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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세계/우리문학현장기행

낙동강의 발원지 황지의 장자못 전설

by 竹溪(죽계) 2005.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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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와 장자못전설


  인간에게 있어 물은 생명의 원천이며 삶을 꾸려가기 위한 필수불가결의 존재이다. 이러한 물이 주는 원형적 상징은 창조의 신비, 탄생, 죽음, 부활, 재생, 어머니 등으로 탄생과 소멸 등 순환론적 질서를 가진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따라서 물은 인간의 생명을 보존하게도 하고 생명을 위협하기도 하는 양면성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 물로 인해 위협을 받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되는데, 하나는 물이 너무 많아서이고 다른 하나는 물이 너무 모자라서이다. 물이 넘치면 홍수가 되고, 물이 모자라면 가뭄이 되는데, 홍수와 가뭄은 자연 현상을 통해 반복되면서 늘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이다.

 이러한 성격을 지니는 홍수와 가뭄은 현실의 형상적 반영물인 문학의 가장 광범위한 소재가 된다. 설화에서 가뭄은 주로 한을 품고 죽은 주인공이 자신의 한을 풀기 위한 수단으로 등장하고, 홍수는 악을 행하던 주인공을 징벌하기 위한 수단으로 등장한다. 가뭄은 한을 풀어내는 수단이 되고, 홍수는 악을 징벌하는 수단이 되는 셈이다.

 

  가뭄설화의 예는 박색설화인 춘향설화를 들 수 있고, 홍수설화의 예는 징악설화인 장자못설화에서 찾을 수 있다. 그 중 장자못설화의 원형으로 주목받는 것이 강원도 태백시 황지읍에 있는 황지(黃池)의 황부자설화인데,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온다. 

 


 '아득한 옛날 황지못 자리에는 황씨 성을 가진 사람이 살았다. 그는 큰 부자였지만 인색하고 심술궂기로 소문이 나 있었다.

 어느 날 황부자가 쇠똥을 쳐내고 있었는데, 허름한 옷차림의 노승이 와서 시주를 청하는 것이었다. 황부자는 중에게 시주할 곡식이 없다고 했지만 노승은 가지도 않고 계속해서 염불만 외우고 있었다. 이에 화가 난 황부자는 곡식 대신에 쇠똥을 퍼서 바랑에 담아주었다. 그랬더니 노승은 아무 말 없이 돌아서서 가는 것이었다.

 이때 방앗간에서 아기를 업고 방아를 찧던 그 집의 며느리 지씨가 달려와서 쇠똥을 쏟아버리고 쌀을 시주하면서 시아버지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빌었다. 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노승은 지씨에게 말하기를 "이 집의 운세는 오늘로 다하였으니 살고 싶으면 나를 따라 오시오"라고 했다. 이에 지씨는 아이를 업은 채로 강아지를 데리고 노승을 따라 나섰다.

 노승은 지씨에게 어떤 일이 있더라도 절대로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된다고 당부했다. 지씨가 삼척 가는 길인 송이재를 넘어 통리로 해서 도계 구사리 산등을 넘어가고 있을 때 갑자기 자기 집 쪽에서 뇌성벽력이 치며 천지가 무너지는 듯 한 소리가 나는 것이었다. 놀란 지씨는 그만 뒤를 돌아보았는데 그 순간 지씨와 아기, 그리고 강아지는 돌로 변해버렸다.

 그후 사람들은 이 바위를 미륵바우라고 불렀는데, 바위의 모양이 아이를 업고 뒤를 돌아보는 여인의 모습을 닮아 있다. 지씨를 따라가던 개도 굳어져서 돌이 되었는데, 이를 개바우라 부른다.

 황부자가 살던 곳은 물에 잠겨서 땅속으로 가라앉아 버리고 그 자리가 세 개의 연못으로 되었는데, 제일 위쪽의 큰 연못은 집터였으므로 마당늪이라 하고, 중간은 방앗간 터로 방간늪이라 부르며, 맨 아래에 있는 작은 연못은 변소가 있던 자리라 통시늪이라 한다.

 또한 황부자는 이무기로 변해서 연못 속에 살게되었는데, 일년에 한 두 번씩 물이 누렇게 되는 것은 이무기가 된 황부자가 심술을 부려서 그런 것이라고 한다.'


  낙동강의 발원지인 황지못의 물은 하루에 약5천톤 정도가 솟아나는데, 영남의 너른 들을 적시면서 1300리를 흘러 남해로 들어간다. 전국적으로 분포하고 있는 장자못전설의 원형인 황지못을 답사하면서 인간의 악행에 대한 우리 선조들의 경계심을 느껴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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