淸明과 寒食
2024년 청명은 4월 4일이고 한식은 4월 5일이다.
청명과 한식은 같은 날이 되기도 하지만 올해는 하루 차이다.
청명은 하늘이 아주 맑아 공기가 깨끗하고 온화하며(氣清), 봄빛이 좋아서 모든 풍경이 선명하고 고우며 아름다운(景明) 것을 의미한다. 모든 생명체가 다 자신을 드러내는 계절이다. 氣清景明을 줄여서 청명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청명이 되면 따사로운 햇볕이 산과 들의 경치를 아름답게 만든다. 모든 풀과 나무에는 연초록의 싹이 나며, 온갖 꽃이 피어난다. 봄의 따뜻한 기운이 모든 것에 나타나면서 기온이 올라간다. 농사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물을 잘 관리하면서 병충해를 막기 위한 노력을 한다. 청명절에 주로 하는 일에는 조상의 산소 돌보기, 바깥에 나가 산책하기(踏靑), 쑥떡 해 먹기, 일 년 동안 쓸 새로운 불 만들기, 밭갈이 등이 있다.
청명은 5일씩 세 기간으로 구분한다(淸明三侯). 一侯는 오동나무꽃이 피기 시작하는 시간이고, 二侯는 들판에는 쥐를 대신하여 메추라기가 등장한다. 三侯는 무지개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또한 일후에는 오동꽃이 피고, 이후에는 보리꽃이 피며, 삼후에는 버들꽃이 핀다. 꽃이 피는 절정기는 이후 정도가 된다. 특히 버들꽃이 피면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는데, 이 때 버드나무를 심어서 싹을 먹는다. 또한 버드나무를 이별의 선물로 주기도 한다. 버드나무는 생명력이 매우 강해서 거의 완전히 시들었다가도 물을 주면 다시 살아나기 때문에 이별이 완전한 헤어짐이 아니란 점을 강조하기 위해 이것을 다시 만날 이별의 징표로 쓰게 되었다. 또한 청명절 기간에는 논의 우렁이가 아직 새끼를 치지 않아 살이 통통하게 올라 있으므로 잡아서 먹기 좋은 시간이다.
한식은 겨울의 절정기인 동지(冬至)로부터 105일째 되는 날로 설날(怛忉-근신하고 조심함), 단오, 추석과 함께 4대 명절의 하나이다. 절후로는 춘분과 곡우 사이에 드는 청명(淸明) 하루, 이틀 사이에 들기 때문에 청명과 한식을 함께 생각하기도 하지만 한식은 명절이고, 청명은 농사일과 관련된 절기이기 때문에 차이가 있다. 올해 한식은 양력 4월 5일이다.
한식은 禁煙節, 冷節, 百五節 등으로 불리는데, 불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는 명절로 불을 금지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때는 봄의 한가운데로 비가 잘 내리지 않아 공기가 매우 건조하기 때문에 산불, 들불 등과 같은 화재의 위험이 매우 큰 시기이기 때문이다. 하늘에서 내려치는 번개로 인해 산불이 자주 일어나기 때문에 아주 오랜 고대부터 불을 금지하는 날을 정해서 경각심을 일깨웠던 것으로 보인다. 한식날에는 그동안 써왔던 불을 모두 없애버리고 새롭게 일으킨 불을 사용하여 생산 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에 개화(改火), 혹은 請新火라고도 한다.
중국에서는 춘추전국시대에 있었던 역사적 전설과 연결시켜 한식의 유래를 설명하기도 한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춘추시대 진(晉)나라의 왕자였던 중이(重耳)가 국가적 어려움을 만나 개자추(介子推, 介之推라고도 한다) 등의 여러 신하들과 국외로 도피를 하게 되었다. 굶주림이 극에 달해 주공인 중이가 죽을 지경에 이르자 개자추는 자신의 넓적다리 살을 베어 구워먹여서 살려낸 일도 있었다고 한다. 그만큼 그는 충성심이 강한 신하였다. 국란이 극복되어 나라가 안정이 되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왕위를 계승한 중이가 진문공이 되어 자신이 어려울 때 목숨을 바쳐 충성했던 신하들에 대해 공을 치하할 때 개자추에게는 벼슬을 내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자 개자추는 어머니와 함께 면산(綿山)으로 들어가 세상 숨어살았다. 나중에 잘못을 뉘우친 진문공이 찾아가 다시 나와 줄 것을 청했지만 그는 말을 듣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자 문공은 산에 불을 지르면 나올 줄 알고 면산에 불을 놓도록 했는데, 개자추는 어머니를 끌어안고 버드나무 아래에서 불에 타죽었다고 한다. 그런 연유로 인해 개자추는 후세에 충의지사로 추앙되는데, 진문공이 영을 내려 개자추가 죽은 날에는 불로 익힌 음식 대신에 찬음식만을 먹도록 했다는 전설에서 유래했다고 일컬어지기도 한다.
