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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세계/재미있는 우리말

가랑비의 뜻

by 竹溪(죽계) 2023.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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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랑비의 뜻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비가 많이 내리지 않아서 그런지 비에 대한 표현이 매우 많다. 특히 봄에 비가 적게 내리면 농사를 망칠 수도 있으므로 이때 내리는 것에 대해서는 비가 오신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봄에 내리는 비를 나타내는 말 중에 가랑비라는 것이 있는데, 이 어원이 매우 재미있다.

 

가랑비가랑가 합쳐져서 된 말이다. 비는 수증기가 높은 곳에서 찬 공기를 만나 식어서 엉긴 다음 하늘에서 땅으로 내리는 물방울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비는 그리 어려운 말이 아니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가랑이라는 표현이다. 이 말의 뜻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가랑비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가 판가름 난다.

 

가랑에 대해서는 가루()로 보는 견해, 가랑이()로 보는 견해, 안개()로 보는 견해 등 매우 다양하다. 특히 세 번째 견해는 두보의 시를 우리말로 옮긴 󰡔杜詩諺解)에서 老年花似霧中看을 해석에 있어, ‘늘근 나햇 고잔 ᄀᆞᄅᆞᄫᅵ(ᄀᆞ랏)속에 보난 닷 하다라는 기록을 근거로 가랑을 안개가 확실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안개처럼 내리는 비에 대해서는 안개비, 는개(능개) 등의 표현이 있으므로 이 자료만으로 가랑을 안개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비의 성격을 규정하는 구실을 하는 가랑의 뜻이 무엇일까를 정확하게 짚어내기 위해서는 한자어인 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자전에서는 이 글자의 훈과 음을 빗소리 삽’, 혹은 가랑비 삽이라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조선시대부터 내려오던 자전 등에서도 이미 쓰이고 있었기 때문에 상당히 오래된 자료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서 명확하게 알 수 있는 것은, 가랑비의 가랑이 소리, 혹은 소리를 내는 것과 관련이 있는 표현이라는 사실이다. , ‘가랑은 의성어가 되는 것이다.

 

의성어로서의 가랑가랑거리다語根인데, ‘가랑거리다가르랑거리다’, ‘강그랑거리다라고도 하는데, 이것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첫째, 쇠붙이나 물건 같은 것이 끌리거나 구르는 소리가 나다, 둘째, 가래가 목구멍에 걸려서 숨 쉴 때 가치작거리는 소리가 그것이다. 두 가지 뜻 모두 어떤 소리가 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가랑이 의성어로 쓰일 가능성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가랑비소리를 내며 내리는 비가 된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이름을 붙인 것이며, 어떤 상황에서 내리는 비를 나타낸 것일까? 라고 하는 의문이 든다.

 

가랑비는 첫째, 봄에 아주 적은 양의 비가 오는 것, 둘째, 비가 내릴 때 소리가 난다는 것 등의 뜻을 가진다고 볼 수 있는데, 다시 (비소리 삽)으로 돌아가 보자. 이 글자는 비를 뜻하는 와 계집종, 혹은 첩을 뜻하는 이 결합하여 뜻과 소리를 각각 담당하도록 만들어져서 새로운 뜻을 나타내도록 만들어진 形聲字이다. 會意字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논리적으로는 잘 맞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 글자의 뜻을 새김에 있어서 우리 선조들은 가랑비라고 했을지를 살펴보면 가랑비의 어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글자의 윗부분인 는 비를 나타내므로 별다른 설명 없이도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이 글자의 핵심은 아랫부분에 있는 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아주 재미있는 뜻을 가지고 있다. 본처 외에 남자와 결혼한 여자를 첩이라고 하는데, 정식 절차를 거쳐 구혼하고 예를 갖추어 아내로 맞이한 사람은 이고, 야합하여 남자와 함께 사는 여자는 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 글자는 여자 노예라는 뜻을 원래 뜻으로 하기 때문에 남성에 대해 여성이 자신을 낮추어 일컫는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 남성 중심의 신분사회에서는 여러 명의 을 거느리는 것이 가능했는데, 이 여성들은 즐거우면서도 경쾌하게 떠들면서 자신이 모시는 남성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그래서 은 재잘거리다, 즐겁게 떠들다 등의 뜻도 함께 가진다. 그렇다면 이 글자는 무엇 때문에 와 결합해서 가랑비를 나타내는 글자로 되었까?

 

경쾌하면서도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소리를 내면서 내리는 비를 가리키기 위해 이 결합하여 토닥토닥 소리를 내며 내리는 비, 즐거운 소리를 내며 내리는 비 등의 뜻을 가지는 글자를 만들어 냈다고 보면 되는데, 시기적으로는 초봄, 비의 성질로는 가늘면서 약하게 짧은 시간 내리는 비, 비가 내리는 현상으로는 경쾌한 소리를 내며 내리는 비 등을 가리키는 글자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小雨라고도 하는데, 짧게 내리는 비를 의미한다. 2월 말에서 3월 초가 되면 解凍이 되면서 겨울의 눈은 녹고 날씨는 건조해지면서 땅에 떨어져 있는 나뭇잎은 마를 대로 말라서 아주 약한 바람만 불어도 바스락바스락 소리를 낸다.

 

주로 활엽수가 많은 우리나라의 산은 마른 낙엽의 소리가 아주 경쾌하게 들리는 것이 특징이다. 산불도 많이 일어나는 이 시기에 오는 봄비는 양은 적고 내리는 시간도 길지 않지만, 그것이 말라서 둥글게 말린 나뭇잎에 떨어지면서 맑으면서도 경쾌한 소리를 낸다. 이러한 나뭇잎을 가랑잎이라고도 하는데, 여기에 빗방울이 떨어지면서 소리를 내기 때문에 이렇게 오는 비를 우리 선조들은 가랑비라고 했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하면, 가랑비는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건조한 날씨로 말미암아 바짝 마른 나뭇잎 위에 약하면서도 짧게 내리면서 맑으면서도 경쾌한 소리를 내는 비라는 뜻을 가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가볍게 내리는 봄비를 맞으면서 산자락에 난 오솔길을 걸으면서 가랑잎에 비 듣는 소리를 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한 가지 덧붙일 것은, 땅에서 풀이 올라오고, 나무에서 잎이 나온 이후에 오는 비는 이미 가랑비가 아니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비 내리는 이미 소리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풀이 나고 잎이 핀 뒤에 내리는 비의 소리는 이미 둔탁하여 우리에게 경쾌함을 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랑비는 날씨가 건조하여 대지가 바짝 마른 상태에서 짧고 약하게 내리는 초봄의 비라고 해야 하는 것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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