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를 그리려다 고양이를 그린 영화 "무사"
일반적으로 우리는 영화를 영상예술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영화는 영상예술이기는 하지만 종합예술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적절한 표현일지 모른다. 영화 속에는 영상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문학에서 음악 등에 이르기까지 현대의 거의 모든 예술이 총망라되어 있기 때문이다. 영화가 영상예술이든 종합예술이든 예술인 것만은 틀림없다면 영화는 예술이 가져야할 체계와 장치, 그리고 그 외의 것들에 충실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그래야만 예술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고 평가될 수 있으며,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감동을 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엄청난 제작비를 들여서 만들었다고 선전한 영화 '무사'를 보면서 느낀 점은 제작자의 욕심이 예술의 범주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넓은 범주 안에서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사실이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무사'가 영화라면 영화가 갖는 예술적 특성을 무시하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되고 구성되어져야하는데, 이러한 원칙들을 무시한 측면이 너무 강하여, 예술이라기보다는 섬뜩한 폭력을 보여주는 영화로 되어버린 측면이 너무 강하다는 것이다. 예술이라는 갈래를 기본 바탕으로 하고 있는 영화가 그 예술성을 완전히 무시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영화가 아니거나 저질의 영화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이 영화에는 제작자가 가졌던 나름대로의 고민과 역사의식 등이 녹아 있어서 그것들을 눈여겨보면서 이 영화를 감상한다면 그나마 위안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무사의 장점과 단점들을 중심으로 무사의 길을 따라 가보도록 한다. 1. 이 영화의 좋은 점들
(1) 고려말의 역사적 상황들에 대한 이해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사신을 모시고 갔던 무사들이 왜 고려로 돌아오지 않고 중국의 공주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가 하는 점에 매우 의아스럽다고들 한다. 얼마 전에는 어느 작가가 신문에서도 그런 글을 썼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왜 그들이 고려로 돌아올 수 없었던가는 아주 잘 설명하면서 보여주고 있다. 지리적으로나 국제관계로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중국이 원명교체기라는 역사적 사실과 그 과정에서 갈팡질팡할 수밖에 없는 고려의 사정을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지는 않지만 관객이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보여주고 있다. 이런 것들을 제대로 보지 않고 우리 나라 사람들이 왜 중국의 공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가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현재 우리가 처해 있으며, 그 동안 우리가 많이 겪어왔던 여러 고난에서 생길 수밖에 없었던 민족적 피해의식에 자신도 모르게 빠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역사적 사실이 그랬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그것을 넘어서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고려의 무사들이 중국의 공주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버려야만 했던 암울한 현실이 바로 그 당시 고려가 겪었던 역사적 현실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의 공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무사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현 속에는 현재 우리의 가슴 속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피해의식이 아주 살포시 실려 있다는 것이다. 만약 이 영화에서 중국의 무사들이 우리 나라의 공주를 구하기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것으로 설정했다면 우리는 기분이 좋았을까? 이러한 생각을 하는 것은 자칫하면 국수주의로 흘러서 다른 사람에게 엄청난 피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조심해야할 것으로 생각된다. 미국의 국수주의가 세계 전체를 공포의 소용돌이로 몰아넣고 있는 현 상황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가 될 것으로 사료된다.
