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거의 쓰지 않지만 옛 어른들 말씀에 ‘담부떼 같다’ 혹은 ‘담부떼 같이 몰려 다닌다’거나 “담부떼 같이 덤벼든다”는 말이 있었다. 여러 사람이 떼를 지어서 몰려다니거나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덤벼들거나 하는 현상을 보고 주로 이런 말을 썼는데, 여기서 담부는 경상도 지역의 방언이며 고어이다.
표준말로 하면 담비가 될 것이다. 이와 비슷한 표현 중에 “문둥이 담부떼 같다”라는 말도 있었다. 문둥이들은 혼자 다니지 않고 떼로 몰려서 다니는데, 무슨 일을 하든지 한꺼번에 하는 습성이 있었던 것에서 유래된 말이다.
문둥이들이 몰려다닐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병을 옮길까봐 일반인들이 기피하는데다가 혼자 다니다 보면 어떤 봉변을 당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표현들은 모두 담비라는 동물에게서 비롯된 것인데, 그 뜻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담비의 속성을 정확하게 알아둘 필요가 있다.
담비는 식육목 족제비과 담비속에 속하는 포유류를 총칭하는 말인데, 아시아 전역에 분포하는 동물로 황색의 털을 가지고 있다. 그 생김새는 족제비와 비슷하지만 몸이 약간 크고 다리가 비교적 짧은 것이 특징이다.
이 동물은 대략 7~8종으로 분류되는데, 몸길이는 약35~60㎝인데 비해 꼬리의 길이는 12~37㎝로 매우 긴 편이다. 담비의 꼬리는 길고 끝이 가는데다가 몸과 꼬리의 털은 촘촘하며 부드럽고 광택이 있어서 예로부터 고급 모피로 애용되었다고 한다.
담비 꼬리와 관계된 고사성어 중에는 狗尾續貂라는 말이 있는데, 보잘 것 없는 개의 꼬리로 귀한 담비 꼬리를 대신한다는 의미로 인재를 제대로 쓰지 않아서 신분이 낮고 천한 사람이 高官에 등용되는 것을 비유하는 것이다.
이 성어는 중국의 진나라 때에 생겨난 말인데, 매우 재미있는 고사에서 유래한다. 한나라의 말기는 십상시와 탐관오리들이 국정을 좌지우지 하는 바람에 군웅이 봉기하여 위·오·촉의 삼국으로 분할되는데, 최후의 승자는 사마의가 이끄는 위나라가 되고, 그의 손자인 사마염이 위나라 원제의 양위를 받아 황제가 되고, 오나라의 항복을 받아 진나라를 세움으로써 천하를 통일한다.
그는 자신의 세족들로 주요 직책을 독차지하게 하는 귀족벌열 정치를 했는데, 아들인 혜제에 이르러서는 사마의의 아홉째 아들인 사마륜에게 왕위를 내주게 된다. 사마륜이 정권을 잡자 그의 친척과 친구들, 심지어는 종과 심부름꾼까지도 벼슬자리를 차지하게 됨으로써 벼슬아치가 넘쳐나게 되었다.
그 당시의 벼슬아치들은 官帽를 담비 꼬리로 장식하였는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담비꼬리를 쓰게 되자 그 수요를 감당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담비꼬리와 비슷한 모양을 지닌 개꼬리로 대신하게 되었는데(貂不足 狗尾續), 狗尾續貂는 여기에서 생겨난 말이다.
이처럼 털이 달린 담비의 꼬리와 가죽은 고급 모피로 사용되는 귀한 존재였는데, 우리말의 “담부떼 같다”는 말은 담비가 지닌 속성을 정확하게 짚어낸 것이어서 무척 재미있다. 담비는 그렇게 힘이 센 동물은 아니기 때문에 한 마리가 혼자 다니는 법이 없고 반드시 무리를 지어서 다닌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은 무리를 지어서 다닐 뿐 아니라 모든 행동이 집단적이고, 대장이 하는 대로만 따라 하는 습성을 지니고 있다. 주로 맨 앞에 있는 놈이 대장인데, 대장이 도망가면 모두 도망가고 대장이 덤벼들면 모두 한꺼번에 덤벼들며, 대장이 넘어지면 모두가 한꺼번에 넘어지는 진기한 현상을 연출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담비를 사냥할 때는 무리의 대장이 어느 놈인가를 정확하게 파악해서 그 놈만 잡으면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무리는 전체가 잡힌 것으로 되어서 도망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담비와 관련된 또 하나의 재미있는 일화는 사냥꾼이 담비떼를 발견하고 대장을 향해 활을 쏘았는데, 화살이 빗나가서 대장의 한쪽 다리에 맞았다고 한다.
대장 담비는 총을 맞은 다리를 절룩거릴 수밖에 없었는데, 뒤에 있던 모든 담비들 역시 같은 다리를 절룩거리면서 걸어가더라는 것이었다. 담비가 지닌 이러한 습성에 착안한 우리 선조들은 아이들이 떼로 몰려다니면서 극성을 떨거나 여러 명의 형제들이 무엇을 해달라고 한꺼번에 어머니에게 매달리는 현상 같은 것들을 가리켜 “담부떼 같다” 혹은 “담부떼 같이 덤빈다”는 표현을 했던 것이다.
자연현상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언어나 표현이 드문 현대사회에서 볼 때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기는 하지만 자연과 하나가 되어 삶을 살았던 선조들의 숨결을 조금이라도 느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정리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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