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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단상/고향이야기

대보름밤의 망워리

by 竹溪(죽계) 2005. 1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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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맞이 보다 재미있는 보름날의 망워리(쥐불놀이)


해가 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난 후 우리들은 각자 쥐불놀이 준비에 들어갔다. 쥐불놀이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져서 행해지는데, 깡통에 구멍을 숭숭 뚫어서 그 안에 나무나 솔방울을 넣고 불을 붙인 다음 긴 철사 줄을 매달아 원을 그리면서 돌리는 것과 얇고 부드러운 천을 가늘게 말아 그 속에 숯가루를 넣어서 적당한 길이로 여러 군데를 묶은 다음 나무에 매 달아놓고 불을 붙이는 방식이 그것인데, 첫 번째 것이 일반적인 쥐불놀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들은 이러한 쥐불놀이를 하기 위한 준비를 오래 전부터 가슴 조이며 해오고 있었다.

 

우선 크고 튼튼한 깡통을 구해야 했는데, 좋은 깡통을 구하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자가 흔하지 못했던 시절인지라 우리들은 일년 내내 어디를 가더라도 깡통만 보면 주워오는 버릇이 생길 정도로 쥐불놀이에 거는 기대는 지대하였다.

 

또한 어렵게 구한 깡통은 다른 사람이 훔쳐가지 못하도록 잘 숨겨두어야 했는데, 내 경우는 불을 때지 않고 광으로 쓰는 방의 굴뚝 속에 숨겨두곤 했었다. 그곳은 어머니 몰래 가끔 꺼내 보는 만화책에서부터 시작하여 일년 내내 행사 때마다 쓰는 모든 도구들을 숨겨놓았던 나만의 비밀장소였다.


쥐불놀이를 하기 위해선 깡통에 구멍을 뚫는 일이 가장 중요한 것이었는데, 깡통의 위는 뚜껑을 제거하여 땔감을 넣을 수 있도록 하고, 옆면과 아래쪽은 못이나 낫 등으로 적당한 크기의 구멍을 뚫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 구멍으로 바람이 통해서 불붙은 깡통을 돌릴 때 불이 활활 타서 보기에 좋기 때문이다. 따라서 깡통의 구멍을 가장 적당한 크기로 그리고 바람이 잘 통하도록 뚫느냐가 관건이 되었다.

 

구멍을 너무 작게 뚫으면 안에 넣은 땔감이 잘 타지 않아서 연기만 나게 되고, 너무 크게 뚫으면 지나치게 잘 타서 오래 동안 돌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적당한 크기의 구멍을 뚫으면서도 사방의 균형을 잘 잡아서 뚫어야 하기 때문에 힘이 약한 우리들이 낫으로 구멍을 내다보면 깡통을 찢기 쉬운 관계로 굵은 대못을 구해서 구멍을 뚫었는데, 대못도 귀하던 시절이라 그렇게 큰못을 구한다는 것도 쉽지 않은데다가 깡통이 찌그러지지 않게 구멍을 뚫는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어렵사리 깡통에 구멍을 뚫은 다음에는 깡통의 윗 부분 양쪽에 작은 구멍을 뚫어서 철사줄을 달아 길게 늘인 다음 손잡이를 만드는 일을 해야한다. 깡통에는 나무를 넣고 불을 붙이기 때문에 다른 끈은 쓸 수가 없고 오직 철사줄만 가능했던 것이다.

 

 이 때 부모님들과 아이들과의 실랑이가 벌어지게 마련인데, 철사 역시 귀했던 시절이라 부모님들은 멀쩡한 철사는 다락 같이 높은 곳에 숨겨놓기가 일쑤였는데, 그것을 찾아서 좋은 손잡이를 하려는 우리들과 못쓰는 철사줄로 손잡이를 하라는 부모님의 의견이 부딪치게 마련이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언제든지 우리들의 판정승으로 막을 내리게 되는데, 마을 전체 구석구석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인 우리들에게 있어서 집안에 숨겨놓은 물건하나를 찾는 정도야 누워서 떡 먹기 보다 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여 깡통이 준비되면 다음으로는 깡통에 넣을 땔감을 마련해야 한다. 불이 활활 타면서도 한번 넣으면 오래 가는 땔감을 구해야 하는데, 여기에 가장 적합한 나무는 기름이 많은 소나무이고, 그 다음으로는 솔방울이다.

