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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단상/고향이야기

소백산중의 최연소 꼬마 전기수

by 竹溪(죽계) 2005.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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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白山中의 最年少 꼬마 전기수


  내가 태어나 일곱 살 때까지 자란 마을은 소백산맥이 서남쪽으로 달려 내리는 가운데 있는 예천군 하리면 월감이란 곳이다. 마을 뒤 북쪽으로 저수(低首)재라는 고개는 너무 가파라서 고개를 낮추고 넘어야 했는데, 그 골짜기의 길이는 수 십 킬로에 달했다.

 

  그러한 까닭에 전쟁이나면 군마들이 이 골짜기를 절대로 지나가서는 안된다는 금기어가 있을 정도다. 많은 군마가 지나가다가 복병을 만나면 꼼짝없이 전멸되기 때문이었다. 고려 때 피난 왔던 왕이 수개월 동안 머물렀을 정도이니 얼마나 깊은 산골인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그런 험한 산골마을이었기 때문에 6.25남북전쟁 뒤에는 빨치산들이 가끔 내려오기도 했었다고 한다. 거기다가 1.4후퇴 때 초토화 작전을 쓴다고 밤중에 동네 사람들을 모두 내몰고 불을 지르는 바람에 하루아침에 온 동네 사람들이 거지가 되었던 적도 있었다. 중공군은 그곳까지 내려오지 못하고 물러났기 때문에 애꿎은 민초들만 피해를 본 셈이 되었다.


   여섯 살이 되던 해의 봄에 무단가출을 하여 온 마을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사건이 있은 후로는 마을 밖으로 나가는 일이 금지되었는데, 모두 무엇이 바쁜지 막내인 나와는 아무도 놀아주지 않았기 때문에 심심하고 무료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새로운 놀이를 발견하게 되었다. 나보다 7년이나 나이가 많은 형이 학교에 갔다와서는 책을 꺼내놓고 큰 소리로 읽는데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매우 재미있을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형이 책을 읽을 때 소리 없이 형 뒤에 가서 책 읽는 소리를 들으면서 그것을 외우곤 했다. 그러다가 형이 학교에 간 후에 나 혼자 있게 되면 전날 들었던 소리와 보았던 책의 그림을 맞추어가면서 소리를 따라서 책을 읽어보았다.

 

  그랬더니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초등학교 교과서는 마음대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내용을 알고 보니 초등학교 교과서라는 것이 무척이나 재미없었다. 상당히 실망한 나는 다른 읽을 거리가 없는가 하고 주위를 살피고 있었는데 비가 오거나 하여 일을 할 수 없을 때는 어머니와 다른 분들이 모여 앉아 무엇인가를 소리내어 읽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책은 주로 어머니가 동네 아주머니들께 읽어주곤 했는데, 아마도 아주머니들은 글을 읽지 못하는 듯 했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여성들 열 명이 모여봐야 그 중 한 두 사람이 글을 알 정도였다.

 

  그런데, 어머니가 읽어주는 책이 무엇인지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것을 읽다가 서로 소리내어 울기도 하고 어떤 때는 서로 욕을 해대기도 하는 것을 보면서 호기심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나는 집 식구들이 모두 일터로 나간 뒤에 몰래 꺼내어 읽어보았는데 그 책은 심청전, 유충열전, 한양오백년가 따위의 것이었다.

 

  하나 하나 읽어보니 초등학교 교과서에 비교해보면 열 배는 재미있는 내용이었다. 심청이 어머니가 죽을 때나 심청이가 물에 빠져 죽을 때 아주머니들은 눈물을 흘렸고, 유충열전 같은 작품이나 한양오백년가 같은 작품에서 나쁜 사람이 좋은 사람을 괴롭히는 장면이 나오면 욕을 하거나 함께 슬퍼하면서 성토를 했던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그 때부터 나는 다른 일은 모두 집어치우고 그 책 읽는 것에 전적으로 매달렸다. 어머니가 읽는 소리를 듣고 그것을 그대로 외워서 읽었는데, 나중에 국문학을 전공하면서 보니까 그것이 바로 조선후기부터 등장했던 전문적으로 책을 읽어주는 전기수였다. 열심히 연습을 하면서 읽은 결과 일곱 살이 되었을 때는 우리 동네에서 고전소설을 어른보다 더 잘 읽을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조선조 이십팔왕의 사적을 야사 형식으로 다룬 가사체의 한양오백년가는 어른들도 소리를 맞추어서 읽기가 무척 힘이 든다고 할 정도였는데, 일곱 살배기인 나는 그것을 거침없이 읽어 내려갔던 것이다.

