처녀는 우리들에게 자신의 남동생을 잘 보살펴달라고 하면서 매우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나뿐만 아니라 내 또래 남학생들의 이상형이었던 처녀가 죽었다는 말은 우리들에게 있어서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것이었다.


    그로부터 일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부터 죽은 처녀의 남동생에게 이상한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밤마다 죽은 누나가 나타나서 외로우니까 함께 가자고 한다는 것이었다.

 

  그 때마다 이 친구는 경끼를 하고 그 어머니는 밤중에 아들을 들쳐업고 4킬로 정도 떨어진 곳으로 사혈을 따러 가곤 하였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속으로 무척 당황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상당한 개구쟁이였던 나는 개구리나 뱀 등을 잡아서 개구리는 가방이나 옷 속에 집어넣기도 하고, 뱀은 꼬리를 잡고 돌리다가 처녀의 남동생에게 던져서 목에 휘감기도록 하면서 장난을 치곤 했었다.

 

  워낙 몸도 마음도 약한 친구인지라 내 장난에 놀란 나머지 가끔 기절을 하였다가 잠시 뒤에 깨어났던 일이 있었으므로 나 때문에 밤에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은근히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그 뒤로 나는 그 친구에게 함부로 뱀을 던지지 않게 되었다. 밤마다 죽은 누나에게 시달리던 친구는 하루가 다르게 술에 취하는 날이 늘어갔고 점점 알콜 중독자가 되어 갔다. 술에 취해 곤드레가 되어야만 죽은 누나의 꿈을 꾸지 않고 잠을 잘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한편,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돈을 벌고 있던 청년은 나이가 차서 군대에 갔다는 소문이 들렸는데, 군대생활을 하는 도중에 휴가를 받아서 결혼을 하였다.

 

  강원도 현리에서 근무하던 그 청년은 우리 마을에서 수 십 킬로 떨어진 마을의 처녀를 맞아 결혼식을 무사히 치르고 부대로 복귀하였는데, 곧 바로 사망소식이 들려왔다.

 

  그가 죽은 경위는 대략 다음과 같았다. 그 청년이 근무하는 곳은 강원도 산 속에 있는 보병부대였지만 글씨를 잘 쓰는 관계로 힘든 훈련이나 노역을 하지 않고 행정실에서 사무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우연히 창 밖을 내다보던 그의 눈에 매우 위태로운 광경이 목격되었다. 연병장 끝에 흙을 잔뜩 실은 트럭이 조수도 없는 상태에서 절벽 쪽을 향해 후진하고 있었던 것이다.

 

  위험하다고 생각한 그 사람은 밖으로 나가서 자신이 차량의 뒤를 봐주어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운전사에게 말한 뒤 안전하게 후진하도록 한 뒤 이제는 세우라는 신호를 보냈다고 한다.

 

   그런데, 그 트럭의 운전사는 무슨 생각을 하였는지 브레이크를 밟지 않고 엑셀을 밟는 바람에 육중한 트럭의 뒷바퀴에 치여 그 자리에서 그만 죽고 말았다는 것이었다.

 

   소식을 듣고 달려간 신부와 그 사람의 부모들은 어이없는 사고에 넋을 잃었으나 이미 죽은 사람은 다시 살아올 수 없는 노릇이었다. 시신을 수습하여 집으로 돌아온 그들은 결혼 후 며칠밖에 함께 하지 못한 신부를 며느리로 그냥 둘 수 없었던지 친정으로 돌려보내게 되었다.


    군대에서 있었던 사고에 이어 그 사람의 새색시가 친정으로 돌아가면서 사건은 일단락 되는 듯 했으나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마을에서는 그 청년의 죽음을 단순한 사고라 생각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 청년의 죽음은 서로 사랑했지만 맺어지지 못한 상태에서 농약을 먹고 목숨을 끊은 처녀의 원혼이 의도적으로 저지른 일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 사건이 있은 뒤에도 죽은 처녀의 남동생 꿈에는 계속해서 누나가 나타나서 함께 가자고 한다는 소문이 자자하게 돌았고, 그런 악몽에 시달려서 그런지 그 친구는 사람구실을 제대로 못할 정도로 술을 마시고 주정을 부리곤 했었다.

 

  이런 흉사가 마을에 계속되자 급기야 두 집안은 서로 의논을 하여 죽은 두 사람을 영혼결혼 시키기로 합의를 보았다.

 

  그래서 좋은 날을 골라 살아있는 사람의 결혼식처럼 잔치 준비를 하여 전통 혼례를 올렸다. 맛있는 음식도 장만하고 닭도 잡아서 묶어 놓고 남자와 여자 모양의 허수아비를 만들어서 들러리가 신부 허수아비를 잡고 절도 올리고 하면서 간소하기는 하지만 정성스럽게 영혼결혼식을 치루어 주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영혼결혼식을 올린 뒤로는 남동생의 꿈에 누나가 나타나지 않았고 그 친구는 아주 편안하게 하루하루를 보낸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런대로 일이 잘 해결되어 편안한 상태가 되자 그 친구는 결혼을 하여 행복한 삶을 사는 듯 했다.

 

  하지만 이상한 것은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 나타난 현상이었다. 귀신도 이혼을 하는지 어쩐지는 모르지만 영혼결혼식이 있은 후로 약 5년 정도가 지난 어느 때부터 잘 지내던 남동생의 꿈에 다시 누나가 보이기 시작한다는 소문이 들리기 시작했고, 그 친구는 또 다시 술을 마시면서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갔다.

 

  그로부터 오래지 않아서 그 친구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버리고 말았는데, 손이 끊어지지 말라는 하늘의 뜻인지 아들 하나를 남겨놓은 상태였다. 처녀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남자와 남동생을 모두 데리고 가 버린 것이라고 마을 사람들은 믿었다. 그 아들이 지금은 건장한 청년으로 성장해있다는 소식을 風便으로만 언뜻 언뜻 듣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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