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생의세계/기생이야기

평양기생 출신의 조선권번

by 竹溪(죽계) 2006. 1. 25.
728x90
SMALL
 

한성기생조합이 기부(妓夫) 있는 기생을 대상으로 한 유부기(有夫妓) 조합이었다면, 이에 대항하여 기부 없는 기생을 대상으로 조직한 조합이 다동기생조합(茶洞妓生組合)이다. 이 조합의 구성원은 주로 평양 중심의 서도 출신의 기생으로 구성되었는데, 이후 1919년(대정 8년)에 대정권번(大正券番)으로 개칭하며, 대정권번에서 분리되어 평양기생들로만 조직된 대동권번(大同券番)이 이로부터 분리된다. 조선권번은 1923년에 하규일1)을 중심으로 대정권번에서 갈라져 나온 것이다. 초창기로부터 1936년까지 조선권번에서 교육시킨 기생만도 3,000여 명을 헤아렸다고 할 만큼 조선권번은 서울의 대표적인 권번이었다.

󰡔삼천리󰡕 8권 6호에 실린 <명기영화사(名妓榮華史) 조선권번>에는 조선권번이 배출해낸 여러 명기들에 대한 소개가 나와 있다. 원산홍(元花紅), 오소홍(吳小紅), 김산호주(金珊瑚珠) 등은 모두 하규일씨의 손아래에서 자라난 기생들로 大正 元年경에 활동한 대선배격의 기생들이다. 이들이 물러간 뒤에는 현매홍(玄梅紅)과 김월산(金月仙)이 또한 당대의 한다하는 이름을 날리던 기생들이었다고 한다. 열너덧 살에 기생이 된 이들은 경성잡가(京城雜歌)와 서도잡가(西道雜歌)에 뛰어났는데, 매홍은 또한 김상순(金相淳)에게 배운 양금 연주가 걸출했다. 이들은 후에 돈 있는 남자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14세에 기생에 나선 주산월(朱山月)은 얼굴은 비록 예쁘지 않았으나 기예가 뛰어나고 마음씨가 곱고 태도가 아련해서 인기가 많던 기생이었는데, 천도교 교주 손병희와 절친한 사이어서 그가 죽었을 때에는 뜨거운 피눈물을 그의 무덤 위에 몇 번이고 뿌렸다고 한다. 이후 주산월은 기생일을 접고 천도교의 돈으로 동경에 건너가 여자 영어숙(英語塾)학교를 졸업하고 돌아와 천도교 여자부의 총무로서 독신으로 지내었다. 대정 8년부터 기생이 된 이난향(李蘭香)과 김산호주(徐刪瑚珠)는 평양 태생으로 춤, 노래, 양금을 잘 하여 매우 인기가 있었고, 그들의 뒤를 이어서는 백운선(白雲仙)과 김수정(金水晶)이 있었다.

많은 명기를 배출해 낸 조선권번은 1936년 4월 30일 하규일에 의해 경성부 다옥정 45번지에 자본금 8천원의 주식회사로 바뀌었다. 1939년에는 대표가 이종완으로 변하였고, 1942년에는 다시 일본인으로 대표가 바뀌었다가 1942년 8월 17일 삼화권번으로 통합되었다. 다음은 󰡔삼천리󰡕 8권 6호에 실린 <명기영화사 조선권번>의 전문이다.



名妓榮華史 朝鮮券番


                                                                  浪浪公子


서울장안에 기생권번(妓生券番)이 몇이던가?

조선권번(朝鮮券番)이 있고

한양권번(漢陽券番)이 있고

종로권번(鍾路券番)이 있다.

이 세 개의 기생권번에는 그러면 도대체 얼마나 기생들이 있는가?

 

한 권번에 근 오백(五百)명, 세 권번이면 천오백 명(千五百名)의 기생들이 있다.

기생권번이란 한마디로 말한다면 「기생」을 만들어내는 기생학교이다. 이들 권번에서는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 양금이면 양금, 모두가 제각기 선생이 앉아 있어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웃으며 욕해가며 기생들을 기르는 데가 여기다.

