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의세계/문학으로영화보기

"영웅"에 대한 감상평

by 竹溪(죽계) 2005. 12. 20.
728x90
SMALL

영웅이란 영화에서 말하려는 것


영웅은 중국 역사에서 진시황이 처한 위치와 의미가 무엇인가에 초점을 맞추어서 만든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역사적 진실을 담으려 했다는 점에서는 그 규모가 대단히 커야할 것 같지만 의외로 줄거리는 간단하다. 무명이라는 진시황 암살자와 진시황이 마주 앉아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마지막에는 진실이 밝혀지면서 무명이 영웅처럼 죽는다는 것이 전부다. 공중을 붕붕 날아다니는 무협영화를 생각하고 갔던 사람들은 그런 것들이 많이 나오지 않아서 실망할 것이고, 가슴을 울리는 영웅의 감동적인 모습을 생각하고 갔던 사람들은 영웅이 누구인지 잘 알 수 없을 정도로 애매한 구성 때문에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진정한 영웅은 진시황이라는 점이다. 7개의 나라로 흩어져 싸우면서 백성들의 고통은 생각하지도 않고, 말과 문자가 서로 통하지 못하였던 중국의 역사에서 그것을 하나로 통일하여서 현재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의 기초를 닦은 사람이 바로 진시황이라는 것이다. 무명이란 자객에게 내린 영웅이란 칭호는 진시황이 스스로에게 내린 칭호라고 감독은 말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제 영화를 따라가면서 하나하나 살펴보도록 하자. 위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이 영화는 엄청난 역사적 진실을 담고 있는 장대한 규모의 이야기나 태풍이 몰아치는 듯 한 위기상황도 별로 없다. 두 사람이 마주 앉아 담담히 서로의 주장을 이야기하는 것이 전부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중심으로 이 영화를 보아야 하는가? 그것은 바로 色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색은 크게 다섯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흰색과 검은 색, 붉은 색과 푸른 색, 그리고 녹색이다. 이 색들의 대비와 서로 엇바뀜을 보지 못하고 이 영화를 본다면 핵심을 놓친 감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감독은 색을 통해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영화를 본다는 것은 위에서 말한 색들이 어떻게 변화하면 어떻게 귀결되는가를 중심에 놓고 보아야 그 의미를 알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우선 무명이란 자객이 말하는 장면에서 중심색으로 처리된 붉은 색을 보자. 붉은 색은 피의 색이며, 복수의 의미이며 죽음의 의미를 가진다. 무명과 비설, 장천 등은 모두 진시황을 죽이려는 자객들이다. 이 자객들은 자신의 나라에 대한 복수심 때문에, 혹은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진시황을 죽여야 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모두 무예의 고수들로 그 중 무명이 장천과 비설, 파검을 꺾었다고 말하면서 진시황을 죽일 수 있는 거리인 10보 앞까지 가게 된다. 그런데, 무명이 세 고수를 꺾은 이야기를 할 때의 장면은 거의 붉은 색으로 처리되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복수가 복수를 낳고 피가 피를 부르는 그 당시 상황을 자객의 입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법천지의 상태에서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그런 현실이 바로 무명을 중심으로 한 자객들의 세계이고 그 당시 백성들의 세상인 것이다. 그러므로 죽음과 피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붉은 색은 무명이 말할 때의 장면에서 중심되는 색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따라서 무명의 이야기에는 오로지 죽이는 것만 등장한다.

 

그런데, 무명의 이야기를 들은 진시황이 그의 이야기가 진실이 아닐 것이라는 말을 할 때는 화면의 색이 푸른색으로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다. 푸른 물과 푸른 숲 등 모든 것이 푸른색을 띠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푸른색은 물의 색이며 생명 탄생과 희망의 의미를 가지는 색이다. 진시황이 말하는 네 사람의 관계는 죽고 죽이는 관계가 아니다. 하나의 목적을 위해 상대에게 자신의 목숨을 내 맡길 정도로 이들은 복수심에 불타고 있다. 그러나 진시황이 볼 때 이들 역시 한 사람의 백성이요 시대를 이끌어 갈 훌륭한 인재일 뿐이다. 그러므로 진시황이 말할 때는 화면의 모든 색이 푸른색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붉음과 푸름의 대비를 통해 누가 진정으로 백성을 위하고 있는가를 감독은 관객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복수가 복수를 낳는 죽음을 몰고 오는 사람들이 백성을 위하는 것인지, 아니면 개별적인 희생이 따르더라도 통일된 중국을 이루려고 하는 사람이 백성을 위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감독은 냉철하게 생각해 줄 것을 관객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우리가 놓쳐서는 안되는 두 개의 색은 바로 흰색과 검은 색이다. 검은 색은 대지의 색이고 모든 것을 풀어내는 생명탄생의 색이다. 그리고 흰색은 하늘의 색이고 죽음으로 생명을 승화시키는 색이다. 두 사람의 이야기가 끝나고 현실로 돌아오면 진시황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검은 색으로 처리되고 무명과 관계되는 사람들의 색은 모두 흰색으로 처리된다. 검은 색은 모든 색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흡수해서 키우는 색이기 때문에 대지의 색이고, 흰색은 모든 것을 튕겨내면서 어떤 색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그런 색이기 때문에 죽음과 관련을 가지는 하늘의 색이 된다. 무명과 파검, 그리고 비설과 장천 등은 모두 죽게 되는데 이들은 모두 흰색 바탕으로 처리되면서 죽음을 맡는다. 이것은 모두 죽음이라는 흰색을 통해 그들의 행동이 승화되어 중국 역사의 밑거름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검은 색으로 처리되는 진시황 관련자들의 색은 일시적으로는 모든 것을 삼키는 듯하지만 그것을 키워서 다시 뱉아내는 생명탄생의 색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검은 색은 엄청난 갈등을 안고 있는 현실의 색으로 처리되고 흰색은 죽음을 동반한 아름다움으로 승화되는 정신세계의 색으로 처리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가야할 색이 있다. 그것은 바로 파검이 진시황을 죽이러 들어갔을 때 나타났던 녹색이다. 녹색은 흰색과 붉은 색, 그리고 푸른색 등이 섞인 색이다. 파검은 객관적인 입장에서 천하를 생각하는 사람으로 등장한다. 과연 무엇이 천하와 백성을 위하는 길인가를 따지면서 붓과 칼을 함께 생각하는 사람이다. 파검이 검을 휘두를 때의 색은 죽음과 생명탄생과 승화된 죽음의 색을 모두 포함한 녹색으로 처리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역사에 대한 객관적 관찰자가 바로 파검이며 그의 색은 생명이 움트는 색인 녹색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진시황을 죽여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죽일 수 있었음에도 죽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생각들을 바탕으로 하여 영웅이란 영화를 본다면 조금이라도 더 깊이 있는 이해를 할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글을 써 보았다. 또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이 있다면 비판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제국주의적인 냄새가 강하게 풍긴다는 점이다.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