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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세계/우리문학현장기행

영남가단과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의 문학

by 竹溪(죽계) 2007. 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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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가단과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의 문학


고려말 삼은(三隱) 중의 한 사람이었던 야은(冶隱) 길재(吉再)의 학풍을 이은 조선시대의 학파를 우리는 사림파(士林派)라 부른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으면서 유학의 도리를 이루려했던 이들은 조선초기의 사장파(詞章派)로 불리는 훈구세력과 맞서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그들은 출사와 은거라는 두 갈래의 길을 걸으며 정치사와 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농암 이현보 영정


특히 가단(歌壇)을 형성할 정도로 우리 노래에 대한 애정이 지극하였는데, 이들 사림파가 중심이 되어 형성된 것이 영남가단이며, 이 가단에서 지어진 시가문학은 온유돈후(溫柔敦厚)와 강호한정(江湖閑情)의 정서가 중심을 이루는 것이 특징이다.


세조13년인 1467년에 출생한 농암은 1498년 식년문과에 급제한 뒤 32세에 벼슬길에 올라 도산의 분강촌으로 은거하게 되는 76세까지 출사와 유배를 거듭하는 생활을 하게 된다.


이때로부터 89세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남긴 작품들이 우리 문학사에 큰 발자취를 남기게 되었다. 그가 지은 대표적인 시조로는 '효빈가', '농암가', '생일가' 등인데, 강호한정의 생활을 노래하는 데 있어서는 읊조리기만 하는 한시보다 우리말로 된 시가가 적합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던 농암의 생각을 잘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농암의 이러한 생각은 이황, 권호문, 이숙량 등으로 이어지는 영남가단의 중심사상으로 떠오르게 되는데, 퇴계 이황은 '도산십이곡'의 뒤에 붙이는 발문(跋文)에서 그 사실을 매우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이제 그의 대표작인 ‘농암가’를 살펴보자.


 "농암(聾巖)에 올라보니 노안(老眼)이 유명(猶明)이라/인사(人事)야 변한들 산천이야 변할손가/암전(巖前)에 모수모구(某水某丘)가 어제 본듯하구나" 

   

하루가 다르게 변해 가는 인간 세상에 비해 늘 한결같은 모습으로 존재하는 자연의 모습을 대비시켜 노래한 작품이다. 영원과 순간이라는 시간적 거리를 같은 공간으로 가져와 서로 대비시키면서도


그 공간 속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정(靜)과 동(動)으로 다시 나누어놓는 수법을 사용함으로써 변화에 바탕을 둔 인간사의 허무함을 보여줌과 동시에 자연과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가능성을 활짝 열어놓았다.

 

 농암 각자

 

내일이 오면 인간사는 다시 변해있겠지만 농암에서 보는 물과 언덕은 늘 어제 본 모양 그대로인 것이다. 작자의 자연관을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강호한정은 ‘어부가’에서도 그대로 보여지는데, 고려 때부터 있어왔던 어부가 계열의 노래는 조선조에 들어와서 거의 사라질 지경에 이르렀으나 농암에 의해서 재창작되어 우리말로 거듭나게 되었던 것이다.


그 뒤 농암의 ‘어부가’는 송순, 정철, 윤선도로 이어지는 호남가단에도 영향을 끼쳐 조선후기에 이르러서는 고산 윤선도의 '어부사시사'로 다시 태어난다. 그 외에도 이중경의 '오대어부가', 이형상의 '창부사', 이한진의 '속어부사', 신재효의 '어부사' 등으로 계승되었고,


잡가와 동학가사로도 이어지면서 어부가 계열의 작품군을 형성하게 된다. 이런 점으로 볼 때, 꺼져가던 어부가 계열의 노래를 우리 문학사에 다시 살려낸 것은 농암의 공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농암이 가졌던 이러한 도학적 생활과 강호한정의 문학적 면모를 잘 살펴보기 위해서는 안동시 예안면, 도산면 일대에 있는 유적들을 답사해볼 필요가 있다.


부모에 대한 효성을 잘 나타내주는 말로써 날을 아낀다는 뜻을 지닌 애일당(愛日堂)을 비롯하여 자신의 호로 삼기도 했던 귀먹바위인 농암, 그리고 그 글자를 새긴 바위, 농암을 모신 분강서원, 한폭의 그림 같은 모양을 한 분강촌의 모습 등을 보노라면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과 하나가 되려는 농암의 생각들이 어떻게 해서 생겨날 수 있었는가를 실감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농암의 유적이 모여 있는 도산면 지역은 도산서원, 퇴계종택, 퇴계묘역, 이육사의 생가터, 육사묘역 등이 함께 있어서 가을의 문학 답사에 더 없는 기쁨을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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