그러면 조선에 기생이 언제부터 있어 왔던가하면 그야 역사가들의 알 바로서 아마 신라, 백제, 고구려의 삼국시대부터 있어왔다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고려 때에야 비로소 완전한 기생이 있었다고 하나 이런 것은 우리들의 알 바가 아니라, 다만 조선은 자고(自古)로 기생이 하도 유명하여 왔던 것만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요, 누구나 아는 일이다.

 

궁안에 무슨 연회(宴會)가 있을 때도 기생. 고관대작이나 돈푼 있는 풍류객들에게도 거저 기생.

 이러한 기생들도 그 옛날엔 다만 「기생서방」이 있어 기껏해야 한집에 사오명(四五名)이 아니면 오륙명(五六名)이 모이면 대작이고 돈푼이나 발겨먹자는 야비한 수단을 모르는 깨끗한 「기생」도의 품성을 기르기에만 힘을 쓰는 한 개의 예술가들이었다.

 이 자리에서는 이 세 권번 중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되고, 유명한 기생을 많이 이 강산(江山)에 내보낸 「조선권번」을 먼저 찾아, 한 때에 그 이름이 휘날리던 유명한 기생들의 영화사(榮華史)를 다시금 한번 더듬어 볼까한다.

 그러면 「조선권번」의 연혁(沿革)은 어떠한 길을 밟아 왔나부터 간단히 적어 본다.

 개명 이후 모든 제도가 일신하고 새로워지는 통에 이 기생에 대한 제도도 새로 생겨났던 것이다.

 

 그전에 기생들은 기생서방에게 매달려서 일생을 기생으로 그 서방에게 모든 것을 다 바쳐 오던 지난날의 서방제도를 없이 하고 새롭게 기생권번을 만들었던 것이니 이것이 명치사십삼년(明治四十三年), 하규일(河奎一)씨와 그밖에 몇몇 분이 널리 전선으로 기생을 모집하여 소위 기생조합을 만들었던 것이다. 이때에 모여온 기생들이란 대부분이 평양기생들이었다. 이것이 대정팔년(大正八年)에 와서 비로소 「대정권번(大正券番)」이란 이름으로 오늘의 조선권번의 전신(前身)이 되었던 것이다. 명치사십삼년(明治四十三年)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 「조선권번」은 오로지 하규일(河奎一)씨의 공로이요 꾸준한 지도가 있었다한다. 또한 이 권번의 초창기로 오늘날까지 하규일(河奎一)씨의 손 밑에서 자라난 기생이 수삼천명(數三千名)을 헤아린다고 하니 실로 조선기생권번사의 첫 페이지를 이루는 하규일(河奎一)씨의 존재는 뚜렷한 바가 있다 할 것이다. 지금에 하규일(河奎一)씨는 「조선권번」을 움직이는 한 주인으로 되었다.

 

 조선의 정악(正樂)은 물론이지만 춤 잘 추고 노래 잘 부르는 하규일씨의 손아래에서 하나에서 수천을 헤아리는 수많은 기생(妓生)들 가운데서도 얼굴 잘 나고 재주가 용하고 춤 잘추고 노래 잘 불러서 장안의 호걸과 풍류객들이 너도나도 하며 단 침을 삼키며 연연사모하던 기생들이 하나 둘이 아니려니 이제 이들의 지난날의 성망(聲望)과 그들의 자취도 알아보자. 원화홍(元花紅)이 그러하고 오소홍(吳小紅)이 또한 그러하다.

 

그밖에는 김산호주(金珊瑚珠) 또한 빠질 수 없는 한다하는 명기(名妓)였다. 이들은 모다 하규일(河奎一)씨의 손아래에서 노래를 배우고 춤을 배운 유명한 기생들이었다.

