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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단상/고향이야기

생애 최초로 가출한 사연

by 竹溪(죽계) 2009.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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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최초로 가출한 사연


경상북도 예천의 하리면 송월동(월감)에서 십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나는 어머니께서 노산이었던 관계로 산파의 도움을 받아서, 그것도 기계에 의해서 겨우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고 한다.


산모가 46살인데다가 영양상태도 좋지 않아서 그런지 아이가 머리만 내민 상태에서 나오지를 못하자 쌀 한 가마니의 비용을 들여서 기계를 빌려와서 빼내게 되었는데, 24번 만에야 겨우 세상으로 나올 수 있었다고 한다. 그 바람에 정수리 부분은 머리껍질이 다 벗어져서 피멍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너무나 힘든 과정을 거쳐 나오느라 얼마나 힘이 들었던지 밖으로 나온 뒤에도 한동안 힘찬 울음을 울지 못하였는데, 산파 할아버지가 거꾸로 들고 엉덩이를 몇 차례 때린 뒤에야 겨우 응애 하고 한 번 울고는 다시 축 늘어졌다고 한다.


십남매의 막내인데다가 간구(艱苟)한 살림살이에 산모의 연세가 워낙 높았던 까닭에 나는 어머니의 젖을 거의 먹지 못하고 자랐다고 한다. 그렇게 되자 아이는 매일 울기만 했고 그런 울보를 누나들이 번갈아 가면서 안고 업고 다니면서 키웠다는 이야기를 전설처럼 전해듣곤 했었다. 지금은 고인이 된 둘째 누나가 주로 나를 업어서 키웠다고 하였다.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는 오래 살 것 같지도 않던 나는 열 달이 채 되지 못했을 때부터 이미 걷기 시작했는데, 어른들의 말씀에 의하면 첫돌이 되었을 때는 팽이치기를 할 정도로 뛰어다녔다고 한다. 정말로 뛰어다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잘 걸어다녔다는 것을 그렇게 말한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말을 배울 때가 되어서부터는 언덕에서 뛰어내리는 것을 곧잘 하였는데, 시골집의 문지방이나 봉당(마당과 안방 사이에 있는 곳으로 마루를 깔지 않은 토방 같은 곳)의 높은 곳 등에 올라서서 아래로 뛰어내렸다고 한다.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뛰어 내릴 때마다 언제나 똑같은 노래를 불렀는데, “앤~지~야 까~지야 언~덕~가 덕~가야”라고 했다는 것이다. 어른들은 이 소리가 도대체 무슨 소린지 몰랐다고 하는데, 그게 무슨 뜻을 가지고 있는지는 나 역시도 지금까지도 모르는 상태이다.


나이가 조금씩 들어가면서는 같은 또래의 아이들과도 잘 어울려 놀면서 동네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개구쟁이가 되어 있었다. 산비탈에 자리 잡은 우리 동네는 마을 한가운데로 난 길을 중심으로 윗동네와 아랫동네로 나누어져 있었다. 나는 아랫동네의 아이들과 힘을 합쳐 윗동네의 골목대장과 곧잘 겨루곤 했는데, 수적으로도 우리가 열세였고, 윗동네의 골목대장이 힘도 더 세서 싸우기만 하면 우리 쪽이 큰 피해를 입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랫마을의 골목대장이었던 나는 그들을 이길 방법에 대해 곰곰이 궁리를 했는데, 그 결과  윗동네 아이들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하여서 그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기로 마음먹었다. 어릴 때부터 모험심과 호기심이 많았던 나는 여섯 살이 되던 해에 처음으로 마을 밖으로 나가는 거사를 단행해 보기로 했다.


