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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세계/문학으로영화보기

영화 [색, 계] 리뷰

by 竹溪(죽계) 2007.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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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 계] 다시보기 


영화는 감독이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것을 가장 효율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여러 가지 장치를 이용하는 종합예술이다. 그러므로 영화를 보는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는 감독이 영화 속에 사용하고 있는 장치와 의미를 찾아서 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며, 이것은 작품을 이해하는 결정적인 구실을 한다. 


어떤 영화는 스토리를 따라가면서 스피드나 폭력, 그리고 재미있는 이야기 등을 화면을 통해 눈으로 보면서 아무 생각 없이 즐기기만 해도 되지만, 무거운 주제와 함께 그 주제를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 감독이 설정한 여러 장치들을 알아차림과 동시에 그 의미를 생각하면서 보아야만 제대로 본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영화도 있다.

 

 

[색, 계]가 바로 장치를 잘 보고 그것이 가진 의미를 제대로 짚어내야만 제대로 이해했다고 볼 수 있는 영화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작품은 다음의 두 가지를 염두에 두고 관람해야할 것으로 생각된다.


하나는 작품의 제목인데, 왜 「색계」라 하지 않고 ‘色’과 ‘戒’를 나누어서 제목을 설정한 것인가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남녀주인공이 지니고 있는 성격을 보여주는 삼각구도의 의미이다. 이제 이런 점들을 중심으로 하면서 이 영화를 따라가 보자.


[색, 계]의 스토리는 아주 간단하다. 일본군이 강제로 점령한 1942년 중국의 상하이에서 친일분자의 앞잡이로 장관의 자리에까지 오른 ‘리’를 미인계로 접근하여 암살하려던 대학생 저항 조직이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모두 죽음을 맞는다는 것이 이 영화의 스토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독은 이런 간단한 이야기를 보여주기 위해 장장 157분이라는 시간을 투자한 것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은 무엇을 보여주기 위해 이처럼 긴 영화를 만든 것일까?


필자가 보기에 그 핵심은 만물을 이루면서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인 ‘색’을 통해서만 비로소 본질인 ‘계’에 이를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남녀주인공이 지니고 있는 이중적인 성격과 그것을 보여주는 삼각구도에 들어있는 의미일 것으로 생각된다.

 

 

‘색’은 인간에게 갖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근원으로 만물을 우리의 눈앞에 드러나게 하는 현상이다. 이러한 현상은 아름다움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강렬한 유혹을 유발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색’은 그것을 이용하려는 자에게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으며, 갖고 싶어 하는 자에게는 강력한 위험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색’을 통하지 않고는 결코 본질인 ‘계’로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이다.


‘계’는 지켜야할 것, 보존해야할 것 등을 가리키는 말로 어떤 사물이 지니고 있는 본질이다. 그런데, ‘색’을 이용하려는 자나 갖고 싶어 하는 자나 모두 본질인 ‘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합일되지 않는 한 충돌할 수밖에 없다.


영화에서 ‘리’와 ‘막부인’은 같은 ‘색’을 중간에 놓고 그것을 매개로 하여 관계를 맺지만 서로가 지켜야할 본질인 ‘계’가 다르기 때문에 두 사람은 충돌을 하면서 갈등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제목을 [색, 계]라고 한 이유가 된다.    


영화를 보면 여주인공이  남주인공의 집으로 들어왔을 때 그 방을 찾아온 ‘리’와 침대 모서리에 앉아있는 ‘막부인’이 만나는 장면이 삼각구도로 되어 있으며, 저항세력이 모두 처형되는 그 시각에 집에 있는 ‘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던 그 자리에 앉아있고, 방 문 앞에는 ‘리’의 부인이 서 있는 삼각구도가 다시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두 장면은 같은 삼각구도이기는 하지만 남녀주인공의 위치가 서로 바뀌었다는 것 외에도 앞의 삼각구도는 작품의 중간에 등장하고, 뒤의 삼각구도는 작품의 마지막에 등장한다는 점에서 이 두 장면을 기점으로 가장 중요한 전환이 일어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된다.  