 고향은 본래가 모다 평양이었으나 서울에 올라와 한동안 수많은 남자의 흠모와 사랑을 무던히 받아오던 기생들이다. 그중에도 더구나 김산호주(金珊瑚珠)같은 기생은 「일문십지(一聞十知)」하는 재주를 구비한데다가 평양에서부터 이름있는 어여쁜 얼굴을 가진 기생이다. 「패성」의 풍류객도 풍류객이려니와 그 당시 서울장안의 기생방을 드나드는 고관대작의 아들까지 사랑을 아끼지 않던 일대명기였다. 그 때가 바로 대정원년(大正元年)경이어서 아직 예적도 없이 지나던 때의 일이다. 지금의 이들은 모다 어느 돈 많은 남자들을 얻어가서 곱다랗게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지! 그렇지 못하면 일찍이 세상을 떠나갔는지? 그들의 소식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이들이 한번 기생의 자리를 물러간 뒤에는 현매홍(玄梅紅)과 김월선(金月仙)이 또한 당대의 한다하는 이름을 이 강산(江山)에 날리던 명기(名妓)들이다. 현매홍(玄梅紅)의 본명(本名)은 달순(達順)이요, 김월선(金月仙)의 본명(本名)은 복순(卜順)이라. 둘이 모두 지금에는 사십(四十)을 가까이 바라다보는 이들로서 매홍(梅紅)은 열 넷에 월선(月仙)은 열다섯에 똑같이 기생이 되어서 하선생(河先生)의 귀여움을 받아가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춤추고 노래 부르게 되었으니 둘이 모두 경성잡가(京城雜歌)와 서도잡가(西道雜歌)를 잘하는 명창(名唱)들이었다. 더구나 매홍(梅紅)은 김상순(金相淳)씨에게서 양금(洋琴)까지 배워서 양금 잘 타기로도 당대에 그 이름이 자자하였던 기생이다. 모다 십오년(十五年)동안이나 기생으로 있으면서 십여년전(十餘年前)까지도 이름있는 명기(名妓)로 치던 기생들이다. 지금에는 모두 현모양처가 되여 돈 있는 남자의 가정으로 들어갔다한다

 

그런데 이들과 거의같이 나와서 몇 해 앞서 기적(妓籍)에서 물러간 이로는 김명옥(金明玉)이 있다. 명옥(明玉)이 역시 지금은 오십(五十)의 고개를 바라게 되는 몸이나 한 이십년(二十年)전까지는 춤 잘 추고 노래 잘 부르기로 (더욱이 서도잡가(西道雜歌))는 빼어 놓을 수 없는 명기(名妓)의 하나였다. 지금엔 이 기생도 전라도 어떤 부호와 짝을 지어 평온한 가정을 이루어 여생을 보낸다고 한다. 그 다음에 나타난 명기(名妓)가운데는 주산월(朱山月)이 있다. 본명(本名)은 주○경(朱○京)이다. 일찍이 「천○교의×대교주 손×희」의 뜨거운 총애를 받아 오던 주산월(朱山月)이는 어려서 십사세(十四歲)에 기생으로 나섰던 것이다. 

 

 얼골은 비록 잘 나지 못한 편이나 노래 잘 부르고 춤 잘 추고 더구나 마음씨가 곱고 태도가 아련해서 장안의 수많은 남자들이 그의 뒤를 따랐다.

 손○희씨가 세상을 떠날 때에는 비록 기생의 몸으로 있으나마 침식을 잊어가면서 극진한 간호를 하였던 것이며 그가 돌아감에 뜨거운 피눈물을 그의 무덤 위에 몇 번이고 뿌렸다고 한다. 그가 기적을 떠나 천○교의 돈으로 동경에 건너가 여자 영어숙(英語塾)학교에까지 졸업하고 돌아와 오늘날까지 내내 독신으로 지내면서 지금엔 천○교의 여자부의 총무로서 50의 고개가 넘도록 피로를 모르고 부지런히 일을 하여 가고 있다.

그가 간 후에는 또한.

이난향(李蘭香)과 서산호주(徐刪瑚珠)를 손꼽을 것이다.

