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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세계/觀看天下

'이생망'의 청춘

by 竹溪(죽계) 2021.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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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생망`의 청춘

뉴제주일보, 승인 2021,05,23,18:20

 

손종흠 전 한국방송대 제주지역대학장·논설위원

청년들은, “난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이야!”라는 말로 자신들이 처한 현실을 한탄한다. ‘이생망에 담겨 있는 절망과 무기력은 청춘을 병들게 함과 동시에 어렵게 만든다. 사람은 누구나 현재보다 미래의 삶이 더 나을 것이라는 믿음, 혹은 바람인 희망을 품고 살아간다.

 

희망이란 일정한 목적이 달성되거나 바람직한 상황이 실현되도록 마음속으로 바라는 것을 말하는데, 그 속에 담긴 가능성을 믿음으로써 현실의 고통이나 어려움을 참아내고 극복할 힘을 얻는다. 그러므로 희망은 우리의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희망이 사라지면 살아갈 의지나 동력을 잃어버리게 됨으로써 더는 삶을 유지하기 어렵거나 내일을 담보 잡혀 현재를 살아가는 상태가 되어 발전적인 삶을 도모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을 것이기 때문이다.

2030 청년세대의 자살률이 OECD 회원국 평균의 2배가 넘고 계속 증가추세에 있다는 것은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청년들은 자신들의 장래가 밝고 건강하면서 발전적이기를 염원하지만, 눈앞에 닥친 현실은 너무나 참담하기만 하다. 사상 유례가 없는 청년 실업률과 불안정한 소득, 부동산 가격의 폭등으로 영끌을 해도 이룰 수 없는 내 집 마련의 꿈, 기성세대의 불공정으로 인해 더욱 힘들어진 사회 진출과 출세의 기회에서 오는 절망감 등이 청년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통계에 의하면, 2020년 말 청년 실업률은 8.1%, 체감 실업률은 25.6%에 달한다. 청년들이 원하는 질 높은 일자리를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가 되어 버렸고,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알바나 비정규직을 전전하는 상황에서 희망을 품기에는 너무 열악한 환경이 되어버린 것이다. 특히 근래 몇 년 사이에 커다란 사회적 파문을 몰고 온 불공정의 문제는 암울한 현실을 더욱 참혹하게 만들면서 청년들의 분노를 폭발시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민주화운동을 상징적 자산으로 하던 586세대가 오히려 우리 사회의 불평등을 심화시키면서 이 나라를 헬조선으로 만든 주모자로 전락해 버렸기 때문이다.

경제의 고성장 시대를 지나오면서 원천 재산을 축적한 그들은 자녀에 대한 엄청난 교육 투자를 통해 자신의 지위를 세습하게 하고, 부모찬스를 이용해 다른 사람의 기회를 빼앗으며, 불법적이거나 비도덕적인 행위를 하고도 부끄러워하거나 반성하지 않으면서 후안무치한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청년들의 주거상황은 더욱 비참하다. 많은 수의 청년들은 지옥고라 칭하는 반지하·옥탑방·고시원에서 산다. 부동산 가격의 폭등으로 사글세에서 저축을 통해 전세로, 다시 전세에서 대출을 끼고 집을 샀던 기존의 사고와 생활의 방식으로는 내 집을 마련할 가능성 자체가 사라진 탓에 아무리 성실하게 살아도 현실에서는 어느 것도 바꾸거나 이룰 수 없다는 무력감은 미래를 향한 청년들의 희망을 통째로 증발시켰다.

 

내 집은 고사하고 치솟기만 하는 전·월세조차 감당할 수 없으니 결혼이나 출산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이에 젊은이들은 큰돈이 없으면 현실에서 어떤 것도 이룰 수 없음을 직감하고, 적은 자금 또는 자신의 능력 안에서 시작할 수 있어 보이는 주식이나 비트코인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 쪽으로 인생을 몰아가고 있다.

 

희망을 품으면 삶을 발전적으로 이끌 힘이 생기지만, 그것이 사라지면 잘못된 모든 것의 원인과 이유를 바깥이나 남에게서 찾고, 아무렇게나 생각하고 행동하는 무책임한 일탈이 만연하면서 사회가 위험해질 것은 자명하다. 젊은이들에게 잃어버린 희망을 되찾아주는 길이 무엇인지 심각하게 고민하여 변화를 모색하는 것이 기성세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임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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