 

  그 때부터 나에게는 큰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다들 나이가 많으신 아주머니들이었고 그 중에 글을 읽을 수 있는 분은 한 두분 정도였기 때문에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한정될 수밖에 없는 상태였다.

 

  더구나 소리를 내어서 글을 읽는다는 것이 보통일이 아니었으며 한 참을 읽다보면 쉬어주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힘이 드는 무척이나 중노동에 속하는 일이었다. 이러한 상황에 내가 책을 아주 잘 읽는다는 소문이 온 동네에 퍼졌으니 아주머니들은 매번 나를 불러다가 책을 읽어보라고 온갖 감언이설로 유혹하기 시작했다.

 

  아주 잘 읽는다고 칭찬하는 바람에 상당기간 동안 아주머니들께 책을 읽어드리게 되었다.  책의 내용은 거의 다 외우고 있기 때문에 고전소설이나 한양오백년가 등을 읽을 때는 책장은 그냥 넘어가고 가끔씩 눈을 들어 할머니들의 반응을 살피면서 읽게 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이것은 전기수가 고객의 반응을 보아서 읽는 방법을 스스로 교정해나가는 방법이기도 했다. 그런데, 흥미 있는 사실은 책을 읽는 낭송자만 책의 내용을 외우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듣는 사람들도 책의 내용을 전부 외우고 있다는 것이었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오랜 시간에 걸쳐서 같은 내용의 소설을 수십 수 백 번도 더 들었기 때문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아주머니들은 심청이 어머니가 언제 죽을 것이며, 심청이가 어떻게 해서 인당수에 빠지는가 등을 모두 환하게 꿰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심청이 어머니가 죽는 장면이 가까워 오면 울 준비를 하고 있다가 동시에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훌쩍거리기도 하면서 뒤로 눈을 감은 채로 반쯤 누워서 스스로의 인생을 돌아보는 듯한 자세를 취하기도 했던 것이다.

 

  슬픔을 표시하는 방법은 아주 특이해서 그냥 울음을 우는 것이 아니라 울음과 콧소리가 묘하게 섞인 응~응~과 흥~흥~의 중간 발음 같은 이상한 신음소리를 내곤 해서 어린 나를 놀라게 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것을 보면서 책을 읽어드리는 것이 무척 재미있기도 했었다.

 

    소설책을 읽는 일은 겨울에 가장 많이 하게 되는데, 그 때는 농한기이기 때문에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서 휴식을 취하면서 여가를 보내기 때문이었다. 특히 눈 내리는 겨울밤에 호롱불을 앞에 놓고 여러 사람이 둘러앉은 상태에서 낭랑한 소리로 글을 읽어 내리면 그 분위기에 취해서 책을 읽는 나도 눈물이 나올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하얀 눈이 온 세상을 덮은 마을의 어느 집에 흐릿하고 조그만 호롱불을 밝혀 놓고 그 빛에 비추어서 글을 읽는 소리는 광창(光窓)을 통해 마을의 골목골목을 돌아나가게 되는데, 이 소리를 들으면서 골목길을 그냥 지나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광창은 우리 선조들이 가졌던 삶의 지혜가 담긴 문화현상 중의 하나인데, 온 집안에 불이 하나 밖에 없었던 시절이었으므로 안방의 호롱불은 어머니나 누나가 부엌에서 설거지를 할 때면 부엌을 향해 나 있는 광창 구멍에다 올려놓아 그 빛으로 일을 하였던 것이다.

