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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세계/우리문학현장기행

노래에 나타난 박인로의 우국충정

by 竹溪(죽계) 2005. 1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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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국충정의 작품 통해 시대 아픔 노래한 가객


노계(蘆溪) 박인로(朴仁老)의 삶과 문학


`조홍시가(早紅枾歌)'로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박인로는 조선 중기의 인물이다. 그는 비록 무인이었지만 우리 문학사를 빛낼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특히 그가 지은 연시조인 조홍시가는 부모에 대한 그리움을 짧은 형태의 작품 안에 잘 표현하고 있어서 작자의 효심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반중조홍(盤中早紅) 감이 고아도 보이나다 유자(柚子) 아니라도 품엄즉도 하다마는 품어가 반길 이 없으니 그를 설워하노라.”

이 작품은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군 용진리에 은거하던 한음 이덕형의 집에 객으로 갔을 때 지은 시조이다. 시인이 가지고 있는 부모에 대한 그리움을 중국의 고사와 연결시켜 노래한 작품으로 고려가요인 사모곡의 전통을 이어받은 것으로 사친가 계통의 시가라고 할 수 있다. 일찍 익어 색깔이 유난히 고운 홍시가 상위에 올려져 있는 모양으로 시상을 일으킨 작가는 “유자 아니라도 품엄즉도 하다마는”이라고 한 표현에서 옛 고사와 자신의 현재 상황을 대비시키고 있다.

중국 吳나라의 육적이란 사람은 여섯 살 때에 원술의 집에 갔다가 손님 접대용으로 내놓은 유자 세 개를 품안에 숨겨 나오다가 주인에게 들켰는데, 그 까닭을 물으니 어머니에게 가져다 드리려 했다고 대답하여 지극한 효성이 모두를 감동시켰다는 고사를 바탕으로 하면서 마음으로만 그럴 뿐 실제는 그럴 수 없음을 살며시 내비치고 있다. 부모가 살아 계셔서 품어갈 수 있었던 고사의 현실과 마음으로만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작가의 현실이 물(物)과 심(心)이라는 대립항으로 표현되고 있어서 마지막 행에서 나타난 작가의 슬픔이 극대화 되도록 하는 구실을 하고 있다. 마지막 행에서는 품에 품고 가더라도 반길 사람이 없으니 그것이 서럽다고 함으로써 앞 행에서 노래한 대립 항이 작가의 현실로 해소되면서 슬픔으로 승화되고 있다. 고운 홍시라는 물(物)에서 시작하여 물(物)과 심(心)의 대립과 갈등으로 나아가고 그것이 다시 승화된 슬픔의 심(心)으로 귀결되는 구조로 짜여진 작품이 바로 조홍시가이다.

그의 작품은 의를 중시하는 도학(道學), 조국에 대한 충정과 자연에 대한 사랑 등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특히 전쟁으로 인한 백성의 고통과 나라에 대한 걱정을 작품 속에 담아내고 있어서 우리 문학사에 독보적인 존재로 일컬어진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참혹한 전쟁을 겪었으면서도 그에 대한 작품 하나 남기지 못했던 여타의 사대부들에 비하면, 그가 지은 가사 작품은 진정으로 나라를 생각하고 백성을 아끼는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가 지은 작품으로 가사는 임진왜란의 전쟁 중에 나라를 생각하면서 태평성대를 노래한 태평사(太平詞), 이덕형의 빈객이 되어 머물렀던 용진리의 풍광을 읊은 사제곡(莎堤曲), 산 속에서의 생활이 어렵지 않느냐는 한음의 물음에 대한 답으로 안빈낙도의 뜻을 노래한 누항사(陋巷詞), 전쟁의 비애를 표현하면서 평화를 기원한 선상탄(船上歎), 조선조 대학자였던 이언적의 유적을 찾아가 지은 독락당(獨樂堂), 자신이 은거하는 곳의 풍광을 노래하면서 충성과 우국의 정서를 보여준 노계가(蘆溪歌) 등이 있고, 조홍시가, 오륜가 등의 시조 60여수 이상을 지었다.

사후에 그의 고향에 세워진 도계서원에 배향 되었으며, 경북 포항의 입암리와 부산시 수영구 민락동에 최근 노계시비가 세워져서 그의 문학을 빛내주고 있다. 서울부근에서는 누항사와 사제곡의 배경이 되는 경기도 남양주군 조안면 용진리의 이덕형별서터를, 부산에서는 태평사의 배경이 된 민락동의 노계시비를, 그리고 포항에서는 그를 배향한 도계서원, 그리고 입암가의 배경이 된 입암리 29계곡과 시비를, 선학의 자취를 따라 배우면서 그를 사모하여 지은 독락당가의 배경이 된 경주의 독락당 등을 찾아보고 서로의 의견을 교환해 본다면 의미있는 답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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