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의세계/문학으로영화보기

2010년의 우리 현실을 냉철한 시각으로 보여주는 영화 ‘하녀’리뷰

by 竹溪(죽계) 2010. 5. 16.
728x90
SMALL
(2010/한국)
장르
스릴러
감독
영화 줄거리
백지처럼 순수한 그녀, 대저택의 하녀로 들어가다 이혼 후 식당 일을 하면서도 해맑게 살아가던 ‘은이(전도연)’, 유아교육과를 다닌 이력으로 자신에게는 까마득하게 높은 상류층 대저택의 하녀로 들어간다. 완벽해 보이는 주인집 남자 ‘훈(이정재)’, 쌍둥이를 임신 중인 세련된 안주인 ‘해라(서우)’, 자신을 엄..
영화 감상평
나의 평가
아주 좋아요!아주 좋아요!아주 좋아요!아주 좋아요!아주 좋아요!

2010년의 우리 현실을 냉철한 시각으로 보여주는 영화 ‘하녀’ 리뷰

 

 

임상수 감독의 2010년 영화인 “하녀”는 1960년의 김기영 감독의 동일제목의 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이지만 기본적인 모티브만 가져왔을 뿐 대부분의 요소가 제거된 상태에서 새로운 해석과 더불어 민족의 비전을 제시하려는 영화로 보인다.

 

 

이 영화를 보고 나오는 사람들의 가장 주된 반응은 “아주 기분이 더럽다, 그리고 뭔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영화가 매우 황당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내뱉는 사람들의 이 말이 바로 ‘하녀’라는 영화의 본질을 꿰뚫어본 것이라고 한다면 글쓴이의 억측일까?

 

 

지금부터 왜 ‘하녀’라는 영화가 아주 기분이 나쁘며, 뭔지 잘 모르겠음을 보여주려고 한 것인지에 대해 서술해보도록 하겠다. 우선 작품의 줄거리를 보자.

 

 

?이혼 후 식당 일을 하면서도 해맑게 살아가던 ‘은이(전도연 분)’는 유아교육과를 다닌 이력으로 인해 대저택의 하녀로 들어간다. 주인집 남자 ‘훈(이정재 분)’, 쌍둥이를 임신 중인 안주인 ‘해라(서우 분)’, ‘은이’를 엄마처럼 따르는 여섯 살 난 ‘나미’, 집안일을 총괄하는 나이든 하녀 ‘병식(윤여정 분)’과 생활하는 과정에서 ‘훈’과 ‘은이’는 성관계를 맺고 아이를 가지게 된다. 이 사실을 안 ‘해라’의 친정어머니와 ‘해라’는 강제로 아이를 낙태시키고, ‘은이’는 복수의 한 방법으로 ‘훈’의 집 거실에서 목을 맨 다음 자신에게 불을 붙여 죽음을 택한다.?

 

 

아주 간단한 줄거리를 가진 ‘하녀’는 엄청난 공포도 없으며, 겉으로 보아서는 이해를 못할 정도의 복선도 깔려 있지 않으며, 허리우드 영화와 같은 엄청난 스피드도 존재하지 않는다. 최상류층의 한 가정에서 일어나는 남녀의 불륜과 파멸을 담담하게 다룬 정도에 불과한 영화인 것이다. 따라서 이 작품을 통해서 관객은 감독이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를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하는 평가는, 가진 자이면서 지키려는 자와 못가진 자이면서 빼앗으려는 자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 거대한 자본주의의 횡포에 대한 연약한 프롤레타리아의 외침 등을 잘 그러낸 영화라는 정도이다.

 

 

그러나 글쓴이가 보기에 이런 정도의 영화라면 ‘하녀’는 지극히 평범한 작품이며, 칸이 주목하여 초청할 정도까지 가기는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는 어떤 특별한 장치가 숨어 있기에 칸이 주목하는 것일까? 이제부터 그 이유를 파헤쳐 보도록 하자.

 

 

영화 ‘하녀’는 거대한 자본의 권력에 대해 온 몸을 부딪쳐 맞서다가 산화하고 마는 연약한 한 존재의 부르짖음을 기본적으로 깔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그것이 일반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가 처해 있는 지금의 현실을 섬뜩할 정도의 냉철함과 날카로움으로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 우리를 전율케 한다.

 

 

사실 이 글을 쓰면서 걱정되는 것이 하나 있다. 작품이 냉철하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감상평 역시 냉철할 수밖에 없어서 자칫하면 글쓴이의 평이 읽는 사람의 마음을 흥분시키거나 상처를 입힐 수도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읽는 분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 이 있다면 이 글은 한 편의 영화를 보고 느낀 점을 한 감상자의 입장에서 쓴 정도라는 점을 생각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두 가지로 생각된다. 하나는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캐릭터가 지극히 상징성을 띠고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작품의 배경이 되는 시간이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한겨울이라는 점이다.

