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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단상/고향이야기

생전 처음 밝히는 비밀-2

by 竹溪(죽계) 2005.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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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 처음 밝히는 비밀2


  백두대간이 남서쪽으로 구부러지는 지점인 소백산 아래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나는 학교에 가는 것이 별로 재미가 없었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고전소설 낭송자인 전기수였던 나는 글을 읽는 것은 어른보다 더 잘 할 수 있었고, 그동안 읽은 소설책을 통해서 우리나라의 웬만한 역사 정도는 꿰뚫고 있었기 때문에 학교에서 가르쳐 주는 것은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뿐이었으므로 내가 학교에 재미를 붙이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나는 학교에 가서도 수업은 듣지 않고 소설책과 만화책을 읽는 것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곤 했었다. 그렇게 초등학교를 졸업한 나는 중학교에 진학해서도 여전히 소설책을 읽는 데에 모든 시간과 정열을 바쳤다.

 

  중학교 2학년 때 세계 명작은 말할 것도 없고, 007시리즈 열두 권을 모두 읽을 정도로 독서량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쉬는 시간이고 수업시간이고를 막론하고 소설책을 보는 데에 모든 정신을 팔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없었다.

 

  그 당시 나의 별명이 책벌레 두목이었던 것을 보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나와 비슷한 열정으로 책을 읽는 친구가 한 사람 있었는데, 친구들은 그를 부두목이라 불렀고 나를 두목이라 불렀다.


  수십 년 전의 시골 중학교에 어떻게 해서 그렇게 책이 많았을까 하는 의아함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내가 다니던 곳은 좀 특이하게도 상당히 많은 도서를 갖추고 있었다.

 

  그 때 내가 읽었던 책에는 대부분 육군대장 김계원 기증도서라고 찍혀 있었는데,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 사람은 풍기가 고향으로 그 당시 육군대장으로 있으면서 고향의 학교에 많은 책을 기증했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10·26의 현장에 그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적잖이 놀라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상당히 많은 량의 책이 도서실에 있었으므로 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책을 읽고 싶어했는데, 수업시간이 나에게는 최대의 적이었다.

 

   수업시간에는 교과서 외에 다른 책을 보지 못하게 하므로 할 수 없이 나름대로의 방법을 강구하기로 했다. 그 당시 내가 고안한 방법은 책상에 지름 10cm 정도의 구멍을 칼로 판 다음 그 밑에 소설책을 놓고 움직여 가면서 보는 것이었다.

 

  선생님이 수상하게 여기고 내게로 다가오시면 들고 있던 교과서를 얼른 내려서 구멍을 막곤 했기 때문에 상당히 오랜 동안 들키지 않은 상태에서 보고 싶은 소설책을 마음껏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그 일은 일년을 가지 못하고 결국 선생님께 들켜서 책도 빼앗기고 교무실에 가서 하루 종일 손을 들고 벌을 서는 일이 자주 있게 되었다.


  그러다 2학년 2학기가 되어서 개학을 한 다음날 나는 그렇게 좋아하던 소설책 보다 나의 눈을 더 끌어당기는 그 무엇을 발견하게 되었다. 개학을 한 다음날 조례 시간에 담임선생님께서 한 여학생을 데리고 들어오시는 것이었다.

 

  목이 길고 얼굴이 하얀데다가 아주 가냘프게 생긴 그 여학생은 눈동자가 온통 까매서 블랙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지금의 강원도 태백시가 된 황지에서 전학을 왔다고 하였다.

 

  그 때부터 나는 소설책 읽는 것을 당장 때려치우고 그 여학생 쳐다보는 일에만 열중하기 시작했다.

 

  온 신경이 그 여학생에게 가 있었기 때문에 강의하는 선생님의 말씀도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쉬는 시간이 되어도 소설책을 읽기는커녕 그 여학생이 운동장에서 무엇을 하는지 보기 위해서 괜스레 운동장 주변을 빙빙 돌면서 살피곤 하는 일이 내 일과가 되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렇게 하여 어느덧 학기말이 다가오고 있었는데, 나의 마음을 더욱 사로잡게 되는 사건이 생기게 되었다.

 

  생물과목 선생님이 우리 반 담임이셨는데, 중간고사 점수와 비교해서 학기말 점수가 내려가면 1점에 종아리 한대씩 맞기로 일방적인 약속을 학기 초에 했었는데, 기말 고사가 너무 어렵게 나와서 우리 반의 60명 모두 평군 30점씩 점수가 떨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학기말 점수가 나오는 날 남학생은 종아리를 서른 대씩 맞고 여학생은 손바닥을 서른 대씩 맞게 되었다. 그런데, 상당히 굵은 몽둥이로 종아리와 손바닥을 서른 대씩 맞는 일은 보통 이상의 인내심을 요구하는 일이었다.

 

   거의 모든 학생들이 울고불고 하면서 종아리와 손바닥을 맞았는데, 한번도 인상을 찌푸리지 않고 서른 대의 매를 맞은 학생은 단 세 명뿐이었다. 한 사람은 소아마비를 앓았던 남학생이고 나머지 한 남학생은 나였으며, 또 한 사람은 내가 짝사랑하던 그 여학생이었다.