 

  솔방울은 산에 가면 얼마든지 주울 수 있어서 구하기가 쉬운데다가 하나씩 집어서 넣기가 매우 좋기 때문에 누구나 준비하는 땔감이었다. 그러나 솔방울은 타는 시간이 길지 않아 그것만으로는 할 수 없고 보통은 소나무와 솔방울을 반반씩 섞어서 사용하였다. 우리들은 약 한달 전부터 모든 노동력을 발휘하여 산으로 들로 땔감을 준비하러 다니게 된다.

 

  따라서 평소에는 구박하기만 하던 나이 어린 동생들도 그릇을 들고 따라다니게 할 정도로 일손이 절실해지는 것이다. 누가 더 많고 좋은 땔감을 준비하느냐 하는 것이 보름날 쥐불놀이의 성패를 가름할 수 있기 때문에 사력을 다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산으로 들로 다니면서 준비한 나무와 솔방울들이 상당히 모이게 되면 우리들은 그것을 보관하는 것에 신경을 곤두세우게 되는데, 왜냐하면 우리가 모아 놓은 나무와 솔방울들은 불쏘시개로 사용하기가 매우 좋은 것들이어서 자칫 보관을 잘못하는 날이면 누나나 어머니가 언제 밥짓는 땔감으로 사용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앞에서 이야기 한 내 비밀장소를 이용하였고, 동네 아이들은 뒷산에 땅을 파고 묻어놓기도 하였다.


겨울에는 해가 지기 무섭게 어두워지므로 해가 지기를 기다리던 아이들은 모두 마을에서 가장 높은 언덕이나 산으로 올라가서 준비한 깡통과 나무 등을 이용하여 불을 붙여 돌리기 시작한다.

 

그러면 들판 저편에서는 다른 마을의 아이들이 올라와서 서로 호응하는 듯이 불을 돌리기 시작하는데, 완전히 어두워지면서부터는 모든 마을의 뒷산에서는 붉은 불들이 원을 그리면서 돌아가게 된다.

 

원을 그리면서 돌아가는 불을 보는 것도 재미있지만 어느 마을의 불이 크고 많은가를 가지고 그 마을의 세를 저울질하기 때문에 그 때가 되면 거의 모든 아이들이 산에 올라가서 사력을 다해 불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

 

“망월이야” 라고 소리치면서 불을 돌리는데, 그 소리가 불빛과 함께 옆 동네 사람들이 듣고 보면서 감탄할 수 있을 정도로 해야한다는 것이 불문율처럼 되어 있었다.

 

 불을 돌릴 때는 보통 두 사람이 한 조가 되어서 하는데, 주로 형제가 힘을 합쳐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 조가 되는 이유는 불을 돌리는 사람과 나무를 가지고 있다가 넣어주는 사람이 따로 있어야 신속하게 땔감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나무를 넣어주는 사람은 주로 동생들이 맡아서 하는데, 자신도 불을 돌리게 해달라는 동생들의 요구에 위험하다고 하면서 동생을 윽박질러서 서로 싸우는 일도 종종 있었다.


이러한 불놀이는 달이 떠오르기 직전까지 하게 되는데, 달이 떠오르면 어른과 아이 할 것 없이 동네의 모든 사람들이 산 위에 함께 모여서 풍악을 울리면서 소리를 지르는 상태에서 달을 맞이하였다.

 

 달을 맞이하는 것이야 우리들에게 별로 큰 관심거리가 아니었으므로 풍악을 울리면서 어른들이 달을 맞이할 때 우리들은 몇 명씩 짝지어서 옆의 숲 속으로 들어가 곤 하였다.

 

 그러면 그곳에는 동네 처녀들이 모여서 서로의 소원을 빌고 있는데, 시집 잘 가게 해달라는 것이 주종을 이룬다. 그리고 좀더 으슥한 곳으로 들어가 보면 처녀 총각이 함께 손잡고 무언가 소근소근 귓속말로 하는 것도 볼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숲 속으로 살금살금 기어다니면서 그것을 훔쳐보는 재미로 신이 났었다.


내게 쥐불놀이가 늘 신났던 것은 아니었다. 마을에서 떨어진 독가촌에 살았던 나는 동생도 없는데다가 깡통과 땔감을 혼자서 들고 먼 거리를 가는 것이 번거로웠으므로 마을의 불놀이에 합류하지 않고 혼자서 뒷산에 올라가 불을 돌리기도 했었기 때문이다.

