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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단상/고향이야기

개구쟁이들과 땅벌의 한판 전쟁

by 竹溪(죽계) 2005.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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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쟁이들과 땅벌의 한판 전쟁

 

 

 

 

 

푯대등 사건이 있은 후로 아이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좀 줄어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학교에서 돌아오면 나는 가방을 집어던지고 동네로 놀러 가곤 했었다. 우리들은 몰려다니면서 놀거리를 찾기가 일쑤였는데, 우리들에게 있어서 좋은 놀이감으로 보이는 것이 어른들에게는 왜 항상 말썽을 피우는 것이 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우리가 하는 일이라는 것을 대강 따져보면,  집에 있는 종이를 모두 모아서 딱지를 만든 다음 그것으로 하는 딱지치기, 무밭에 가서 무의 파란 부분을 발로 차서 잘라먹는 것, 밀이나 보리가 익을 때면 그것을 잘라서 불에 구워먹는 것, 수박 같은 것이 익으면 가끔가다가 그것을 하나씩 따먹는 것, 고구마나 감자를 캐다가 산에 가서 구워먹는 것, 여기 저기 불장난을 하는 것 등이었는데,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다지 심각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른들은 한결같이 우리를 쫓아와서 못하게 하곤 했었기 때문에 우리들은 주로 어른들의 눈을 피해서 이런 일들을 하곤 했었다. 그러나 다른 일에 바쁜 어른들인지라 우리가 하는 일을 모두 감시할 수는 없었던 관계로 신나게 그런 일들을 하고 다녔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처럼 우리들이 하는 일에 대해 어른들은 늘 부정적이었고 압박과 설움을 안겨주곤 했지만 딱 한가지 우리들에게 부탁하는 경우가 있어 우리를 흥분하게 만들곤 했었다. 우리나라의 전통마을은 어느 부락을 막론하고 동네 입구에 큰 느티나무가 있어 돌과 흙으로 잘 보호되어 있으며 해마다 정월보름이 되면 그곳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로 되어 있었다.

 

   소쿠리처럼 되어 있어서 옛날부터 피난처로 활용되었다고 하는 우리 마을에도 동네 들어가는 입구에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었고 그 나무는 우리들의 키만큼 되는 높이의 단이 쌓여져 있었다. 그곳에는 넓은 공터가 마련되어 있었는데 그곳이 주로 우리들이 모여서 일을 모의하는 장소였다.

 

   어느 날인가 열 명 정도가 모여서 무슨 놀이를 할 것인가 하는 의논을 하고 있던 우리들에게 두세 분의 어른들이 오셨다. 또 무엇인가 야단맞을 일이 있나보다 하고 잔뜩 긴장하던 우리들은 천만 뜻밖에 부탁할 것이 있다는 어른들의 말씀을 듣게 되었다. 처음에는 믿어지지 않아 우리들의 귀를 의심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어른들 말씀을 들어보니, 느티나무가 서 있는 곳은 마을 입구이면서 약간의 언덕배기였는데, 땅벌이 구멍을 파서 집을 지었다는 것이었다.  마을은 느티나무를 돌아서 길이 나있었던 탓에 그 땅벌이 지나가는 어른들을 공격해서 벌써 여러 사람이 쏘였다는 것이었다.

 

   이 땅벌이 그대로 계속 있을 경우 내년 정월 보름에 지내는 마을 제사에도 지장이 있을 것이므로 그 땅벌을 내쫓아야 하는데 어른들은 바쁘기 때문에 그것을 하기가 어려우니 우리들에게 그 땅벌을 내쫓아 달라는 부탁이었다.

 

  우리들은 즉석에서 그 제의를 수락하고 그런 일은 우리가 전문이니 걱정하시지 말라고 하면서 빠른 시일 내에 내쫓겠다고 호언장담을 했다. 그 대신 우리들에게 몇 가지의 장비를 지원해주어야 한다는 조건을 함께 붙여서 말이다.

 

   우리들이 요구한 몇 가지 장비라는 것은 삽 몇 자루와 가마니 여러 장, 불쏘시개 할 마른나무 약간, 길고 굵은 철사 약간, 그리고 묵은 된장 한 그릇, 때려서 큰 소리를 낼 수 있는 양동이와 세숫대야 몇 개 등이었다. 그런 정도는 금방 준비해 준다고 약속을 받고 헤어진 다음 우리 모두는 들뜬 마음으로 그 날밤을 보내게 되었다.

