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쌍화점” 리뷰
-세 개의 시선, 엇갈린 운명-
영화 “쌍화점”은 고려시대에 불렸던 속요 「쌍화점」을 소재로 한 역사 시대극의 형태를 지닌 작품이다. 고려 말의 소용돌이치는 역사와 궁중에서 일어나는 반인륜적인 일들,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남과 남, 남과 여의 사이에서 일어난 운명을 건 애증의 삼각관계가 이 작품의 핵심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 이 영화를 올바르게 감상하기 위해서는 첫째, 쌍화점이라는 속요 작품의 이해, 둘째, 쌍화와 쌍화점이란 장소의 의미, 셋째, 고려 말의 국제관계, 넷째, 서로 다른 곳을 향하는 세 개의 시선, 다섯째, 잘못된 애증과 엇갈린 운명이라는 다섯 개의 포인트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속요 쌍화점은 어떤 작품인가?
속요 쌍화점은 고려 충열왕 때 궁중에서 소리극의 형태로 불렸다는 노래인데, 네 개의 장으로 되어 있다. 첫 번째 장의 노래가 바로 쌍화점에 대한 것인데, 쌍화점에 쌍화를 사러 갔던 여인이 그곳에서 回回아비에게 손목을 잡혀 잠자리를 같이한다. 만약 이 소문이 쌍화점 밖으로 퍼져나간다면 그곳에서 심부름하는 아이 광대가 소문을 냈다고 하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소문은 났고, 이 소문을 들은 다른 여인이 그 자리에 나도 자러가고 싶다는 욕망을 노래한다. 두 번째 장은 삼장사의 승려와, 세 번째 장은 우물에 사는 용과, 네 번째 장은 술파는 집의 아비와 각각 정사를 벌이는 내용으로 되어 있는 작품이 바로 쌍화점이다.
이 작품은 고려 속요 중에서 가장 음란한 내용을 가진 노래로 평가를 받으면서 대표적인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로 손꼽힌다. 여기서 여인과 정사를 벌인 회회아비는 대식국(大食國) 사람으로 외국인을 의미하는데,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은 쌍화점의 제 1장인 쌍화점에서 일어난 회회아비와의 정사 사건을 소재로 하여 작품을 구성하고 있다.
속요 쌍화점에 대한 해석에서 여인과 정사를 벌인 회회아비는 아라비아인이거나 몽고인 등으로 보고 있으며, 일반적으로는 쌍화점이라는 만두가게의 주인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주인으로 보지 않고 손님으로 설정하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홍림으로 등장하는 회회아비가 손님으로 설정된 것은 영화의 핵심 구도가 되기 때문에 이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둘째, 쌍화와 쌍화점이라는 만두가게가 영화에서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가?
영화에 의하면 쌍화는 몽골 민족의 고유 음식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정표로 주는 만두로 설정되어 있다. 그런데, 쌍화(雙花)라는 말의 의미가 아주 묘하다. 두 개의 꽃이란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두 개의 꽃이 있는 음식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두 사람의 정인이 있다는 의미다. 속요 쌍화점에서 쌍화를 사러 간 사람이 여성인데, 영화에서는 바로 왕비가 그 여인으로 나온다. 한 사람만을 지아비로 섬기기 위해 멀고 먼 몽골에서 고려까지 왔지만 처음의 주인과는 사랑을 이루지 못한다.
그러다가 자신과 대립관계에 있던 왕의 호위무사와 합궁을 하게 되니 이 사람이 바로 속요 쌍화점에 등장하는 회회아비가 된다. 그러므로 쌍화는 두 사람을 사랑해야 하는 한 여인의 비극적 운명을 담고 있는 존재가 된다.
그렇다면 쌍화를 파는 쌍화점(雙花店)은 어떤 곳인가? 두 개의 꽃이 있는 곳, 그곳은 바로 고려라는 나라다. 몽고의 공주였던 왕후는 노래의 내용에서처럼 쌍화를 사러 쌍화점에 간다. 고려를 원나라의 부마국으로 삼으려는 황제의 정치적 희생물이기는 했지만 공주는 고려의 왕을 사랑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고려의 임금은 자신에게 사랑의 정표를 주지 않는다.