마을 어른들이 말하기를 마을을 벗어나서 상당히 먼 거리를 가면 읍실이라고 하는 하리면 소재지가 있는데, 그곳은 사람도 많고 상당히 번화한 곳이면서, 큰 강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를 위시하여 동네 아이들로 하여금 엄두를 내지 못하고 망설이게 하는 것이 있었으니 그곳까지 가는 도중에 개호지를 만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는 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개호지는 호랑이의 새끼인데 개를 무척 좋아하기 때문에 어른들이 오일장에 가서 개고기를 사가지고 어두워진 후 산모롱이를 돌아오다 보면 언덕 위에서 갑자기 모래를 뿌린다는 것이었는데, 그럴 때 얼른 개고기를 던져주지 않으면 사람을 해친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에 동네 밖으로 나간다는 것은 무척이나 무섭고 떨리는 일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까닭에 어른들은 우리 같은 꼬마들을 동네 밖으로는 절대로 나가지 못하게 하였다. 따라서 우리는 늘 동네 안에서만 놀았지 바깥세상이 어떤지를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날이 가면 갈수록 바깥 세상에 대한 호기심은 깊어만 갔고 윗동네의 골목대장을 이길 수 있는 방법으로 읍실에 갔다오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부터는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드디어 나는 평소에도 잘 따르는 친구 셋과 함께 마을을 나서서 사람들이 많다는 읍내를 가보기로 결심을 하고 하루 날을 잡아서 일찌감치 집을 나와서 남쪽으로 가보려는 계획을 세웠다. 물론 친구들은 가지 말자고 하면서 망설였지만 개호지가 나온다고 하는 말은 어른들이 지어낸 이야기라고 하면서 설득한 끝에 그들의 결심을 얻어내고야 말았다. 우리들은 어른들이 모두 일하러 밭에 나간 사이에 읍내를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러나 흙먼지 날리는 길을 걷고 또 걸어도 사람들이 많다는 읍실은 나타나지 않았고 인가도 없는 산 속에서는 곧 무엇인가 나와서 우리들을 덮칠 것만 같은 분위기에 모두들 겁이 났지만 대장인 내가 친구들을 독려하면서 계속해서 아래로 내려가게 되었다.


사실 그 지역은 봉화·영주를 거쳐 내려온 백두대간이 우리 동네 뒤로 돌아서 문경 쪽으로 내려가는 중간에 있었기 때문에 마을 뒷산에는 빨치산이 활동하던 동굴이 여러 곳 있었고, 그곳에는 늑대나 호랑이 등이 우글거린다는 말을 심심찮게 들었기 때문에 무서울 수밖에 없기는 했다.


또 우리 마을의 뒷산에는 성안이라고 하는 오래된 성터가 하나 있었는데, 고려시대에 난리를 피해왔던 임금이 석 달 동안이나 살았던 곳으로, 그곳에는 산적이 있다는 말도 들리곤 했었다. 역사를 배우면서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홍두적의 침입이 있었을 때 남쪽인 안동으로 피난 가던 고려의 공민왕이 그곳에 상당히 오래 동안 머물면서 성을 쌓았던 곳이라 하여 御臨城趾라고 불리었던 곳이었다.


늑대와 살쾡이 등이 낮에도 마을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 어린아이들을 보면 물어간다는 말을 종종 들었을 정도로 우리 마을은 깊은 산 속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무섭기는 무서운 곳이었던 것은 틀림없었다.


그러나 어찌 하겠는가? 내친걸음이니 가는데 까지 가볼 수밖에 없다고 내가 우겨서 우리들은 걷고 또 걸어서 한 낮이 되었을 때야 겨우 읍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랬더니 그곳에는 사람들도 많고 가게도 여기 저기 눈에 띄는 것이 마치 별천지 같았다.


정신없이 여기저기를 구경하면서 차츰 차츰 남쪽으로 내려가던 우리들은 마침내 시가지를 벗어난 곳에 상당히 큰 규모의 시멘트 다리를 하나 발견하게 되었는데, 다리 아래로는 낙동강이 굽이쳐 흐르고 있는 것이었다.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팠던 우리 네 사람은 다리 난간에 걸터앉아서 쉬기로 했다.


다리 난간에 걸터앉아서 바라보는 물은 눈이 시릴 정도의 파란색이었고 뱅뱅 돌면서 아래로 내려가는 모습이 소름끼칠 정도로 아름다웠다. 우리들은 각각 생각하는 바를 이야기하면서 앉아있었는데, 첫 번째로 문제가 되었던 것은 다리 아래로 내려가는 저 물이 자꾸 내려가서 과연 어디로 가느냐 하는 것이었다.


