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의세계/재미있는 우리말

아닌 밤중에 홍두깨에 대한 이해

by 竹溪(죽계) 2023. 5. 27.
728x90
SMALL

아닌 밤중에 홍두깨란 속담에 대한 이해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는 표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일을 급작스럽게 당하거나 상대방이 상황에 전혀 맞지 않는 말을 했을 때 하는 말이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내밀 듯 한다’, 혹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유분수지등의 표현으로 많이 사용한다. 이 문장에는 아닌’, ‘밤중’, ‘홍두깨라는 세 개의 구성요소가 있는데, ‘밤중은 밤이 깊을 때라는 뜻밖에 없으니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 그러나 나머지 두 개의 구성요소에 대해서는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닌의 기본형은 아니다인데, 어떤 사실을 부정하는 뜻을 가지고 있는 형용사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긍정이 아닌 부정문에 주로 사용된다. 그러나 여기서는, ‘뜻하지 아니한 엉뚱한 때’, ‘뜻밖의()’ 등으로 쓰였다. 그러므로 아닌 밤중생각하거나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밤중이 된다. 밤중이 아닌 것으로 이해하여 대낮으로 이해하면 안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남녀 사이의 성에 대한 비유로 보아 홍두깨를 남성의 성기를 나타내는 은어로 해석하는 견해에서는 청상과부와 남몰래 정분이 나서 밤에만 만나던 남자가 대낮에 집으로 찾아온 것을 보고 놀란 청상과부가 하는 말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억지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 표현이 그런 뜻으로 쓰였다면 너무나 직설적이어서 비유적이지 못해서 속담으로 성립될 수 있는 조건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유는 속담이나 격언 등에서 쓰는 핵심적인 수사법인데, 이렇게 직접적인 표현을 쓰면 제대로 유통되지 못했을 것이 확실하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쓰인 아닌 밤중생각지도 못했던 한밤중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 본다.

 

홍두깨는 원래 빨래한 옷감을 그것에 말아서 다듬이질하는 데에 쓰는 도구로 구김살을 폄과 동시에 옷감 특유의 광택과 촉감을 살리면서 풀기가 골고루 배어들게 하는 생활 도구이다. 박달나무를 깎아서 만든 길쭉하고 둥근 몽둥이가 바로 홍두깨인데, 길이는 약70cm~1m이며, 직경은 대략 7cm 정도 되는 원형의 막대기다. 그러다가 삼국 시대를 전후하여 남쪽으로부터 밀가루로 만든 국수가 들어와 일반화되면서 둥근 반죽을 펴서 얇게 만드는 도구도 홍두깨라고 부르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옷감을 홍두깨에 감아서 홍두깨틀에 올려놓은 후 다듬이방망이로 두들기는데, 이때 홍두깨가 빙빙 돌면서 구김살이 골고루 펴진다. 이렇게 하면 다듬이돌(방칫돌)에서 두들기는 것보다 구김살이 훨씬 더 잘 펴지면서 곱게 다듬어진다. 그리고 옷감에 매긴 풀도 골고루 펴져서 잘 스며들게 됨으로써 옷감에 맵시를 더해준다. 다듬이돌에서 애벌 다듬질한 옷감을 홍두깨에 감은 뒤 다듬이돌을 홍두깨틀 위에 올려놓으면 비스듬하게 되면서 굳이 잡고 돌리지 않아도 방망이로 두드리면 홍두깨가 회전하면서 옷감이 잘 펴지게 되는 것이다. 홍두깨를 이용하여 다듬는 옷감은 명주나 비단이 중심을 이룬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그런지 일반 가정집에는 옷감을 다듬질하는 홍두깨가 아닌 국수 미는 홍두깨만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용도로 쓰였던 홍두깨는 이두(吏讀) 표기로 홍도개(弘道箇)로 표기했는데, 거의 모든 집에 이것이 있었다. 홍두깨는 집안에서도 주로 방안에 세워놓았는데, 위급한 때에는 무기로 사용하기도 했다. 밤중에 도둑이나 강도가 들 때도 요긴하게 쓸 수 있었으며, 폭력을 행사할 때도 사용하곤 했다. 홍두깨가 주로 안방이나 사랑방 윗목 귀퉁이에 세워져 있는 것도 이처럼 다양한 필요성 때문이다. 세워져 있지 않은 것은 홍두깨가 아니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전혀 생각지 못했던 어두운 밤중에 홍두깨를 내밀었다는 것이 이 문장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의미라고 할 수 있는데, 왜 하필이면 밤에 내민다고 했을까? 이것은 홍두깨가 쓰이는 시기를 보면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능하다. 홍두깨는 삶에서 매우 요긴하게 쓰는 생활 도구지만 그것의 주된 사용 시간은 주로 낮이다. 옷의 손질도 밝은 낮에 하지만 국수를 미는 것도 어두워지기 전에 쓰기 때문이다. 이 말은 밤중에 홍두깨를 쓰라고 내미는 경우가 전혀 없거나 거의 없다는 뜻이 되는데, 그렇다면 밤중에 홍두깨를 내민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이것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될 여지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그야말로 밤중에 홍두깨를 써서 옷감을 다듬거나 반죽을 밀어서 넓게 펴라고 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성에 대한 은유적인 표현으로 남성의 성기를 비유하여 나타낸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밤중은 어두운 시간을 지칭하기 때문에 앞의 것 보다는 뒤의 것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홍두깨를 내민다는 행위를 강조해 속담으로 만들었다는 것은 쉽게 납득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볼 때 밤중에 홍두깨라는 말은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느끼거나 알 수 있는 무엇인가와 연결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결국 두 번째 것은 성적인 은유로 보아야 하는데, 이것은 홍두깨의 성질과 연관을 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홍두깨는 첫째, 언제나 서 있으며, 둘째, 어떤 경우에도 넘어지거나 작아지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두 경우를 만족시킬 수 있는 것으로는 남성의 성기에 대한 성적인 바람을 투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게 되는데, 속담으로 구성하기에 아주 좋은 소재가 아닐 수 없다. 앞에서 잠깐 언급한 조선 시대의 청상과부와 몰래 만나는 남성의 성적 관계에서 마음으로 바라는 욕망을 일반화하여 하나의 속담으로 탄생시킨 것이 된다.

 

특히 홍두깨는 내민다기보다는 눕혀서 옷감을 옆으로 말아서 감는 것이기 때문에 굳이 아닌 밤중에 홍두깨 내밀 듯이라고 표현할 이유가 없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내민다는 말은 사람의 신체나 물체의 일부분이 밖이나 앞으로 나가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남성의 성기를 표현하기에 매우 적절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이와 비슷한 말 중에 거북 머리(龜頭)라는 표현도 있으며, 요즘은 야구 방망이 같다는 표현을 많이 쓴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참으로 교묘하면서도 절묘한 표현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