자신이 취하려고 하는 쌍화라는 만두를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같은 동성을 사랑하면서 자신을 그 남자에게 넘겨버리고 만다. 속요 작품에 등장하는 회회아비가 바로 그런 존재인데, 영화에서는 임금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으로 호위무사의 수장인 홍림으로 등장한다.
그러므로 쌍화는 사랑을 이루는 존재이면서 두 사람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비극적인 여인의 운명을 나타내는 존재로 그려지고, 쌍화점은 국제사회의 소용돌이 속에 놓여 있는 공민왕 때의 고려를 의미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셋째, 고려 말의 국제관계는 어떠한가?
당시 고려는 몽고가 세운 원나라의 지배 아래에 있으면서 매우 어려운 처지에 있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벽란도를 통해 국제 무역을 활발하게 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여기에 등장하는 존재가 바로 대식국(大食國)이다. 영화에서는 명마를 가져오는 나라로 그려지는데, 이것은 교역을 통해서 좋은 말을 들여왔다는 의미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12세기 이후의 고려 사회는 정치적으로는 원나라의 부마국이라는 종속관계에 있었지만 국제 무역관계에 있어서는 매우 활발한 교역을 했던 것으로 파악되는데, 정치적 관계에서 등장하는 인물이 원나라의 공주이고, 무역관계에서 등장하는 인물이 회회아비로 지칭되는 대식국 사람이고, 영화에서는 홍림이다.
평면적으로 볼 때 홍림은 고려 사람으로 생각되지만 작품을 잘 관찰해보면 대식국 사람이라는 것을 은연중에 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임금이 홍림에게 ‘좀 있으면 네가 바라는 선물이 도착’할 것이라고 말하는데, 그가 왕비와 밀회를 하고 있는 그 시간에 대식국에서 온 훌륭한 말을 임금이 홍림에게 주기 위해 기다리는 장면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쌍화와 쌍화점을 소재로 취해오면서 감독이 만든 삼각구도의 한 장치라고 할 수 있는데, 만약 그런 홍림을 대식국 출신 사람으로 설정하지 않고 작품을 만들었다 하더라도 감독의 손을 떠난 영화에서는 그렇게 그려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쌍화점을 고려로 보고, 주인과 회회아비와 여인의 관계를 고려와 대식국과 몽고의 국제관계로 설정한 구도는 삼각관계를 그리는 중요한 포인트로 작용함으로써 작품의 긴장감을 높이는 장치가 된 것으로 보인다.
넷째, 서로 다른 곳을 향하는 세 개의 시선,
이처럼 서로 다른 성향을 가진 세 사람이 쌍화로 상징되는 애증의 연결고리를 통해 쌍화점이라는 만두가게인 고려에 모였으니 바라보는 시선이 같을 수가 없었다. 주인인 고려의 임금은 남자구실을 못하는 동성애자로 호위무사인 홍림을 사랑하고, 정치적 희생물로 고려에 온 공주의 시선은 자신의 쌍화를 바칠 대상인 고려의 임금을 향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궁중에서 자란 홍림은 처음에는 임금을 향한 시선이 고정되어 있었지만 후사를 이어야 한다는 정치적 목적으로 인해 왕비와 동침을 하면서 그의 시선은 점차 임금에게서 왕비로 옮겨가게 된다. 그렇게 되면서 왕비의 시선 역시 임금에게서 홍림에게로 이동하게 되는데, 이것이 비극의 시작점이 된다. 이때부터 세 사람의 심리 묘사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특히 중요하게 봐야할 것이 원나라의 공주인 왕비의 시선이다. 임금을 향한 처음의 시선은 쌍화를 사서 고려의 여인이 되기 위한 그녀의 노력을 나타내주고 있다. 그러나 주인에게 거절당하고 반강제로 동침하게 된 홍림에게 애정의 시선이 옮가가게 되면서 인간적인 사랑에 눈을 뜨게 되고 그 사랑은 정치적 목적을 넘어서게 됨으로써 그녀의 시선은 온통 홍림에게 고정된다.
