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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단상/고향이야기

늑대가 돼지를 물어가는 마을의 아이

by 竹溪(죽계) 2005.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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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가 돼지를 물어 가는 마을의 아이



   늑대는 산에서 육식을 하며 살아가는 동물이다. 그렇다고 늑대가 동물만을 잡아먹는 것은 아니다. 나무의 열매도 즐겨 먹으며, 들꿩, 멧닭과 같은 야생 조류도 잡아먹는다. 식욕이 대단하여 송아지나 염소 1마리를 앉은자리에서 다 먹을 수 있다.

 

  지금부터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이러한 늑대의 먹이로 희생되어진 우리집 돼지에 대한 것이다. 내가 어릴 때 경험했던 늑대는 가족 단위로 공동생활을 꾸려갔던 것으로 보이는데, 가정을 이루고 산다는 점에서는 사람과 별반 다를 게 없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늑대는 낮에는 거의 활동하지 않지만 밤 11시를 넘겨서 사방이 고요해지면 어김없이 나타나곤 했었다. 공부를 하거나 일이 있어 늦게까지 잠을 자지 않고 앉아 있으면 우리 집 뒷산 멀리서부터 짐승들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는데, 거의 같은 시간에 같은 길을 따라 똑같은 소리가 들리곤 했다.

 

   맨 먼저 지나가는 놈은 너구리이고 그 다음은 오소리, 그 다음은 살쾡이, 그 다음은 늑대가 되는데 늑대는 내가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까지 와서 반드시 특유의 울음소리를 내다가 사라지곤 했었다.

 

  멀리 뒷산에서 시작하여 골짜기를 타고 내려온 짐승들은 첨방을 따라 한참 내려가다가 들판을 건너 동쪽의 산 속으로 사라지곤 했는데 처음에는 무섭기만 하던 그 소리가 나중에는 정겹게 들렸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가 어떤 날은 어느 녀석의 소리가 순서에서 빠지게 되는 경우가 있게 되는데 그럴 때면 그 짐승이 혹시 어디 아픈 것은 아닌지, 아니면 다른 짐승에게 잡아먹히지는 않았는지 하고 은근히 걱정이 될 정도였다.

 

  이런 것들은 모두 부모님이 과수원을 했던 까닭에 동네에서 떨어져 홀로 있는 독가촌에서 살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경험들이었다.

 

   그 중 가장 가슴아프면서도 신기했던 경험은 불쌍한 돼지들을 늑대가 물어 가는 일이었다. 덩치도 별로 크지 않은 늑대가 몇 백 근이 넘게 나가는 돼지를 어떻게 물고 갈까 하고 의아해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겠지만 늑대는 분명히 우리 집 돼지를 눈오는 겨울만 되면 물어가곤 했다.

 

   늑대가 돼지를 사냥하러 오는 때는 오랫동안 눈이 아주 많이 내리는 날이다. 늑대도 사람을 무서워하는지라 산에 먹이가 풍부할 때는 마을로 내려오는 일이 거의 없다.

 

   그러나 눈이 많이 와서 온 산이 하얗게 변하게 되고 작은 짐승들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되면 굶주림을 견디지 못한 늑대 가족은 위험을 무릅쓰고 인간이 사는 곳까지 내려와서 돼지를 물어가게 되는 것이다.

 

   지금은 늑대가 없어서 보호를 해야한다고 야단법석이지만 수십 년 전만 해도 산길을 가다가 늑대를 만나는 일은 다반사였다.

 

   어른들의 말씀에 의하면 산길을 가다가 늑대를 만나면 당황하지 말고 옆에 있는 나무를 잡고 서있기만 하면 된다고 하였다.

 

   늑대는 아래턱이 짧아서 서있는 사람은 물지 못하기 때문에 양쪽에서 이리 저리 키를 넘어서 혼을 뺀 다음 사람이 넘어지면 그때서야 문다는 것을 어른들은 알고 계셨던 것이다.

 

   따라서 키가 큰 나무를 잡고 서있기만 하면 의심이 많은 늑대는 공격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어슬렁어슬렁 사라져 버린다는 것이다.


 백두대간인 소백산의 동남쪽 기슭에 자리한 내 어릴 적 고향은 여름에는 비가 많이 오고 겨울에는 눈이 많이 내렸다.