(2) 14세기에 고려가 가졌던 고민을 담은 구성 위에서도 말했듯이 14세기의 고려는 국가의 존망이 달린 기로에 서 있었다. 400년을 넘게 지속되어온 국가가 내부적으로 힘을 잃어가고 있었고, 고려와 가장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던 元이 새롭게 나타난 明에게 밀려서 멸망의 길을 걷고 있는 상황이었다. 동북아시아의 국제,국내 정세는 새로운 질서를 추구하는 힘들에 의해서 커다란 변혁을 꿈꾸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매우 복잡하지만 또한 유기체처럼 연결되어 있어서 하나의 변화는 다른 하나의 변화를 낳고, 그 변화는 또 다른 변화를 낳기 때문에 국제적인 관계의 변화는 당연히 국내의 상황에도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었다. 따라서 고려는 대외적인 관계에서 어느 쪽을 따라야할지 잘 판단이 서지 않는데다가, 내부적으로는 민란이 일어나고, 사상적으로는 국교였던 불교가 타락하면서 새로운 이념인 유교가 서서히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이러한 고려의 갈등과 고민이 이 영화에는 나름대로 잘 녹아있는 것이다. 영화 '무사'에 나타나는 갈등 구조는 대략 여섯 개 정도로 볼 수 있다. 첫째는 고려의 주변 강대국인 중국에서 일어난 현상으로 명나라과 원나라의 갈등을 들 수 있다. 국가의 교체기에서 오는 갈등이기는 하지만 여기에는 몽고족과 한족의 갈등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민족적 갈등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 영화에서는 전쟁의 방식보다는 상대 민족의 중요인물을 납치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둘째, 명나라와 고려의 갈등이다. 명나라는 새롭게 떠오르는 나라이고 원나라는 지는 해와 같은 나라이다. 그러므로 고려는 오랜 동안 관계를 맺어왔던 원나라를 멀리하고 명나라와의 관계를 개선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고려는 오랜 동안 원나라와 너무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기 때문에 명나라가 고려를 쉽게 믿을 수는 없게된다. 따라서 명나라와 고려의 갈등은 국제관계를 통해서는 개선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되자 정상적인 국제조약으로는 관계개선이 어렵게 되었고, 급기야는 고려 역시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조선이라는 새로운 나라가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 영화는 그러한 고려의 노력을 중국의 공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고려 무사들의 죽음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셋째, 불교와 유교의 갈등이 그것이다. 신라 때부터 성행하기 시작한 불교는 나라에서 인정을 받은 이후로는 상당히 오랜 동안 국교로서의 자리를 확실하게 누려왔었다. 그러나 사상이든 권력이든 오래되면 부패하게되고, 그렇게 되면 새로운 것이 나타나듯이 불교의 타락은 사람들로 하여금 새로운 이념을 필요로 하게 하였다. 이에 부응해서 나타난 것이 바로 주자학이다. 성리학의 이념을 중심으로 하는 이 새로운 사상은 정치적 성격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정치권력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 불교와 충돌할 수밖에 없었고, 급기야는 새로운 국가의 창건으로까지 나가게 된다. 이 영화에서는 고려말기의 이러한 이념적 갈등을 역관과 승려의 대화를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둘 다 살생을 기피하기는 하지만 이념적으로는 첨예하게 갈등하는 두 사람의 관계를 통해서 관객은 고려말의 사상충돌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넷째, 권력계급의 갈등이다.
이 영화를 자세히 보면 잘 드러나지 않지만 보이는 갈등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장군과 역관의 보이지 않는 갈등이다. 장군은 고려의 기존 권력 계급을 상징하고, 역관은 새로운 이념인 유교를 대표하는 계급이다. 역관 계급은 아직 힘에 있어서는 장군 계급과 상대가 안되지만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존재로서 사사건건 기존의 권력계급과 부딪힌다. 명나라의 공주를 구하자는 장군의 제의에 자신은 오직 고려로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고 하면서 거의 모든 행동에 거부반응을 보인다. 아직은 힘이 없기 때문에 소극적인 거부반응으로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불교와의 갈등에서는 아주 구체적인 행동을 보이고 있어서 대조적인 현상을 보여준다. 이 갈등이 바로 고려를 멸망시키는 유교세력의 저항을 단초적으로 보여준다. 다섯째,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갈등이다. 장군으로 대표되는 지배계급은 주진군으로 대표되는 피지배계층과 부사의 노비였던 여솔과의 갈등으로 지배.피지배 계층의 갈등을 보여준다. 