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갓 김병연의 방랑과 문학
'스물 남짓이 되는 서러운 나그네에게, 망할 놈의 마을에서 쉰밥을 주는구나, 인간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오, 집으로 돌아가 설익은 밥 먹느니만 못하구나'(二十樹下三十客 四十村中五十食 人間豈有七十事 不如歸家三十食). 조선 후기 방랑시인으로 유명한 金炳淵이 어느 마을에서 지은 시다. 유리걸식을 하는 자신에게 쉰 밥을 주면서 푸대접하는 인심을 보고 즉석에서 지은 작품이라고 한다. 마흔을 망할과 연결시키고, 서른을 서러운으로 연결시켰으며, 오십을 쉰과 연결시키고, 일흔을 이런으로 읽혀지도록 한 그의 재치는 가히 천하 일품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김삿갓으로 우리에게 더 잘 알려진 김병연은 조선조 사회가 기울어져 가던 1807년 그 당시 세도가 집안이었던 김익순의 손자로 태어났다. 그의 나이가 다섯 살 때인 1812년에 일어난 홍경래의 난은 김병연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아픔과 시련을 가져다주는 계기가 되었다. 선천 방어사라는 중책을 맡고 있던 병연의 조부인 익순이 홍경래란이 일어나자 그 일당에게 항복하는 사태가 벌어졌고, 난이 평정된 후 조정에서는 국가의 녹을 먹은 관리가 적도들에게 항복한 것을 문제삼아 그를 사형시키기에 이른다. 김익순의 죄는 본인에게만 국한한다는 조정의 결정에 따라 멸문의 화는 면했으나 더 이상 서울에서 살 수 없게된 모친은 여주, 가평, 청평 등을 거쳐 영월의 삼옥리에 정착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화병으로 부친은 세상을 떠나고 편모 슬하에서 자라나게 된다. 모친은 병연에게 조부의 일을 숨겼기 때문에 아무 것도 모르고 학문에만 힘쓰면서 청년기를 보낸 그는 20살이 되던 해에 결혼을 하였고, 영월도호부의 동헌에서 보이는 항시에 참여하여 장원급제를 하게 된다. 홍경래의 난에 죽음으로 맞선 가산 군수의 충절을 찬양하고, 선천방어사로 홍경래에게 항복했던 김익순의 죄를 규탄하라는 시제로 장원을 한 것이었다. 이를 들은 어머니는 하늘을 우러러 통곡을 하며 김익순이 바로 병연의 조부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리게 된다. 자신의 근본인 조부를 두 번 죽게 한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던 끝에 병연은 두 번 다시 푸른 하늘을 보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삿갓을 쓰고 방랑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수 십 년에 걸친 방랑생활을 통하여 수많은 일화와 다양한 작품을 남긴 그는 쉰 일곱의 춘추로 전라도 동복에서 한 많은 일생을 마감하게 되는데, 삼 년 뒤에 그의 아들인 익균이 부친의 시신을 영월의 노루목으로 옮겨와서 장례를 치루었다.
방랑과 울분, 죄책감과 비탄으로 평생을 살았던 김삿갓은 설화화 된 수많은 일화와 함께 많은 시를 남겼는데, 표현과 기교 등에서 기존의 한시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으면서도 우리의 정서에 맞는 작품들이 중심을 이룬다. 그의 삶이 그랬듯이 작품에 깔려 있는 기본적인 의식은 세상에 대한 비판과 공격이 중심을 이루는 것은 사실이다.
강원도 영월군 하동면 와석리 노루목에 있는 그의 묘소는 방랑시인의 무덤답게 비석 하나와 무덤하나, 그리고 자연석을 그대로 가져다 놓은 듯한 상석 하나가 있을 뿐 다른 어떤 장식도 없다. 다만 주변의 골짜기에 여러 기념물들을 세워 놓아서 보는 이의 시선을 어지럽게 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가 살았다는 집터는 묘소에서 산 속으로 한 참을 더 올라간 곳에 있다. 이곳을 올라가야 비로소 산 속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곳을 찾을 때마다 가져보는 바람이 있다면 세상을 등지기는 했지만 민족과 산천을 누구보다 사랑했던 그의 발걸음이 닿았던 곳곳마다 시비를 세워 기리는 일은 다른 어떤 것보다 의미 있는 문화사랑이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의 묘를 찾은 것도 지금으로부터 불과 20여년 전의 일이니 그에 대한 연구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까지 김삿갓의 문학에 대해서는 학위 논문이 열 편을 넘지 않을 정도이니 그가 남긴 숱한 일화와 시작품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와 평가가 이루어지기까지는 요원한 상태라 하겠다. 앞으로 더욱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그의 작품에 대한 올바른 평가가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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