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의세계/우리문학현장기행

개국의 얼이 서려있는 삼성신화

by 竹溪(죽계) 2005. 12. 28.
728x90
SMALL

開國神話가 서려 있는 三姓穴

 

  신화는 신이 주인공인 이야기로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존재인 신이 세상을 만들거나 인간세상을 지배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성격을 지니는 신화에는 창세신화, 부락신화,씨족신화, 개국신화 등이 있는데, 나라를 세운 개국신화는 창세신화와도 일정한 관련을 가지는데, 주로 민족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개국신화는 檀君神話와 三姓神話이다. 삼국유사에 전해지는 단군신화는

 

  환인의 아들로 하늘에서 내려온 환웅이 신시를 열어서 사람들을 다스리던 중 사람이 되고자 하는 곰과 호랑이를 만나 이들에게 사람이 되는 비법을 일러주고, 이를 지킨 곰이 변해서 된 웅녀와 결혼하여 아이를 낳게 된다.

 

   환웅의 아들인 단군이 나라를 세운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 단군신화인데, 이는 북방계신화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고려사, 동국여지승람, 세종실록 등에 전해오는 삼성신화는 땅에서 솟아난 세 신인이 배필을 맞이하여 후손을 낳고 나라를 세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삼성신화는 남방계신화로 보아 무방하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이 두 신화가 모두 화산으로 인해 생긴 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출현시기가 비슷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단군신화는 신인이 천상에서 지상으로 내려오는 형태로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나무가 중심이 되고, 삼성신화는 신인이 지하에서 지상으로 솟아나는 형태로 땅속 세계와 땅을 이어주는 구멍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 다른 점이며, 특징이 되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두 신화는 땅 위의 세계와 땅 아래의 세계가 각각 다른 차원에서 존재한다고 믿었던 고대사람들의 우주관을 잘 나타내 주는 것으로 여겨지는데, 좀더 발전적으로 생각해보면 한반도는 하늘과 땅속의 두 세계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가장 조화로운 땅임을 잘 보여주는 것으로도 볼 수 있겠다.

 

  천상과 지하의 기운이 조화롭게 어우러져서 생겨난 곳이 바로 한반도이고, 그 기운을 온몸으로 받으면서 살아온 민족이 바로 우리라는 사실을 이 신화들은 잘 보여주고 있다.

   
  제주도는 고조선과 왕래할 정도로 오랜 역사를 가진 곳인데, 제주도 삼성의 후손인 세 형제가 신라 땅인 탐진에 이르러서 처음으로 육지에 알려지게 되었고, 처음 뭍에 오른 곳이 탐진이어서 탐라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제주도의 개국신화인 삼성신화에 대한 기록은 고려사, 세종실록, 동국여지승람 등에 전해지는데, 모두 고기를 예로 들어 기록하고 있는 점으로 보아 탐라에 대한 옛 기록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삼성신화에 대한 고려사 기록은 다음과 같다.
 '탐라현(耽羅縣)은 전라도 남쪽 바다 가운데 있다. 그 고기(古記)에 이르기를 태고적에 이곳에는 사람도 생물도 없었는데 3명의 신인(神人)이 땅으로부터 솟아 나왔다. 탐라현의 주산인 한라산 북쪽 기슭에 모흥(毛興)이라는 굴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그 때의 것이라고 한다.

 

  세 명 중 맏이는 양을나(良乙那), 둘째는 고을나(高乙那), 셋째는 부을나(夫乙那)라고 하였다. 이 세 사람은 먼 황무지에 사냥을 하여 그 가죽을 입고 고기를 먹으면서 생활했는데, 하루는 보니까 봉인된 자색 나무 상자가 물에 떠 와서 동쪽 바닷가에 와 닿는 것이었다.

 

   곧 가서 열어 보았더니 상자 속에는 돌로 된 상자가 있었고, 그 옆에는 붉은 띠에 자색 옷을 입은 사람이 하나 서 있었다. 돌 상자를 열어보니 그 안에서 푸른 옷을 입은 세 명의 처녀와 각종 망아지와 송아지 및 오곡(五穀) 종자가 나왔다.

 

  자색 옷을 입은 사람이 말하기를 "나는 일본의 사신인데 우리 나라 왕이 이 세 딸을 낳고 말하기를 ‘서쪽 바다 가운데 있는 큰 산에 하나님의 아들 3명이 내려 와서 장차 나라를 이룩하고자 하나 배필(配匹)이 없다’고 하면서 나에게 명령하여 이 3명의 딸을 모시고 가게 하여 이곳에 왔습니다.

 

 

  당신들은 마땅히 이 3명으로 배필을 삼고 나라를 이룩하기를 바랍니다”하고 말을 마치자마자 그 사자는 홀연히 구름을 타고 가 버렸다.

 

  세 신인은 나이에 따라 각각 세 처녀에게 장가들고 샘물 맛이 좋고 땅이 기름진 곳을 택하여 활을 쏘아 땅을 점치고 살았는데 양을나(良乙那)가 사는 곳을 첫째 서울, 고을나(高乙那)가 사는 곳을 둘째 서울, 부을나(夫乙那)가 사는 곳을 셋째 서울이라고 하였으며 이 때 처음으로 오곡을 심어서 농사를 짓고 망아지와 송아지를 길러서 목축을 하여 날이 갈수록 부유해 가고 인구가 늘어갔다.

 

  그들의 15대 후손인 고후(高厚), 고청(高淸) 형제 3명이 배를 만들어 타고 바다를 건너 탐진(耽津)에 이르니 이 때는 바로 신라가 한창 융성하는 시기였다.'


  세 신인이 솟아 나왔다는 구멍인 삼성혈은 한라산의 북쪽으로 지금의 제주시 이도동에 있는데, 하나는 크기가 상당히 크고 나머지 두 개는 약간 작은데, 品자 모양의 삼각형 모양으로 되어 있다.

 

  그 중 고씨가 나온 구멍으로 전해지는 것은 넓이가 6자나 되고 그 깊이는 바다까지 통한다고 하는데, 이는 바로 신인이 땅속 세계에서 왔고, 그 구멍이 땅속 세계와 이어져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로 해석된다.


  이 삼성혈은 오랫동안 버려져 있다가 조선 중종 때에 이수동 목사가 삼성혈 주변에 돌담을 쌓고 홍문과 혈비를 세워 후손으로 하여금 춘추제를 모시게 하면서 모양이 갖추어지게 되었다.

 

  그 후 혈단과 위패가 모셔진 삼성전과 분향소, 존사청, 숭보당 등 각종 부속시설을 갖추면서 현재에 이르렀고, 200년 이상 되는 수십 종의 나무가 우거져 있는 울창한 숲으로 바뀌게 되었다.


  삼성혈과 관련이 있는 또 다른 유적으로는 세 신인이 벽랑국의 세 공주를 맞이하였다는 성산읍 온평리 바닷가에 있는 황루알, 그리고 세 신인이 결혼식을 올렸다는 연못인 혼인지와 세 신인이 각자의 지역을 정하기 위해 화살을 쏘았다는 삼사석 등이 있다.

 

  제주도를 여행하면서 단군신화와 그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보이는 삼성혈과 같은 유적들을 답사해 보는 것도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