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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세계/觀看天下

제자리 찾기

by 竹溪(죽계) 2021.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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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리 찾기

뉴제주일보 승인 2021.02.23 19:40

손종흠 전 한국방송대 제주지역대학장·논설위원

 

향가 중 충담(忠談)이 지은 안민가(安民歌)에 ‘군(君)다이, 신(臣)다이, 민(民)다이 하날단 나라악 태평하니이다’는 표현이 있다.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백성은 백성답게 한다면 나라가 태평할 것입니다’로 해석된다.

군주와 신하와 백성이 제자리를 지키면서 그에 걸맞은 언행을 하면 나라가 평안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신하와 임금의 자리가 뒤바뀌면 반역이 되고, 백성과 신하의 자리가 바뀌면 통치의 기반이 무너지면서 큰 혼란이 야기되어 편안한 일상을 누릴 수 없게 될 것이다. 국가의 구성원들이 제자리를 지키면서 성실하게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보여주는 말이다. 이 교훈은 어느 시대에 적용해도 잘 부합하는데, 작금의 우리 현실에 커다란 시사점을 던져준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는 구성원들이 제자리를 지키지 못 한 까닭에 나올 수밖에 없는 언행과 현상이 자주 나타난다. 그 중에서 가장 큰 문제인 것은 한 사회의 구성원이라면 마땅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출산을 꺼리는 현상이다. 출산장려금, 양육지원비, 교육지원비 등을 주면서 독려해도 오히려 출산율은 떨어지고 있다. 출산은 부모가, 양육과 교육은 가족과 공동체가 분담하던 기존의 시스템이 무너지면서 부모가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출산율을 높이려는 정책의 성패는 이런 시스템을 어떤 형태로 복원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21세기에 들어온 뒤로부터 지금까지 어른은 어른답지 못 한 행동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하고, 아이는 미성년자의 행동이라고는 할 수 없는 일들을 아무렇지 않게 벌이고 있는 점도 모두 제자리를 지키지 못 해 생기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나라의 큰 어른이라고 할 수 있는 최고 지도자는 능력보다는 내 편인 사람만을 등용하고, 통치의 중심인 공직자와 정치인은 편파적 이념에 사로잡혀 양심을 저버리거나 부정, 부패한 행위를 하고도 반성하거나 책임지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일반인들은 삶에서 잘못된 상황이 벌어지면 그 원인을 스스로가 아닌 바깥에서 찾으려 골몰한다.

 

수십 년 전만 해도 보기 어려웠던 참혹하면서도 흉악한 범죄 행위가 근래에 자주 일어나고, 사소한 문제도 참지 못 해 상대에게 물리적 위해를 가하는 이런 것들이야말로 제자리를 벗어난 상태에서 생활하는 모든 구성원의 의식 상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부모가 자식을 학대하고, 폭력을 가해 죽이거나 어르신을 희롱하고 폭행하는 청소년의 부적절한 언행, 헤어진 연인을 괴롭히면서 복수를 일삼는 데이트 폭력, 누가 봐도 잘못된 것이 명백한데도 뻔뻔하게 버티면서 책임을 회피하는 고위공직자나 정치인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 이처럼 얼토당토않은 현상들이 반복적으로 생기다 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생각이 무디어지고 길들여지는 상태까지 이른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므로 고쳐야 하며, 제자리에서 해야 마땅한 언행을 하면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원래의 자리로 돌려놓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모든 구성원이 제자리를 지키면서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는 조선 시대 사회 교육 시스템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지식의 전달을 핵심으로 하기보다는 인격을 높이고 인성을 도야하기 위한 윤리와 덕목 교육을 중시하는 조선조의 제도적, 사회적 교육이 지금의 질서와 번영을 낳은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이라는 노랫말이 그래서 더욱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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