 

 

먼저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성격과 그것이 지닌 상징성을 살펴보자. 작품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을 하녀 ‘은이’, 안주인 ‘해라’, 바깥주인 ‘훈’, ‘해라’의 친정어머니 ’미희‘, ’해라‘의 딸 ’나미‘이다.

 

 

‘훈’은 대저택의 주인이면서 거대한 힘을 가진 자본가의 상징이다.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본이란 권력을 최대한 이용하여 손에 넣고 싶은 것이 있으면 무엇이나 가져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존재이다.

 

 

거대한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존재라고 하면 우리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세계의 경제와 질서를 주도하며, 지구의 파수꾼임을 자처하지만 자국의 이익에 배치되면 작은 나라의 정권 정도는 그냥 바꾸어버릴 정도의 힘을 가진 나라이다.

 

 

‘훈’이 바로 그런 존재인 점은 작품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하녀인 ‘은이’와 성관계를 맺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수표를 건네는 행위, 자신의 입술을 깨물어서 상처를 낸 부인을 향해 마구 욕설을 퍼붓는 행위, 자기 자식을 마음대로 지우게 했다고 불같이 화를 내는 행위 등은 모두 위에서 말한 나라가 오랜 세월에 걸쳐 우리에게 보여준 것과 일치한다.

 

 

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유전자를 이어받은 자식뿐이다. 자신의 핏줄을 잉태한 부인이나 하녀 모두 자신을 위한 하나의 부속품 정도로 여긴다. 그래서 그런지 이 주인공이 사는 대저택은 위압감을 느낄 정도의 모양을 가진 하얀 집으로 설정된다.

 

 

다음으로는 ‘훈’의 부인인 ‘해라’를 보자. 그녀는 스스로가 가진 힘은 아주 미약하거나 거의 없지만 남편이 지닌 자본력과 권력을 바탕으로 부유한 생활을 하면서 교양이 철철 넘치는 행동을 하는 귀부인이다.

 

 

그러나 이것은 집안에서만 그렇기 때문에 그 집을 벗어나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그런 존재가 바로 ‘해라’이다. 그녀는 ‘훈’의 아이를 얼마든지 많이 낳고 싶어 한다. 자신을 지탱해줄 끈은 남편이 끔찍하게 아끼는 자식밖에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직 남편이 바라는 것만을 위해서 그것을 만들어내는 것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존재가 ‘훈’의 아내인 ‘해라’인 것이다. 이것은 2010년 현재 우리가 처한 국내, 국제상황과 너무나 잘 맞아 떨어진다.

 

 

글로벌화라는 미명으로 세계에 횡횡하는 거대 자본주의에 편승하여 그것에 부합하는 것들을 복제하여 재생산함으로써 나라를 유지해나가는 처지에 있는 우리나라와 대저택의 부인이면서 부유한 생활과 집안에서의 권력을 가지지만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힘도 가지지 못한 ‘해라’의 상황이 같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제3세계의 노동력을 헐값으로 빌려 쓰면서 거대 자본주의 국가들에게서 배운 첨단기술- 원전기술 같은 것-들을 후발 자본국가들에게 팔면서 뷰유한 경제생활을 누리고 있는 나라가 바로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이 보는 우리나라의 현실이 되는 것이다.

 

 

‘해라’의 상황이 우리나라의 현재 상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사실은 하녀인 ‘은이’에 대한 행동을 보면 더욱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점잖은 그녀지만 ‘은이’가 남편의 핏줄을 잉태했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어느 누구보다 더한 독종으로 변해서 그녀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이 작품의 주인공이며, 제목이 되는 인물이기도 한 ‘은이’의 성격을 보자. ‘은이’는 이혼 후 식당일을 하면서 외로이 살아가던 여인이었다. 작품에서는 멍청하고 계산적이지 못한 인물로 그려지는데, 이것은 그녀가 자본주의를 잘 모르는 인물을 상징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녀는 아무런 계산도 없이 바깥주인인 ‘훈’을 받아들이고, 진실 된 마음으로 ‘나미’를 대하며, 뱃속에 있는 ‘해라’의 아이를 위해서도 성심성의껏 간호하고 돌본다. 그리고 자신의 뱃속에서 자라는 ‘훈’의 아이에 대해서도 그것을 빌미로 하여 어떤 행동을 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또한 그녀는 거대한 자본주의의 힘에 맞설 힘도 용기도 없는 연약한 존재이다. 대저택에서 그저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 있다면 집안일을 총괄하는 집사격에 해당하는 ‘병식’ 정도이다. 외부의 어떤 폭력에 대해 스스로를 지킬 힘을 전혀 가지지 못한 그런 존재가 바로 ‘은이’라는 캐릭터이다.

