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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단상/고향이야기

쥐와 사람의 머리싸움

by 竹溪(죽계) 2005.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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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을 방불케 하는 쥐와 사람의 머리싸움


   이 세상에 종말이 온다면 가장 나중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동물은 누구일까? 나는 주저 없이 쥐와 바퀴벌레를 꼽을 것이다. 그만큼 쥐와 바퀴벌레는 번식력과 생활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바퀴벌레가 우리 나라에 들어온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쥐는 우리 민족이 살아온 만큼의 시간을 우리와 함께 살아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쥐는 우리들의 생활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왔다. 하지만 사람들은 쥐를 결코 좋아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쥐는 생산은 전혀 하지 않으면서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잡식성인데다가 사람들이 아무리 잘 숨겨도 반드시 찾아내어 훔쳐가고야 마는 얄미운 도둑의 습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도둑을 잡기 위한 전쟁의 일환으로 어린 시절의 우리는 쥐꼬리를 가지고 등교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아무리 경계를 해도 막을 수 없고, 약을 놓아서 죽이고 또 죽여도 끊임없이 번식해 가는 쥐라는 녀석은 정말이지 대단한 존재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쥐와 사람의 전쟁은 오랜 시간 지속되어 왔지만 승자도 패자도 없이 늘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람이 쥐를 많이 죽이면 쥐는 훨씬 빠른 속도로 번식하고 죽이지 않으면 스스로 목숨을 끊어서 늘 그 숫자를 유지한다고 하니 쥐야말로 가장 유능한 경제 전문가임에 틀림없다. 공급과 수요를 정확하게 파악하여 자신들의 숫자를 조절하는 능력이야말로 쥐가 인간을 능가할 만한 놀라운 지혜의 산물이 아닐까한다.


  어린 시절의 나는 쥐와 더불어 끝도 없는 싸움을 계속하였다. 사람들은 쥐가 주로 밤에만 활동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람이 없는 곳에서는 낮에도 용감하게 활동을 한다.

 

  그 중 하나가 알을 품고 있는 암탉을 공격하는 것이다. 쥐가 암탉을 공격할 때는 암탉이 잠잘 때도 아니고 모이를 먹을 때도 아니다. 그런 경우 잘못 덤벼들었다가 닭부리에 쪼이기라도 하면 큰 상처를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절대로 덤벼들지 않는다.

 

  쥐가 암탉을 공격할 때는 오직 암탉이 알을 품고 있을 때 뿐인데, 처절할 정도로 유혈이 낭자해진다. 알을 품고 있는 동안의 암탉은 알을 병아리로 부화시키기 위해 하루에 한번씩만 둥지에서 내려온다.

 

  그리곤 엄청나게 큰 닭똥을 눈 다음 하루치의 모이와 물을 한꺼번에 먹고 재빨리 알이 있는 둥지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때 나는 모이 먹으러 내려온 암탉의 한쪽 엉덩이가 피로 범벅이 되어 있는 것을 가끔 보게 되었던 것이다.

 

  처음 그것을 목격한 날은 너무도 놀랍고 암탉이 불쌍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궁금해하는 내게 그것은 쥐가 암탉의 엉덩이를 갉아먹어서 그런 것이라고 어머니께서 가르쳐 주셨다.

 

   암탉이 알을 품을 때는 깃털 하나도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그 틈을 이용해 큰 쥐가 와서 암탉의 엉덩이를 이빨로 상처를 내어 살을 파먹고 피를 빨아먹는다는 것이었다. 그런 일이 생기면 어머니께서는 내게 중대한 임무를 맡기셨는데 그것은 암탉이 알을 품고 있는 둥지를 지키기 위한 불침번을 서는 일이었다.

 

   잘못하면 암탉이 죽을 수도 있고, 병아리를 까지 못하면 닭고기 먹기가 어려운 것은 물론이고 시장에 내다 팔아서 충당하는 내 용돈 수급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몇 시간을 쪼그리고 앉아서 쥐구멍을 지키고 있으면 어미로 보이는 큰 쥐가 우선 구멍에서 머리를 내밀고 사람이 있나 살피는 것처럼 조심조심 두리번거리는 것을 보게 된다.

 

   쥐는 눈이 매우 밝아서 교묘하게 숨어있지 않으면 금방 알아차리고 도망을 가기 때문에 나는 아주 작은 구멍을 뚫은 가마니를 뒤집어쓰고 숨을 죽인 채 상당히 오랜 시간 쥐의 등장을 기다려야 했다.

 

  큰 어미쥐가 나와서 주위를 살핀 다음 안전한 것을 확인하게 되면 이상한 소리를 내어 작은 쥐들을 불러 모은다. 그리곤 모두 함께 암탉이 알을 품고 있는 둥지로 올라가는 것이다. 이때가 바로 내가 등장해야 하는 순간이다.