 

   무릎이 넘게 눈이 쌓이면 토끼는 말할 것도 없고 나머지 짐승들도 자신의 집에서 꼼짝하지 않고 지내게 된다. 따라서 늑대는 사냥을 할 수 없게 되고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다가 급기야는 사람이 사는 곳으로 사냥을 오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여러 집들이 모여 있는 마을은 개도 많고 사람도 많은 관계로 너무 위험하다고 판단해서인지 산밑에 있는 독가촌의 돼지를 노렸던 것으로 보인다.

 

  우뚝 솟아오른 표대등의 줄기가 뻗어 내린 곳에 위치하고 있었던 우리 집은 오직 한 집 밖에 없는데다가 늑대가 사냥한 후에 이동하기에도 좋은 곳이었으므로 눈이 많이 내리기만 하면 녀석의 표적이 되곤 했던 것이다.


  어릴 때부터 궁금한 것은 못 참는 성격을 가졌던 나는 돼지가 불쌍한 것보다 덩치가 작은 늑대가 어떻게 해서 그렇게 큰 돼지를 물고 갈까 하는 생각에 골몰해있기가 일쑤였다. 아무리 작은 돼지라도 늑대의 힘으로 물고 갈 수는 없을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작은 돼지를 물어 가는 날이면 아무 흔적도 남아있지 않고 산으로 올라간 늑대 발자국만 남아있기 때문에 늑대가 돼지를 어떻게 해서 물고 가는지 전혀 그 방법을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초등학교 4학년 겨울, 해마다 그렇듯이 눈이 엄청나게 내렸던 어느 날 수 백 근도 넘는 돼지가 밤사이에 사라지고 만 사건이 일어났던 것이다. 다음날 아침 나는 돼지우리에 가서 돼지가 어떻게 해서 늑대에게 물려갔는지를 살펴보기로 했다.

 

   그랬더니 거기에는 놀라운 흔적이 남아있었다. 평소에는 10cm 정도의 높이도 뛰어넘지 못하는 돼지가 50cm가량이나 되는 높이의 우리 막이를 뛰어 넘은 자국을 남겼던 것이다. 육중한 몸매의 돼지가 뛰어 넘었으니 흙은 파이고 미끄러진 흔적이 역력했다.

 

   그런데, 그 옆에 있는 발자국은 나를 더욱 흥분시켰다. 우리를 뛰어 넘은 돼지가 눈 위로 걸어서 산으로 간 발자국이 있는데, 양옆으로는 앞뒤로 늑대의 발자국이 선명한 것이 아닌가!  결국 두 마리의 늑대가 와서 돼지를 몰고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돼지와 늑대의 발자국은 세 줄로 나란히 서서 밭을 지나 산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돼지 스스로 늑대의 밥이 되기 위해 산으로 올라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산에 가면 위험하니 가지 말라고 어머니께서 야단을 하셨기 때문에 당장은 그 이상 확인해볼 길이 없었다.

 

  그러나 내가 누구인가? 일단 호기심이 발동되면 그것을 풀지 못하면 견디지 못하는 성격이었으므로 도저히 그대로 참을 수가 없었다. 어머니가 다른 일을 하시는 동안 나는 위험을 무릅쓰고 과수원의 울타리를 넘어 뒷산으로 혼자 올라가 보았던 것이다.

 

   신라 때부터 유명한 절이 있었다는 이곳의 산은 고려장 흔적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어서 보기에도 별로 기분이 좋은 곳은 아니었다. 밭을 지나 산으로 올라간지 불과 30미터도 가지 못한 곳에 핏자국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우리 집의 바로 뒤에 있는 고려장 터 자리에 이르자 하얀 눈 위에 핏자국만 어지러이 흩어져 있고 다른 것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평평한 장소까지 돼지를 몰고 와서는 이곳에서 돼지를 소리 없이 죽여서 밤새도록 분해하여 자신들의 보금자리로 날랐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으로 늑대 가족은 포식을 하고 당분간 사냥을 하지 않아도 되었겠지만 돼지를 잃어버린 우리 집은 이만 저만 상심한 것이 아니었다.

 

  돼지는 농가 부업으로 아주 중요한 구실을 하는 존재인데 정성 드려 길러 놓은 놈을 잃어버렸으니 부모님의 심정이야 오죽했겠는가? 그런데, 또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늑대란 놈이 돼지를 물러 올 때는 주로 아버지가 계시지 않을 때라는 사실이다. 

 

   아마도 늑대는 먹이를 정확하고 안전하게 확보하기 위하여 오랫동안 염탐을 하여 확실하게 성공할 수 있는 시간을 계산해서 사냥을 했던 것으로 이해된다.


