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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세계/우리문학현장기행

환로의 어려움을 노래한 장암가

by 竹溪(죽계) 2005. 1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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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로(宦路)의 어려움 노래한 장암가(長巖歌)


장암은 금강 하구인 장항에 있는데 백제시대부터 매우 중요하게 여긴 곳으로, 바다와 육지가 맞닿는 포구인 기벌포에 있는 높은 돌산을 말한다. 그곳에 올라가면 멀리 서해에서 들어오는 어떤 사물도 모두 감지할 수 있으며, 바다에서 포구로 들어오는 적군을 방어하기에도 매우 적합한 군사요충지이다. 따라서 백제 말기의 충신인 성충과 흥수가 당(唐)나라의 군대를 기벌포에서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진언했으나, 그 말을 듣지 않았던 백제 조정은 결국 소정방의 군대를 금강으로 들어오도록 함으로써 사비성의 함락을 불러오는 결정적인 요인을 제공하게 됐다.

이처럼 백제멸망과 관련된 슬픔을 전해주고 있는 장암에는 현대인들에게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노래 한 편이 전해지고 있어 우리를 주목하게 한다. 고려 때 두영철(杜英哲)이란 사람은 젊었을 때 벼슬에서 쫓겨나 장암에 유배를 갔다. 그곳에서 한 노인을 사귀었는데 소환되게 되자 다시는 벼슬길에 나가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두영철은 노인의 말을 따르겠다고 했으나 그후 벼슬길에 나아가 평장사까지 올랐다가 다시 좌천되어 장암을 지나가게 됐다. 이 때 노인이 두영철의 어리석음을 꾸짖으며 노래 하나를 지어 줬는데, 이 노래가 바로 장암이다. 노인이 지어 줬다는 원가가 전하지는 않지만 이제현(李齊賢)이 옮긴 한역시가 고려사(高麗史)와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등에 실려 전한다.

“한심한 참새야 어찌해서 그렇게 되었느냐 어린것이 그물에 걸리고 말았으니 눈은 두었다가 무엇에 쓸려느냐 불쌍하게도 그물에 걸린 못난 참새야(拘拘有雀爾奚爲 觸着網羅黃口兒 眼孔元來在何許 可憐觸網雀兒癡).”

`참새'는 두영철을 가리키고 `그물'은 정치판을 지칭한다. 정치판에서는 자신의 행동이나 의지와는 관계없이 늘 일이 생기고 심한 경우에는 목숨도 부지하기 어려우니, 위험한 정치판에는 나가지 말았어야 했다고 노인이 꾸짖고 있는 것이다. 노인의 조언을 무시한 두영철의 말로를 잘 표현하고 있는 노래라고 할 수 있다.

얽히고 설킨 그물처럼 복잡하고 난해한 권력의 자리는 서로가 서로를 물고 물리는 난장판이나 다름없다. 이러한 현상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니 될 수 있으면 그런 자리에는 가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고, 만약 그런 자리에 있을 때는 매사에 신중하여 살얼음 밟듯이 조심에 조심을 거듭해 맡겨진 일을 한 다음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물러나야 할 것을 장암가가 잘 보여준다고 하겠다. 이처럼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장암은 마땅히 문화유적지로 지정돼야함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어느 기업의 사유지가 되어 있는데다가 바위산 위에 회사를 상징하는 엄청나게 큰 굴뚝을 세워 놓아 보는 이로 하여금 경악을 금할 수 없게 만든다. 또한 포구 안쪽으로 장암산성이 있기는 하나 성벽 일부만 복원되었을 뿐 성 자체는 거의 버려져 있다시피 한 상태이다. 이처럼 버려진 우리의 유적들은 보는 이들의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백제멸망의 한과 어리석은 정치인의 말로를 잘 보여주는 장암을 돌아보면서 우리의 현실 속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반추해보며 후회 없는 삶을 위해 자신을 다독거려 봄도 매우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