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아이들이란 영화에 보이는 계급성의 문제에 대하여
영화 '천국의 아이들'은 서사구조가 매우 간단한
영화이다. 가난하게 사는 두 남매가 오빠의 실수로 잃어버린 운동화를 다시 갖게 된다는 줄거리다. 이런 정도의 소재라면 우리의 삶 주변에서 언제
어디서나 발견할 수 있다.
일상생활에서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것들을 소재로 하고 있기 때문에 표면적으로 드러난 주제만 가지고 이 영화를 보면 지루하기 짝이 없는 작품이 될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언제나 생길 수 있고, 우리의 과거에 늘 있었을 것 같은 사건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천국의 아이들'은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현상적인 주제를 넘어서 훨씬 더 무거운 주제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어서 눈길을 끈다. 그렇기 때문에 '천국의 아이들'은 결코 가벼운 영화라고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천국의 아이들'이 가지는 이면적인 주제 혹은 배경에 깔고 있는
사상적 깊이란 것이 무엇이기에 이 작품에 대해 우리는 가벼운 영화라고 하기를 주저하게 만드는가?
결론부터 말한다면
'천국의 아이들'은 철저한 계급성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라는 것이다. '천국의 아이들'의 저변에 흐르는 사상은 철저하게 계급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갖는 계급성과 휴머니즘 외에는 어떤 것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휴머니즘이야말로 바로 프롤레타리아 계급에게 가장 순수하게 살아있는 것이란 사실을 처음부터 끝까지 강조한다. 이것이 바로 '천국의 아이들'이 우리에게 보여주려고 하는 핵심적인 주제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수준을 높여주는 것은 그것을 담는 방식에서 여타의
문화권에서는 나타내기 어려운 수법으로 계급성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그만큼 아랍권 문화의 폭이 넚고 깊이가 깊다는 것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영화를 따라가면서 이러한 사실들을 하나 하나 확인해보자. 이 영화에서 부르조아적인 성격을 가지는
것은 주인공들에게는 어떤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기본이다. 부자들이 사는 동네에 가서 정원 일을 해주고 공장에서 힘들여 일한 것 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벌었지만 자전거 브레이크가 끊어지고 넘어져서 다친 상처의 치료에 그 돈은 그냥 들어가버리고 만다.
또한 마라톤에서 삼등을 하여 운동화를 타려고 했지만 일등을 함 로써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놓치게 된다. 이런 것들은 영화 속에서 그냥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다. 감독의 일정한 의도를 반영하는 것으로 영화의
바탕에 깔려 있는 계급성을 드러내주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와 함께 이 영화의 또 하나의 축을 이루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휴머니즘이다. 인간을 사랑하는 것을 강조하는 휴머니즘이 주인공 가족에게 철저하게 배여 있음을 우리는 보아야 한다.
집세를 내지 못해서 주인에게 구박을 당하면서도 옆집에 사는 노인에게 따뜻한 음식을 대접할 줄 알고, 자신이 잃어버린 동생의 구두를 누가 가지고 있는지 알았지만 그 사람의 처지가 자신들의 처지보다 더 좋지 않다고 생각되는 맹인가족인 것을 알고 차마 운동화를 달라고 하지 못한다.
만약에 이들이 부르조아계급이었다면 소유권의 권리를 주장하고 자신의 물건을 무자비하게 빼앗았을 것이다. 그러나 주인공은 그런 행동을 보여주지 않는다. 이것은 계급성과 함께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중심 축이 된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철저한 계급의식과 휴머니즘이 양 축이 되어 진행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철저한 계급의식이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에 맞지 않는 것은 눈꼽만큼도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 바로 영화를 만든 감독의 입장으로 보인다.
호의호식하면서 공부할 수 없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마라톤에
나가면서도 운동화 하나 변변한 것을 신지 못한다. 어떻게 보면 학교 대표로 나가는 선수에게 학교측에서 운동화 하나 정도는 사서 신겨 줄만도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런 것은 일체 용납되지 않는다. 오직 자신들의 계급에 맞는 것들만 등장하지 않으면 안되고, 그렇지 않으면 바로 큰일이
나고 만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벗어난 성격을 가진 것 중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고 핵심적인 것이 바로 학교이다.
학교에서 받는 교육은 겉으로는 모든 사람이 평등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상층계급의 기호나 생활에 맞도록 진행된다.
운동화가 없으면 체육시간에 벌을 받는 것이라든지, 수업에 늦으면 무조건 혼을 내는 선생님의 의식 등이 바로 이러한 것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 외에도 부자 동네에 정원 손질을 하러 갔을 때 접근만
하여도 물 것 처럼 덤비는 개나 인터폰으로 목소리만 들려주는 사람들의 태도, 그리고 거기에서 번 돈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언덕길에서 자전거
브레이크가 끊어져서 다치는 것 등이 모두 자신들이 속해있는 계급성을 벗어난 것이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들이다.
한편 자신들의 계급에
맞는 것들은 주인공에게 전혀 부담을 주기 않으면서 오히려 자신을 편안하게 한다. 마라톤을 하면 발이 부르틀 정도로 떨어지고 냄새나는 운동화,
끝까지 순수한 마음을 간직할 수 있도록 해주는 가난 같은 것들은 오히려 이들을 편안하게 하고 따뜻하게 하는 존재들이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부르조아 계급성과 프롤레타리아 계급성의 질곡에서 갈등하고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끝내 그 순수함을 잃지 않는 주인공 가족들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표면적으로는 그러한 계급성을 전혀 드러내지 않고 아주 깊은 곳에 숨겨서 표현하는 작품으로 그것을 만든 사회가 갖는 문화의 깊이가 듬뿍 느껴지는 수준 높은 영화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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