이러한 피지배계층은 유교이념을 신봉하는 역관과 같은 흐름을 보여준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지배계층과 함께 움직이면서 지배계층의 대열에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는 승려는 장군의 뜻을 따르면서 장군과 함께 사막을 돌아 고려로 가겠다는 뜻을 밝힌다. 승려와 장군으로 대표되는 고려의 지배계층과 주진군과 노비로 대표되는 피지배계층이 부딪히면서 빚어내는 갈등이 바로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다섯 번째 갈등이다. 여섯째, 북원과 고려의 갈등이다. 명나라의 세력에 밀려서 북으로 쫓겨나기는 했지만 아직은 국가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북원으로서는 명나라와 가까워지려는 고려를 그냥 두고 싶어하지 않는다. 공주를 둘러싼 갈등은 표면적인 것이지만 이를 통해 원나라와 고려의 갈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런 다양한 갈등들이 이 영화에 녹아 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아주 잘 짜여진 갈등구조를 가진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 영화는 이 갈등을 보여주는 방식에서 실패하고 있기 때문에 예술성을 확보하는데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뒤에서 설명하도록 한다. (3) 신분의 갈등이 사랑의 갈등으로 이 영화 역시 남녀의 사랑이 등장한다. 민족을 초월한 사랑과 신분을 초월한 사랑이 그것이다. 민족을 초월한 사랑은 장군과 여솔이 갖는 공주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고, 신분을 초월한 사랑은 여솔과 공주가 서로에게 갖는 사랑의 감정이다. 그리고 두 남자에게는 이미 원초적으로 존재하는 신분적 차이가 존재한다. 이 모순은 공주가 여솔에게 관심을 보임으로써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공주와 장군은 민족이 다를 뿐 비슷한 지배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민족적인 문제만 넘어서면 쉽게 해결될 것 같은 사랑이지만 오히려 공주는 신분이 낮은 여솔에게 더 관심을 가진다. 이것은 고려말기의 신분적 갈등을 더욱 잘 보여주는 하나의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자체가 국제적인 관계에서 출발하고 있어서 공주와 두 남자가 벌이는 사랑의 삼각관계를 통해 국제적 갈등구조를 보여주려는 것이 주목적이었다면 공주와 가진 사랑의 삼각관계를 통해 고려의 두 계급이 가진 갈등을 심도 있게 보여주게 된 것은 부수적인 효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신분적 모순이 원초적으로 존재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진행되던 두 남자의 갈등은 나중에는 신분적 한계를 모두 잊어버리고 사랑의 갈등으로 승화된다. 그러나 이 갈등은 영화의 중심 축을 이루지 못함으로써 앞에서 제시한 여러 갈등과 함께 함몰되어 버리는 결과를 낳게 된다. 2. 이 영화의 아쉬운 점들
(1) 중심 축이 없는 구성 예술의 한 갈래인 영화는 기본적으로 서사를 포함하고 있으면 그것을 하나의 중요한 구성 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서사구조의 특성을 무시하면 안된다. 서사구조는 서술과 묘사로 진행되면서 중심축이 존재하고 나머지 것들은 중심축을 돋보이게 하기 위하여 그 비중이 한 단계가 두 단계 낮아지면서 중심축을 향해서 복무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무사'에는 중심축이 미약하거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위에서 제시한 여섯 개의 갈등으로만 보더라도 이 갈등들이 모두 표면화되어 나타남으로서 관객으로 하여금 혼란을 가져오게 하고 있는 것이다. 갈등구조로 볼 때 하나의 갈등이 표면으로 나타나고 나머지 갈등들은 표면에서 한 두 단계 아래로 가라앉으면서 표면적으로 드러나면서 관객에게 보여주려는 갈등을 도와야한다. 물이 시내를 이루어서 바다로 흘러갈 때 중심 되는 물이 있고, 나머지 물줄기는 옆에서 들어와서 강물의 흐름을 크게 하도록 자연의 섭리는 되어 있다. 그렇게 될 때 그 물은 하나의 큰 강을 이루어서 바다로 들어갈 수 있게 된다. 만약 모든 물줄기가 각각의 길을 간다면 그 강은 결코 큰 강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영화 '무사'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여러 갈등 중에서 하나의 갈등을 부각시키고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따라 들어오는 것으로 처리해야한다. 모든 갈등들이 각각의 힘을 뽐내면서 모두 표면화함으로써 이 영화는 마치 갈등 전시장처럼 되기는 했지만 어느 것 하나도 정확하게 보여주지 못하게 됨으로써 전체를 망치게되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모든 것이 스스로의 특징을 뽐내는 경연장 같은 구성을 관객들은 원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생각했다면 이런 구성을 취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이 영화는 복잡한 갈등구조를 포함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효과적으로 보여주는데는 실패함으로써 삼류영화로 전락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으로 사료된다.
