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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의세계/기생이야기

기생조합의 효시 한성권번

by 竹溪(죽계) 2006. 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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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조합의 효시는 한성기생조합이다. 이것은 관기제도가 폐지된 1908년 9월 이후에 소속이 없어진 유부기(有夫妓)1)들을 모아서 조직한 조합으로 추정된다. 자신들의 존재를 폐지하는 것에 불만을 품은 기부들은 스스로 예기(藝妓)를 가르치는 강습소를 설립하고 기생을 회동하여 가무와 기예를 가르치게 되는데,2) 이렇게 생겨난 것이 바로 한성기생조합이다.   1908년 10월 27일자 「황성신문」에는 박한영을 포함한 30여인이 발기하여 풍속을 개량할 목적으로 한성에 기생조합을 만들어 규칙을 제정하고 경시청에 청원하였다는 기사가 실려 있다. 한성기생조합은 바로 이즈음에 설립된 것이며 이로써 조선 기생의 ‘권번화’가 시작되게 된다.

한성기생조합은 1909년 초부터 고아원의 경비를 보조하기 위해서 원각사에서 자선연주회를 하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한다. 다음의 신문기사들에서 그러한 활동 내역을 볼 수 있다. 


「자선연주회」. 문천군 기근을 위하여 한성기생조합소에서 음력 윤달 11일로 한 10일 연주회를 원각사에서 열어 다소간 기부를 바라니, 원각사의 성의 또한 감사하여 이로써 알려드리니 모든 군자는 왕립하시기를 바랍니다. 한성기생조합소 백.

(「慈善演奏會」. 文川郡 飢饉을 爲하여 漢城妓生組合所에서 陰 閏月 十一日로 限 十日 演奏會를 設行於圓覺社하여 多少間 寄附하올되 圓覺社 誠意 尤極 感謝하와 玆以共布이오니 僉君子는 枉臨하심을 望하옵. 漢城妓生組合所 白. 󰡔황성신문󰡕, 1909년 4월 1일)

「연주회 개최」. 본소에서 경성 고아원 경비에 보조하기 위하여 오는 13일 (음력 3월 4일)부터 원각사에서 연주회를 한 일주간 개최하오니 慈善하신 모든 분들은 마음에 새겨주시기 바랍니다. 한성기생조합소 기생 연홍, 앵무, 농월 등 알림.

(「演奏會開催」. 本所에서 京城孤兒院 經費에 輔助하기 爲하여 今 十三 日 (陰 三月 四日)부터 圓覺社에서 演奏會를 限 一週間 開하오니 慈善하신 僉閣下는 光顧하심을 切望함. 漢城妓生組合所 妓生 蓮紅 鸚鵡 弄月 등 告白. 󰡔황성신문󰡕, 1910년 4월 12일, 󰡔대한매일신보󰡕, 1910년 4월 13일)


한성기생조합은 후에 광교기생조합으로 명칭을 바꾸게 되고 이후 1914년에 다시 한성권번으로 이름을 바꾸고 조직을 개편하였다. 한성권번은 안춘민(安春敏), 엄순모(嚴淳模) 등 3인의 힘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들 몇몇의 힘으로 합자회사의 형식으로 「광교조합」이 형성되었고, 그 당시 소리와 춤으로 유명한 류개동(柳開東), 주영화(朱榮和), 장계춘(張桂春), 김용태(金用泰) 등을 선생으로 모시고 재주 있고 총명하고 얼굴 예쁜 기생들을 길러냈다고 한다.

 

한성권번에는 퇴역 관기와 남도지방의 기생들을 포함하여 장안의 일류 기생들이 소속되어 있었다. 「삼천리」 8권 8호에 실린 <명기영화사 한성권번(名妓榮華史 漢城券番)>에는 한성권번이 배출해낸 명기들이 소개되어 있다. 이 기사가 씌어진 때는 한성권번이 설립된 지 30여 년이 지난 때였는데, 필자는 장안의 명기(名妓)․명창(名唱)치고 한성권번의 무대를 밟지 않은 이가 없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당시의 한성권번에는 만년 명기도 있었고, 신예 명기도 있었다. 조목단(趙牧丹), 白牧丹 같은 이들은 40의 고개에 이르러서도 장안의 인기를 잃지 않았다고 한다. 이들은 기생 생활을 그만 두었다가도 불과 몇 해만에 기적(妓籍)에 나타나서 이렇게 오랫동안 기생생활을 해왔다고 한다. 이중 조목단은 「경성잡가」, 백목단은 「서도소리」를 잘하였다고 한다.

중년 명기쯤 되는 이들에는 김옥엽(金玉葉)과 李眞鳳이 있었다. 30대의 이들은 모두 평양 출신으로서 서도소리가 장기였다. 한성권번에서 조선 소리로 인기 있는 기생 하면 이들이었다고 한다. 한편 남도소리를 잘하는 기생으로는 전라도 구례 출신 김금옥(金錦玉)이 있었다. 돈 잘 쓰는 전라도 부자들이 서울에 올라오면 으레 금옥의 얼굴을 대하여 그는 매우 호화로운 생활을 했다고 한다. 

 

한편 위의 명창들과는 달리 ‘땐스’ 잘하는 현대적인 기생들도 인기가 높았다. 그러한 기생들에는 이춘홍(李春紅), 김진옥(金玉眞), 유금도(柳錦桃), 이현정(李賢貞), 구근화(具槿花) 등이 있었다. 이들은 20대의 젊은 나이로 신식 춤과 노래를 잘했으며 용모도 아름다웠다. 이중 이춘홍과 유금도는 평양 기생학교 출신이다.

많은 명기들을 배출해낸 한성권번은 1938년에는 주식회사 한성권번 부속 기생학교가 인가되었으며, 1942년 8월 17일에 삼화권번(三和券番)으로 통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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