새로운 불을 일으켜서 한 해의 생산 활동을 시작하기 때문에 한식절을 매우 소중하여 여겨서 하늘과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행사를 거행했는데, 나라에서는 종묘와 각 능원(陵園)에 제사하고, 민간에서는 술·과일·포·식혜·떡·국수·탕·적 등의 음식으로 제사 지낸다. 이를 명절제사, 곧 절사(節祀)라 한다. 또한, 여러 가지 주과(酒果)를 마련하여 성묘하고, 조상의 묘가 헐었으면 봉분을 고치기도 하고, 주위에 나무 심기(植樹)도 하고, 봉분에 떼를 입혀 다듬는 것인 사초(莎草)를 한다. 지난 불을 금하고, 새로운 불을 일으키는 시간 간격은 3일, 5일, 7일 등으로 다양하다.
한식을 노래한 작품 중에는 당나라 때 시인인 송지문(宋之問)의 ‘도중한식(途中寒食)’이 가장 유명하다.
말 위에서 한식을 맞이하니(馬上逢寒食)
길 가는 중에 늦봄이 되었네(途中屬暮春)
슬프다, 강포구를 바라보니(可憐江浦望)
낙교에 사람은 보이지 않네(不見洛橋人)
洛橋 : 중국 하남성 낙양의 서남쪽에 있는 낙수(洛水)에 놓인 다리 이름, 이곳은 벗과 이별하는 장소로 널리 알려져서 낙교인은 고향 사람을 뜻하기도 한다.
이 시와 관련된 우리나라의 시화(詩話) 중 재미있는 것이 있어서 눈길을 끈다. 조선 후기의 시인인 김득신(金得臣)은 스스로 鈍才라고 생각하여 무슨 책이든지 여러 번을 읽었다고 한다. 1634년부터 1670년 사이에 1만 번 이상 읽은 옛글 36편을 ‘고문 36수 독수기(讀數記)’에 밝혔는데, 그 횟수가 상상을 초월한다. 그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사기의 ‘백이전’이었는데, 그는 ‘독수기’에 백이전을 무려 11만1천번을 읽었다고 썼다. ‘노자전’은 2만번, ‘능허대기’는 2만5백번, ‘귀신장’은 1만8천번, ‘목가산기’는 2만번, 그리고 중용의 서문과 ‘補亡章’도 각각 2만번씩 읽었다고 했다. 그야말로 독서광이었다.
그런 그가 어느 해 한식날 말을 타고 길을 가다가 문득 시구절이 생각이 나서 읊었는데, 그것이 바로 ‘馬上逢寒食’이었다. 이 구를 짓고 나서는 다음 대구(對句)를 맞추지 못해 끙끙대고 있다가 말고삐를 잡고 가는 하인에게 물었다. 내가 다음 구절을 짓지 못하겠는데, 네 생각에는 무엇이 좋겠느냐? 그러자 하인이 대뜸 하는 말이 ‘途中屬暮春’입니다고 하는 것이었다. 말에서 내린 김득신이 네가 나보다 훨 낫다고 칭찬했다. 하인이 말하기를, 아주 어릴 때부터 나리께서 매일 외우시던 싯구가 바로 이것이었기에 소인도 수 천번도 더 들어서 알고 있는 것이랍니다라고 하더라는 것이었다. 이 시는 너무나 유명한 작품으로 선비들이 처음 시 공부할 때 암송하던 당음(唐音)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김득신은 아주 어릴 때부터 수십만 번도 더 읽었기 때문에 그 구절을 자신이 지은 것으로 착각할 정도가 되었던 것이다.
전통사회에서 청명과 한식은 대단히 크고 중요한 명절이었지만 현대에 와서는 식목일 정도로만 여겨지고 있는 상태가 되었다. 씁쓸하고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