  번번이 돼지를 잃어버리게 되자 부모님도 늑대에 대한 방비에 힘을 쏟지 않을 수 없으셨다.

 

  겨울만 되면 돼지우리의 칸막이를 더욱 높고 견고하게 치고, 새끼줄로 얽어매기도 하지만 언제나 판정패 당하는 것은 부모님이었다. 돼지우리를 단속하는 것만으로는 늑대를 막을 수 없게 되자 부모님은 돼지를 지키기 위하여 덩치가 상당히 큰 개를 사다가 키우기 시작했다.

 

  시골에서 키우는 개는 밖에서 잠을 자는 관계로 늑대가 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에 좋은 파수꾼이 되었다. 우리 집에서 기르는 개는 모두 돼지우리 옆의 두엄더미에서 잠을 잤는데, 두엄이 썩으면서 따뜻한 기운을 내 뿜기 때문이었다.

 

  늦가을이 되면 두엄 위에서 자고 아침에 일어나서 나오는 개의 등은 서리가 하얗게 내려앉아 있는 모습을 목격하곤 했었다. 그해 겨울도 유난히 눈이 많이 왔었는데 하루종일 얼음지치기를 해서 피곤했던 나는 어머니 옆에서 온 방을 굴러다니며 다리를 구부렸다 폈다 하면서 곤한 잠을 자고 있었다.

 

다리를 구부렸다 폈다하는 것은 앉은뱅이 썰매를 탈 때 속도를 내기 위해 뾰족한 침을 얼음에 찍으며 엉덩이를 들었다 놨다 하면서 동시에 다리를 구부렸다 폈다 해야했기 때문이었다.

 

   온 종일 썰매를 탄 날은 잠을 자면서도 낮에 하던 그대로 다리를 움직이더라고 어머니께서 말씀하시곤 했었다. 그런데 그날은 잠결에도 어머니가 소리를 지르면서 마루로 뛰어나가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놀란 나도 잠을 깨서 밖으로 나가기는 했지만 그 때는 이미 늑대가 도망가고 난 후였다. 어머니의 말씀에 의하면 두엄 위에서 자던 개가 두 번 정도 짓더니 입을 막힌 것처럼 이상한 소리를 내더라는 것이었다.

 

  직감적으로 늑대가 온 것은 안 어머니는 소리를 벽력같이 지르면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셨던 것이다. 그 서슬에 나는 잠이 깨서 밖으로 나갔던 것인데, 사람이 나오는 것을 본 늑대는 이미 산으로 줄행랑을 친 뒤였다.

 

  충직한 개 덕분에 수 백 근이 넘게 나가는 돼지는 지킬 수 있었지만 다음 날 아침에 개의 모양을 보고는 어머니와 나는 경악을 금할 수가 없었다. 돼지가 상당히 큰놈이었기 때문에 두 마리의 늑대가 왔던 것으로 보이는데 개가 자신들을 보고 짓자 우선 개를 협공했던 것이다.

 

   추측하건대 한 놈은 개의 주둥이를 물어서 개가 짓지 못하게 하고 또 한 놈은 개의 엉덩이를 물어뜯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개의 주둥이는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고, 엉덩이 한쪽은 생살을 물어 뜯겨서 껍질과 피가 범벅이 되어서 누워있었던 것이다.

 

   동물병원 같은 것이 없었던 시골이라 개를 치료할 생각도 하지 않고 낫기만을 기다렸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그 해 겨울이 다 갈 때까지 개의 엉덩이는 낫지를 않고 계속해서 피고름이 흐르고 있었다.

 

   더 이상 개를 키울 수 없게 된 아버님은 따뜻한 봄날에 개를 가져다 시장에 팔고 오셨다. 돼지를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버린 개의 충정을 생각하면 늑대가 미워져야하겠지만 지금까지도 나는 늑대가 밉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니 희한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편에서는 지키려 하고 한편에서는 빼앗으려고 하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보면서 깊은 산골에서 외롭게 살고 있었던 어린 나는, 어른들의 생각과는 상관없이 늑대와 마음으로 통하는 아주 절친한 친구사이가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자연과 인간이 함께 사는 방식이 돼지를 매개로 하여 사람과 늑대 사이에 형성될 수 있었다는 놀라운 사실이 지금도 전설처럼 내 기억 속에 살아서 숨을 쉬며 또 다른 신화를 형성해나가고 있음을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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