 

   나는 갑자기 일어나서 작대기를 들고 소리를 지르며 쥐를 공격하는데 약오르게도 단 한 마리의 쥐도 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도망가는 데는 이골이 난 쥐들인지라 나의 등장과 공격에 별로 놀라지도 않고 유유히 쥐구멍으로 자취를 감추고 마는데, 그렇게 하고 나면 최소한 일주일은 둥지 주변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렇듯 쥐와 사람은 쫓고 쫓기는 숨바꼭질을 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쥐가 가장 좋아하는 먹이로는 아마도 사람이 맛있게 요리해놓은 음식인 것으로 생각된다. 사람이 요리해놓은 음식은 맛도 좋지만 냄새 역시 좋으므로 후각이 발달한 쥐가 이것을 놓칠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이라 음식을 먹다가 남기게 되면 골방이나 찬장 등에 숨겨 놓는데, 이것은 쥐에게 먹이를 상납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숨기고 또 숨겨도 쥐의 후각은 피해갈 수가 없기 때문에 늘 도둑을 맞게 되었던 것이다.

 

   나무로 된 찬장에 숨겨놓으면 뒤쪽으로 가서 나무를 이빨로 뜯어낸 뒤 음식을 훔쳐먹고, 골방에 있는 음식은 벽에 구멍을 파서 들어간 후 훔쳐먹는다.

 

  문이나 약한 부분들은 두꺼운 양철로 덧 씌워 놓기도 하지만 그것조차 틈을 만들어서 들어가기 때문에 쥐를 완벽하게 퇴치할 수 있는 방법은 없어 보였다. 그럴때면 어머니께서는 부엌의 천장에 음식을 매달아 놓는 방법을 취하셨다.

 

   우선 네모난 부엌의 한 가운데 서까래에 못을 박는다. 그 못 아래로 미끄러운 철사 줄을 늘어뜨리고 바닥에서 약2미터 정도의 높이가 되도록 한 다음, 갈고리를 만들어서 그 갈고리에 음식을 넣은 광주리를 매달아 놓는 것이 그것이다.

 

   그렇게 해 놓으면 아무리 머리가 좋은 쥐라도 공중을 날아가기 전에는 음식을 훔쳐먹을 수 없으리라 생각하셨던 것이다. 이 방법은 과연 효과가 있어서 며칠 동안 쥐는 광주리에 넣어 매달아 놓은 음식에 접근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도 결코 오래가지 못하는데, 쥐 역시 나름대로 머리를 짜서 궁리를 거듭한 끝에 결국 방법을 터득해 내고야 말기 때문이었다. 쥐가 터득한 광주리 공략 방법은 지금 생각해보아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기발하고 정교하기 그지없다.

 

   며칠을 고민하던 쥐들은 어느 날부터 천장으로 올라간 다음 철사 줄이 매달려 있는 서까래의 못 부근에 가서 광주리 안으로 떨어지는 방법을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모든 쥐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노련한 어미 쥐 등은 매우 익숙한 몸짓으로 광주리 안으로 떨어져서 하룻밤 사이에 보관해 놓은 음식을 몽땅 먹어치워 버리는 것이다. 그 속에 들어간 쥐가 혼자만 먹는 것은 물론 아니다.

 

  광주리로 들어가지 못한 쥐들의 몫까지 아래로 던져 주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정신을 십분 발휘하면서 음식을 몽땅 훔쳐먹고 마는 것이다.

 

   이처럼 쥐들이 음식을 먹느라고 법석을 떨 때면 바로 옆에서 잠을 자고 있던 닭들이 놀라 푸드덕거리고 장닭은 꼬꼬댁 꼭꼭 하고 소리를 지르기도 하였다. 이렇게 하여 잠깐 동안의 평화가 깨지고 쥐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나는가 할 때 나와 어머니는 또 다른 방법을 모색하게 된다.


 고민 끝에 생각해낸 것은 쥐가 광주리에 떨어질 때 그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방법이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비용을 약간 들여 오일장이 서는 날 면사무소가 있는 읍내에 가서 하얗고 아주 미끄러운 양철을 사와야 했다. 사온 양철을 잘 마름질해서 광주리의 테두리 보다 약간 넓은 갈모 같은 고깔을 45도 각도가 되도록 만든다.

 

  약 한나절 정도의 공을 드리면 양철 고깔이 완성되는데, 이 때 가장 주의해야할 것은 쥐가 발톱을 붙일만한 턱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양철의 끝과 끝이 만나는 부분을 잘 접은 다음 못 같은 것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잘 말아야 하기 때문에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그러나 썰매를 만들거나 올가미를 만들거나 하는 일은 내가 선수였으며 가장 잘하는 일 중의 하나였으므로 정교하고도 예쁜 고깔을 만드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것이 완성되면 한쪽에 잘 모셔두었다가 저녁을 먹은 후 잠자리에 들기 전에 매달린 광주리에 음식을 넣은 다음 고깔을 덮어놓게 된다.

 

  방안의 불이 꺼지고 사방이 칠흙처럼 어둡게 되면 미처 30분이 지나지 않아 부스럭 부스럭 하는 소리가 부엌에서 들려오고, 10분 정도가 더 지나면 그 때부터는 아주 규칙적이고 독특한 음향이 들려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주르륵, 철퍼덕, 주르륵, 철퍼덕’하는 소리가 거의 몇 초 사이로 계속해서 들려오는데, ‘주르륵’하는 것은 천장에서 떨어진 쥐가 고깔 양철에 미끄러지는 소리이고, ‘철퍼덕’하는 것은 떨어진 쥐가 부엌 바닥에 부딪치는 소리였다.

