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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세계/잃어버린민속

백로(白露)

by 竹溪(죽계) 2023. 9.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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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露


2023년은 9월 8일이 백로다.

백로는 더위의 끝이라고 할 수 있는 處暑와 가을의 중간이라고 할 수 있는 秋分 사이에 드는 24절기 중 15번째 절기다. 낮과 밤의 기온 차가 심해지고 서늘하면서 찬 기운이 도는 때이다. 열기에 눌려 있으면서 힘을 쓰지 못하던 냉기가 수동적인 자세에서 공격적인 자세로 바뀌는 시간이 바로 백로다. 낮에는 덥다가 밤이 되면 기온이 급강하함에 따라 음기(陰氣)가 강해지면서 수증기가 엉켜서 매달리게 되니(陰氣渐重 凌而爲露) 풀잎에 하얀 이슬이 맺히는 시기라고 해서 이런 명칭이 붙여졌다. 이름하여 가을의 시작(孟秋)을 알리는 절기로 하늘은 높아지고, 기운은 상쾌한 시간이다.

추운 기운이 살아나면서 이슬이 맺히는 것을 백로라고 한 이유는, 이때가 오행(五行)으로 보면 금(金)에 속하는 찬 기운이 살아나는 것인데, 그것을 색으로 표현하면 흰색이 되어 白은 가을. 흰색, 죽음 등의 뜻을 가지게 되고, 이것이 이슬과 결합하면서 이름을 이렇게 붙였다. 그러므로 백로는 여름이 가고 겨울을 준비하는 시기라고 보면 된다. 이것은 북쪽에 겨울이 시작된다는 의미이므로 기러기는 남쪽으로 날아갈 준비를 하고, 제비는 추위를 피해 남쪽으로 내려갈 준비를 한다. 그리고 모든 종류의 동물들은 겨울을 날 식량을 저장할 준비를 한다. 사람들 역시 겨울을 잘 지내기 위한 준비를 위해 곡물을 추수하여 식량을 곳간에 저장한다. 그리고 계수나무는 이때부터 향기를 내뿜기 시작한다. 가을바람 소슬히 부는 백로의 저녁에 기러기는 한 줄로 날아서 남으로 가는 모습을 연출한다. 입추 때부터 한층 시끄럽게 울어서 사람들의 숙면을 방해하던 매미는 백로를 지나면 거의 울지 않는다. 그러나 올해는 이상 기온으로 어떻게 될지 예상하기 어렵다.

백로도 5일씩 나누어 세 개(三侯)로 구분하는데, 첫 5일(一侯)은 큰 기러기와 작은 기러기(鴻雁)를 막론하고 모두 남으로 향한다. 이 비행은 8월 말부터 시작된다. 둘째 5일(二侯)은 검정새(玄鳥-제비)가 남쪽으로 간다. 추분이 될 때까지 남으로 갔던 제비는 춘분에 돌아온다. 셋째 5일(三侯)은 새들이 먹이를 저장하는 시간이다. 농부들은 고된 여름 농사를 잠시 쉬면서 추수를 위한 준비를 하는데, 새댁이 친정을 방문하는 근친(近親)을 보내기도 한다.

백로를 즈음하여 자연을 살펴보면 그들 역시 바쁘게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다. 온갖 식물들은 번식을 위해 씨앗을 만들기 위한 마무리에 한창이다. 알찬 씨를 맺기 위해 억새와 갈대가 피어나기 시작하고, 부들이나 줄풀 등도 꽃과 열매를 맺어서 익히기에 매우 분주하다. 여름 끝에 피어나는 여러 꽃은 어떤 면에서는 봄꽃보다 더 아름다운데, 겨울을 준비하는 나비가 분주하게 꿀을 따는 모습이 곳곳에서 목격된다. 풀 섶에는 아직 다 자라지 않은 뱀들이 오락가락하고, 새끼 백로와 새끼 오리 등의 새들 역시 몸을 키우고 힘을 기르기 위해 부지런히 먹이 사냥을 한다.

방아깨비와 메뚜기 등은 풀의 색깔에 맞추어 자신 색을 풀의 색에 맞추어 변화시키는 모습을 보이는데, 사람이 다가가면 풀의 대궁 뒤로 몸을 숨기는 것이 매우 귀엽다. 억새 사이에 지었던 새 둥지는 벌써 텅 비어서 바람에 흔들리고, 시냇가에 줄지어 나 있는 여뀌는 붉은 꽃을 피울 준비에 한창이다. 여뀌 꽃은 붉은데, 기러기가 날아오는 때에 맞추어서 핀다. 그래서 紅蓼岸(붉은 여뀌꽃이 피어 있는 시내냇)의 기러기라고 한다. 나무나 숲에서 우는 청개구리 역시 남은 시간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 더욱 귀여운 소리로 울어대기도 한다. 그 외에도 돌피, 강아지풀, 수크령, 돌콩, 해바라기, 엉겅퀴, 금계국, 봉숭아, 달개비(닭의장풀), 방동사니 등등도 자신에 맞는 겨울 준비를 열심히 하고 있다.

참으로 바쁘게 돌아가는 생명의 시간이다. 이렇게 하면서 사람은 자연과 함께 가을을 맞이한다. 그것이 순리이거늘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상당히 많은 것으로 보인다. 자연의 섭리 따위는 내팽개쳐 버리고 자신들의 이익과 권력만을 위해서 피를 흘리면서 싸우는 모습을 예나 즈금이나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작년의 백로 글에서도 이런 내용을 썼었는데, 올해도 여전히 헐뜯고, 싸우고, 피 흘리고 있으니 참으로 가소롭고 한심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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