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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세계/우리문학현장기행

허균의 스승인 손곡 이달의 문학

by 竹溪(죽계) 2005. 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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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곡(蓀谷) 이달(李達)의 문학


조선시대 한시를 지었던 작가 중에 당풍(唐風)을 배워서 일가를 이룬 세 사람의 시인들을 우리는 삼당시인(三唐詩人)이라 부른다. 선조 때 활동한 세 사람이 중심을 이루는데, 허균의 스승으로 잘 알려진 손곡 이달, 기녀 홍랑의 연인으로 유명한 고죽 최경창, 그리고 가사문학의 효시자 기봉 백광홍의 동생인 옥봉 광훈이 그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모두 박순(朴淳)에게서 공부를 한 사람들로 근체시의 형식이 완비되었던 당(唐)나라 때의 시풍을 좇아 시를 지었던 사람들이다. 이들 세 사람 중에서 당풍을 가장 잘 살려서 시를 지었다는 평을 받았던 이달이 삼당시인의 대표적인 인물로 불린다.

 

처음에는 宋나라 시풍을 배워서 시를 지었으나 스승인 박순에게 시체의 묘미는 당시(唐詩)에 있다는 가르침을 받고 초야에 묻혀 오랜 동안 시법을 공부했다.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과 조선조의 여류 시인으로 유명한 허난설헌의 스승으로 잘 알려져 있는 이달은 신분의 질곡이 심했던 시대적 한계로 인하여 불우한 삶을 살았다.

 

그의 일생은 거의 알려진 바가 없는데, 다만 허균이 지은 '손곡산인전'에서 출생을 밝혀 놓고 있다. 이이첨의 후손으로 태어난 이달은 문재가 뛰어났으나 어머니가 천민이었던 관계로 벼슬길은 일찌감치 포기한 상태였다.

 

그리하여 서울을 떠나 원주의 손곡리에서 불우한 일생을 보내게 되었던 그는 최경창, 백광훈 등과 함께 시회를 조직하여 문화의 전성기를 이루어 목릉성세(穆陵盛世)로 불리는 선조 시대를 시로써 풍미하게 된다.

 

 또한 허균의 형과 교분이 깊었던 그는 허균과 그의 누이인 난설헌을 가르쳐 두 사람의 사상에 매우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이는데, 허균이 스승인 그를 일러 신라 때부터 조선시대까지 누구도 범할 수 없는 최고의 경지를 이룬 시인이라고 평가한 것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구름 속에 절이 있는데/구름이라 스님은 쓸지를 않는구나/손님이 와서 비로소 문을 열어보니/모든 골짜기의 송화가 이미 진 뒤더라(寺在浮雲中, 白雲僧不掃, 客來門始開, 萬壑松花老) 자연과 사람이 하나 되어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진솔하게 표현한 이 작품은 맑고 깨끗한 느낌을 준다.

 

구름은 그 성질대로 산을 덮으니 그 속에 있는 절도 자연이 덮인다. 그리고 그 속에 산과 하나 되어 살아가는 승려는 구름을 쓸어낼 이유가 전혀 없다. 때가 되면 사라지고 또 때가 되면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송화는 시절을 따라 피고 지니 사람이나 구름과는 관계없이 자신의 길을 갈 뿐이다. 그것을 매개시켜주는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사람이다. 구름은 구름으로, 송화는 송화로, 그리고 사람은 사람으로 각각 존재하면서도 서로를 침범하지 않는 자연의 섭리를 군더더기 하나 없이 노래한 절창(絶唱)이라 하겠다.

 

 

신분의 질곡이라는 시대적 한계를 온몸으로 안고 바람처럼 구름처럼 살다간 그는 허균에 의해서 편찬된 '손곡집'과 함께 스승의 전기를 단편소설 형식으로 쓴 '손곡산인전'을 통해 우리에게 그 흔적을 남기고 있을 뿐 무덤조차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어 안타까움을 더해주고 있다.

 

비록 최근에 세워진 것이기는 하지만 그가 대부분의 생애를 보냈던 원주의 부론면 손곡리에 서 있는 시비가 유일한 유적이라고 할 수 있다.

 

영동고속도로 문막 나들목에서 나와 남쪽 산 속에 있는 손곡리는 조선후기 명장으로 이름을 떨쳤던 임경업 장군의 출생지이기도 하다.

 

산을 몇 개 넘어서 마을에 들어서면 보기에도 초라할 정도의 돌비석이 길가에 수줍은 듯이 서 있고, 그 옆으로 흐르는 냇가에 임경업 장군 추모비가 나란히 있다.

 

천민으로 태어나 절치부심(切齒腐心)의 삶을 살다간 천재시인의 초라하기만 한 자취를 찾아보는 것 또한 다른 어떤 유적지에서도 느끼기 어려운 감동으로 다가서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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