 

  그 소리는 상당히 오랜 동안 지속되었으며 또한 규칙적으로 들려오기 때문에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쥐가 떨어지는 부엌 바닥에 물동이를 갖다 놓으면 쥐가 물에 빠져 죽겠지만 그 철퍼덕 소리를 내가 너무 좋아한다는 것을 잘 알고 계셨으므로 어머니께서는 물동이를 갖다 놓으시는 일 따위는 결코 하지 않으셨다.


 이처럼 쥐와 사람은 서로 부대껴 가면서 아옹다옹 살아가는데, 쥐는 쥐 나름대로 여러 가지 고통에 시달리기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여름이 와서 장마철에 비가 많이 오면 쥐구멍에 물이 들어가기 때문에 쥐들은 높은 곳으로 이사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런데, 아직 어린 새끼가 있기 때문에 잘못 이사를 가다가는 매나 뱀이나 독수리에게 잡아먹힐 위험이 많았으므로 그런 짐승들이 거의 활동하지 않는 한낮을 골라서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부딪치는 문제가 개울을 건너야할 때인데, 헤엄을 잘 치지 못하는 새끼들이 있기 때문에 조심에 조심을 거듭하는 것처럼 보였다.

 

   개울을 건널 때 어미쥐가 쓰는 기발한 방법은 나로 하여금 경탄을 금할 수 없게 만들곤 하였다. 먼저 어미쥐가 맨 앞을 선 다음 형제 순서대로 꼬리에 꼬리를 물게 한다.

 

  그리곤 어미가 헤엄을 쳐서 개울을 건너가게 되는데, 개울을 다 건넌 후에 어미쥐가 육지에 상륙하면 그 다음이 가관이다.

 

  어미쥐가 어느 정도까지 육지에 상륙하면 네 발을 땅에 박고 단단히 버티고 있으면 맨 마지막에 있던 새끼부터 앞에 있는 형제 쥐의 등을 밟고 육지로 올라간다.

 

  모든 쥐들이 마찬가지의 방법으로 육지에 다 올라가면 그때서야 어미쥐는 땅에 박았던 발톱을 뺀 다음 새끼를 데리고 유유히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정말 멋진 광경이 아닌가? 나는 이 광경을 목도할 때마다 놀라움으로 감탄하곤 하였다.


 또한 쥐는 뱀의 좋은 먹이가 되기도 하기 때문에 뱀을 피해서 여러 곳을 떠돌아 다녀야 하는 운명에 처하기도 한다.

 

  가장 위험한 때가 역시 새끼를 낳은 때인데, 야들야들한 새끼를 뱀이 가장 좋아하기 때문이다. 쥐가 생각하기에 가장 안전한 곳은 역시 사람이 사는 곳이라고 여겼음인지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의 천장에 올라가서 새끼를 자주 낳는다.

 

  시골에서 밤에 누워 있으면 천장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반자를 가로질러 쥐가 뛰어 다니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주로 새끼들이 장난치느라고 그렇게 하는 것이다.

 

  쥐가 이렇게 뱀을 피해 사람의 집으로 들어가면 뱀도 기둥을 타고 지붕 위로 올라가 쥐새끼들을 잡아먹고 포식을 하기도 하는데, 배가 잔뜩 불러진 뱀이 기분 좋게 졸다가 그만 구멍 난 반자 틈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심심찮게 발생하곤 하였다.


 쥐가 영악하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다른 행위로는 달걀을 훔쳐 가는 것도 있다. 어머니와 내가 모두 밭에 나간 한 낮에 낳은 알은 금방 꺼내지 못하는 경우가 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자신이 낳은 알을 암탉이 스스로 먹어버리는 경우도 생기고, 때에 따라서는 쥐가 훔쳐 가기도 하는데 쥐가 달걀을 훔쳐 가는 방법이 아주 독특하고 지혜롭다.

 

  쥐들이 달걀을 훔쳐갈 때는 합동작전을 벌이는데, 큰 쥐 두 마리가 와서 한 마리는 달걀을 네 발로 안고 뒤로 누우면 이미 깔아둔 집푸라기를 썰매 삼아 남아있는 다른 쥐가 달걀을 안고 누운 쥐의 꼬리를 물어 끌고는 쥐구멍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이렇듯 만화에나 나올 것 같은 이야기가 실제로 일어나는 것을 보면 쥐의 지혜에 감복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쥐는 오래 전부터 문학의 소재로 많이 등장했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전소설 서동지전을 비롯하여 서대주전 등이 있고, 현대에 와서는 미키마우스로 등장하여 전 세계의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음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과 각축전을 벌이며 자신의 생명을 이어가는 쥐가 얄밉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삶의 방식이 터무니없이 지혜로워 미움대신 웃음을 짓게 만드는 매력도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산골마을 외딴 집에서 친구도 없이 지내야했던 내게 쥐는 함께 전쟁놀이를 즐겼던 멋진 상대였으며 지혜로운 동무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