 

  광창에 호롱불을 올려놓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을지 모르지만 우리 전통가옥은 흙벽돌로 지어졌기 때문에 벽의 두께가 상당히 두꺼워서 바깥으로 한지 종이를 붙이면 20cm 정도 면적의 공간이 생기게 되고 그곳에 호롱불을 올려놓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안방에 난 광창은 보통 두 개가 있게 되는데, 하나는 마당 쪽을 향하여 내 놓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부엌을 향해 내 놓은 것이다. 마당 쪽을 향하여 내 놓은 것은 문에 유리를 발라서 만들기도 하는데, 화장실이나 마당에 나갈 일이 있을 때 비추는 빛의 구멍이 된다.

 

  그리고 부엌으로 향한 광창은 부엌일을 할 때 빛을 비추기 위한 것이었다. 한지 종이를 통해서 비추는 빛이 흐릿하기는 하지만 온 사방이 칠흑같이 깜깜했기 때문에 그 빛으로 찾지 못하는 것이 없을 정도로 밝게만 느껴졌다.

 

  또한 호롱불을 켜놓고 책을 읽는 것은 아주 독특한 우리 민족만의 문화현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호롱불 주변만 밝고 그 범위를 조금만 벗어나면 칠흙같은 어둠이 있기 때문에 무서운 이야기를 할 때나 책을 읽을 때의 효과가 배가되었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집중되게 되는데다가 어둠이라는 천연의 장막이 형성되어 자연적인 공동체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문화는 구연자와 청중이 분리되지 않고 하나로 된 상태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함께 참여하는 공동체문화를 형성하게 된다.

 

  구비문학의 구연, 소설의 낭송, 탈춤의 공연 등이 모두 이런 현상을 잘 보여주는 전통문화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하여 일곱 살 되던 해의 길고 긴 겨울은 내내 책을 읽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게 되었는데, 날이 갈수록 차츰 책 읽는 일에 싫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혼자서는 잘 하다가도 누가 시키면 하기 싫어지는 것이 사람의 심리인지라 차츰 꾀를 부리기도 하고 핑계를 대면서 읽지 않으려고 해보았지만 그게 말처럼 쉽게 되는 일이 아니었다. 나이가 어리기도 했지만 몸이 많이 약했던 나로서는 아주머니들의 억센 팔 힘을 당할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결국 책을 읽다가 기회를 봐서 도망을 치는 길밖에 뾰족한 방법이 없게 되었는데, 그것도 함부로 도망가다 잡히면 더 혼나게 되므로 조심에 조심을 거듭해야했다. 그리고 도망을 갈 때는 반드시 산으로 도망을 가야지 들판으로 도망을 가면 반드시 잡히고야 말았다.

 

  왜냐하면 시골 아주머니들은 들판이 일터이고 그곳을 매일 누비고 다니기 때문에 들판에서는 나 같은 꼬마가 달음박질 속도에서 상대가 되지 못했다.


    수 십 미터도 가지 못해 잡히게 되기 때문에 몇 번 실패한 뒤부터는 들판으로 도망가지 않고 산으로 도망가는 방법을 택하게 되었다. 산이야말로 내가 누비고 다니던 놀이터 중의 놀이터였기 때문에 아주머니들도 함부로 따라오지 못했다.

 

   더군다나 산에는 뱀이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산으로만 도망가면 성공하는 사례가 늘어갔다. 그리고 도망가는 방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시기인데, 시기를 잘못 고르면 문밖으로 나가기 전에 잡히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니까 전쟁을 하거나 주인공이 성공을 하거나 슬프지 않은 내용 등을 읽을 때는 아주머니들이 모두 눈을 뜨고 있기 때문에 책을 놓고 방문 밖으로 나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게 되지만, 슬픈 내용을 읽을 때는 모두 그 감상에 젖어 눈을 반쯤 감고 비스듬히 누워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그 시기를 잡아서 도망을 가야 성공률을 높일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 필사본과 활자본 등의 소설을 닥치는 대로 읽었던 때문인지 아무리 이상하게 쓴 필사본소설이라도 서슴없이 읽어 내릴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거의 반강제로 아주머니들에게 붙잡혀서 읽었던 소설 낭송이 세월이 흐른 후 국문학을 전공하는 내게 톡톡히 보상해주고 있으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