 

   혼자서 불을 돌리는 것은 별로 재미가 없었으므로 나는 새로운 방법을 터득하여 불놀이를 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맨 처음에 얘기한 것 중 두 번째에 해당하는 줄불놀이였다. 줄불놀이는 그 도구를 만드는 일이 매우 복잡하여 다른 사람들은 엄두도 내지 못하던 그런 것이었다.

 

우선 런닝샤쓰 같은 부드러운 천을 어른 손가락 굵기로 꿰매서 원통을 만든 다음 그 길이를 1미터나 1.5미터 정도 되게 한다. 그 속에는 부드럽게 만든 숯가루를 넣게 되는데, 여기에 넣은 숯가루는 아무 숯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뽕나무를 태운 숯이어야만 했다.

 

 뽕나무 숯을 사용하는 이유는 그 숯이 가장 가늘게 빻아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보름날이 되기 약 두 달 전부터 산으로 들로 뽕나무 뿌리를 캐러 다니기 시작하는데, 이것은 내게 매우 지난한 작업이었다.

 

 뽕나무는 주로 밭둑에 심어져 있는데, 뿌리가 길고 튼튼하게 뻗어나가는 뽕나무는 밭둑을 지탱해주는 좋은 재료였으므로 그 뿌리를 함부로 잘라가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었다. 어른들과 몇 차례의 숨바꼭질을 해가면서 근근히 모은 뽕나무 뿌리를 어머니의 눈을 피해서 아궁이 속에 넣어서 잘 태워서 숯을 내야 하므로 보통 힘든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잘못하여 누나나 어머니께 들키기라도 하는 날에는 언제 다리미 숯으로 사용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보안에 신중을 기해야만 했던 것이다. 뽕나무 숯이 마련되면 다음에는 그것을 고운 가루로 갈아야 하는데, 어머니와 누나의 눈을 피해 후미진 곳에 가서 몰래 해야만 했다.

 

 그 가루는 고운 채를 가져다가 불순물을 걸러내야 하는데, 숯을 치고 나면 채가 온통 새카맣게 되었기 때문에 어머니와 둘째 누나는 나의 이런 행동에 질색을 하셨다. 그러나 언제나 채는 내 손에 들어왔고 어머니가 들에서 돌아오셨을 때는 이미 까맣게 된 채가 걸려있어 어머니를 경악하게 만들곤 하였던 기억이 난다.

 

곱고 고운 숯가루가 만들어지면 준비한 천에 그것을 집어넣어야 하는데, 꽃 순대 만드는 일과 비슷한데 종이로 깔대기를 만든 다음 숯가루를 자루 속에 집어넣은 다음 손가락 마디 정도의 길이로 묶어주어야 했다. 그래야만 불을 붙였을 때 숯가루가 한꺼번에 쏟아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 작업을 하는데는 약 한나절 정도가 걸리는데, 이렇듯 정성스럽게 준비한 줄불을 쥐가 구멍을 내지 않도록 골방 같은 곳에 잘 보관을 해두어야 했다. 나는 어머니가 음식과 물건을 두는 광에 숨겨두었는데, 보름날이 되어 내가 그것을 꺼낼 때까지 모르셨다.


보름날이 되면 나는 준비한 줄불을 꺼내서 집 앞의 고욤나무에 올라가서 밖에서 가장 잘 보이는 높은 가지 끝에다 매달았다. 달이 떠오를 때쯤 되어서 맨 아래쪽에 불을 붙이면 가는 숯가루에 불이 붙어서 바람에 날리게 되는데, 이름하여 줄불이다.

 

한 마디가 타고나면 다음 마디가 타면서 계속하여 불꽃을 휘날리기 때문에 멀리서 보면 마치 불을 가진 수많은 벌레가 하늘로 날아가는 것 같은 광경이 된다.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이렇게 하여 나는 마을아이들과 함께 깡통으로 돌리는 불과 독가촌에서 나홀로 하늘에 불벌레를 날려보내는 줄불이라는 두 가지로 달을 맞이하였으니 다른 사람보다 달을 두 배로 사랑하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렇듯 보름날의 시끌벅적한 행사는 달맞이하는 것으로 모든 것을 마무리하게 되는데, 이 때부터 농부들은 고되고 고된 농사철을 맞이하게 된다. 늘 어른들과 숨바꼭질하면서 놀이를 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생각하면, 마을마다 빙글빙글 돌아가던 불꽃의 향연과 함께 독가촌에서 살았던 나의 외로움을 불벌레에 실어 날려보냈던 일들이 너무도 생생하여 바로 어제 일인 듯 눈에 밟혀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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