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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사육신관련/사육신기록

사육신왕조실록기록(영조34년10월7일)사육신에충자시호내림

by 竹溪(죽계) 2006.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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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 34년 10월 7일 (경신)

재실에서 《장릉지》를 읽게 하고 사육신과 3상에게 ‘충’자로 시호를 내리도록 하다

 

 

임금이 재실(齋室)에 나아가니, 예조 판서·병조 판서가 입시(入侍)하였다. 임금이 예조 판서 홍상한(洪象漢)에게 이르기를,

“홍세태(洪世泰)는 노예(奴隷)라는 이름이 있었으나, 문장(文章)은 고귀하다고 내가 어렸을 적에 그 이름을 들은 적이 있어서, 사람을 시켜서 그의 시(詩)를 받아오게 하였었다. 그러나 내가 일찍이 몸을 삼가고 조심하여 여리(閭里)의 사람들과 교제를 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그의 면목(面目)을 알지는 못한다.”

하였다. 임금이 승지에게 명하여 《장릉지(莊陵誌)》를 읽게 하고, 임금이 말하기를,

“선조(先朝)의 어시(御詩)에서 ‘욕의(縟儀)를 추후하여 거행하는 날 세조[世廟]의 덕이 더욱 빛난다.[縟儀追擧日世廟德彌光]’라는 귀절이 있는데, 성상의 뜻이 탁월하여 포함한 의도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미덕(美德)을 돌리려는 뜻이 있었으니, 재삼 이를 받들어 완미(玩味)하면 흠모하고 감탄하는 마음을 이기지 못한다.”

하고, 임금이 단종조[端廟朝]의 사육신(死六臣)과 3상(相)에게 ‘충(忠)’자를 가지고 시호를 내려 주도록 명하였다.



【원전】 43 집 701 면

 上御齋室, 禮、兵判入侍。 上謂禮曹判書洪象漢曰: “洪世泰有奴隷之名, 而文章可貴, 予少時聞其名, 使人受詩以來。 而予嘗謹愼, 不交閭里人, 故不知其面目矣。” 上命承旨, 讀《莊陵誌》。 上曰: “先朝御詩, 有 ‘縟儀追擧日, 世廟德彌光’ 之句, 聖意卓越, 含包不露, 有歸美之意, 再三奉玩, 不勝欽歎。” 上收議於大臣, 命端廟朝六臣、三相, 以忠字賜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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