땅 속으로 들어간다는 친구와 물고기가 다 먹어버린다는 친구 등의 의견이 분분하게 되었는데, 다리 밑을 지나 넓게 퍼지면서 아득히 흘러가는 물을 한참이나 말없이 바라보던 내가 드디어 입을 열어 아이들에게 한 마디를 했다.


“야 너희들이 한 말은 다 틀렸어. 저 물은 아래로 내려가서 하느님의 입 속으로 들어갔다가 여름에 더워지면 하느님이 입을 벌려서 다시 내놓는데 그게 바로 '비'라는 거야. 그렇기 때문에 저 물은 하느님의 입 속으로 가는 것이야.”


있다고만 들었지 본적이 없는 하느님과 하늘에서 내리는 것으로 늘 생활 속에서 볼 수 있는 '비'라는 확실한 물증 앞에 아이들은 더 이상 할 말을 잃었고 모두가 그렇다고 수긍할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두 번째로 문제가 된 것은 물의 색깔에 대한 것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던 우리들 중에 누군가가 다리 밑에 있는 물은 왜 저렇게 파란지에 대해 말해보자고 하였다. 여기에 대해서도 각자의 의견이 분분하였다. 위쪽에서 어떤 사람이 파란 물감을 계속 뿌려서 그런 것이라 하기도 했고, 하늘빛이 물들어서 그렇다고 하는 친구도 있었다.


여기서도 친구들을 압도하는 나의 상상력은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지금까지 너희들이 말한 것은 전부 엉터리다. 다리 밑의 물이 파란 것은 아주 오랜 옛날에 시집을 못간 처녀가 파란 옷을 입고 이곳에 와서 빠져 죽었는데, 그 때 죽은 처녀의 옷이 파란색이었기 때문에 귀신으로 되면서 물을 그렇게 만들었다고 말한 것이었다. 지금은 귀신 이야기가 설득력을 가지지 못하지만 그 때만 해도 귀신이면 거의 모든 것이 통했던 시절이라 아이들은 그것에 대해서 더 이상 대꾸할 기력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이처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잘거리며 놀고 있는 그 시각, 동네에서는 아이들이 없어졌다고 난리가 났지만 우리들은 나름대로 심각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해가 지는 줄도 모를 정도로 서로의 이야기에 몰두해 있었다.


깊은 산 속 동네인지라 해가 지면 곧 바로 어두워지고, 전기가 없었던 시절이라 어두워지면 사방이 순식간에 암흑천지가 되었기 때문에 그제서야 우리들은 화들짝 놀라며 마을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순간 왁자지껄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남자 어른들 서너 명이 경찰관 한 사람과 함께 멀리서 부리나케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컴컴해져 가는 어둠 속에서 우리들을 발견한 어른들은 놀라움과 반가움에 어쩔 줄을 몰라하는 것이었다.


나의 선친도 그 대열에 끼어 있었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영문을 모르는 우리들은 놀라기도 하고 안심도 되어서 모두 울음을 터뜨렸는데, 일단은 어른들이 괜찮다고 달래서 안전하게 마을로 돌아오는 데는 성공을 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그런 엄청난 일을 누가 주동을 해서 아이들을 위험한 곳으로 데려갔는지에 대한 논의가 있었고, 선동한 아이에 대한 징벌을 내리는 절차로 진행되었기 때문이었다.


말할 것도 없이 모두 나를 지목하게 되었고, 부모님은 친구들의 부모를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손이 발이 되도록 빌면서 사과를 해야 했다. 그로부터 나는 며칠 동안 밖에도 잘 나가지 못하고 벌을 서야 했지만 왜 내가 벌을 서야 하는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가출 사건이 있은 후로 이 소문은 곧 동네 전체에 퍼졌고, 윗동네의 힘센 골목대장은 날개 꺾인 참새처럼 기가 죽어서 그 때부터 나에게 함부로 시비를 걸어오지 못했음은 말할 것도 없었으며, 그때부터 나는 아무것도 꺼릴 것이 없는 상태에서 윗동네에서부터 아랫동네까지 전체를 손아귀에 넣게 되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어처구니없는 행동으로 어른들께 걱정거리를 만들어주었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친구들의 기를 죽이기도 해서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무엇이든지 두려워하지 않고 해보려는 모험심과 기발한 상상력이 만들어 낸 유쾌한 에피소드였고, 그것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원동력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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