 

 

 

  다음 날 학교에 갔다 온 후 우리들은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가게 되었다. 땅벌과의 전쟁은 여러 단계로 진행되는데, 첫 번째는 진흙으로 벌집의 입구를 막는 일이었고 다음 단계는 연기를 피워서 벌을 질식시키는 일이었다.

 

   그 다음 단계는 긴 철사를 집어넣어서 마구 휘저어서 벌집을 초토화시키는 것이었다. 그리나 이 일은 하루 이틀 정도의 시간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몇 달에 걸쳐서 해야하는 장기간의 싸움이었다.

 

   왜냐하면 땅벌은 벌 중에서 가장 지독한 종류로 사람을 공격하기도 하지만 아주 깊은 곳에 구멍을 파서 살기 때문에 그것을 초토화시키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었고, 땅벌도 필사적으로 저항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땅벌에게 쏘이는 것은 무서운 일이었기 때문에 벌에게 쏘이지 않도록 최대한 주의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주로 얼굴이나 머리를 공격하는데 땅벌에게 쏘이면 퉁퉁 붓는데다가 고열을 동반하여 며칠 동안을 학교에 못 갈 수도 있었으므로 우리들 역시 조심에 조심을 거듭하면서 이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 때부터 우리들은 최대한 많은 인원을 모아서 공격조, 지원조, 꼬꼬댁조로 조를 나누어 땅벌과의 전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공격조는 가마니에 작은 구멍을 뚫어서 눈만 보이도록 하고 온몸에 그것을 뒤집어쓰고 진흙으로 벌집을 틀어막는 일을 주로 하였고, 지원조는 논에서 진흙을 퍼 와서 그것을 적당한 크기로 만들어 놓는 일을 했다.

 

   그리고 꼬꼬댁조는 계속해서 큰 소리로 닭소리를 내는 조인데, 이는 땅벌이 닭을 제일 무서워한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닭은 어떤 종류의 벌에게도 천적이었는데, 벌이 닭을 공격하는 일은 절대로 없었다. 게다가 벌이 모르고 덤벼들면 닭은 그것을 한 입에 집어먹기 때문에 벌에게는 닭이 제일 무서운 존재였던 것이다.

 

    경험으로 그것을 잘 알고 있었던 우리들은 몇 명이 계속해서 꼬꼬댁 꼬꼬댁 하고 큰 소리로 외쳐서 벌의 접근을 막았던 것이다. 그리고 여자아이들은 멀리서 양동이나 세숫대야 등을 막대기로 치면서 응원을 하곤 했기 때문에 벌과의 전쟁이 있는 날이면 온 동네 전체가 시끌벅적하게 마련이었다.

 

  하나의 구멍만을 남겨놓고 모든 구멍을 틀어막은 우리들은 그 때부터 불쏘시개를 이용해서 벌집 앞에 연기를 피워 벌이 질식하도록 하는 작업을 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되면 땅벌도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 거의 모든 벌들이 나와서 우리들 주위를 뱅뱅 돌면서 공격을 하였다. 땅벌은 정말 무서웠는데 우리들이 공격권 안에 들어가기만 하면 끝까지 쫓아와서 침을 놓은 다음 죽어버리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하다 보면 우리들 중 한 두 명은 반드시 벌침에 쏘이게 되는데, 그러면 된장을 준비하고 있던 지원조의 한 사람이 쏘인 자리에 잽싸게 된장 덩어리를 붙여주었다. 묵은 된장의 효능은 신기해서 독이 퍼지기 전에 바르기만 하면 약간 붓는 정도로 그치기 때문에 우리들 옆에는 묵은 된장이 언제나 준비되어 있었던 것이다.

 

   땅벌이 동네의 神木인 느티나무 아래에 집을 짓는 것은 봄이 한참 무르익을 4,5월경이었으므로 이 때부터 벌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독이 오를 대로 오른 땅벌이 발악을 하게 되면 동네 전체를 공격 대상으로 삼기도 하기 때문에 땅벌과 전쟁이 계속되는 동안은 갓난아기들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단속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런데, 벌은 밤에는 활동하지 않는지 해만 지면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어 버리곤 해서 우리들을 서운하게 하기가 일쑤였다. 해가 져서 벌들이 사라지고 나면 우리들은 두꺼운 진흙덩어리를 여러 개 만들어서 모든 구멍을 틀어막은 다음 각자 집으로 돌아가곤 했었다.

 

   그 다음날도 학교 공부는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집으로 돌아온 우리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모두 느티나무 아래로 모여들어 가장 먼저 벌집을 살펴보게 되는데, 놀랍게도 벌들이 우리가 학교 간 사이에 우리가 막았던 곳에 다시 구멍을 내고 평상시처럼 활동을 하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곤 하였다.

