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표현은 조선 후기 백성들을 가장 어렵게 만들었던
還穀의 폐해에 대해 노래한 다음과 같은 사설시조에 등장합니다.
우선 작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원문
還上에 볼기 셜흔 맛고 장리(掌利) 갑셰 동(銅)소츨 뚝 떠여낸다
사랑하던 여기첩(女妓妾)은 월리차사(月利差使) 등 미러 간다
아해야 粥湯罐(죽탕관)에 개(犬) 보아라 豪興 계워 하노라
현대어 해석
(환곡 대신에 엉덩이 서른 대를 맞고 이자 값으로 구리 솥을 뚝 떼어 낸다
사랑하던 기생첩은 나라의 관리들이 등을 밀어서 데려가네
아이야, 죽탕관에 개 보아라 호탕한 흥취를 견디기 어렵구나)
어휘 풀이
月利 差使: 달 이자를 거두어들이는 임시직.
還上: 還子, 춘궁기인 봄에 정부에서 백성에게 빌려 주었던 창고의 곡식. 가을에 거두어들인다.
掌利 : 長利, 돈이나 곡식을 꾸어 주고, 받을 때에는 한 해 이자로 본디 곡식의 절반 이상을 받는 변리(邊利). 흔히 봄에 꾸어 주고 가을에 받는다.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죽탕관에 개 보아라”라는 표현은 현대인으로는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 것일 수 있습니다.
이 표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탕관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탕관은 국을 끓이거나 약을 달이는 데 쓰는 자그마한 그릇,
보통 쇠붙이나 질그릇으로 만드는데, 손잡이가 달려 있습니다.
따라서
탕관은 한 두 사람이 먹을 국이나 약 같은 것은 만드는 것으로 쓰이는 도구가 됩니다.
이제 작품으로 돌아가보겠습니다.
화자는
환곡의 이자 값으로 솥을 빼앗겼기 때문에
밥을 지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밥을 지을 수 없게 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쌀이 없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솥이 없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이 표현에는 솥도 없고, 쌀도 없다는 의미가 함께 포함되어 있습니다.
즉, 매우 가난한 상황을 말하는 것이 되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화자는 크기가 아주 작은 탕관에 죽을 끓이게 됩니다.
밥을 할 정도의 쌀이 없기 때문에 다른 것들을 이용해서
죽을 끓여서 끼니를 떼우게 되는데,
많은 양을 할 정도도 되지 못하기 때문에
한 두 명이 먹을 정도의 양으로 탕관을 이용해서 끓이게 되는 것입니다.
탕관은 크기가 작기 때문에 솥을 걸어두었던 부엌에서는 죽을 끓일 수가 없고
마당 한켠에 돌 같은 것을 사용해서 만든 삼각다리의 작은 아궁이를 만듭니다.
그런 다음 아궁이 속에 나무나 숯을 넣고서 그 위에 탕관을 얹어서 끓이게 됩니다.
그런 작업을 하는 데에 개를 보라는 표현이 무엇인지가 여기서 핵심이 되겠습니다.
‘개를 보라’는 말은 개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라는 뜻입니다.
보통 탕관은 질그릇으로 되어 있는데다가
넓지가 않기 때문에 잘못 건드리면
넘어지면서 그릇이 깨지고
내용물이 쏟아지게 됩니다.
주인이 가난하기 때문에 집에서 키우던 개도 굶주릴 수밖에 없는 관계로
사람이 먹으려고 끓이는 죽탕관을 개가 앞발로 밀어서 넘어뜨리게 됩니다.
그렇게 하면 탕관이 넘어지면서 그릇이 깨지게 되는데,
이때 탕관 속에 있던 죽도 밖으로 나오게 되고,
개가 그것을 훔쳐 먹는 일이 종종 발생하게 됩니다.
가난이 죄인 셈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아이야 죽탕관에 개 보아라”는
“아이야 죽탕관에 개가 오지 못하도록 잘 지키거라”라는 뜻이 됩니다.
이 작품은
환곡의 문란으로 인해 모든 것을 나라에 빼앗긴 백성들의 어려움을
사실적으로 아주 잘 묘사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의 호흥 계워 하노라는
앞에서 노래한 어려운 상황을 희화화하는 수법으로
사설시조에서 흔히 쓰는 수법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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