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와의 이별을 슬퍼함(2)
유례(類例)가 없었던 폭염으로 인해 모두가 고생했던 2024년 여름은 가고 가을이 왔다. 그러나 늦더위 때문인지 아직 가을 분위기는 제대로 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지구 전체가 겪었던 자연재해는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지만 기후 온난화를 막을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은 찾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연재해로 인한 고통은 핵심적인 원인 제공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도 힘들게 하지만, 자연을 이루고 있는 여타의 구성체에게는 더 큰 위협이 되었던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올해 여름을 지나면서 가장 눈에 띄었던 현상은 더위의 시작과 더불어 반드시 나타나 무자비하게 사람의 피를 빨았던 모기가 거의 보이지 않았던 일이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여름이 되어 열대야 같은 것이 찾아와서 밤에 시원한 곳을 찾아가 쉬려고 하면 어김없이 모기가 벌 떼 같이 덤벼들었었다. 그러나 올해는 어디를 가도 모기가 보이지 않았다. 기상청의 발표에 의하면 기온이 너무 높아서 모기가 아예 생겨나지 못해서 그렇다고 한다. 모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겠지만서도 사람들이 끝없이 욕심을 부려 문명이라는 바벨탑을 쌓은 결과로 나타난 자연재해로 인해 죄 없는 미물(微物)인 모기가 큰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이안타깝다. 그런데, 정작 나를 슬프게 하는 일은 가을의 초입에 들어와서 일어났다.
이번 여름에는 모기에게 한 번도 물리지 않았었는데, 건강 증진을 위해 걷기 운동을 하다가 나무 아래 벤치에서 잠깐 쉬고 있었다. 그런데, 짧은 시간 앉아 있었는데 모기에게 물리고 말았다. 물릴 때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을 보면 모기가 독성이 있는 마취제를 제대로 내 몸에 집어넣은 모양이었다. 종아리가 간지러워지고 아프기 시작하면서 모기에게 물렸다는 것을 눈치챘는데, 이미 내 피를 먹은 녀석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모기가 괘씸하다고 생각하면서 더 이상 물리면 안 될 것 같아 서둘러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몇 분이 지났을 무렵부터 나를 슬프게 하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보통 모기에게 물리면 30분에서 1시간 정도는 가렵고 아픈 고통이 지속되는데, 걷기 시작한 지 3분도 되지 않았을 때부터 간지러움이 사라지기 시작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나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은, “아! 모기 침을 통해 나오는 것이면서 마취제로 쓰는 것의 독성이 옛날 같지 못하구나. 얼마나 힘들었으면 종족 보존을 위해 필수적으로 만들고 유지해야 했던 마취제의 독을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했을까? 사람의 잘못으로 인해 생긴 이상한 현상들에 대해 불평불만도 할 수 없는 일개 미물인 모기가 큰 피해를 보고 있구나.”라는 것이었다. 이제 머지않아 찬 바람이 불고 서리가 내리면 우리 모두 모기와 이별해야 할 것이다. 올해 모기 개체수가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면 내년 여름에도 모기는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우선은 지내기 좋을지 몰라도 자연의 균형이 깨진다면 결국 그 피해는 우리에게 돌아올 것이 분명하므로 더욱 그렇다.
이러한 슬픔은 모기에게 머무르지 않고 우리가 현재 처한 현실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슬프게 만들기도 한다. 사회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지도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저지른 개인 비리나 범죄로 인해 나라 전체가 혼란에 빠져버렸고, 그것이 종국에는 개인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말 것이라는 걱정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자연 현상에서 왔던 우울함과 슬픔은 모기에게 머물 수만은 없었던 것이다. 지도층에 속하는 사람들의 언행이 중요한 이유는 그들의 잘못은 개인적인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국가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일반 국민은 지도층에 속한 사람들의 언행을 보고 그것을 잣대로 삼아 행동함과 동시에 자신이 잘못하는 많은 것들에 대해서도 스스로 면죄부를 주면서 사회 전체가 도덕 불감증이나 범죄 행위를 별로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풍조의 만연으로 이어지게 됨으로써 나라의 발전에 심대한 타격을 입히고 마는 것이다.
모기와의 이별이 슬픈 이유는 어쩌면 이런 사람들과의 이별이 어렵거나 불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더욱 슬퍼지는 것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지 하는 두려움이 앞선다. 모기와는 이별은 가능하지만, 이 사람들과의 이별이 가능하지 못하다면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그 사람들을 바꾸어 놓아야 한다는 생각을 해 보기도 한다. 그렇게 생각해도 슬픔과 허망함은 가시지 않으니 어찌하면 좋을지 정말 알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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