(2) 모두가 주인공인 영화 모든 서사구조에는 주인공과 부주인공, 그리고 부수적인 인물들이 존재한다. 이들을 크게 구분하면 주연과 조연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서 지켜져야 할 원칙은 모든 면에서 조연이 주연을 능가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주연은 조연에 의해서 주연으로 되는데, 조연으로 뒷받침이 없이 모두가 주연처럼 행동하게 되면 주연은 결코 주연이 될 수 없다. 중국의 사막에 남겨진 고려의 무사들, 이들은 모두가 이 영화의 주연이었다. 스스로가 가진 성격과 특성들을 너무나 강하게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관객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무엇을 보았는지가 명확하게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죽이고 죽는 장면만 눈앞에 아른거릴 뿐이다. 이 영화가 이렇게 된 데는 너무나 많은 갈등을 한꺼번에 보여주려고 했던 제작자의 욕심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욕심은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고 했는데, 이 영화 역시 과욕이 영화의 수준을 떨어뜨리지나 않았는지에 대해서 깊이 있게 반성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 영화의 주인공을 누구로 하며, 어느 계급과 어느 이념을 중심축으로 삼을 것인지, 또한 민족을 초월한 사랑을 중심축으로 삼을 것인지 등에 대한 결정이 서면 그것에 가장 알맞은 성격을 지닌 인물이면서 제작자의 의도를 관객에게 가장 장 전달할 수 있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여 가장 강한 개성을 가진 인물로 보여지도록 한다. 다음으로는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의 극중 등급을 매긴 다음 이들의 개성을 등급에 따라 차등을 두어서 절대로 위 등급의 인물이 갖는 개성을 넘어서지 못하도록 해야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산만하다는 느낌을 주게되고, 그 결과는 관객에게 혼란을 주는 것으로 귀착된다. 주연과 조연의 구별과 그 성격 설정에 소홀히한 영화가 바로 '무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3) 폭력이 주제를 덮은 영화 '친구'가 개봉된 이래로 우리 나라 영화는 폭력성을 강조하는 분위기로 가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폭력성이 강조되는 영화라 하더라도 폭력성이 주제를 덮어버릴 정도가 되어서는 안된다. 폭력성은 영화를 영화답게 하여 예술성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져야지 그 이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 이상이 되면 그 영화는 그야말로 폭력만을 강조하는 폭력영화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친구'라는 영화가 폭력성에도 불구하고 좋은 평을 받는 것은 그 구성의 탄탄함과 주연과 조연의 구별이 분명하여 관객에서 혼란을 주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무사'는 어떤가? 폭력성이 영화 전체를 뒤덮고 있어서 이 영화가 국제관계를 이야기하는지, 민족과 신분을 초월한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아니면 고려말의 어지러운 산회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인지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든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사실성을 획득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런 생각으로 만들어지는 어떤 영화도 단순한 폭력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목이 뎅겅 잘라지고, 피가 솟구치는 등의 장면들은 제작자가 의도하는 바대로 관객들이 영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보조수단이지 결코 중심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할 것이다. 폭력성과 그 폭력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작품의 주제나 진행과 큰 관련이 없니 아무 때나 불쑥 불쑥 튀어나온다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야 놀라기 밖에 더하겠는가? 영화는 전체가 유기체처럼 잘 연결된 예술이지 한 부분을 떼어놓아도 하나의 훌륭한 소리로 존재하는 것이 가능하여 부분의 독자성이 강조되는 판소리와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야할 것으로 사료된다. 이상에서 살펴본 내용으로 볼 때 '무사'는 의욕이 앞선 나머지, 예술이 갖는 특성을 무시하고 만들어진 영화라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을 것으로 사료된다. 범을 그리려다 고양이를 그린 영화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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