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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세계/재미있는 우리말

말만한 처녀의 유래

by 竹溪(죽계) 2011.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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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만한 처녀”의 의미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는 말 중에 다 큰 여자아이를 보고 “말만한 처녀”라는 표현이 있다. 이 말은 전통사회의 윤리 기준에서 보았을 때,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을 정도의 여성을 가리키는 것이 되기 때문에 그 뜻을 “튼튼한 말 엉덩이만큼이나 처녀의 엉덩이가 튼실하고 크다”는 정도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모든 말을 성적인 의미와 연결시켜 풀어내려는 잘못된 민간어원설에 불과하므로 참고할 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왜 다 큰 처녀를 말에다 비유해서 표현하게 되었을까? 이 표현에는 전통사회의 경제적 관념과 남존여비 사상이 짙게 배여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아주 흥미롭다. 이 표현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말(馬)이 가지는 경제적인 의미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말은 소와 더불어 대단히 중요한 재산 목록 중의 하나였다. 국토가 한반도에 국한되고, 신분제사회가 정착되면서 농경사회가 중심을 이루기 상태로 되기 전까지는 소보다 말이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소는 농사일밖에 하지 못하지만 말은 힘으로 하는 농사일은 말할 것도 없고, 빠른 것을 생명으로 하는 통신수단이나 전쟁용 등 매우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말은 아주 오래전부터 세계적으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고, 유용하게 쓰여 왔던 것이다.

 

이처럼 중요한 구실을 하는 말은 국가적인 차원뿐만 아니라 개인적 차원에서도 상당히 쓰임새가 많은 중요한 재산 목록 중의 하나일 수밖에 없었다. 소보다는 말이 더 중요하고 값어치가 많이 나가기 때문에 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부자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말이 있으면 자신이 사용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어서 임대수입을 올릴 수도 있으니 재산을 늘리는 데에도 큰 몫을 하는 존재가 바로 말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 말이 집안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이미 그 집은 엄청난 부를 축적한 것으로 평가를 받곤 하였다. 바꾸어 말하면, 말은 한 집안의 중요한 살림 밑천이 되는 셈이었다.

 

말이 중요한 살림 밑천이 되기 때문에 여성을 말에 비유하여 “말만한 처녀”라고 하는 표현의 속뜻을 알 수 있게 된다. 말과 비유되는 그 여성이 집안의 살림 밑천이 되는 말이 하는 구실을 할 정도로 성장했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얼핏 봐서는 이러한 해석의 의미를 알아차리기 어려울지 모른다.

 

그러나 “첫 딸은 살림밑천”이라는 말과 연관시켜 생각해보면 아주 쉽게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첫 딸은 살림밑천”이라는 말 속에는 최근까지도 존재했고, 지금의 우리 사회에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남존여비의 사상이 짙게 깔려 있는 표현이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 성인 남녀가 혼인을 하여 가정을 이루고 첫 아이를 낳을 때 쯤의 부부는 사회적으로 안정된 지위와 수입을 보장받지 못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상당히 어려움을 겪을 때이다.

 

아이는 앞으로고 계속해서 태어날 것이고 살림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한데, 이런 상태에서 딸을 낳는다는 것은 그 딸을 예쁘게 키워서 적당한 량의 돈을 받고 시집을 보내면 그것을 자본금으로 하여 집안을 일으킬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기 때문에 “첫 딸은 살림 밑천”이라고 하게 된 것이다. 일반 서민들에게 있어서 한 집안을 일으킬 수 있는 정도의 밑천을 마련할 수 있는 방법은 딸을 좋은 곳으로 시집보냄으로써 얻을 수 있는 반사이익이라는 방법밖에 없었기 때문에 이런 표현의 말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이제 다시 “말만한 처녀”로 돌아가 보자. 이 표현은 처녀와 말이 경제적으로 비슷한 값어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으로 되기 때문에 한 집안을 일으키거나 식구들의 생계를 책임질 수 있을 정도의 경제력을 가진 존재라는 뜻이 된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말 한 마리가 하는 역할이 매우 다양하고, 또한 그것이 벌어들일 수 있는 수입 또한 적지 않은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에 한 사람의 여성이 혼인을 통해 그런 정도의 벌이를 할 정도로 되었다는 뜻으로 “말만한 처녀”라는 표현이 생겼음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딸을 시집보내는 일을 20세기 중후반까지만 해도 "치운다"고 했었는데, 이 말에도 비슷한 뜻이 들어 있다. '치우다'는 물건을 다른 데로 옮기거나 청소하거나 정리하여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을 가리키는데, 여성의 결혼에 대한 부모의 생각이 바로 이랬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

 

거추장스러은 존재를 하루라도 빨리 치워 버려서 가난한 살림살이에 입 하나라도 덜어냄과 동시에 살림밑천도 할 수 있는 재산을 마련할 수 있는 수단으로 딸을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 이 말속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다 큰 여자 아이를 예사스럽게 이르는 말 정도로 이해할 수 있지만 약간은 서글픈 사연을 담고 있는 표현이 바로 “말만한 처녀”로 표현된 것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알아 두는 것이 우리말에 대한 표현력과 이해력을 높이는 데에 작은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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