이난향의 본 이름은 仙?요 서산호주의 본 이름은 순봉(順鳳)이다. 둘이 다 대정 8년부터 기생으로 나섰으니 난향이 나이 19요 산호주는 15였다.

평양이 역시 이들의 고향이었고 똑같이 춤 잘추고 노래 잘하고 양금 잘 타기로 그 당시 장안의 남자들은 어누 누구 모르는 이가 없었다.

 

더욱이 이난향은 얼굴 잘나고 거동 곱고 말소리가 맑을 뿐더러 하나 물으면 열을 아는 재주덩어리였으니 그것은 난향의 맑은 두 눈동자와 넓죽한 이마에 그 재주가 들었다고나 할 것이다. 글 잘하는 사람들도 「난향」이요 돈 잘 쓰는 궐자들도 「난향」이었다. 그러더니 난향이나 산호주나 기적에 몸을 둔 지 15년째 되는 소화 8년 봄, 꽃피고 새 지저귀던 때 이들의 나이도 모두 30년의 고개를 넘게 되니 이들에게는 머지않아 닥쳐올 얼굴의 주름살을 막을 길 바이없음을 느꼈던지 난향은 영남의 어떤 부호의 사랑과 짝을 지어 화류계에서 사라져 버렸으니 지금에는 아들 딸 많이 낳고 무심한 세월만을 손꼽고 있으리라.

그러면 난향이와 산호주가 간 뒤의 조선권번에는 어떤 명기가 오늘날까지 있어오는가?

백운선(白雲仙)이가 그 이름이요, 김수정(金水晶)이 또한 그러하다.

 

백운선의 본 이름은 순향이요 명치 33년 3월 17일이 그의 생일이다. 인제 나이는 먹을 만치 먹어 대정 8년에서 오늘날까지 내려오니 실로 기적에 몸을 던진 지 20년을 헤아리게 되었다. 기생으로 더구나 한다하는 명기로 이렇듯이 오랜 동안을 계속해서 오는 이는 오직 백운선이 하나뿐일 것이요 30의 고개를 넘으나 그 노래 그 춤은 조금도 변할 줄 몰라 그의 인기는 도무지 사라질 줄 모르니 이를 가리켜 만년 명기라고나 할 것이다. 모두가 하규일씨의 손에 길러지면서 귀여움을 많이 받은 명기가 그 누구랴마는 유독히 「백운선」은 그중에서도 가장 귀여움을 받아오고 아껴오는 기생이다.

 

김수정(金水晶)은 아직 활짝 피지 못한 한 떨기 백장미화, 그의 나이 24다. 일찍이는 고향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하였고 졸업하던 즉시 열다섯에 기적에 몸을 두어 오늘에 이르렀다. 경기잡가, 서도잡가가 기막히지마는 양금도 신간이 녹고 춤도 탄복할만하니 그의 재주가 어느 명기에 뒤지지 않는다. 요사이 장안에서 백운선이를 아는 자 또한 김수정을 알게 되었다. 한 가지 풍편에 들리는 바는 수정은 오래지 않아 기적에서 정든 남자를 따라 가정으로 들어간다니 수정이 간 뒤에는 과연 누가 또한 나설 것인가.

 

「조선권번」이 있어온 지 이제 25여 년 그 동안 얼굴 잘난 명기 이밖에도 많았었고 소리 잘하고 춤 잘 추던 기생 또한 허다하며 어떤 기생은 비관하고 목숨을 끊은 이도 있고 어떤 기생, 해외의 손님과 정을 드려 머나먼 외지로 가서 소식조차 없는 이가 하도 많으니 이것을 모조리 적을 수도 없는 일이요 그것을 다 추려낼 시간의 여유를 못 가졌음을 한할 뿐이다.

LIST

'기생의세계 > 기생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선시대 명기 동정춘  (0) 2006.01.25
한말의 명기 채금홍  (0) 2006.01.25
기생조합의 효시 한성권번  (0) 2006.01.25
기생조합의 성립과 변화  (0) 2006.01.25
일제시대 기생 사진  (0) 2006.0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