앞의 삼각구도에서 볼 때, 침대 모서리에 앉아있는 ‘막부인’과 거울에 비친 ‘막부인’은 현상적으로는 같은 인물이지만 이중적인 성격을 지녔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이때부터 암살과 사랑의 갈등이 시작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치가 바로 이것이라는 말이 된다.


다시 작품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두 사람이 ‘리’의 집에서 마주하기 전까지는 ‘막부인’에게 있어서 ‘리’는 단순히 죽여야만 할 친일매국노였으며, 그에 대한 아무런 감정이 없는 상태였다. ‘리’ 역시 ‘막부인’에 대해 그냥 스쳐지나가는 정도의 존재이며, 조심해야할 대상의 하나였을 뿐이었다.


그러므로 홍콩에서의 만남은 두 사람에게 어떤 변화도 남겨주지 못한 채 끝을 맺고 마는 것이다. ‘리’의 집에서 만나기 전까지 두 사람은 완전히 다른 서로의 세계 즉, 서로 다른 ‘계’에 속해 있으면서 공유할 것이 전혀 없는 그런 존재들이었다.


이때까지 두 사람은 서로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 각자가 지켜야 하는 ‘戒’를 숨기고 있으면서 어설픈 만남만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그런 사이였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戒’는 단순한 경계가 아니라 남녀주인공이 각각 지켜야할 세계이며, 자신들의 본질이 된다.


이때 ‘리’의 ‘계’는 일본이었고, ‘막부인’의 ‘계’는 일본에게 침략을 당한 중국이었다. 두 사람의 ‘계’는 완전히 반대가 되면서 공존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한쪽은 지키려 하고 한쪽은 공격하려 하는 정도의 관계밖에 성립하지 못한다.


이러한 상태에서 4년이 지난 후에 두 사람이 만난 ‘리’의 집에서 보인 삼각구도에서 비로소 ‘막부인’의 이중성이 드러나게 된다. 즉, 이제부터 사랑을 매개로 하는 ‘색’이라는 현상을 통해 두 사람의 공통의 본질인 ‘계’의 세계로 들어가는 전환점을 읽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때부터 여주인공인 ‘막부인’은 철저하게 이중적인 존재로 행동하게 되는데, 자신이 지켜야할 본질인 ‘계’를 허물지 않으면서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스파이가 하나이고, 섹스와 진심을 매개로 하는 현상인 ‘색’을 통해 한 남자를 사랑하고 지켜야 하는 운명의 여인이 다른 하나이다.


결국 ‘막부인’은 동료들과 자신을 죽음이라는 위험에 빠뜨려가면서 까지 ‘리’의 목숨을 구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리’는 변화된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의 인생이 얼마나 허무한가를 비로소 깨닫게 된다. 이것을 위해서 감독은 작품의 시작부터 끝까지 ‘리’의 공허한 눈빛 연기를 필요로 했을 것이다.


그의 그런 깨달음은 지금까지 허수아비처럼 살아온 그의 자리였던 문 앞에 부인이 서있고,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이 있던 자리에 자신이 앉아서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을 보는 마지막 삼각구도에서 그 의미가 완성된다.


즉, 자신이 사랑하였고 자신을 사랑했던 ‘막부인’을 죽음으로까지 몰고 갔던 자신의 삶과 일본의 침략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가를 깨닫고 이제부터는 자신이 바로 그 자리에 서서 이중적인 삶을 살아갈 것을 보여주는 장치가 바로 마지막 삼각구도가 되는 것이다.


결국 이 영화를 통해 감독이 말하려고 했던 것은 단순한 폭력이나 암살 같은 것 보다는 진정한 사랑을 매개로 하여 스스로를 변화시킴으로서 자신이 지켜야할 본질인 ‘계’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알도록 하는 것만이 중국의 희망이 된다는 사실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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