그러나, 홍림과 왕비의 시선이 움직이게 되면서 쌍화점의 주인인 임금에게 향하던 두 개의 서로 다른 시선은 방향을 바꾸면서 사랑과 배신을 낳게 되고, 이제부터는 손님인 홍림에게 임금과 왕비의 시선이 집중하게 된다. 두 개의 꽃을 향한 시선의 이동은 정치라는 현실성과 사랑이라는 이상 사이의 거리를 더욱 벌어지게 만들면서 비극적 운명으로 치닫게 될 단초를 마련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세 개의 시선 중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역시 임금의 시선이다. 임금의 시선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도 변하지 않고 홍림을 향해 있고, 죽을 때까지도 그 시선은 지켜지고 있다. 홍림과의 사랑은 정치적 목적이나 권력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하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서라도 그것을 지키려 한다.
변하지 않은 임금의 사랑은 100년 넘게 지배를 받아오던 원나라로부터 벗어나려는 강렬한 의지를 나타내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이 욕망은 자신을 둘러싼 주변의 강력한 힘 때문에 성공하지 못하고 비극적 죽음을 맞이하게 되니 고려의 운명이 다했음을 알려주는 신호가 되기도 한다.
반면 왕비의 사랑은 얼핏 보아서는 진정한 사랑으로 보이기 쉽지만 그녀의 사랑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을 향한 사랑으로 일관하기 때문에 상대를 죽일 수밖에 없는 비극적인 것이었다. 임금을 향한 처음의 사랑은 정치적 목적에서였고, 홍림과의 사통을 통해 육체에 눈을 뜨면서 찾아온 사랑은 너무나 맹목적이었기 때문에 결국 두 사랑을 모두 잃게 되는 것이다.
균형을 잡지 못한 그녀의 사랑으로 인해 임금의 사랑도, 그녀를 사랑하는 홍림의 사랑도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말았으니 서로 다른 세 개의 시선 중에서 가장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왕비의 시선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또한 이중성을 가지고 있던 홍림의 시선은 영화가 진행하면서 점점 왕비를 향해 고정이 된다. 자신을 향한 임금의 강렬하고도 진정한 사랑의 시선을 외면하고, 애초의 삼각관계를 깨뜨리고 임금과는 방향이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으니 그 또한 어리석은 사랑을 한 셈이 된다. 그러나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 그의 시선은 임금을 향하고 있었으니 그때서야 임금이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했다는 것을 알았는지 모른다.
다섯째, 잘못된 애증과 엇갈린 운명
이처럼 세 사람이 가진 각각 다른 세 개의 시선은 서로 다른 곳을 보고 향하게 됨으로써 운명적으로 비극을 맞이하게 될 충분한 조건을 갖추게 되고, 그 결과는 불을 보듯 확실한 모습으로 세 사람의 목을 조여 오게 된다.
고정된 하나의 시선과 옮겨가는 두 개의 시선이 만들어낸 절묘한 애증의 삼각관계는 두 개의 꽃 중에서 어느 꽃도 얻지 못하는 왕비의 비극적 운명으로 막을 내리게 되는데, 역사적 삼각관계와 인간적 삼각관계를 축으로 하면서 세 사람의 심리 변화를 잘 그려내고 있다는 점을 가장 뛰어난 장점으로 꼽을 수 있겠다.
출연 배우의 파격적 노출 장면들이 별로 외설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도 세 주인공이 만들어내는 묘한 삼각관계와 그 과정에서 변화하는 심리에 대한 묘사가 매우 치밀하게 전개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것이 있다면 홍림과 왕비가 이성간의 사랑에 눈을 뜨고, 밀회를 거듭하면서 광기에 가까운 복수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그때까지 고조되었던 긴장감이 느슨해지짐과 동시에 상당히 지루하게 진행하는 느낌을 줄 수밖에 없었다는 점은 지적하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쌍화점”은 속요 “쌍화점”에서 취해온 소재를 정치적 관계와 인간적 관계라는 두 개의 삼각구도를 바탕으로 함과 동시에 각각 다른 세 개의 시선을 통해 등장인물의 심리상태를 아주 효과적으로 그려내어 관객에게 높은 예술적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아도 좋을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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