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령성황신이 된 범일국사
신화란 태초의 시공을 무대로 신이 주인공인 이야기로서 우주의 생성이나 신성한 존재의 출생을 중심
내용으로 하고 있다. 신화는 시대가 오래 된 것일 수록 신이 직접 세상을 만들거나 인간세상으로 내려오는 형태를 가지며, 후대로 내려올수록 신성한
사물이나 현상을 통해 인간세상으로 내려오는 형태를 가진다.
우리 신화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단군신화가 신이 인간세상으로 직접 오는 형태를 지닌 것이라면, 김수로왕신화와 혁거세신화 등은 신적인 존재가 알의 모습으로 내려오는 형태를 지닌 신화이다.
이처럼 고대 신화의 주인공들은 세상을 창조하고 인간을 다스리는 군장(君長)이 대부분이지만, 더 후대로 내려오면 특별한 능력을 지닌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는 신화도 등장하게 된다.
이러한 신화 중에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으로 범일국사 탄생신화가 있다. 범일국사는 신라 때의 승려로서 출생이 기이한데다가, 성장해서는 사굴산파의 시조가 되었고, 죽어서는 대관령으로 올라가 산신령이 된 신화적인 인물이다.
이러한 범일국사의 탄생신화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 강원도 명주군 구정면 학산마을이다. 강릉에서 남서쪽으로 약5킬로 정도 떨어진 산기슭에 있는 이 마을에는 범일국사의 탄생설화를 간직한 석천(石泉)과 아이를 버렸다는 학바위, 사굴산파의 종찰인 굴산사의 터와 당간지주 등의 유적이 있다.
이곳에 전해지는 범일국사의 탄생신화는 다음과 같다.
학산 마을에 살았던 한 처녀가 하루는 석천이란 우물에 물을 길러 갔다. 목이 말라 바가지로 물을 펐더니 그 속에 해가
떠 있었다. 해가 뜬 물을 버리고 다시 물을 푸자 또 다시 그 속에 해가 있었다. 할 수 없이 그 물을 마셨더니 그때부터 태기가 있어서
13개월만에 낳은 아이가 바로 범일국사였다.
양가집 처녀가 아이를 낳았으니 마을 전체가 시끄러울 수밖에 없었고, 이를 견디지 못한 범일국사의 어머니는 아이를 보자기에 싸서 뒷산의 학바위에 버렸다.
그러나 모정을 이기지 못하여 며칠 뒤 그 바위에 다시 가보니 짐승에게 물려갔거나 죽었을 것으로 생각했던 아이가 학이 주는 붉은 열매를 먹으며 살아 있었다. 이를 본 어머니는 아이를 버리지 말라는 하늘의 계시로 받아들이고 다시 데려다 길렀는데, 여덟 살에 이미 글을 읽을 정도로 총명하였으며, 15세가 되자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중국에 유학하여 득도한 후 신라로 돌아와서 굴산사를 세우고 사굴산파를 창립하였으며, 죽은 후에는 대관령으로 올라가 산신령이 되었다.
범일국사의 어머니가 물을 마시고 아이를 가졌다는 석천은 마을 한 가운데에 있다. 지금은 볼품
없는 모습이지만 신성성을 간직한 우물이다.
학바위는 마을의 바로 뒤쪽 산기슭에 있는데, 여러 개의 바위 중에 넓적한 모양으로 되어 있는 것이 범일국사를 버렸던 학바위라고 마을 사람들은 말하고 있다.
학바위로 올라가는 길옆에 부도(浮屠)가 하나 있는데, 범일국사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마을의 북쪽에 있는 굴산사 당간지주는 우리 나라에서 제일 큰 석당간(石幢竿)이라고 한다. 이 당간의
크기로 보아 굴산사가 얼마나 큰 사찰이었던가를 짐작할 수 있다.
하늘의 신령스런 해가
우물로 내려와서 사람으로 태어났고, 죽어서는 성황신이 되어 강릉단오제의 주신(主神)으로 자리잡았다는 범일국사 설화는 탄생신화가 갖는 신성성이 그
모습을 바꾸어 현대에 이르러서도 축제의 형태로 전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학산의 여러 유적과 대관령성황당, 그리고 강릉 단오제 등을 연결시켜 답사해보면 문학과 문화가 어떻게
결합하여 현재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고 있는가를 좀더 확실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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