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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세계/재미있는 우리말

속절없다 어원

by 竹溪(죽계) 2023. 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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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절없다의 어원

 

우리는 일상적인 언어생활에서 속절없다’, ‘속절없이’, ‘속절없는등의 표현을 많이 쓴다. 그러나 이 표현의 어원이나 유래 등에 대한 것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가 없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만들었다고 자랑하는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단념할 수밖에 달리 어찌할 도리가 없다.’라고만 되어 있고, 유래나 어원 등에 대해서는 一言半句의 설명도 없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린 사전(辭典)이란 어휘의 뜻을 보면, 일정한 범위 안에서 사람들이 쓰는 낱말을 모아서 일정한 순서로 배열하여 싣고 그 각각의 발음, 의미, 어원, 용법 따위를 해설한 책이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그렇게 설명하고 있는 표준국어대사전에는 현재의 언어생활에서 쓰이고 있는 의미만을 실어놓고 있을 뿐 어원에 대한 것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가 없다. 제대로 된 사전이라면 이 말은 어디에서 유래했으며, 역사적으로 그 뜻이 어떻게 변화해 왔고, 표기가 어떻게 변천됐는지 등을 밝혀야 하지만 그런 것은 거의 없는 것이다.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인터넷에 올라오는 자료에는, , 대보름, 한식, 단오, 추석, 중양, 동지처럼 제삿날 이외에 철이 바뀔 때마다 사당이나 조상의 묘에 차례를 지내는 날을 지칭하는 속절(俗節)에서 어원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 정도가 있을 뿐이다. 너무나 가난하여 조상에게 제사 지내는 속절을 지키지 못해서 멍하니 있는 것을 속절없다라고 한다는 설명이다. 속절을 제대로 지내지 못하는 것과 없다가 왜 연결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어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없다라는 말은, ‘어떤 사실이나 현상, 물체, 동물 따위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뜻을 가지는데, 가난한 사람은 있지만 속절이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이 속절을 제대로 지내지 못하는 것이지 속절 자체가 없는 것은 아니라서 이렇게 연결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럼, 먼저 이 말이 언제부터 쓰였는지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속절없이라는 형태의 표현이 나타나는 문헌으로 가장 빠른 것은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1449)이고, 다음으로는 월인석보(月印釋譜-1459)이다. 두 문헌 모두 쇽절업시로 사용되고 있는데, “末法은 쇽절업시 似量이랴 업스니라<월인석보 9:7>”가 그것이다. 그 뒤에도 번역노걸대와 시조 등에도 이 표현이 등장한다. 그러므로 속절없다라는 표현은 15세기 이전부터 사용되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오랜 역사를 가진 이 표현에 대한 어원을 제대로 밝혀내지 못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고문헌에 나타나는 것이나 현재 이 표현이 쓰이는 문장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어떤 상황이나 일이 벌어졌을 때 너무나 황당하거나 상식적이지 않아서 어찌할 방도나 도리가 없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속절없다라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그냥 멍하니 있거나 포기, 혹은 단념을 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나타내는 표현이 되는 셈이다. , 눈앞에 펼쳐지는 상황이 너무나 어이없어서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는 것이 되니 이에 걸맞은 어원을 찾아보는 것이 올바른 접근법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람이 상식적이지 않거나 고삐가 풀린 말처럼 마구 날뛰어서 어찌할 방도가 없이 황당한 상태이거나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에 대해서 아무런 수단이나 방법도 쓰지 못하고 束手無策으로 당하거나 그냥 있어야 하는 상황에 관해 쓰는 말이 속절없다라고 할 수 있는데, 앞의 속절은 한자어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우리 말의 동사나 형용사에서 기본 동사나 형용사에 한자로 된 명사가 붙어서 새로운 형태의 동사나 형용사로 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기한 없이’, ‘생각 없이등을 꼽을 수 있다. 속절이 한자어라면 그것은 束節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이야말로 속절없다라는 뜻으로 만들기 위해 없다와 결합하기 위한 최고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束節鈐束節制, 혹은 規束節度에서 을 따와서 만든 것이다. 검속은 매우 엄중하게 단속하여 속박한다는 뜻인데, 규율로 속박한다는 뜻인 규속과 같은 말이다. ()은 비녀 잠, 자물쇠, 도장, 억누름 등의 뜻을 가지는데, 일정한 틀 안에 가둔 다음, 그 안에서만 움직이도록 하는 것을 지칭한다. , 정해진 무엇인가를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 바로 이다. 묵다, 동여매다, 잡아매다, 약속하다 등의 뜻을 가지는 과 결합하여, ‘약속으로 묶어둠으로써 엉뚱한 곳으로 탈선하지 못하도록 한다라는 뜻을 가진다. 기차가 주어진 궤도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묶어두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된다. 만약 기차가 레일을 벗어나 탈선하면 대형 사고가 생기는 것이니 이것이야말로 큰일이 아닐 수 없으니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단속하는 것이 검속이다.

 

節制, 혹은 節度에서 마디’, ‘관절’, ‘예절등의 뜻을 가진 글자인데, 대나무와 관련이 있다. 이것은 곧으면서 마디가 있는 나무인 과 식기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사람의 형상을 나타내는 (곧 즉)이 결합한 글자인데, 원래 뜻은 대나무의 마디처럼 끊어서 만든 節候의 음식이라는 의미였다. 그 후에 뜻이 확장되어 사물 현상의 분절, 분단, 규율, 법도 등으로 되었다. 여기에서는 사람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지켜야 할 규율, 법도 등의 뜻으로 쓰였다. 대나무의 마디는 정해진 어떤 것으로 묶어 놓는다는 것이기 때문에 묶음, 맺음 등의 뜻을 가진 과 같은 의미가 된다.

 

(절제할 제)(법도 도)는 금하다, 억제하다, 규정, , 기준, 법 등의 뜻을 가지는데, 는 칼로 나무 같은 것에서 가지 등을 잘라내어 일정한 형태를 지닌 목재로 만드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함부로 하지 못하는, 혹은 마음대로 하지 않는 등의 의미를 지닌다. 역시 법도, , 법제 등을 지칭하는 글자로 사람이 두 팔을 벌려서 길이를 재는 것을 의미한다. 옛날에는 사람의 신체를 기준으로 삼아 길이를 재는 표준으로 삼았기 때문에 이런 글자가 생겨났다. 따라서 절제, 혹은 절도는 정해진 법도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다스리고, 통제함으로써 한도를 정해 제한한다는 것을 뜻을 가지게 되었다.

 

매우 엄격하게 단속한다는 뜻을 가진 鈐束과 정도를 넘지 않도록 알맞게 조절하여 제한한다는 뜻을 가진 節制에서 을 취해서 만들면 속박과 절제로 될 것이고, 그것이 없다라는 표현과 결합하면 어찌할 도리가 없다’, ‘어찌할 방법이 없다’, ‘어쩔 수 없다등으로 된다. 15세기 이전부터 이런 말이 있었던 것으로 볼 때 우리 선조들은 황당무계한 사람이나 존재, 상황에 대해, 또한 거칠게 표현할 수도 있는 것에 대해 유연하면서도 슬기로움을 더한 표현을 만들어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한편으로는 대응책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마구 날뛰는 사람에 대한 상당한 욕설이 될 수도 있으니 참으로 묘한 말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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