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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세계/우리문학현장기행

까마귀와 서출지 이야기

by 竹溪(죽계) 2005. 1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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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출지(書出池)이야기



수수께끼는 질문과 답변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지혜 겨루기의 형태를 띠는 것으로서 오답을 유도하는 장치가 질문 속에 포함되어 있는 구비문학이다.

예로부터 우리는 수수께끼를 통해 자연의 섭리를 배우며 정보도 주고받았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수수께끼를 통해서 삼라만상에 대한 세심한 관찰력과 함께 그것을 나타내고자 하는 적절한 문학적인 표현들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기르게 된다는데 있다. 수수께끼는 사람들에게 흥미를 유발해 쾌락을 제공할 뿐 아니라 그 속에 역사적 진실과 세태비판 등을 담아내는 기능을 가진 구비문학이다. 수수께끼를 잘 활용한 대표적인 예로 자루 빠진 도끼를 빌려주면 하늘을 괼 기둥을 깎겠다는 내용의 노래를 불러서 요석공주와 사랑을 나눈 후 설총을 낳은 원효의 이야기가 있다.

수수께끼는 독자적으로 존재할 때보다 이야기와 결합될 때 더 큰 힘을 지니며 오래 지속된다. 그 예로는 신라시대에 왕의 목숨을 구하고 나아가 생활민속으로 발전한 `서출지'와 `사금갑설화'가 있다. 삼국유사에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싣고 있다.

“신라 제21대 소지왕 10년에 왕이 천천정(天泉亭)에 갔을 때 까마귀와 쥐가 앞에 와서 울더니 쥐가 사람의 말을 하여 왕에게 고하기를 `이 까마귀의 가는 곳을 찾아 보라'고 하는 것이었다. 왕이 기사를 명하여 쫓아가게 하였는데, 남산의 동쪽에 있는 피촌(避村)에 이르러 돼지 두 마리가 싸우는 것을 서서 보다 그만 까마귀의 간 곳을 잊어버리고 길가에서 헤매고 있었다. 이 때 한 노인이 못 가운데서 나와 글이 써진 편지를 올렸는데, 겉봉에 쓰여 있기를 `이 편지를 떼어보면 두 사람이 죽을 것이고 떼어보지 않으면 한사람이 죽을 것이다'고 하였다. 기사가 와서 왕께 편지를 드리니 왕이 말하기를 `두 사람이 죽게 된다면 차라리 떼보지 말고 한 사람만 죽는 것이 옳다'고 하였다. 천기를 보는 일관이 아뢰되 `그렇게 하시면 안됩니다. 두 사람은 일반 백성을 말하는 것이요, 한 사람은 왕을 가리키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왕도 그렇게 여겨 편지를 떼어 보니 그 글에 이르기를 `거문고 집(琴匣)을 쏘라'고 쓰여 있었다. 왕이 곧 궁궐에 들어가 무사를 시켜 활로 거문고집을 쏘게 하니 거기에는 궁궐의 내전에서 불공드리는 승려와 지체 높은 여인인 궁주(宮主)가 서로 간통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에 왕은 두 사람을 처형시켰다. 이런 일이 있은 후로 신라의 풍속에 매년 정월의 첫 돼지날(上亥)·쥐날(上子)·말날(上午)에는 모든 일을 조심하고 함부로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정월 15일은 까마귀를 기리는 날인 오기일(烏忌日)로 정해서 찰밥으로 제사를 지내게 되었는데, 지금까지도 이 풍습은 그대로 내려오고 있다. 세속 말에는 이것을 `달도'라고 하는데, 이 뜻은 모든 일을 구슬프게 금지한다는 것이다. 편지가 나왔다고 하여 그 연못을 서출지(경상북도 경주시 남산동 소재)라 하였다.”

까마귀와 쥐가 사람의 말을 하고, 연못 속에서 나온 노인이 준 수수께끼를 잘 풀어 역모를 막게 되었던 것이다. 이 정도가 되면 수수께끼는 이제 문학적인 효용성만이 강조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그 범위가 나라 전체로 확대되어 정월의 첫 돼지, 쥐, 말에 해당되는 날을 조심하는 민속으로 정해지게 되었으며,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민족이 지키고 있는 생활풍습이 되었던 것이다. 수수께끼와 민속을 연결시켜주는 유적으로 남아있는 서출지를 답사하면서 예로부터 우리민족이 즐겨왔던 수수께끼에 들어있는 의미를 상기해 보는 것도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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