 

  남학생이 먼저 맞고 여학생이 나중에 맞았는데, 종아리가 빨갛게 된 것도 잊은 채 그 여학생이 어떤 모습으로 매를 맞을까 하고 지켜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내가 예상했던 대로 그 여학생은 손을 구부리지도 않고 인상도 찡그리지 않은 상태로 서른 대를 맞는 것이 아닌가?

 

   이 여학생이야말로 나와 천생연분이 틀림없다고 생각한 나는 그 학기의 방학을 보낼 일이 아찔하고 까마득하기만 했다. 그러나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 상태에서 야속한 방학은 시작되었고 그 여학생과 나는 남북으로 아쉬운 이별을 해야 했다.

 

  그 여학생의 집은 학교에서 북쪽으로 몇 킬로 떨어진 죽계계곡 입구에 있었고, 우리 집은 학교에서 남쪽으로 3킬로 정도 떨어진 피끈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남남북녀가 서로 헤어지듯이 아쉬운 작별을 해야 했던 것이다.


  방학이 시작될 무렵 나는 어떻게 하면 그 여학생에게 말을 걸거나 접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많이 했었다. 그래서 머리를 짜서 고안해 낸 것이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우리 학급에서 가장 못생기고 키도 작은 보잘 것 없는 녀석과 그 여학생이 사귄다는 소문을 퍼뜨리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 여학생과 나를 주인공으로 하는 연애 장편소설을 써서 3학년에 올라가는 첫날 그 여학생에게 바치는 것이었다.

 

   지루하고도 더디게 가는 방학이 시작되자 나는 내가 가지고 있던 모든 돈을 털어서 원고지 2000장을 샀고 그것을 옆에 쌓아놓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 동안 쌓인 독서량으로 볼 때 연애 장편소설 정도는 우습게 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으며, 이것만 완성해서 내년 봄에 그 여학생에게 바치게 되면 반드시 천생연분으로 맺어질 것으로 철석같이 믿었던 것이다.

 

   그런데, 소설을 쓰는 일은 결코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실력을 동원해서 작품을 써 내려 갔는데, 60매를 겨우 넘겼을 무렵 소설속의 남녀주인공은 만나서, 사랑하고, 헤어지고, 죽기까지를 다 해버린 것이었다.

 

   길 가다가 넘어진 여학생을 일으켜 세워주면서 알게 된 두 사람은 갈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들판을 돌아다니면서, 보리밭에 쓰러지기도 하고 뽀뽀도 하고 하면서 사랑을 키우다가 아버지의 전근으로 이별을 하게 되었는데, 고향을 떠난 그 여학생은 나를 그리워 하다가 끝내 숨을 거둔다는 줄거리의 소설이었다.

 

  결국 이 소설은 완성시키지도 못한 채 겨울 방학은 끝나게 되었고 그 여학생에게 소설을 바친다는 나의 첫 번째 꿈은 물거품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3학년이 된 나는 두 번째 방법을 적극 활용하기로 했다. 이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한다고 놀려대는 것이 나의 유일한 일과가 되고 말았다.

 

   그 여학생의 이름은 L * *였고, 못생기고 조그만 남학생의 이름은 Y * *였는데 이 두 사람의 별명을 나름대로 지어서 헛소문을 퍼뜨렸던 것이다.

 

   그렇게 나의 중학교 3학년은 허무하게 시작해서 허무하게 끝나 버리고 그 여학생에게는 한마디의 말도  건네지 못한 채 졸업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 때 서동설화를 알았더라면 나와 그 여학생이 서로 사귄다고 헛소문을 냈을 것인데, 그 때 내가 읽은 책 중에는 삼국유사 같은 것은 없었기 때문에 엉뚱한 사람과 사귄다고 소문을 냈던 것이다.

 

   이리하여 나의 슬픈 짝사랑은 한마디의 말도 건네지 못한 채 끝나고 말았는데, 정작 문제는 그 다음에 생기고 말았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와 대학을 다니다가 군복무를 마치고 다시 복학을 해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학교 우편함으로 편지가 하나 배달되었다.

 

   그 편지를 뜯어보니 내가 중학교 때 헛소문으로 놀렸던 두 사람이 결혼을 하니 꼭 와달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 결혼식에 꼭 참석하고 싶었지만 중간고사 기간과 겹쳤던 관계로 가지 못하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가지 않았던 것이 더 좋았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중학교 때 헛소문을 퍼뜨린 벌을 받느라고 그런지 그 후로 고향에 내려가기만 하면 반드시 그 남자를 만나는 이상한 일이 내게는 거듭되었다.

 

  일부러 찾아가는 것도 아닌데 길을 가다가 만나기도 하고, 서울로 오는 기차를 기다리다가 만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소백산에 등산을 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만나기도 하는 일이 계속되었기 때문에 나는 무척 곤혹스러웠다.

 

  요즘에도 고향에서 오손도손 잘 살고 있다는 두 사람의 소식을 가끔 듣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묘한 상태가 되곤 한다.

 

그 여학생을 본 것은 중학교 졸업식장이 마지막이었고 지금까지 한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내 가슴속에 남겨진 슬픈 이야기의 주인공은 가느다란 목과 까만 눈동자 그리고 하얀 얼굴 그대로 전설처럼 살아 내게 별이 되고, 꽃이 되곤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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