 

    그러면 우리들은 이미 준비해 놓은 장비들을 다시 꺼내와서 벌집을 공격하여 전날보다 더 강하게 벌집을 쑤셔놓게 된다. 벌들 역시 전날보다 더 강화된 전력으로 우리를 공격해오기 마련으로 심한 경우는 아주 작은 구멍만을 뚫어놓은 가마니 속으로 들어오기도 했었다.

 

    일단 가마니 속으로 벌이 들어오면 얼굴이나 머리 중 어느 한곳은 벌침을 맞을 수밖에 없게 되기 때문에 이는 아주 심각한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가마니를 벗겨내는 데 약간의 시간이 걸리므로 가끔씩은 된장을 바르기 전에 이미 부어오르는 경우도 생기게 되어 그 아이는 당분간 공격조에서 제외되는 비극을 당하기도 하였다.

 

 

 

  또한 벌들이 우리를 공격하다가 길가는 행인을 공격하기도 하고, 물동이를 이고 가는 어머니들을 공격해서 이에 놀란 어머니들이 물동이를 깨는 일도 종종 있게 마련인데, 이렇게 문제가 심각해지면 벌집 쑤시는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것을 내쫓지 않으면 앞으로도 계속해서 시달림을 받아야 한다는 여론이 힘을 얻어서 남자 어른들은 그런 것에 개의치 말고 일을 계속하라고 우리들에게 힘을 보태주곤 하였다. 이렇게 하여 길고 긴 싸움은 그 후로도 계속되는데, 약 두 세 달은 족히 걸리는 것이 보통이었다.

 

  땅벌이 지독하다는 것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에 못지 않게 우리들도 보통이 아니었기 때문에 결국 땅벌의 판정패로 그 싸움은 막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아마 땅벌과 인간의 싸움에서 땅벌의 상대가 어른이었다면 어른들이 판정패를 당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땅벌은 자신의 집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이지만 우리들은 어른들에게 허락 받은 유일한 놀이였기 때문에 더더욱 필사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불장난을 해도 야단맞지 않고, 마을에 있는 어떤 장비를 가져다 써도 아무 문제가 없는 일은 땅벌과의 전쟁뿐이었으므로 이일만큼 우리를 신나게 하는 일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비록 숙적이긴 하였지만 길고 긴 시간을 우리들과 함께 놀아주었던 땅벌이 결국 견디지 못하고 어디론가 이사를 해버리고 말았다.

 

   학교에서 돌아와 다시 공격 준비를 하고 있었던 우리들은 땅벌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아주 절친한 친구를 잃어버린 듯한 아쉬움으로 어찌해야 할 바를 알 수 없을 정도였다. 땅벌들은 오랜 시간동안 우리들의 전의를 불태우게 해주었던 대단한 적수였기 때문에 땅벌이 사라지고 난 후 상당히 많은 시간을 우울한 생활로 보내야 했다.

 

    그래서 그날은 우리들 모두 풀이 죽어서 집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어른들은 우리들을 놀리면서 부모가 죽어도 그렇게 기운이 없지 않을 녀석들이 땅벌이 없어졌다고 그렇게 기운이 없냐고 하시는 것이었다. 그런 말에 대꾸할 기운도 없어진 우리들은 그 때부터 당분간은 집에 틀어박혀서 각각의 상념에 잠기는 관계로 만나는 일이 뜸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우리들이 누구인가? 어떤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언제나 새로운 놀이를 찾아내는 귀재 중의 귀재들이 아닌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기어코 새로운 놀이감을 찾아내고 마는 우리들은 산으로 들로 쏘다니면서 일을 저지르게 되었고, 쫓고 쫓기는 어른들과의 새로운 전쟁은 다시 시작되기 마련이었다.

 

   어른들에게 도망 다니면 다닐수록  땅벌이 더욱 그리워지는 것은 땅벌이야말로 어른들에게 대우받으면서 놀 수 있었던 유일한 존재였던 까닭에서였을 것이다.

 

 

 

상급학교에 진학하면서 우리들은 하나 둘 마을을 떠나게 되었고, 지금은 마을을 지켜주던 느티나무마저도 죽어버렸지만, 땅벌과 벌였던 전쟁의 추억은 내가 기억해내기만 하면 언제든지 짜릿한 긴장과 쾌감을 동반하며 어린 시절로 돌아가게 하는 마술로 내 안에 건재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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