 

 

그런 그녀에게 핵폭탄과 같은 위력을 가진 ‘훈’의 아이가 들어서면서 주위를 긴장하게 만든다. 그녀가 가진 아이는 비록 세상에 나오지는 못했지만 ‘해라’와 ‘미희’에게는 핵폭탄 보다 더 무서운 존재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하녀인 ‘은이’는 바로 두 동강으로 나누어져 있는 우리 민족의 반쪽 중에서 북쪽이라는 상징성을 가진다. 자본주의를 직접 체험하지 못해서 그것이 지닌 거대한 힘과 권력을 피부로 느끼지는 못하지만 자신의 삶 전체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정도는 알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런 상징을 지닌 존재로 보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사실 현재의 세계 질서 속에서 아무런 힘도 발휘할 수 없는 북으로서는 핵은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일 수밖에 없는데, 이것은 영화에서 아무런 힘이 없는 약자인 ‘은이’가 가진 뱃속의 아이가 지닌 상징성과 일맥상통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에서 ‘은이’는 아이를 지울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해 ‘병식’과 상의한다. 그래도 바로 옆에 있으면서 유일하게 자기편이라고 믿을 수 있는 존재가 바로 그녀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영화에서 ‘병식’은 우리의 현실에서는 북과 혈맹관계에 있는 중국이라는 강대국이 될 수밖에 없다.

 

 

이제 ‘병식’와 ‘미희’의 캐릭터가 가지는 성격과 상징성에 대해 살펴보자. ‘병식’은 오랫동안 약자로 살아왔으나 꾸준히 힘을 길러오면서 자본주의의 생리를 너무나 잘 알게 된 존재이다. 온갖 수모를 견디면서 아들을 키워서 검사가 되도록 한 인물이지만 기본적으로는 ‘은이’와 같은 부류인 것이다.

 

 

그러므로 ‘병식’은 현재의 국제사회에서 볼 때, 사회주의를 포기하지도 않으면서 자본주의의 시장경제를 받아들여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면서 거대 자본주의 국가에서 어느 정도의 발언권을 확보한 상태인 중국이라는 나라를 의미할 수밖에 없게 된다.

 

 

‘해라’의 친정어머니인 ‘미희’ 역시 온갖 수모를 참고 견뎌가면서 아부를 하여 ‘훈’의 가문에 딸을 시집보내서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해라’를 좌지우지하는 배후 조종자이다. 따라서 ‘미희’는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민주주의를 심어주어서 오늘날의 우리를 있게 해주었다고 자부하는 일본을 상징한다고 보아 틀림없다.

 

 

마지막으로 살펴보아야할 인물은 ‘해라’의 딸인 ‘나미’이다. ‘나미’는 이상한 것을 너무나 많이 보고 자라서 그런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사리판단이 분명하면서 마음이 곧은 존재이다.

 

 

할머니가 사다리를 일부러 밀어서 ‘은이’가 떨어지게 한 것도 알고, 영어로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는 엄마가 잔인한 여자라는 것도 아는 그런 인물이다. 감독이 보여주려고 하는 ‘나미’라는 인물의 상징성은 우리나라의 미래를 짊어질 희망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나미’는 부모를 등진 채 관객 쪽을 향해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굴리고 있는 것이리라.

 

 

다음으로 살펴보아야 할 것은 작품의 배경이 되는 시간이다. ‘은이’가 하녀로 들어오는 때부터 시작된 겨울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그대로 계속된다. 찬바람이 불고 눈보라가 휘날리는 추운 겨울은 과연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수십 년에 걸쳐 우리의 삶을 좌지우지해 온 북풍이라고 보아야 한다. 남북이 분단된 이래 지금까지 60년을 넘게 살아오는 동안 중요한 매 순간마다 북풍이 불지 않은 때가 없었던 점을 생각하면 작품의 시간적 배경이 왜 겨울인지를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도 추운 겨울의 북풍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이 영화를 통해 감독은 우리에게 몇 가지의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 21세기의 우리 민족은 앞으로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가? 둘째, 핵으로 벼랑 끝 협상을 계속하다가 안되면 자폭하고 말지도 모를 동족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셋째, 우리의 정체성은 어디에 있으며, 그것을 찾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넷째, 민족의 미래를 짊어질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치고 있는가? 등이다.

 

 

2010년 현재에 우리 민족이 처해 있는 냉엄한 현실을 한 가정에서 일어나는 불륜관계라는 장치와 자본과 노동의 대립과 갈등이라는 장치를 이중으로 사용하면서 섬뜩할 정도로 날카롭게 그려낸 ‘하녀’야말로 이 시대의 주목할 만한 영화로 추천하는 것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