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空의 분리를 다룬 영화 '뷰티풀 마인드'
이 영화는 수 십 년간 정신분열증을 앓은 주인공이 노벨상을 받기까지의 생애를 다룬 작품이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이른바 말하는 감동적인 휴먼드라마이며 인간승리의 작품이다. 한 사람의 일대기는 쓴 것을 평전이라고 한다면 이 영화는 그것을 대본으로 하여
만든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한 사람의 감동적인 일대기를 이 영화를 통해 보는 셈이 된다. 그런데, 영화는 예술이다. 예술은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형상적으로 변형시켜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소재는 현실에서 취해오지만 현실과 완전히 같을 수 없으며, 같으면 그것을
예술이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영화가 개인의 일대기를 소재로 했다 해도 그 영화가 개인의 일대기와 같은 것으로 보고, 그 정도로만 이해하고
넘어가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제작자가 영화를 만들 때 감동적인 사실만 전달하려고 했는지와 함께 영화라는 예술 갈래가
보여줄 수 있는 장치를 어떻게 사용했는지는 알고 볼 필요는 없는지 등에 대해 생각해보고, 그런 것이 있다면 그런 장치들을 이해하고 보는 것이
좀더 정확하게 영화라는 예술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기 때문이다.
뷰티플마인드는 수학자였던 한 사람이 50년을 넘게 정신분열증을 앓으면서도 부인의 사랑에 힘입어 그것을 극복하고 노벨상을 받기까지의 인생을 일대기 형식으로 그리고 있는 영화이다. 별로 어려울 것도 없는 담담한 인간승리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아주 감동적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무감동적이지도 않게 인간승리를 그리고 있는 영화가 바로 뷰티플마인드라고 할 수 있다. 정신분열증에 빠져서 50년 동안 헛것을 보았고, 그것과 함께 한 것이 바로 환상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으로 끝나는 영화는 어떻게 보면 무덤덤하다고 할 정도로 개인사에 치중하고 있다. 그래도 어설픈 영화상이기는 하지만 아카데미상에 올려질 정도가 되었다면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인간승리 이상의 무엇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면 과연 제작자가 영화를 통해 인간승리 이상의 무엇을 담으려 했을까는 파악해내는 것이야말로 이 영화를 훨씬 재미있게, 그리고 훨씬 심도 있게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런 관점에서 영화평을 써내려 가려고 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여지는 것은 주인공의 현실의 세계와 수학의 세계인데, 문제는 주인공이 현실의
세계와 수학의 세계를 완전히 분리시켜 생각하고 행동한다 데 있다. 주인공은 오로지 수학만을 생각하고 모든 것을 수학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젊은 시절에 만들어낸 균형이론으로 오십 년 뒤에 노벨상을 받게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알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수학의 세계는 시간이 없는 공간만의 세계라는 사실이다. 수학의 세계에 시간은 없고 오로지 공간만이 존재한다. 시간의 흐름이 멈춘 곳에
수학이 있고, 주인공이 있다. 그래서 환상의 세계 속에서 주인공의 주변에 나타나는 인물들은 공간 속에서만 존재한다. 그들은 시간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바로 공간만이 필요하고 공간만이 필요한 수학의 세계에 주인공은 살고 싶어한다. 그와는 반대로 주인공이 처한 현실의 세계는 시간만이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이 함께 존재하고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과 주인공은 맞지 않는다. 그래서 세상과 그는 서로 싫어하는
관계가 된다. 그의 자유로움은 오직 공간만이 있는 수학의 세계뿐이다. 그 속에서만 그는 자유로울 수 있다. 그러나 세상은 그를 용납하지 않는다.
주인공에 있어서 공간만이 있는 수학의 세계와 시간만이 있는 현실의 세계는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는 수학의 세계인 공간만의 세계에 머물고 싶어한다. 여기에 등장하는 세 사람의 존재가 그를 점점 더 수학의 세계 속으로 이끌어 간다. 파쳐는 냉전공간이 만들어낸 수학의 산물이다. 그리고 방탕한 룸메이트는 수학의 공간에 있는 또 다른 자아이다. 이 자아는 이 자아는 계속해서 주인공은 궁지로 몰아간다. 그렇게 함으로써 시간만이 존재하는 세상과의 단절은 점점 더 깊어진다. 조카로 등장하는 여자아이는 자신의 미래이며 현실에서의 자신의 후손과 연결되어 있는 존재이다. 이 아이 역시 주인공이 현실로 나가는 것을 적극적으로 막는다.
이와는 반대로 현실의 인물들은 주인공을 공간만이 존재하는 수학의 세계에서 밖으로
끌어내려고 한다. 부인은 사랑의 힘으로, 정신과 의사는 약물의 힘으로 주인공을 현실의 세계로 끌어내고 있다. 수 십 년 동안 계속된 이들의
노력은 마침내 현실이 시간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란 사실을 주인공이 인지하도록 하는데 성공한다. 그들은 환상을 통해 나타나는 인물들이 완전한
허구라는 사실을 주인공에게 계속해서 주입한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하나 짚어야 한다. 주인공에게 있어서 시간과 공간은 분리되어
있지만 어느 것 하나도 없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영화에서 주인공을 수학의 공간에 붙들어 두려는 세 사람이 끝까지 나타나는 것이다.
그것은 환상이 아니라 실제이며, 주인공에게 매우 중요한 세계다. 이것이 없으면 주인공의 존재도 없다. 이것을 현실의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영화의 마무리이면서 노벨상을 받는 자리에서 주인공이 부인에게 사랑의 고백을 하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너무나
빤히 보이는 결말이 아닐 수 없다. 영화라는 것이 대중예술이니 만큼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을 이해하지만 그래도 이 영화를 사랑의 승리로 오해할
수 있도록 장치한 것은 관객의 범위를 늘려보겠다는 감독의 깊지 못한 배려에서 온 것으로 보아 좋을 것이다. 그래도 위안을 받은 것이 있다면
시상대에서 한 말보다 더 뒤에 주인공의 눈을 통해 공간 속에서만 살고 있는 세 인물이 보여지는 장면일 것이다.
시간과 공간이 철저하게 분리된 상태에서 인간이 어떤 삶을 살 수 있으며, 이것이 세상에 어떻게
받아들여지는가를 생각하면서 이 영화를 본다면 훨씬 더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이 평을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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